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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안에 없는 건, 밖에서 찾아 내 것으로”
개방형 혁신, 글로벌 강자로 만든 ‘명약’

김윤진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제약업계 1위, 매출 1조 원이라는 양호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신약 개발에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던 유한양행이 탄탄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혁신 기업으로 거듭난 비결은?

1. 새로운 리더가 회사의 사명을 매출 신장에서 연구개발(R&D)로 전환하고, 연구소에 실권을 위임하며 관성이 팽배하던 조직에 혁신의 문화를 주입했다.
2. 조직 시스템을 재정비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직접투자 병행으로 국내 바이오 벤처의 신뢰를 확보해 외부 유망 기술을 내부로 흡수하는 내향형(in bound) 개방 모델을 구축했다.
3. 파트너의 니즈를 겨냥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기존 사업에서 쌓은 네트워크 자산을 극대화함으로써 글로벌 제약사를 통해 기술 사업화 기회를 얻는 외향형(out bound) 개방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우(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8년 10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유한양행 본사 18층 복도 끄트머리 간판 없는 회의실에 ‘샌디에이고(San Diego)’라고 쓰인 팻말 하나가 붙었다. 전략기획부문장 외 다섯 명 남짓의 임직원만 들락날락할 뿐 매일 복도를 지나는 직원들조차 이 골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들이 100여 장의 서류뭉치를 들고 미국 하와이로 날아가 해외 파트너들과 접촉하고, 매일 시차와의 싸움을 벌이며 종이에 적힌 문구 하나하나를 손보는 동안에도 용건은 철통 보안에 부쳐졌다. 부문장이 유한양행 미국 법인 설립의 책임자였던 만큼 미국 바이오산업의 심장인 샌디에이고에 글로벌 진출 기지 설립을 준비하는 조직이라 막연히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5일 새벽 6시, 이들이 물밑에서 벌인 일의 정체가 세상에 공개됐다.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의 자회사인 얀센 바이오테크에 비소세포 폐암 치료 신약 ‘레이저티닙(Lazertinib)’을 약 1조4000억 원(12억5500만 달러)에 기술 이전한다고 공시한 것이다. 한국 제약업계 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의 기술 수출이었다.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 직전 해 매출액인 1조3207억 원도 뛰어넘었다. 상상치 못한 액수에 전날까지 같은 층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조차 귀를 의심했다. 대규모 계약 소식으로 주가는 개장과 동시에 상한가를 찍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술 이전 낭보는 새해 벽두에도 이어졌다. 지난 1월5일 유한양행은 글로벌 제약사인 길리어드사이언스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신약 후보물질을 약 9000억 원(7억8500만 달러)에 기술 이전한다고 발표하며 또 한 번 1조에 육박하는 계약으로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7월 퇴행성 디스크 치료 신약 후보물질을 미국 제약사 스파인바이오파마에 약 2400억 원(2억1800만 달러)에 이전한 것까지 포함한다면 반년 새 3건의 대형 계약을 차례로 성사한 것이다. 미디어는 ‘수출 잭팟’ ‘연타석 홈런’ 등의 현란한 수식어를 쏟아냈고, 2015년 한미약품의 대형 기술 이전과 이듬해 계약 해지의 폭풍우가 한차례 휩쓸고 간 뒤 다소 침체 양상을 보였던 국내 제약업계도 모처럼 들썩였다.


DBR mini box I: 유한양행은…

유한양행은 1926년 6월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설립했다. 유 박사는 식민지 민족의 현실을 보고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창립 이념으로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제약업을 택했다.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동물약품, 생활용품 등의 제조, 판매를 담당한다.

1936년 유 박사가 가지고 있던 개인 주식의 52%를 당시 유한양행 직원들한테 무상으로 나눠주면서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사원주주제’를 시행했다. 1969년에는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문경영인(CEO) 제도’를 도입했다. 유 박사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고,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혈연관계가 아닌 회사 임원에게 경영권을 계승했다. CEO는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인사 승진이 원칙이다. 현 CEO인 이정희 대표도 1978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 가능해 임기는 최대 6년이다.

1970년 유 박사가 교육 장학사업, 사회원조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인 주식 8만3000여 주를 기탁해 발족한 유한재단과 그 소유 주식 일부를 나눠 가진 유한학원이 현재 지분 15.46%와 7.60%를 각각 보유한 대주주로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업계를 놀라게 한 소식은 계약의 규모도, 그 건수도 아니었다. 계약을 성공으로 이끈 기업이 다름 아닌 ‘유한양행’이었다는 점이었다. 끈질긴 연구개발(R&D) 투자로 국내 신약 개발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던 한미약품도 아니고, 혁신적인 원천기술과 글로벌 임상 경험을 다수 보유한 바이오 벤처도 아니고, 매출로는 제약사 1위지만 외국 약을 팔아 수익을 낸다는 꼬리표가 따라붙던 유한양행이 갑자기 신약 수출이라니. “도매상인지, 제약사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그간의 비아냥거림을 단숨에 떨쳐 버리는 극적 반전이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이 회사에서 신약 개발 프로젝트(파이프라인)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다. 당장 이번 기술 이전 계약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한양행을 ‘혁신적 기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계승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CEO) 체제에서 좋은 노사관계와 조직문화를 지켜나가는 ‘사회적 기업’ 이미지를 풍겼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R&D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주인 없는 회사’의 한계를 노출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5년 3월 새로운 수장인 이정희 대표가 취임하면서 회사는 발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취임 전 9개였던 신약 파이프라인은 2년여 후인 2017년 말 19개로 2배, 현재 27개로 3배 늘어났다. R&D 투자비용은 2014년 580억 원, 2015년 726억 원, 2016년 865억 원, 2017년 1037억 원, 2018년 1105억 원으로 계속 증가했고 매출 대비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5.7%에서 7.3%로 늘었다. 올해도 1500억 원 이상을 R&D에 지출할 예정이다.

