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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크리스찬 헬러 VBA 대표

“표준화된 방법론 없이는 기업 간 비교 불가능… 사회적 가치 측정하는 보편적 모델 만들 것”

이방실 | 282호 (2019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 개발을 위한 글로벌 협의체 VBA 운영 계획
1. 1기(2019년 8월∼2020년 7월)
: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표준화된 가치 측정 시범 모델(Model 1.0) 개발
2. 2기(2020년 8월∼2021년 7월)
: VBA 추가 멤버 영입, 파일럿 테스트 및 모델 개선(Model 2.0), 다양한 이해관계자 설득 작업
3. 3기(2021년 8월∼2022년 7월)
: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관련 회계 표준 확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이전




기후 변화, 자원 고갈 등 전 지구적 문제의 심각성이 날로 심화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간 서구 선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국내의 경우엔 SK그룹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공표하는 수준을 넘어 핵심성과지표(KPI)에 사회적 가치 비중을 50%나 반영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폐 가치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재무적 성과와 달리 사회적 가치는 너무 다양하고 범위가 넓으며 주관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과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가치 측정 모델은 고사하고 ‘단일’ 기업 차원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걸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 개발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협의체가 구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독일 기반의 글로벌 화학기업 BASF,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 프랑스 건설 재료 생산업체인 라파지홀심(LafargeHolcim) 등 8개 기업 주도로 지난 6월 출범한 VBA(Value Balancing Alliance)다.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 공동 연구를 위해 순수 민간 주도로 형성된 협의체로, 국내에선 유일하게 SK그룹이 VBA 창설 멤버로 참여했다. 1

이뿐 아니다. 이른바 ‘세계 4대 회계법인’으로 불리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KPMG, 언스트&영(EY), 딜로이트(Deloitte) 모두가 공익 컨설팅 기관(pro-bono consultants)으로 VBA에 합류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역시 VBA의 정책 자문기관(global policy advisor)을 자처하며 한배를 탔다. VBA는 이들과 함께 향후 3년 안에 마치 국제회계기준(IFRS)처럼 사회적 가치 분야에서도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제시한다는 목표다.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 가동을 시작한 VBA 실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의 대표(CEO) 크리스찬 헬러(Christian Heller)를 DBR이 만났다. 그는 한시적 비영리 조직(NPO)인 VBA를 이끌기 전 독일 BASF에서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전사 전략을 담당했다. 헬러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다.



VBA는 어떻게 출범하게 됐나.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건 약 2년 전이다. VBA 창설 멤버인 BASF, 라파지홀심, 노바티스 등 3개 회사와 네슬레(Nestle), 케링(Kering)그룹이 모여 각자의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을 비교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5개 기업 모두 일찍부터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기에 나름의 측정 모델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가령, BASF는 ‘사회 기여 가치(Value to Society)’, 라파지홀심은 ‘통합 손익(Integrated Profit & Loss)’, 노바티스는 ‘재무·환경·사회 영향 평가(Financial, Environmental, and Social Impact Valuation)’ 등 회사마다 각각의 프레임워크와 방법론이 존재했다.

사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관련 회계 표준도 없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이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처음 내놓았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과거엔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이었기 때문에 기업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그 결과를 공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졌고, 개별 기업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틀에 따라 도출된 결과물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정보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 사회적 가치 측정에 앞서 있는 기업들끼리라도 서로의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을 비교해보자는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분석 결과, 각 기업이 사용하는 모델 간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이는 개별 기업이 공개한 결과물들을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이에 따라 표준화된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개발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BASF 주도로 VBA를 창설하게 됐다.



VBA 설립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네슬레나 케링그룹은 현재 VBA 멤버에서 빠져 있는 것 같다.
맞다. 지난 6월 VBA 출범 당시 멤버는 BASF 외에 SAP, 보시(Bosch), 도이치뱅크(Deutsche Bank), 라파지홀심, 노바티스,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 SK그룹으로, 초기 논의 때 함께했던 네슬레와 케링그룹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두 개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측정에 선도적 노력을 보이고 있는 기업들 중 상당수도 아직까지 멤버로 합류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가령, BASF는 사회적 가치 측정 기법 관련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향후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비공식적 모임인 ‘임팩트 평가 라운드테이블(Impact Valuation Roundtable, IVR)’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IVR 멤버 기업 수는 30여 곳에 달하지만 VBA는 총 8개 기업으로 출범했다.

네슬레나 케링그룹을 포함해 기업의 사회 기여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다수의 IVR 멤버사가 VBA 창설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인력 및 비용 측면의 부담을 들 수 있다. VBA 멤버가 되려면 기업마다 풀타임 상근 인력 1명씩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에 파견해야 한다. 향후 3년간 운영 비용으로 매년 10만 유로(약 1억3500만 원)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부담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실제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VBA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파일럿 모델을 개발하면 기존에 각자 적용해 오던 방법론을 버리고 새로 도출한 모델을 적용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기업이 학습하게 되는 모든 내용은 멤버들 간 숨김없이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VBA가 제시한 모델이 실제 기업의 의사결정과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연한 일이지만 몇몇 기업 입장에선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개발해 놓은 모델이 없으니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모델을 개발해 적용하고 확대해 나갈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VBA 입장에서도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선 초기엔 제한된 수의 기업이 모여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의 기본 틀을 잡아가는 편이 전략적으로 낫다고 판단했다. VBA 출범 당시 이사회에서 1기(Phase 1: 2019년 8월∼2020년 7월) 멤버는 8개 기업 외에 한두 곳 정도만 연말까지 추가로 더 받는다는 방침을 세운 이유기도 하다. 일단 올해 안에는 이 정도 선에서 멤버 구성을 마치고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 개발을 시작할 계획이다. 측정 모델에 대한 큰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업이 VBA에 합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내년 하반기 VBA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와 관련한 파일럿 모델을 내놓으면 검토 후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이 꽤 된다.



