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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인터뷰

“사회적 가치 창출은 구성원들 의무
별도 조직이 필요 없는 세상 와야”

이방실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SK그룹은 올해부터 핵심성과지표(KPI)에 사회적 가치 창출 비중을 50%까지 늘리는 과감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다. 일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 간 상호 견제를 통해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정에서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실제로 KPI 시스템을 바꾸기 전부터 본업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사회적 가치 중심 경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체결한 베트남 마산그룹과 SK그룹 간 파트너십이 대표적 예다. 구체적으로 뭘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실무 논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양사 회장들 간 ‘사회적 가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파트너십이 성사됐다. 사회적 가치는 사업상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리더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 열쇠가 될 수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한연규(성균관대 영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9년 그룹 신년회에서 “올해 안에 임직원을 100번 이상 만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월까지 총 30여 차례 ‘행복토크’ 간담회를 열고 사내 구성원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스로 공언한 전체 목표치(100회)를 분기별로 단순 할당(25회)해 보면 이미 초과 달성한 셈이다.

대기업 총수가 이 같은 소통 행보에 나선 이유는 단 하나. ‘사회적 가치 경영’이라는 그룹의 경영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선 구성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뉴(New)SK’의 원년으로 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뉴SK의 핵심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실제 구현해 내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룹 오너가 적극적인 ‘소통경영’에 발 벗고 나서고, 올해부터 핵심성과지표(KPI)에 사회적 가치 창출 비중을 50%까지 늘리는 과감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작년 말 관계사별 조직 개편에서도 본업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SV(Social Value, 사회적 가치)추진단을 신설했다. SK텔레콤은 오픈콜라보센터의 명칭을 SV이노베이션센터로 바꾸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실행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DBR은 지난달 21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SV위원회(옛 사회공헌위원회)를 이끄는 이형희 위원장을 만났다. 이형희 위원장은 SK브로드밴드 사장을 지내다 작년 말 SV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올해 초 조직 명칭이 사회공헌위원회에서 SV위원회로 바뀌었다.
SK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경영의 의미를 대외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사회공헌이라는 단어는 의미적으로 기부나 자선활동의 색채가 짙어서 SK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의 참뜻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작년 말 인사발령을 받아 SK브로드밴드에서 SV위원회로 자리를 옮겼을 때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앞으로 우리한테 기부 좀 많이 해 달라’였다.

기부나 자선은 책임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 계속 이어나가야 할 중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현재 SK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물론 과거엔 기부와 자원봉사가 사회공헌의 거의 전부인 시절도 있었다. SK가 펼쳐 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단계별로 나눠본다고 했을 때 소위 ‘CSR 1.0’ 단계 때 그랬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 ‘CSR 2.0’ 단계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했고, 최근 1∼2년 동안에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지원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꾀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SK ‘스스로’ 사회적 가치 창출의 주체가 되기 위해 고민하는 3.0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사회공헌과 관련한 SK의 진화한 모습과 지향점을 포괄할 수 있는 용어로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SV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KPI에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를 절반이나 반영하는 파격적 실험을 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누차 이야기하듯 새로운 KPI 체제로의 변화는 ‘완벽한 평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시도하는 것이다. 평가 방식이 바뀌면 조직원들의 행동이 변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KPI 시스템하에선 신규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또 기존 비즈니스의 사업 모델을 바꾸는 데 있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령, 재무적으로 아무리 많은 이익을 가져오는 사업이라도 공해 유발 등 환경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사업이라면 이제는 하지 않는 게 현명한 결정이다. 똑같은 재무적 가치를 갖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KPI 체제에선 같은 조건이라면 사회적 가치 창출 효과가 높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게 유리하다. 기존 비즈니스 역시 예전처럼 그냥 해 오던 대로만 해서는 안 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만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앞으로의 평가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잘 만들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 최적화된 형태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잘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때 관계사 간 서로 입장이 다를 것 같다. 통일된 방법론이 있나?
아직까지 완벽하게 합의된 방법론은 결정되지 않았다. 솔직히 관계사마다 처한 입장과 상황이 달라 고민이 많다. 당장 매출액이나 자산 규모만 따져 봐도 관계사 간 편차가 크기 때문에 기저효과(base effect) 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여러 가지 평가 방법을 적용해보는 중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방법을 적용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여전히 논의 중에 있다.