도대체 지난 4년간 유한양행 내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신약 개발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회사가 갑자기 신약 파이프라인 27개를 보유한 국내 제약업계의 벤치마킹 모델로 변신한 것일까. DBR이 유한양행의 개방형 혁신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제약업의 본질로 돌아가다
“아무것도 없었다.”

2015년 3월, 이정희 대표가 취임한 뒤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짜던 경영진은 고심에 빠졌다. 1926년 설립된 회사는 창립 9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향후 100주년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할지 방향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유한양행의 경쟁력과 취약점을 진단하기 위해 연구소 현황을 점검한 결과는 말 그대로 참담했다. 신약 후보 물질의 씨가 말랐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겉보기엔 모든 지표가 양호했다. ‘외형 팽창’이라는 목표에 주력한 결과 2013년 동아제약을 제치고 매출액 기준 제약사 1위를 탈환했고, 2014년 업계 최초로 1조 원의 고지를 넘었다. 그러나 매출 신장에 전력을 다하다 보니 임기 내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신약 개발은 늘 뒷전이었고, 오너 없는 임기 3년의 CEO 체제에서 어느 리더도 위험 부담이 큰 R&D에는 총대를 메지 않았다. 의약품 유통만으로도 이익은 충분히 안정적이었다. 그 결과 2015년 새로운 수장이 된 이정희 대표가 연구소 내부를 뜯어봤을 때 신약 파이프라인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우수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 건강에 기여한다’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기업 이념에 비춰 보면 회사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 대표는 유한양행의 또 다른 100년을 기약하려면 지금처럼 해외 약을 수입해 파는 상품 매출 위주의 수익구조와 몸집 불리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그가 취임한 2015년은 국내 제약산업의 격동기였다. 그중에서도 임성기 회장의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 매출의 약 14∼20%를 R&D에 쏟아붓던 한미약품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한미약품이 2015년 3월 제약사 일라이릴리에 면역질환 치료제를 약 7696억 원(7억 달러)에 기술 이전한 사건은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유한양행의 아성을 단숨에 위협하는 한미약품의 양적 성장은 과거 ‘돈 먹는 하마’로만 여겼던 R&D가 실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줬다. 이를 지켜보던 유한재단, 유한학원, 보건장학회 등 유한양행의 대주주들 역시 경영진에 과감한 R&D 투자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제약사의 ‘퀀텀 점프’는 결국 업의 본질인 신약 개발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김재교 전무는 “경영진이 그전까지 3년 단위로만 전략을 세웠다면 이번엔 창립 100주년인 2026년을 목표로 딱 10년만 제약사 본업으로 돌아가 R&D에 도전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이정희 대표 본인도 임기 내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유한양행이 갑자기 한미약품처럼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싶다 한들 유망 후보물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제대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 탓에 원천기술은 부족했고, 혁신적인 약물 표적을 발굴하는 역량도 턱없이 모자랐다. 리더십만 바뀌었을 뿐 회사에 전략이 없고, 미래가 없고, 비전이 없는 ‘3무(無)’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뼈아픈 현실을 자각한 경영진에 새롭게 떠오른 선택지가 바로 기술을 밖에서 조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1 이었다. 혁신에 필요한 내부 역량이 부족하니 외부의 힘, 특히 벤처 생태계의 힘을 빌리자는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다. 이미 2010년부터 유한양행 중앙연구소는 R&D전략실장이었던 남수연 박사를 중심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R&D는 막대한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 과정이고, 자체 역량이 바닥인 상황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채워 넣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은 한 회사가 13∼15년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신약 개발을 혼자 끌고 가기는 버거우니 주변과 짐을 나눠서 지자는 것이었다. 2


DBR mini box II: 유한양행 vs. 한미약품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사지만 두 회사의 신약 개발 전략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미약품은 연간 총매출액 대비 14∼20%에 달하는 금액을 R&D에 투자하며 자체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R&D 투자금액은 2014년 1525억 원, 2015년 1870억 원, 2016년 1630억 원, 2017년 1710억 원, 2018년 1930억 원에 달한다. 신약 파이프라인 27개 대부분이 내부 R&D의 결과물이며, 지난해에는 매출액 1조160억 원 가운데 93.3%를 외부 도입이 아닌 자체 개발 제품을 통해 달성했다. 임상 2상 이후 글로벌 파트너를 상대로 한 굵직굵직한 기술 이전으로 유한양행보다 먼저 주목받았지만 후보물질 탐색∼임상 1상의 초기 단계만 놓고 보면 폐쇄형 모델에 가깝다.



