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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략

재생가능에너지, 이젠 기업 생존을 좌우

이유니 | 272호 (2019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재생가능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에너지 소비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의 양대 산맥도 해외 공장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시장 확장은 고사하고 기존 고객마저 잃게 생긴 탓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고객들이 일찌감치 재생가능에너지로 소비전력 전량을 조달하며 납품업체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기업 생존전략이 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비용 절감, 신용등급 상승, 투자 유치 및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재생가능에너지 100%’ 선언하는 기업들

지난해 10월, 세계 메모리반도체 2위인 SK하이닉스는 해외 반도체 생산공장이 소비하고 있는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갑자기 에너지 정책 노선 변화를 선언한 기업은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이보다 4개월 먼저 삼성전자도 미국, 유럽, 중국 내 사업장을 202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 1 고 나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발표는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 39개 제조 공장과 사무용 건물에 3.1GW 규모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시설을 짓기로 했다. 무려 113만 가구가 한 해 소비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이다. 도대체 왜 세계 반도체 업계의 양대 산맥인 두 기업이 잇달아 이런 전략적 결단을 내린 걸까. 이들이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생존 전략이 됐다. 이미 변화는 전 산업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세계 완성차 업계에서는 BMW, 제너럴모터스(GM), 타타모터스 등이 부품 조달부터 유통과 영업까지 기업 활동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까다로운 거래 조건을 내걸면서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한 LG화학이 BMW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포기했을 정도다. 2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두 회사의 최대 고객인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방침이 달라지고 있고,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이다. 이미 애플과 구글은 지난해 4월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모든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는 데 성공하며 다른 기업들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가 애플의 거래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애플이 7년 연속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매출의 6%가 애플로부터 나온다. 그런 애플이 ‘클린 에너지 프로그램(Clean Energy Program)’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200개가 넘는 납품업체들에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부품만 납품하라’고 요구하는데, 제아무리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라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애플은 2020년까지 공급사슬 전체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경영 방침을 세우고 기업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계획대로 된다면 전 세계에 4GW 규모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설비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2018년 10월 기준 현재 부품업체 29개가 애플의 거래 조건대로 재생가능에너지 전환을 결정하고 대열에 합류했다.





재생가능에너지=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기는 도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The fight against climate change is moral and environmental imperative that also makes good business sense).” 애플 4 얼마 전까지 기업들은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의 하나로 취급했다. 실리보다는 명분을 챙기려는 의도가 짙었다. 친환경 에너지 사용으로 환경보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라는 정부와 소비자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점점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도의적, 환경적 논의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전 세계 195개 국가가 2015년 12월 프랑스에 모여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한 뒤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기업들을 상대로 이익 창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라는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 부문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65%를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당장 전기 사용량을 무턱대고 줄일 수도 없고, 에너지 효율화에도 한계가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유력한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이제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업의 이익 추구 활동과 무관하다는 그간의 인식이 오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IT 컨설팅회사 캡제미니인벤트(Capgemini Invent)에 따르면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선언한 기업은 부문별 재무 성과가 같은 업종 시장 평균보다 7.7%p 앞서 있다. 5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상위 100대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가장 적극적이다. 6 경영 전략 차원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사용이 기업에 어떤 의미를 가지길래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걸까.



경영 전략으로서 재생가능에너지

1. 에너지 비용 절감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이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라 염려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조달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더라도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때 전기료가 오르기는커녕 역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단가가 떨어진다 한들 단위 발전비용만 보면 석탄이나 원자력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보다 여전히 낮다. 그러나 균등화발전원가(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7 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실질적인 에너지원별 경제성을 보여주는 균등화발전원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태양광과 풍력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 자산운용사 라자드(Lazard)가 전통적 발전원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원의 균등화발전원가(보조금 제외)를 비교 분석한 결과, 풍력과 대규모 태양광의 균등화발전원가는 석탄이나 원자력보다 1㎿h당 최대 160달러 낮았다. 풍력 발전원가는 1㎿h당 29∼56달러, 태양광 발전원가는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의 경우 40∼46달러, 박막태양전지의 경우 36∼44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에 반해 석탄과 원자력 발전원가는 각각 60∼143달러, 112∼189달러에 달했다. 태양광과 풍력의 균등화발전원가는 지난 10년간 각각 75%, 30% 떨어진 반면 화석연료의 균등화발전원가는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탄소세 부과 등 갖가지 환경 규제에 대응하다 보니 운영비가 늘어나고, 환경 비용까지 반영한 발전단가가 상승한 것이다.