사실 평가를 하기 위해선 비교 기준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중요한데 이것도 매우 힘들다. 가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 경우 이 성과를 글로벌 1위 기업과 비교해야 할지, 국내 경쟁사와 비교해야 할지, 아니면 업종 평균치와 견줘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외부 정보, 특히 경쟁사 정보는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결국 자사의 전년도 상황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자료 접근의 용이성, 객관성의 정도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 비교 기준을 결정하려고 하고 있지만 정말 골치 아프다.

하지만 애초에 회계제도의 발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다. 당장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만 보더라도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사업은 그대로인데도 순익과 자산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발전해 온 회계 시스템도 기준을 무엇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발생하는데 사회적 가치 측정을 둘러싼 혼란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완벽하고 정밀한 사회적 가치 측정 시스템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결국 합의다. 설령 완전하지 않더라도 구성원들 간 합의를 통해 기준을 정하고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갑작스럽게 KPI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특히, 내실이 없는데도 겉 포장을 잘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점수 따기’ 행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구성원들이 새로 바뀐 KPI 시스템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 지난 1∼2년간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두 가지 사소한 부분에선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내놓는 등 약간의 부작용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큰 관점에서 볼 때, 무늬만 있고 내용은 없는 비즈니스를 가지고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를 인정받으려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새로 바뀐 KPI 시스템에 따라 실제 평가가 이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떨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이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직원들 간 상호 내부 견제를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 KPI 시스템을 바꾸기 전부터 내부 구성원들 간에는 과거 생각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을 시도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나?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반도체 장비 협력사와 함께 개발한 물이 필요 없는(water-free) 스크러버(scrubber, 반도체 공정 내 유해가스 처리 장비)를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반도체는 노광, 식각, 증착 등 핵심 공정마다 중간에 반드시 세정이 필요하다. 반도체 특성상 아주 작은 먼지 하나로도 오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 과정에서 물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기세척기라고도 불리는 스크러버에도 물이 많이 쓰인다.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사용한 각종 가스를 외부로 배출할 때 불순물이 없도록 정화하는 장비가 스크러버인데 통상 물을 써서 유해 성분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만 생각한다면 SK하이닉스가 굳이 새로운 공법이 적용된 스크러버를 개발하는 데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을 염두에 두면서 ‘물 절약’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환경보호와 지속가능 경영 관점에서 연구개발(R&D)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 협력사와 함께 장비를 개발했다. 새로운 장비를 공정에 반영함으로써 SK하이닉스는 취수 및 폐수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연간 약 540억 원)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경제적 성과 창출에도 성공한 모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관계사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들을 이미 수행해 오고 있기 때문에 올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당연히 힘들 것이고, 도전적인 실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 중심 경영의 성과로 꼽을 만한 게 있나?
지난해 9월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인 마산(Masan)그룹과의 사업 제휴 성사 1 를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양사 간 제휴는 각 그룹 회장들 간 면담을 통해 성사됐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7년 11월 베트남에서 마산그룹의 응우옌당꽝(Nguyen Dang Quang) 회장을 만나 베트남 내수 시장에 대한 산업 동향을 듣고 중장기적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그간 추진해 온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이야기하며 ‘SK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한다면 베트남의 한 일원(‘베트남 인사이더’)으로서 일하고 싶다’며 두 회사 간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상의 시너지를 따지기보다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노력 차원에서 두 기업이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응우옌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SK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길을 열어놓겠다’며 최태원 회장의 제안에 흔쾌히 응해 실무진 간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파트너십을 맺게 된 것이다.