반면 유한양행은 신약 파이프라인은 27개로 한미약품과 같지만 약 60%가 개방형 모델을 통해 외부로부터 확보한 후보 물질이다. 또한 지난해 매출액 1조5188억 원 중 55.2%를 자체 개발한 제품이 아닌 외부 상품 판매로 올렸다. 모든 비용을 자체 부담하기보다는 벤처의 지식, 기술, 경험을 받아들인 뒤 내부화하는 내향형 개방에 적극적이다. 최근 1∼2년간 기술 이전 성과를 공격적으로 재투자해 연간 R&D 투자금액이 1000억 원을 넘어섰지만 총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10%를 밑돈다. 김재교 전무는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사로는 가장 먼저 기술 이전 성과를 냈고, 많이 배우고 자극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우리는 개방형 혁신으로 시간을 절약했고, 이렇게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자체 R&D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의 경우 R&D 중 혁신적인 약물을 발굴하는 연구(R) 능력은 떨어지지만 일단 외부에서 들여온 물질을 개발(D)하고 약효를 평가하는 전임상∼임상 1상까지 소화할 능력은 있었다. 250여 명의 연구소 인력이 든든히 받치고 있었고, 영세한 벤처들이 갖지 못한 자금력과 브랜드까지 갖췄다. 숨은 보석을 캐기 위해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이미 벤처나 대학 연구소가 발굴한 원석을 잘 사와서 가공, 즉 제품화하는 데 힘쓴다면 전체 신약 개발 기간을 5년 이상 단축하는 것도 가능했다. 실패에 따르는 위험도 분산할 수 있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만 낯선 개념이었지 글로벌 제약사들이 10여 년 전부터 채택하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연구소의 계획은 번번이 관철되지 못했다. CEO가 주재하는 R&D 관련 최종 의사결정 협의체인 이사회와 연구위원회에서 연구소 임원들의 입지와 발언권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의 관심사가 매출 1조 원 달성에 있고 신약 개발이 당장 눈앞의 실적에 어떻게 기여할지 불투명하다 보니 라이선스 인(license-in·기술 도입)에 필요한 예산 마련부터 매번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신임 CEO의 취임 이후 연구소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정희 대표는 주주총회, 신년사, 각종 회의나 공식 석상 등에서 미래 성장 동력인 R&D에 방점을 두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고, ‘도전’과 ‘혁신’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연구소장이 된 남수연 박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를 비롯해 연구원들이 강조하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채택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야심 차게 2015년을 유한양행의 개방 원년으로 선포했다.

다행히 외부의 바이오 토양도 나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국내 바이오벤처 붐이 일어난 뒤 10여 년이 흘렀기에 경쟁력 없는 회사는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당했고, 남은 회사들은 최소 10년 이상 버틴 저력이 있는 기술 회사들이었다. 최소한 이들과 손을 잡는 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것보다 나아 보였다.

그러나 뭔가 같이해보자는 데만 뜻을 모았을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탐색을 시작하고,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국내 제약업계에 모방할 선례도 없었고 모든 게 처음이었다. 방향만 정해진 상태였다.

“어차피 오픈 이노베이션의 개념은 10년 전부터 있었다. 중요한 건 ‘하느냐, 마느냐’였고, ‘한다’는 게 당시 우리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김재교 전략기획부문장(전무)의 말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담할 조직은 새 대표 취임 이전부터 이미 준비돼 있었다. 연구소 내 R&D전략팀이 외부 벤처나 대학의 유망 후보물질을 발굴해 1차로 기술을 평가하고 SRC (Scientific Review Committee)에 상정하면, 중앙연구소장과 팀장급 위원 약 10명이 신약 후보의 성공 가능성과 협업 모델을 검토하는 구조였다. SRC를 통과하면 다시 R&D전략팀은 기술 실사(due diligence)를 하고, 사업개발(BD)팀은 경제성을 평가해 계약 조건을 협의했다.

문제는 이 조직이 있어 봤자 최종 의사결정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예산을 집행하고 투자를 확정하는 연구위원회 심의와 이사회 승인 단계에 병목(bottleneck)이 있었고, 프로젝트가 막판에 엎어지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연구소 내에는 ‘어차피 안 된다’는 회의론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만연했다.



2015년에도 조직 체계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리더의 의지였다. 이정희 대표는 취임 후 개방 원년을 선언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연구소장에게 확실하게 실권을 위임하고, 실무진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연구소 SRC에서 합의해 소장인 남 박사가 투자를 결정하면 곧바로 연구위원회 승인이 떨어졌고 필요한 돈도 지급됐다. 김 전무는 “연구소에서 결정하면 ‘40%는 이미 끝났다’고 말할 정도였다”며 “모든 결정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을 감수할 만큼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믿음이 확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CEO의 확신만으로는 부족했다. 변화를 퍼뜨리려면 직원들도 회사의 달라진 사명(mission)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던 연구소와의 소통에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마다 노량진 본사가 아닌 경기도 용인 기흥연구소로 출근해 연구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최소 반나절 이상을 R&D 현장에 머물면서 연구소장 등 임원과 팀장, 일반 연구원들과 면담하고 ‘어떤 후보물질을 도입할지’ ‘해당 기술이 왜 필요하고, 시장성과 사업성은 어떤지’ ‘개발 과정에 애로사항이 없는지’ 등을 물었다. 연례행사에 가까웠던 현장 방문을 상시화해 교외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연구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열어젖힌 것이다. 오세웅 중앙연구소 부소장(상무)은 “원래 연구원들은 본사 경영진의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며 “그런데 이정희 대표는 수시로 찾아와 말단 사원에게까지 힘든 점을 물어보고, 건의사항을 바로바로 수용하면서 ‘너희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직원들이 요청하면 물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수억 원을 들여 연구소 뒷동을 개보수해 스마트오피스와 실험실 등의 공간을 확충하고 고가 장비와 첨단 기기를 들여왔다. 남 박사는 “회사가 R&D에 필요한 자원을 다 갖춰주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니 연구원들도 ‘좋은 약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며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또 경영진에게 시시각각 진행 상황을 보고하다 보니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역할이 커지고 업무 강도가 강해지자 일각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변화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직문화의 변화를 모색했다.