이에 따라 눈치 빠른 기업들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시설을 일찌감치 확보해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 초콜릿·사탕 회사 마스(Mars)는 5개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연료비 절감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절감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11개 국가 사업장으로 전환 목표를 확대했다. 8 또한 미국 이동통신사 티모바일(T-Mobile)은 2021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15년 동안 약 1000만 달러 상당의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유럽 재생가능에너지 협의체 RE소스(RE-Source) 9 기업의 92%가 에너지 비용 절감과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재생가능에너지를 구매한다.

2. 신용등급 상승과 투자 유치 용이

재생가능에너지 전환은 기업 신용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험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중요한 신용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S&P의 경우 환경과 기후(Environmental and Climate, E&C)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신용평가에 결정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2017년 기준 지난 2년간 2.4배 늘었다. 10

에너지 정책 환경이 계속 바뀌고 있는 만큼 에너지 소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기업은 외부 변수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에너지 사용 기조는 이제 리스크 관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S&P는 이에 대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정책 환경의 변화가 기업 활동에 있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은 이제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를 꾸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장기적 리스크 완화 정책을 경영전략 차원에서 실천하는 기업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재생가능에너지 전환 기업들은 투자 유치도 용이하다. 대규모 투자자 다수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업종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최근 노르웨이정부연기금이 한국전력, 포스코,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네덜란드 ING그룹은 지난해 “석탄은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깨끗한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며 “2025년부터 화석연료 업종에 투자하는 기업은 상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기후변화 리더십에 앞장선 기업들은 투자 유치에 유리해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친환경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인 그린본드(green bond) 발행액은 2017년 전년 대비 60% 증가하며 1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린본드는 재생가능에너지, 전기차, 고효율 에너지 같은 친환경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도록 사용 목적이 제한된 채권이다. 그린본드 활성화에서도 보이듯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의 성장은 기업이 친환경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에서 좋은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3. 브랜드 이미지 제고

소비자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까다로워지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은 B2C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소비자도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제품을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마슬란스키앤파트너스(Maslansky&Partners)가 2018년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0%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지지했다. 11 이에 소비재 부문 기업 17개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루 판매량 4100만 병’을 자랑하는 세계 1위 맥주회사 앤하우저부시인베브(AB InBev, 오비맥주 소유사)는 이런 마케팅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앤하우저부시인베브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기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친환경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캠페인)에 합류했고, 2025년까지 전 세계 생산공장과 사업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할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목표를 달성한 뒤 맥주병에 ‘100% 재생가능에너지’ 인증 마크를 부착하고 판매를 개시했다. 캐나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해외 사업장에서도 차례로 목표를 달성해 인증 마크를 달아 판매할 예정이다.



100% 달성 어떻게… 삼성전자의 고민

삼성전자는 2018년 해외 사업장에서 100%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밝히며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 체결, 재생에너지 인증서(Renewable Energy Certificate, REC) 구매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그 이상의 구체적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만약 삼성전자가 계획대로 이 목표를 실현한다면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애플 등 고객사와 거래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등의 1석3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가 연간 소비한 전력은 총 1만8450GWh 12 에 달한다. 아이슬란드의 2016년 전력 소비량이 총 1만8549GWh 13 에 달하는 것을 고려할 때 1개국이 한 해 사용하는 전력량에 맞먹는 양이다. 과연 삼성전자가 이 많은 양의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할 수 있을까?

아예 비현실적 목표는 아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성공했는데 삼성전자라고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국가별 전력시장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라는 특수성이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 조달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100% 재생가능에너지 목표 달성 여부는 기술이 아니라 전력 시장 정책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책 환경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전환을 위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자가발전뿐이다. 자가발전 외에도 인증서 구매, 녹색요금제, 직접 구매계약 체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외국과는 다르다. (DBR Mini Box ‘기타 재생가능에너지 조달방법’ 참고.)