베트남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베트남 현지 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마산그룹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는 많은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라면, 소스, 커피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베트남 식음료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전국 마트에 마산 제품이 안 들어간 곳이 없을 정도로 유통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식음료 외에도 축산, 광물, 금융업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그간 미국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마산과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활동을 펼쳐 왔다고 한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SK가 마산의 사업 파트너가 된 결정적 이유가 사회적 가치 추구라는 SK의 경영 철학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응우옌 회장은 사업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베트남 내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해 온 SK의 진정성을 높이 샀다고 한다. 특히 안면기형으로 고통받는 베트남 아이들의 구순·구개열 수술자금을 올해로 24년째 지원해 준 SK의 사회공헌 활동 2 을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사실 이 활동은 수술 자금 후원사인 SK텔레콤이 베트남 내 이동통신 서비스인 ‘S폰’ 사업을 10년 전 철수하면서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인도주의적 후원은 계속하는 게 맞다’는 최태원 회장의 지시에 따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런 사연을 알고 있는 응우옌 회장이 ‘사업을 중단한 이후에도 베트남 국민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계속 이어올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함께해도 신뢰할 수 있는 회사’라며 실무진에게 SK와의 협력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사회적 가치가 단지 막연한 구호나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사업상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리더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앞으로 SK가 마산그룹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이뤄나갈지는 관계사별로 여전히 논의 중이다. 텅스텐 등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광물 분야에서 전 세계 공급량을 과점하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마산그룹이 가장 경쟁력 있는 광산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SK와의 사업 협력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베트남 시장 내 다양한 인수합병(M&A) 기회도 두 회사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핵심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윤리적인 문제나 안전사고, 환경 문제 등이 발생할 경우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위험이 있을 것 같다.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잘해도 사고가 일어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자칫 그간 SK가 전사적으로 추구해 온 사회적 가치 창출 경영에 대한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법규준수(compliance) 측면에서부터 더욱 엄중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데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특히 사후적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차원이 아니라 선제적 위기예방(risk prevention)에 초점을 두고 제도적 보완을 해나가고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수습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사실 최선의 위기관리는 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 바뀐 KPI 체제에 안전·보건·환경(SHE, Safety, Health, Environment) 분야 성과를 비중 있게 반영하기로 한 것도 선제적 위기 예방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앞서 설명했지만 KPI에 SHE를 반영하면 이와 관련된 의사결정 역시 바뀌게 된다. 가령, 노후설비를 교체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예전 같으면 수명이 10년인 기계를 10년간 사용하고 난 후에도 ‘수리해서 몇 년 더 쓰자’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다. 재무적 성과를 높이기 위해선 새로운 기계를 다시 구입하는 것보다 감가상각이 다 끝난 기계를 고쳐 쓰는 편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 관점에서 SHE를 고려하면 당장은 돈이 들어도 ‘안전을 위해 새로운 기계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결국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SV위원장으로서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SV위원회가 할 일은 관계사의 역량을 모두 모아 규모 있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는 관계사별로 그룹을 지어 사회적 가치 창출과 관련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중점 분야를 전략적으로 정하고 관계사 간 협력을 유도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에너지/화학/반도체 관련 관계사는 ‘환경’ 문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관계사는 ‘스마트 커넥티버티(smart connectivity)’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해 보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모든 사회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집단지성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마다 처해 있는 여건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 쉽지는 않다.

솔직히 위원회로 자리를 옮기고 나니 SK브로드밴드 사장으로 있을 때 왜 좀 더 과감하게 사회적 가치 창출 경영을 실행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SK가 사회적 가치 경영을 기치에 내걸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지만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 놓고 보면 절대 앞서 있다고 보기 힘들다. 지속가능경영은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힘쓸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3년 내에 SV위원회가 없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 창출은 SV위원회라는 별도의 조직에서 다뤄야 할 일이 아니라 각 사업부와 조직 구성원들의 DNA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니레버 같은 글로벌 기업에도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가치 창출을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이 없다. 각 사업부서 스스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입각해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SV위원회 및 관련 조직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조직 내 DNA 확산에 힘쓸 계획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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