90년간 회사를 지배하던 ‘순혈주의’를 깨버린 게 그 시작이었다. 이 대표는 내·외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전문가를 발탁해 요직에 앉혔다. 연구소 내 10명의 팀장 가운데 절반이 교체되는 파격적 인사가 이어졌다. 2015년 전까지만 해도 유한양행은 외부 인재를 영입하기보다는 내부 인력을 핵심 부서에 중용하는 관행을 유지했다. 안정 지향적이고 복지부동하는 문화도 이런 인사 방침과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다.

남수연 박사를 R&D 분야 최고의사결정자인 연구소장 직책에 앉히고 전권을 위임한 것부터 파격이었다. 남 박사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조교수로 있다가 로슈, BMS 등 외국계 제약사에서 신약 개발 전략을 짜던 인물이었다. 의사 출신, 그것도 여성 수장이 연구소를 이끌게 된 것부터 유한양행의 기존 문화에 비춰봤을 때 이례적이었다. 이 밖에도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에 다니던 젊은 ‘딜 메이커(deal-maker)’ 김한주 이사가 사업개발(BD) 팀장을 맡고, 국내사 JW중외제약 출신의 전임상 전문가 오세웅 연구소 부소장이 합류하는 등 변화가 이어졌다. 2015년 219명이었던 중앙연구소 R&D 인원은 2018년 267명까지 증가했으며, 새로 들어온 연구원 대부분이 석사(24명)나 박사(14명)급 고급 인력이다.



이 과정에서 신구 세력의 마찰이 생겼다.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경력직들에 대한 처우나 연봉 테이블이 다를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기존 직원들이 반발하기도 했고, 외국계 제약사와 토종 제약사의 조직문화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도 갈등을 낳았다. 위계질서가 확고하던 회사에 새로운 인물들이 중역을 꿰차면서 연차도 뒤엉켰다. 그러나 적응기의 진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 대표가 연구소를 매주 방문해 양측의 불만과 건의사항을 직접 듣고 자칫 곪아 터질 수 있는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박유회 R&D전략팀장은 “초반에는 외국 제약사 출신들이 문화 차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대표가 직접 나서 절충점을 찾아주고 신구 융합을 강조하니 직원들도 점차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적응했다”며 “결과적으로 외부 수혈로 조직에 부족했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DNA가 주입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오픈 이노베이션이 회사의 미래라는 공감대가 생기자 연구소장의 진두지휘 아래 연구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든 과제를 제안하면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라는 대표의 반복된 주문이 있었고, R&D전략팀뿐 아니라 모든 연구원이 각종 학술대회나 세미나, 네트워크 미팅 등에 뿔뿔이 흩어져 최신 동향을 살피고 유망 후보 물질을 찾아다녔다. 자금력 있는 대형 제약사에서 투자 의향이 있다는 소식에 제 발로 찾아오는 벤처도 있었지만 회사 신약 파이프라인의 취약점을 메우고 전략적 가치가 있는 물질을 찾으려면 발로 뛰어야 했다.


숨은 원석을 캐는 ‘내향형 개방’ 3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기술을 찾아 헤매던 회사에 기회가 찾아왔다. 남 박사가 보건복지부 항암신약개발사업단의 평가위원으로 참석했다가 오스코텍이라는 바이오벤처를 만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오스코텍은 자회사 제노스코와 공동 개발한 비소세포 폐암 표적 항암물질 ‘레이저티닙’에 대해 발표했다. 남 박사는 한눈에 직관적으로 물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회사가 애타게 기다리던 원석이었다.

당시 레이저티닙은 그야말로 ‘떡잎’에 불과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기존 비소세포 폐암 치료 신약과 확실히 차별화됐다. 첫째, 의료 현장의 확실한 수요가 있었다. 폐암 치료의 최대 복병이자 시한폭탄인 ‘뇌 전이’를 치료할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약물의 경우 뇌에 잘 듣지 않아 암세포가 뇌까지 번지면 치료가 어려웠는데 레이저티닙은 비임상 데이터를 봤을 때 약물이 뇌까지 잘 전달됐다. 손쓸 수 없는 지경이던 시한부 뇌 전이 폐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둘째, 부작용이 적었다. 다른 약물과 비교했을 때 적은 용량으로 같은 효과를 냈고, 훨씬 많은 용량을 투여해야 같은 독성을 냈다. 확실한 약효와 안전성, 이 둘만으로도 개발에 뛰어들 가치는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아제약 등 여러 제약사 연구진이 떡잎의 가능성을 동시에 알아봤다. 남 박사는 다급해졌다. 물질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고 정부 항암사업단이나 다른 제약사와 계약하기 전에 유한양행이 먼저 사와야 했다. 남 박사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입찰(bidding)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라이선스 인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오스코텍은 이미 정부 과제로 선정돼 임상 비용까지 지원받게 된 물질을 굳이 국내 제약사에 넘길 생각이 없었다. 보통 작은 벤처가 대형사와 손잡는 이유는 막대한 R&D 비용과 긴 투자 회수 기간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개발비를 확보한 오스코텍은 외부의 도움이 크게 아쉬운 처지는 아니었다. 더욱이 유한양행은 벤처의 물질을 가져다 글로벌 기술 이전이나 임상을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없는 회사였다. 굳이 개발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회사에 공들여 발굴한 원천기술의 명운을 맡길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한양행은 꿈쩍 않던 오스코텍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던 걸까. 유한양행의 인소싱 전략, 즉 내향형 개방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차별화됐다.

