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롯데칠성이 ‘처음처럼’ 소주를 생산하는 두산주류의 인수자로 뽑혔다. 인수 금액은 5030억 원, EV/EBITDA 비율은 13.3이었다. 일부 언론은 9, 10배가 적정한 EV/EBITDA 비율이 13.3에 달했다며 너무 비싸게 두산주류를 인수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두산그룹이 장부 가치가 2000억 원대에 불과한 두산주류를 매각해 3000억 원의 막대한 처분 이익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인수 가격이 비싸다고 분석한 언론도 있었다.
EBITDA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Earnings Before Interest, Tax,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의 약자다. 이 용어는 언론 기사, 각종 경영 경제 관련 서적, 기업 실적 보고서, 애널리스트 보고서 등에 종종 등장한다. 특히 시장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주식투자 관련 책들은 대부분 EBITDA를 소개하고 있다. EV/EBITDA가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할 수 있는 유용한 주식투자 지표라는 설명도 으레 뒤따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지표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EV는 ‘기업 가치(Enterprise Value)’의 약자로, 기업을 인수할 때 필요한 총 자금을 뜻한다. 즉 ‘기업의 시가 총액 + 부채 총액 - 현금성 자산’이다. 이때 시가 총액은 인수에 필요한 웃돈까지 포함한 가격이다.
예를 들어 롯데칠성이 두산주류 지분을 100% 인수한다면 시가 총액 전부를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두산주류를 인수하더라도 두산주류 전부가 롯데칠성의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산주류가 갖고 있는 부채까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두산주류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이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EV에서 부채 총액은 더하고 현금성 자산은 빼는 이유다. 즉 이 차액을 시가 총액에 더해준 수치인 EV가 두산주류를 100% 소유하는 데 필요한 총 자금이다.
EBITDA는 기업이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두산주류의 EV/EBITDA가 13.3배라는 것은 두산주류가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의 약 13.3배를 인수에 지불했다는 뜻이다. 현재와 같은 EBITDA가 매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인수합병(M&A) 투자 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13.3년이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EBITDA 수치가 낮다면 상대적으로 투자 자금의 회수 기간이 짧다는 의미다. 이런 기업은 현금 흐름에 비해 주가가 낮으므로 저평가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13.3년이라는 회수 기간은 약간 과장된 면이 있다. 롯데칠성이 두산주류를 인수한 후 두산주류의 부채를 100% 다 갚을 필요는 없다. 일정 기간 후 두산주류의 지분 일부를 상장시켜 인수 대금 일부를 회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실제 투자 자금 회수 기간은 13.3년보다 훨씬 짧을 가능성이 높다. M&A를 통해 짧은 기간에 덩치를 급격히 불려온 STX그룹도 인수 회사의 경영을 호전시킨 후 지분 일부를 상장시켜 짧은 기간에 손쉽게 투자금을 회수했다.
몇몇 책들은 손익계산서에 등장하는 이익 정보 대신 최근 EBITDA가 많이 쓰이는 이유를 이런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즉 회계 이익은 발생주의라는 가정 때문에 기업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지만, EBITDA는 경제적 실질 이익을 나타내는 지표여서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논리다.
EBITDA와 OCF의 정확한 뜻
그렇다면 이 해석은 과연 올바를까. 우선 EBITDA가 개발된 이유부터 살펴보자. ‘현금흐름표’는 현재 기본 재무제표 중 하나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현금흐름표 자체가 없었다. 대신 ‘재무상태변동표’가 쓰였다. 재무상태변동표는 회사의 순운전자본(유동 자산 - 유동 부채)이 일정 기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타내는 표다. 즉 한 기업의 유동성이 풍부한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여러 회계학자들의 연구 결과, 순운전자본보다는 현금 흐름 자체가 기업의 유동성 여부를 훨씬 잘 나타낸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기업의 도산 예측에는 현금 흐름 지표의 유용성이 훨씬 뛰어났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현금흐름표가 재무상태변동표를 완전히 대체했다.
현금흐름표는 한 기업이 특정 기간 조달하고 사용한 현금, 즉 현금 흐름을 영업 활동, 투자 활동, 재무 활동으로 구분해 보여준다. 이 중 영업 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Operating Cash Flow·OCF)은 기업이 영업 활동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현금을 창출했느냐를 나타낸다. 놀랍게도 OCF의 정의는 앞에서 소개한 EBITDA의 정의와 똑같다. 즉 EBITDA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소개하는 책들조차 이 용어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 EBITDA와 OCF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용어의 정확한 차이는 무엇일까.
현금흐름표가 나오기 전부터 회계학자나 기업 재무 담당자들은 OCF의 근사치를 손익계산서로부터 계산해 투자 및 평가 목적으로 사용했다. 이 지표가 바로 EBITDA이다. OCF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OCF = ①당기 순이익 + ②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감가상각비, 대손상각비 등) - ③현금 유입이 없는 수익(지분법 이익 등) - ④영업 자산의 증가(재고 자산, 매출 채권 등의 증가분) + ⑤영업 부채의 증가(매입 채권 등의 증가분)
이때 ①+②-③을 한 값이 EBITDA와 대단히 유사하다. 영업 자산이나 영업 부채 증가분이 매년 비슷하다면 OCF와 EBITDA는 상당히 비슷해진다. 그렇다면 처음 EBITDA를 개발할 때 ④와 ⑤를 제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업 자산 및 부채에 속하는 항목이 많아 계산이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즉 OCF 대신 EBITDA가 등장한 이유는 회계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재무지표를 평가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OCF는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EBITDA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 이유는 ④나 ⑤의 영업 자산 증가 및 감소 정도가 상당히 큰 금액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심각한 경기 침체 때는 영업이 잘되지 않는다. 재고 자산이 쌓이고 현금 회수가 늦어져 매출 채권이 늘어나는 일이 허다하다. 많은 현금이 재고나 채권에 묶여 있는 셈이다.
반대로 매입 채권이 이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늘어나지 않는다면 ④나 ⑤의 합계액이 상당히 큰 수치가 된다. 즉 EBITDA에 비해 OCF가 훨씬 작을 수 있다. 때문에 이럴 때는 EV/EBITDA 대신 EV/OCF를 사용해야 훨씬 정확한 계산할 수 있다.
회계학계가 이미 OCF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실무 현장에서는 EBITDA를 쓰고 있다.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EBITDA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기업 재무 담당자들이 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식투자법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도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들은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