DBR mini box: 기타 재생가능에너지 조달방법

인증서 구매

인증서 구매 방식은 세계적으로 자가발전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재생가능에너지 조달 경로다. 2017년도 전 세계 기업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의 약 28%가량이 이 방식으로 조달됐다. 현재 한국을 제외한 50여 개 국가가 인증서 구매를 허용한다. 기업이 자가발전을 통해 직접 재생가능에너지를 만들거나 다른 발전소로부터 구입하는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인증서를 사는 방식이다. 주로 전력 직거래가 허용되지 않는 국가의 기업들이 인증서를 사서 소비 전력만큼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에 기여했음을 증명한다. 마치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처럼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자가 파는 인증서를 구입해 전력 소비 권한을 취득하는 셈이다. 유럽에서는 ‘전기의 원산지 보증(GOs, Guarantees of Origin)’, 미국에서는 ‘RECs’라는 이름으로 거래된다. 우리나라에도 REC 시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아닌 발전사업자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인증서 구매 방식에는 맹점이 있다. 발전사업자가 파는 인증서를 샀을 뿐 해당 기업은 여전히 화석 연료나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 사용을 지속하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에 비춰볼 때는 한계가 있다. 자가발전과 달리 인증서 구매가 실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의 확충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인증서 가격이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지역적 전력시장 변수에 민감하게 변하는 탓에 에너지 비용 안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전 세계 기업들은 주로 직거래 방식을 선호하고 차선책으로 인증서 구매 방식을 선택 i 한다.



녹색요금제

현재 국내에서는 오직 한국전력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한국전력이 공급하는 전기는 다양한 에너지원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를 따로 구분할 수 없다.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만 별도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논의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거래 제도가 바로 녹색요금제다. 전력 공급업체는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구매 비용과 재생가능에너지 인증서 판매 매출을 별도 회계 처리한다. 전기를 발전원에 따라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별도 회계 처리를 통해 장부상으로는 재생가능에너지 거래를 따로 구분하는 것이다. 실제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전력 소비 권한이 오간다는 점에서는 인증서 구매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인증서 구매의 경우 전력소비자인 기업이 인증서 시장에서 직접 거래행위를 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인증서 시장에서 인증서를 구매하느라 시간이나 비용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녹색요금제는 전력공급업체가 제공하는 요금제만 선택하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바로 인증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녹색요금제에도 단점이 있다. 계약 기간과 조건에 따라 프리미엄 가격이 붙어 화석연료 전력의 요금보다 비싸질 수 있다. 프리미엄 가격이 붙으면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으로 전기료를 절약하는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또 인증서와 마찬가지로 재생가능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쓴 것처럼 눈가림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단점 때문에 전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중 녹색 요금제 구매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0.07%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제도적 한계 때문에 삼성 역시 2020년 미국, 유럽, 중국 등의 사업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국내 사업장은 포함할 수 없었다. 해외 사업장에서는 가능한 일이 한국 사업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가발전만으로는 비용 효율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발전소와 재생가능에너지를 직거래하는 방식이 막혀 있다는 것이 해외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해외에서는 기업들이 사업장 인근에 있는 민간 발전소와의 직거래를 가장 선호한다. 기업 PPA로도 불리는 이 직거래 방식을 활용하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자와
10∼20년간 장기 계약을 체결한 뒤 해당 기간 동안 고정된 가격에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35개 국가가 PPA 방식을 허용하고 있으며 14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 기업들은 PPA를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2008년부터 약 10년간 전 세계 기업들이 PPA를 통해 구매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는 32GW에 달하고, 이는 네덜란드 전체 설비 용량과 맞먹는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관련 법규가 없고 PPA 방식이 도입되지 않아 기업들이 자가발전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전자가 2018년 수원, 화성, 평택 등 사업장 내 유휴 부지에 태양광, 지열 등 발전시설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자가발전을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이 방식으로는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삼성전자처럼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기업의 경우 자가발전만으로 필요한 모든 전력을 충당하려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이 단순한 CSR 활동 차원을 넘어 경영 전략으로서 의미를 갖게 하려면 국내에서 PPA 체결을 허용하는 법규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해외 기업들은 지역 발전소와 PPA를 체결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줄이고 있다. 미국, 유럽, 멕시코 등 기업 PPA 전력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재생가능에너지 평균 전기요금은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의 절반(1㎾h당 67원)에 불과하다. 가장 싸게 거래된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는 1㎾h당 28원이다. 15 미국 애리조나주 AZ 솔라1 태양광발전소가 민간 기업에 공급한 전기료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이 방식을 채택하면 비용 지출의 예측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들은 발전 사업자와 10∼20년간 계약을 맺으면 처음 계약 체결 당시 합의한 전기요금이 계약기간 내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전기료가 오르지 않고,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은 연료를 수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국제 에너지원의 가격 변동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고통 없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후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하루빨리 국내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사업자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직접 살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이유니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riley.kim@greenpeace.org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국제학과 사회복지학을 복수 전공하고 유엔난민기구(UNHCR) 등 인권·환경분야 국제기구와 비정부단체(NGO)에서 일했다. 현재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소속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로 친환경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국제사회,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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