1. 효율적 조직이 만들어 낸 ‘스피드’
먼저, 유한양행이 레이저티닙을 선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었다. 2015년 5월 원석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부터 남 박사가 같은 해 6월 미국 보스턴으로 직접 날아가 자회사 제노스코를 설득하고, 7월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까지 불과 1개월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이 경영진에게 후보 물질의 가치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동안 유한양행은 남 박사의 결단이 내려지자마자 연구위원회 결재까지 일사천리로 받아냈다. 통상 연구소의 기술 평가와 연구위원회 심의, 이사회 승인까지 길면 6개월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사자들조차 놀란 속도였다. 보통은 수차례 파트너사와의 면담을 거치고, 비밀유지 계약을 체결하고, 기술 실사를 하는 데만 2∼3개월이 걸리고, 조건을 논의해 계약서까지 쓰면 5∼6개월은 훌쩍 지난다.

빨라진 것은 의사결정만이 아니었다. 연구소 내 R&D 엔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한양행은 오스코텍에 무작정 조르지 않았다. 정부 항암사업단의 지원을 받으면 3년 걸릴 전임상을 1년 만에 끝내겠다는 구체적 타임라인을 내걸었다. 임상 개시 시점을 획기적으로 앞당겨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레이저티닙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혁신신약(first-in-class) 후보물질이 아니었다. 이미 개발이 한창인 비슷한 표적 항암제들이 있었다.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었고, 한미약품의 ‘올리타’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셋 다 똑같이 비소세포 폐암 중에서도 ‘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였다. 만약 상업화에 성공한다 한들 3등으로 출시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환자 수는 한정돼 있는데 이미 2종의 비슷한 약이 팔리고 있으면 제아무리 효능이 가장 좋은 신약(best-in-class)이라도 시장 진입은 무리였다.

남 박사는 “시간을 오래 끌면 사실상 3조 원의 시장이 사라질 수 있었다”며 “1년 안에 임상에 진입하겠다는 개발 계획을 명확히 밝히자 오스코텍도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한양행의 약속은 단순히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던진 공수표가 아니었다. 남 박사는 신약 개발의 생명이 속도에 있다고 확신했다. 통상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데는 평균 5년, 동물실험으로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전임상에는 3년이 걸린다.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8년 가까이가 소요된다는 뜻이다. 제품화를 마치면 13∼15년이 훌쩍 흐르는데 복제약(제네릭)의 추격으로 제품 수명까지 짧아지는 시장에서 이런 속도로는 도저히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험실에 오래 붙들고 있다고 더 좋은 약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는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허가 당국이 판단할 몫이었고, 제약사의 임무는 판단의 근거가 될 임상 데이터를 최대한 빨리 확보해 제출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허가 신청 ‘타이밍’이 관건이었다. 신약 개발도 결국 어떤 치료제에 대한 시장 수요가 가장 많은지, 대체 치료제는 없는지, 단독으로 쓰이는지 병용 치료제인지 등 전략 싸움이었고, 가치가 가장 높아질 시기를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전까지는 유한양행에 신약 개발 프로젝트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업무 중복과 시간 낭비가 많았다. 개발 가속페달을 밟으려면 조직 시스템부터 재정비해야 했다. 먼저, 남 박사는 인사 평가 방식에 변화를 줬다.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연구소 내 팀끼리 소통이 잘 안 되는 사일로(silo) 현상부터 없애야 했다. 2개 센터와 10개 팀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는 게 첫 과제였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업무가 팀 단위로만 이뤄졌고 팀원에 대한 성과평가를 상급자인 팀장이 도맡았다. 그러나 R&D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려면 약물 효능과 독성 등을 평가하는 ‘신약개발센터’, 공정개발이나 생산화 연구 등을 담당하는 ‘사업화연구센터’, 기타 R&D전략팀, 발굴평가팀, 행정지원팀, 임상팀에 흩어져 있는 연구원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할 필요가 있었다.

남 박사는 이런 팀별 ‘각개 전투’로 인한 비효율을 뿌리 뽑기 위해 팀 중심으로 이뤄지던 평가 방식을 신약 개발 과제 중심으로 전환했다. 원래는 팀장이 팀원의 인사고과를 평가하면 이 개인 점수에 따라 승진 여부 등이 100% 결정됐다. 그러나 바뀐 평가 방식에 따르면 개인 점수는 50%만 반영이 되고, 나머지 50%는 해당 연구원이 참여하는 신약 개발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 매겨졌다. 가령, 소속 팀에서 좋은 성과를 못 냈더라도 레이저티닙 임상 진입이 성사돼 ‘폐암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에서 A를 받으면 50%는 A를 가져가는 셈이었다. 핵심성과지표(KPI)가 달라지자 과제 중심으로 연구원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씩 프로젝트 리더(PL)가 여는 과제전략회의 참여나 몰입도도 높아졌다. 과제 하나당 초기 단계에선 약 10명, 임상 후기로 갈수록 수십 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이 팀을 초월해 소통하기 시작했다.

연구소 내 벽을 없애는 것을 넘어 R&D 부문과 투자를 담당하는 전략기획 부문의 병렬적 의사결정도 초기 단계에 낭비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연구소가 기술성 평가를 완전히 끝내면 전략기획 부문이 그 뒤를 이어 투자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부문이 동시에 성공적인 라이선스 인을 위한 투자 병행 여부, 계약 조건, 협업 모델 등을 논의했다. 양측의 검토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자 속도에 있어 비교 우위가 생겼다.

