PRiSM Review

전략적 천사투자, 혁신을 얻다

96호 (2012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주도하는 PRiSM(Practice & Research in Strategic Management) 연구회가 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략 연구회인 PRiSM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면면을 상세히 분석, 경영진에게 통찰과 혜안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국내외 기업의 벤처 투자
국내 바이오 대표 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최근 “바이오 벤처기업에 매년 1000억 원씩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굴지의 삼성그룹도 삼성벤처투자주식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적극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운용하고 있는 투자조합의 결성금액은 합계 6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급속한 기술 및 사회 환경의 변화와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은 대부분의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며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뤄내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원과 역량만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표명하며 외부 조직과의 협력을 통해 외부자원을 활용함으로써 변화에 맞서려고 한다. 이 중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품으로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혁신에 목말라 있는 기존 기업들에 매력적인 협력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들어 셀트리온이나 삼성그룹처럼 CVC 투자를 통한 벤처기업과의 협력관계 형성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CVC 투자는 2000년 후반 IT 버블과 함께 급격히 감소했지만 최근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CVC 투자 규모는 약 13억 달러에서 2010년 19억 달러로 약 33% 성장했다.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기업들이 다시 벤처기업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CVC를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해 혁신적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인가?
 
전략적인 투자를 통한 시너지 창출
CVC란 비금융권 기업이 법·제도적인 면에서 독립적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소수 지분투자를 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이는 기업 간의 비주식형 조직관계인 제휴(Alliance), 기업 간 비주식형 투자인 공동벤처(Joint Venture), 그리고 분사기업에 대한 투자(Spin-outs)와 같은 행위와는 구분된다.1 또한 독립적인 벤처캐피털(IVC·Independent Venture Capital)이나 금융 및 투자 관련 기업에 의한 투자 등과도 구분된다. 특히 CVC는 IVC와 그 목적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IVC 투자가 단순히 투자를 통한 재무적 이득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면 CVC 투자는 재무적인 목적 외에 투자기업의 사업과 관련된 전략적인 목적을 갖는다.
 
CVC 투자의 전략적 목적은 다음 두 가지 유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보완적 유인으로 투자기업은 기존 기술, 제품 및 서비스와 보완관계에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존 사업 부문과 시너지를 창출하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대체적 유인으로 투자를 통해 새로운 제품, 서비스 또는 기술을 확보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2  CVC 투자기업들은 이러한 전략적 목적에서 벤처기업과 협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혁신 기회를 탐색한다. 실제로 CVC 투자가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CVC 투자기업은 신기술 탐색과 신시장 개척, 기존 사업의 지원과 내부 혁신, 타 기업 및 IVC와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기회 확보 등의 목적을 우선시한다고 답하고 있다.3 닫기 또 다른 조사에서도 CVC 투자기업의 85%에 달하는 기업들은 전략적 목적을 투자 과정에서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4 바로 이러한 전략적 목적에서 우리는 혁신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CVC의 네 가지 투자 유형
CVC 투자를 계획할 때 기업은 기존 사업의 자원, 역량, 강점 등을 파악하고 투자 대상인 벤처기업의 상황도 함께 고려해 적합한 전략적 투자의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 헨리 체스브로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하스(Hass) 경영대학원 교수는 CVC 투자 유형을 투자 목적(재무적 목적과 전략적 목적) 및 투자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운영적 연관성(기업간 자원 및 역량의 긴밀성) 정도를 두 축으로 해 추진형, 강화형, 개척형, 수동형의 네 가지로 나눴다.5  (그림 1)
 