향후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VBA는 향후 3년간 운영을 목표로 하는 한시 조직으로 1년 단위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물론 2022년 7월 이후에도 운영 필요성이 더 있다고 판단된다면 연장한다는 합의는 멤버들 간 이뤄진 상태지만 영구 조직은 아니다.

당연히 1기 목표는 표준화된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 개발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내년 7월까지는 적어도 뭔가를 논의할 가치가 있는 파일럿 모델, 즉 산업과 지역,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회사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Model 1.0)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이 과정에서 공익 컨설팅 기관으로 참여한 4대 회계법인은 물론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위원회(WBCSD), 자본연합(Capitals Coalition) 2 같은 전문가 집단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할 계획이다. 특히 자본연합이 제시하는 이론적 토대 위에 실제 기업에서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 사회적 가치 측정 도구를 개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후 2기(Phase 2: 2020년 8월∼2021년 7월)에는 VBA와 함께할 추가 멤버를 영입하고, 실제 회사를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모델을 세부적으로 조정, 개선(Model 2.0)해 나갈 것이다. 사실 현재 VBA 멤버 구성을 보면 지역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편향성이 존재한다. 대부분 유럽 기업, 특히 독일어권에 속한 기업들이 많고 모든 산업군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내년엔 북미, 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각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엄선해 풀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때 최고경영진이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볼 생각이다.

이 밖에도 VBA는 2기 동안 금융시장의 투자자와 국제회계기준위원회 같은 표준 제정 단체 및 각국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VBA가 개발한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설득 작업이 너무 중요한 만큼 1기부터 시작할까 고민도 했지만 2기 이후로 미뤘다. 일단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뭔가 실체적인 모델이 나온 다음에 주요 이해당사자들과 논의를 진행하는 편이 더 진정성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마지막 3기(Phase 3: 2021년 8월∼2022년 7월)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관련 회계 표준을 확정 지어 많은 이해관계자가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은 OECD에 이전해 모든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아무리 파일럿이라고 해도 표준화된 모델을 1년 안에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
물론이다. 무엇을 기준점(baseline)으로 잡아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것인지, 기업 가치사슬 단계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로 잡아야 할지, 개별 기업을 넘어 공급업체(suppliers) 등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지, 그렇게 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하는지 등 서로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부분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측정 모델은 어떻게든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기업마다 나름의 방법론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표준화된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공통분모를 얼마나 최대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불가능한 과제는 결코 아니다. 가령, 어떤 곳은 특정 비즈니스 활동의 결과(outcome)를, 어떤 곳은 사회·경제 전반에 끼치는 임팩트(impact)를 측정하는 등 VBA 멤버들마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차이는 있지만 이를 조정해 합의에 이르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진짜 도전 과제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가령, 임금에 대한 관점이다. 재무제표상 임금이 비용으로 처리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듯, 기존 회계에서 종업원들은 비용 유발 요인이다. 하지만 임팩트 관점에서 볼 때 임금(종업원)은 긍정적 가치 창출 동인(positive value driver)이다. 임금은 구매력을 가져오고, 구매력은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 즉 임금을 긍정적 가치 창출 동인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절대 기업 혼자 만들어 낼 수 없다. 투자자는 물론 회계기준 제정 기관, 규제 당국 등 시장을 구성하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이런 사고방식을 지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1기에 표준화된 가치 측정 모델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2기 이후 이해관계자 대상의 설득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기업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판을 깔아주고 적절한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4대 회계법인 모두 공익 컨설팅 기관으로 VBA에 참여한 게 흥미롭다.
현재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모델은 이들 회계법인이나 부티크 형태의 작은 컨설팅 업체가 개발한 방법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BASF의 사회 기여 가치 모델 역시 기본적으로 KPMG의 가치 측정 방법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표준화된 툴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회계법인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VBA 멤버가 되기 위해선 학습의 결과물을 서로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이는 각 회계법인이 자사 측정 모델과 관련된 지적재산권(IP)을 경쟁사에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4대 회계법인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아마 글로벌 차원에서 대형 회계법인 4곳이 자사 IP의 독점적 사용까지 포기하며 협력하는 건 처음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이는 4대 회계법인 모두 각자 개별적인 모델을 가지고 ‘각개전투’를 하기보다는 합의된 모델을 가지고 접근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지금은 각각의 방법론이 달라 기업 간 비교가능성(comparability)이 낮아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표준화된 모델을 개발해 낸다면 쉽게 비교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잠재 고객군이 훨씬 더 많아져 글로벌 확장성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업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VBA는 순전히 민간 기업들이 주도한 이니셔티브다. 정부나 비정부기구(NGO) 등 외부의 압력 없이, 정말로 건강한 지구를 위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혹자 중에는 VBA가 하고자 하는 일이 또 다른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 환경주의)’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내년까지 첫 번째 파일럿 모델을 내놓고, 좀 더 많은 기업을 멤버로 끌어들이면서, 더욱 정교하게 모델을 다듬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SK 외에 한국의 다른 많은 기업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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