2. 직접투자 병행으로 얻은 ‘신뢰’
좋은 기술에 대해서는 후하게 값을 치르는 합리적인 계약금 산정도 라이선스 인 계약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었다. 유한양행은 오스코텍을 설득하기 위해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수익배분 조건과 높은 계약금을 제안했다. 2015년 코스닥 상장사였던 오스코텍은 현금 실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생 바이오벤처들이 으레 그렇듯 오랜 R&D 투자로 인해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4년 연속 적자가 되면 자본시장 규정상 관리종목에 지정될 위기였다. 시장 퇴출을 면하고 상장 자격을 유지하려면 10억 원이 아쉬운 처지였고, 유한양행이 최초 계약금으로 제시한 15억 원은 분명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나아가 유한양행은 마일스톤으로 개발이 한 단계씩 진전될 때마다 수익금의 40%를 오스코텍과 제노스코에 배분하기로 했다. 임상 1상, 2상, 3상, 상업화 등을 밟을 때마다 단계별로 이익을 6(유한양행)대4(오스코텍/제노스코)로 나누는 방식이었다. 기술 도입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의 단계에서 많은 위험과 비용이 따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한양행으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오스코텍은 이 역시도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수익금의 50%에 달하는 더 높은 배분 비율을 원했다. 원천기술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티면서 매력적인 조건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벤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카드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카드가 바로 지분을 사들이는 ‘직접투자’였다.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라이선스 인뿐 아니라 주식 인수(equity acquisition)까지 병행하기로 한 것이다. 기술만 가져가고 소위 ‘먹튀’하거나 여러 파이프라인을 쌓아두고 뒷순위로 미뤄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내려면 유한양행이 끝까지 개발을 책임진다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줘야 했다. 기술을 제공한 회사의 미래에 투자하고 주주로 참여하는 것은 이런 신호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에 유한양행은 라이선스 인 계약 건에 대한 수익 배분은 6대4로 최종 합의했고, 동시에 제노스코에 약 50억 원(420만 달러)을 투자하기로 했다. 실제로 이듬해 6월 지분 투자가 이뤄졌고, 지난해 11월 투자금을 75억 원(670만 달러)까지 늘려 지금까지도 제노스코 지분 5.6%를 보유한 주주로 있다.



이렇게 기술 도입과 더불어 전략적 투자(Strategic Investment)를 병행하는 방식은 유한양행 오픈 이노베이션의 기본 모델로 정착됐다. 이정희 대표 취임 이후 2015년부터 바이오니아, 제넥신, 파멥신, 소렌토 등 벤처에 투자한 금액만 약 2000억 원에 달한다. 주식 인수를 통해 회사의 주주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효과적이었다. 첫째, R&D 측면에서는 기술 실사만으로 100% 파악할 수 없는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제공한 데이터 외에 비공식 데이터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오스코텍이 제공한 비임상 데이터를 검토했으며 자체적으로 중요한 데이터를 한 번 더 검증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신약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도 물질의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는 ‘교차 검증(cross-check)’ 덕분이었다. 둘째, 신뢰를 확보하고 벤처와의 상생을 도모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제약 바이오 생태계에 투자하고 씨앗을 뿌림으로써 국내 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었다. 상생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국민 기업’의 창립 이념과도 맞아떨어졌다.

남 박사는 “유한양행은 오너가 없기에 특정인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좋은 약을 만든 회사에 충분히 보상하고, 좋은 약의 가치를 함께 높여 글로벌 시장에 내놓고, 우리 국민도 적절한 가격에 쓸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 뚫은 ‘외향형 개방’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성공하려면 국내의 원석을 도출하는 내향형 개방에 그쳐서는 안 됐다. 일단 회사 안팎에서 좋은 기술을 발굴했으면 가치를 더해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게 파트너와의 공동 목표였다. 애초에 벤처들이 대형사와 협력하는 이유도 글로벌 진출의 ‘다리’를 놔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고, 협업 모델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다. ‘바이오 벤처-유한양행-글로벌 제약사’의 3각 구조를 완성해야 했다.

그러나 글로벌 임상 경험이나 자본, 인력 등이 부족한 토종 제약사끼리의 협업만으로 해외 파트너 도움 없이 글로벌 신약을 출시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제약산업의 경우 후보 물질만 특허로 보호하면 기술 유출 위험이 크지는 않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일찍 글로벌 제약사에 개발을 맡기는 편이 투자 대비 효과를 높이고 기술료를 또 다른 프로젝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의 길이었다. 즉, 유한양행이 잘하는 전임상과 초기 임상을 최대한 빨리 끝마친 다음 후기 임상과 FDA 승인을 책임질 글로벌 제약사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라이선스 인으로 첫 단추를 끼웠으면 끝은 라이선스 아웃(licence-out)이어야 했다.

라이선스 아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적 근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1) 약물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임상 데이터 2) 적절한 적응증(치료 대상 질환) 3) 임상 지역 등 파트너가 원하는 요건을 갖춰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나 모든 영업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데이터를 갖고 누가 글로벌 제약사들을 상대로 신약의 가치를 잘 전달해서 시장에 파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여기부터는 전략과 스토리텔링, 즉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었다. 이전까지 국내 제약사들이 취약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글로벌 제약사의 개발전략을 모방하거나 전략 없이 여기저기 파트너들을 찔러보는, ‘아니면 말고’ 식 접근이 많았다. 그러나 유한양행의 외향형 개방은 조금 다른 접근을 취했다.