 
추진형 투자(Driving Investment)투자기업과 벤처기업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할 때 강한 전략적 목적을 갖고 투자하는 유형이다. 투자 대상인 벤처기업이 투자기업과 유사한 사업영역에서 활동하므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다시 투자기업의 사업을 강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벤처투자 사례가 전형적인 추진형 투자 유형에 속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 구조인 ‘.NET’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기업들을 상대로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는 차세대 웹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IBM을 제치고 자사의 기술을 표준으로 만들고자 하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벤처투자를 통한 ‘.NET’ 관련 기술의 양적·질적 성장은 결과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강화형 투자 (Enabling Investment)투자기업과 벤처기업 간 기업 운영의 연관성은 적지만 투자를 통해 다른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유형이다. 이는 간접적으로 투자기업의 사업에 대한 수요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는 벤처기업, 즉 투자기업과 보완적인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셀트리온의 벤처투자가 바로 강화형 투자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 관련 연구와 바이오 벤처를 육성해 산업 자체를 키운다는 목적으로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의 이면에는 제조인프라를 갖춘 셀트리온에 생산을 의뢰할 고객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 다른 강화형 투자의 대표적인 예로 인텔캐피털을 꼽을 수 있다. 인텔은 1991년 인텔캐피털을 설립해 지금까지 전 세계 1100개가 넘는 기업에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특히 인텔은 가치사슬상의 기업들 이외의 시장 생태계(ecosystem)에 해당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업체들에도 투자했다. 이는 결국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시켜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시장 주도권을 쥐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개척형 투자(Emergent Investment)벤처기업이 보유한 자원 및 역량은 투자기업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지만 현재 투자기업에 돌아오는 전략적 시너지가 적은 상황에서 투자하는 유형이다. 투자기업은 개척형 투자를 통해 현재 사업 및 전략과는 다르지만 유사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거나 관련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즉, 투자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의 사업성, 기술성 등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탐색하는 것이다. 인텔의 버클리네트워크(Berkeley’s Networks)에 대한 투자는 이러한 개척형 투자 유형을 보여준다. 버클리네트워크는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네트워크 라우터 등을 생산했다. 이는 인텔이 아직 진입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이었다. 전략적 이득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인텔은 우선 버클리네트워크를 재무적 관점으로 접근해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버클리네트워크가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나타내자 사업 가능성을 확인한 인텔은 전략을 수정,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CVC 투자를 통해 신규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수동형 투자 (Passive Investment)투자기업과 벤처기업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 없이 재무적인 목적으로 투자하는 유형이다. 이는 일반적인 IVC의 투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투자기업의 사업과 전략적인 시너지를 창출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기업벤처투자를 위한 주의사항
위의 사례들과 더불어 학계의 여러 연구에서도 CVC 투자를 통해 경영성과를 개선하고 기술혁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투자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다음 사항들을 CVC 투자의 성공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CVC 투자는 전략적 목적이 수반돼야 한다. 순수하게 재무적인 목적만으로 운영되는 CVC는 전략적 동기가 수반된 투자에 비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애플컴퓨터는 1986부터 1991년 사이에 CVC 부서를 운영하며 높은 재무적 성과를 거뒀지만 뚜렷한 전략적 성과를 보이지 못해 CVC 부서를 없애야 했다. 여러 실증연구에서도 전략적 동기에 의한 CVC 투자의 성과가 더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전략적 투자에서 비롯되는 투자기업의 경영 및 기술적 성과의 개선은 기업에 장기적인 이득을 전해줄 것이다.
 
두 번째로 CVC 투자는 독립적인 조직으로 운영돼야 한다. 모기업의 간섭을 최소화해 경영 및 투자기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하도록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 1989년 제록스에서는 제록스테크놀로지벤처스(XTV·Xerox Technology Ventures)를 설립해 관련 사업에서 활동하는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제록스는 XTV에 높은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 200만 달러 이하에서는 제록스의 동의 없이 투자를 진행하는 등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했다.
 
세 번째로 벤처기업과 투자기업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의사결정구조는 독립적으로 유지되지만 투자가 결정된 이후에는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 기업 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협력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UPS는 기업의 매니저들을 투자한 벤처기업 이사회에 참석하도록 했으며 모토로라는 지식이전 담당팀을 운영해 투자기업과 벤처기업 간에 지식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지게 했다.
 
마지막으로 투자기업은 충분한 지식기반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의 지식과 역량을 학습할 수 있는 흡수역량을 갖춰야 한다. 투자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벤처기업의 자원과 역량은 투자기업의 흡수역량 정도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기업이 새로운 지식과 기회를 인식해 학습하고 기업 내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인텔이 버클리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던 것도 인텔 내부적으로 지식과 역량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국내 CVC 활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
앞서 소개한 삼성벤처투자주식회사와 셀트리온 외에도 국내에는 1999년에서 2007년 까지 약 53개의 CVC가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국내 CVC 투자활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국내 CVC는 재무적 목적에 의한 투자의사결정 비율이 76.2%에 이른다.6 이에 따라 투자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서로 간에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투자의 수익 확보에 더 중점을 두고 있으며 투자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협력 관계도 매우 취약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국내 CVC의 투자 행태는 보다 중요한 ‘전략적 시너지 창출’이라는 숲은 외면한 채 ‘재무적 수익’이라는 눈앞의 나무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세계 1위에서 한순간에 추락한 노키아, 최초의 휴대폰 개발업체였지만 구글에 통째로 인수당한 모토로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시장의 구석 곳곳에서는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맞선 생존의 기로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혁신전략을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한다.
 
한민선 PRiSM연구회 연구원 hanms@temep.snu.ac.kr
필자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사 학위(신재생에너지)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으로 벤처·중소기업의 기술경영 및 혁신 전략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