1. 파트너의 니즈 겨냥한 맞춤형 전략
유한양행이 지난해 11월 레이저티닙을 얀센바이오테크에 1조4000억 원에 라이선스 아웃했을 때 업계는 “타이밍이 절묘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해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쟁 약 타그리소가 허가를 받아 전 세계 40개국에 출시된 가운데 조금만 더 지체했어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흥미를 잃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시장 진입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긴박한 속도전의 승리였다. 이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라이선스 인 단계부터 라이선스 아웃을 생각한 유한양행의 ‘파트너 맞춤형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한양행은 2015년 레이저티닙 도입과 동시에 해당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4∼5명을 수소문해 ‘글로벌 임상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간 세 차례에 걸쳐 이들을 소집했다. 독자적으로 임상계획을 디자인하는 대신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풍부한 임상의들의 힘을 빌리자는 취지였다. 자문위원들은 의사들이 가장 원하는 신약이 무엇인지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간파하는 데 도움을 줬다. 시장에 ‘뇌 전이에 잘 듣는 폐암 신약’이 없으니 전이성 비소세포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라고 조언한 것도 바로 위원들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쟁 약으로 임상을 진행해본 이들은 타그리소의 개발 진행률이나 약점까지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기존 치료제는 뇌혈관 장벽을 잘 지나지 못하고 경쟁 약은 피부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등 문제점을 포착한 유한양행은 경쟁사와의 차별화에 주력할 수 있었다.

이런 철저한 시장조사를 토대로 임상 2상, 3상 등 후속 개발을 가장 성공시킬 만한 파트너로 여러 제약사를 저울질한 결과, 유한양행은 아스트라제네카에 대적할 규모를 갖추고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경험이 풍부한 얀센의 모회사 J&J가 동반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집중할 타깃이 정해진 뒤 유한양행의 연구원들은 미국암학회(AACR),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등 국제 학회에 참석해 J&J의 개발 총괄 책임자, 연구자 등 핵심 오피니언리더들과 함께 개발전략을 논의했다.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맺기 전부터 1년 이상 꾸준히 교류하면서 공통의 이해를 발견하고 탐색전을 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 최종 계약 협상 장소를 얀센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펜실베이니아가 아닌 하와이로 정한 것도 모든 이사가 만장일치를 해야 계약이 성사되는 얀센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연구, 법무, 사업개발 등 어느 한 파트의 임원이라도 거부권(veto)을 행사하면 결렬될 위험이 있었다. 하와이에서 개최할 경우 참석하기 어려운 임원이 생길 수 있고, 먼 곳까지 온 임원이나 대리인들은 가급적 성과를 갖고 본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확률이 높다고 판단, 더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우리는 임상 데이터가 다 나온 다음에 관심 있는 글로벌 파트너들을 즉흥적으로 찔러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파트너를 염두에 두고 임상을 디자인했다. 파트너와 오랜 기간 물밑 접촉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데이터를 역으로 갖춰나가는, 이른바 ‘역방향 접근(back calculation)’이었다” 김한주 사업개발(BD)팀 이사의 말이다. 잠재 고객이 기술을 사갈 수밖에 없도록 로드맵을 짜는 데만 짧게는 1∼2년, 길게는 3년 이상을 보냈다.

지난 1월 길리어드사이언스에 약 9000억 원에 라이선스 아웃한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NASH) 신약 역시 발굴 단계부터 잠재 파트너를 겨냥한 결과였다. NASH의 경우 현존하는 치료제가 없고, 신약 개발을 향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각축전이 치열한 분야였다. 특히 길리어드처럼 간 질환에 전문성을 가진 제약사들은 간에 지방 축적을 일으키는 NASH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훨씬 앞서 나간 이들과 똑같은 기전의 물질을 연구해서는 경쟁력이 없었다. 이에 유한양행은 처음 간 질환 신약 개발에 뛰어들 때부터 길리어드 파이프라인과는 차별화된 약물 표적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야 길리어드든, 경쟁사든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잠재 파트너인 길리어드의 빈틈을 파고든 유한양행의 접근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기술 이전이 이뤄진 시점을 살펴보면 이 전략이 주요했음을 알 수 있다. 길리어드는 유한양행으로부터 기술을 사간 직후인 지난 2월, 자사의 NASH 신약 후보 물질인 ‘셀론설팁(selonsertib)’ 임상 3상이 실패로 끝났다고 발표했다. 3상의 문턱만 넘었다면 내년에 상용화돼 ‘세계 첫 NASH 치료제’가 될 뻔한 혁신 신약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진 셈이다.

남 박사는 “길리어드가 이 같은 실패를 세상에 알리기 직전 유한양행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사들였다는 것은 주력 파이프라인에 문제점이 포착되고 엎어질 위기에 놓이자 차기 후보와 대안으로서 유한양행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물론 유한양행이 길리어드의 실패까지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왔다. 이 분야 전통 강호가 갖지 못한 약물 표적에 집중하고 차별성을 강조한 전략이 먹혀든 것이다.

2. 상품 부문에서 쌓은 기존 네트워크 활용
최근까지 유한양행은 외국계 제약사 상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수익으로 매출을 올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해외 의존형 수익은 계약이 끝나면 언제든지 증발할 수 있고, 신약 개발이나 국내 바이오 생태계 투자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상위 제약사로서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외국 약 판매 대행 조직으로서는 오랜 경험과 탄탄한 영업망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 가본 길을 개척하는 ‘탐색(exploration)’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존 역량을 ‘활용(exploitation)’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쌓인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두터운 신뢰 관계는 신생 기업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전통 제약사의 최대 자산이었다.

길리어드와의 계약도 이런 상품매출 부문에서의 신뢰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였다. 후보 물질도 도출하기 전 단계에서 1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계약이 성사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유한양행은 2012년 길리어드의 B형 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 공동 판매 계약을 맺은 뒤 6년간 관계를 유지하며 소발디, 하모니, 스트리빌드, 젠보야 등 거의 전 제품 라인업의 국내 판매를 담당해 왔다. 또한 길리어드 상품에 들어가는 원료의약품(API) 공급도 2003년부터 맡아왔다. 길리어드가 한때 더 저렴한 가격에 API를 공급하는 중국 제약사로 납품업체를 바꿨다가 다시 유한양행으로 돌아왔을 정도로 품질과 관련해서는 믿음이 깊었다.

애초에 기회가 찾아온 것도 양호한 영업 실적과 무관치 않았다. 지난해 5월 길리어드는 유한양행이 자사 제품으로 기대 이상의 판매 이익을 거둬온 데 감사를 표하며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을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초대했다. 이전까지는 상품만 왔다 갔다 하다가 경영진끼리 대면하고 본격적으로 교류하는 장이 열린 것이다. 유한양행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길리어드 경영진에게 상품 부문에서 오랜 관계를 이어 왔으니 R&D도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회사의 주력 신약 파이프라인도 소개했다.

역시 길리어드는 유한양행의 여러 파이프라인 중 NASH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고, 그 자리에서 1∼2개 정도를 콕 집어 추가로 논의해보기로 했다. 후보 물질도 확정되지 않은 워낙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유한양행도 이 시점에 기술 이전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글로벌 제약사도 웬만하면 임상 1∼2상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거나 아무리 빨라도 전임상 정도에서 기술을 사 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단지 길리어드에 NASH 전문 연구진이 많고 개발 경험이 풍부하니 R&D 과정에 수반되는 문제에 대해 기술적 조언을 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발 계획을 짜려 했을 뿐이었다. 양사는 비밀유지 계약을 체결하고 꾸준히 접촉했고, 연구소끼리 화상 콘퍼런스를 통해 전문적 식견을 주고받았다.

만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길리어드는 라이선스 인을 전격 결정했다. 유한양행의 예상을 뛰어넘는 쾌거였다. 간혹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남들이 아예 개발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혁신 신약(first-in-class)의 경우 선제적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해 일찍 후보 물질을 사가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도 않았다. 상품 판매와 API 납품을 통해 함께한 시간, 서로 믿을 만한 파트너고 R&D 분야에서도 함께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계약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게 유한양행의 분석이다. 오세웅 부소장은 “기술 실사를 거의 생략하고 계약했을 정도로 강한 믿음을 보였다”며 “초기 단계라 실사할 게 많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상품 판매 부문에서 양사가 쌓아온 신뢰 관계가 작용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3. ‘매몰 비용의 함정’ 빠지지 않는 유연함
주인 없는 회사가 가지는 이점도 있었다. 오너의 부재는 그동안 유한양행의 신약 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만 인식돼왔다. 장기적인 포석으로 R&D를 밀어붙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달리 해석하면 비(非)전략적 과제는 과감히 외부로 넘기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오너가 한번 결정하면 방향 수정이 쉽지 않은 오너 기업과 달리 이미 투자한 비용, 즉 매몰 비용(sunk cost)에 연연하지 않고 안 되는 것은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다.



오세웅 부소장은 “R&D는 오랜 기간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너 체제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오너 기업은 한번 잘못 판단하면 끝까지 그대로 간다는 단점이 있는데, 우리는 안 되는 것을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유회 R&D전략팀장도 “겉보기엔 똑같이 신약 파이프라인이 27개여도 그 안의 세부 내용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며 “연구소 SRC위원회가 전사적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판단하면 과제책임자와 연구원들 동의하에 과제를 바꾸거나 외부 파트너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해당 기술의 1) 시장은 있지만 2) 개발 비용이나 시장 도달을 위한 경로 구축비용이 많이 들고 3) 자사의 핵심 강점과 일치하지 않으면 굳이 지속하지 않고 외부에 넘긴다는 설명이다.

회사 외부의 적임자를 찾아 내부에 묻힐 뻔했던 사내 프로젝트가 되살아난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18년 7월 미국 제약사인 스파인바이오파마에 기술 이전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YH14618’이었다. 2009년 바이오 벤처인 엔솔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처음 물질을 가져온 뒤 전사적으로 매달렸던 이 프로젝트는 10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2016년에는 환자 32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통계적으로 약효가 유의하지 않다는 데이터까지 나오면서 프로젝트가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성공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상 2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숫자가 나오긴 했지만 이를 ‘실패’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약효가 없었던 게 아니라 위약(placebo)의 효과가 이를 압도할 정도로 컸던 게 문제였기 때문이다.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는 진통제의 특성상 임상 과정에서 환자의 ‘통증’이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혈당 수치를 재면 되는 당뇨약이나 엑스레이(X-ray) 영상만 판독하면 되는 항암제와는 다르다. 기분이 나쁘면 평소보다 크게 아픔을 느끼는 등 환자들의 감정이나 문화, 민족성에 크게 좌우된다.

이 경우는 임상 2상에서 환자들의 기대감이 너무 고조됐던 게 화근이었다. 유한양행 신약이 좋다는 후기가 블로그에 연일 올라오고 환자들 서포터즈가 생기는 등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환자들이 위약인 식염수만 맞아도 덜 아프고 증상이 호전됐다고 답했고, 위약효과가 유례없이 높게 나왔다. 약효는 있었으나 위약 대비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신약 자체의 결함은 아닌 만큼 다시 도전해 볼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임상 2상 결과가 나오던 2016년 10월 무렵, 회사는 이미 신약 파이프라인 중 2대 전략 질환군인 ▲표적 항암제, 면역 항암제 등 종양 치료제 ▲NASH, 고혈압, 당뇨/비만 등 대사질환 치료제에 자원을 집중하기로 방향을 세운 상황이었다. 자연히 핵심에 속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한 발씩 발을 빼고 있었다. 모든 물질을 3상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해 신약으로 꽃피운다면 가장 좋겠지만 리스크를 전부 짊어질 수는 없었고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의 경우 미충족 수요를 개척한다는 의미나 시장은 있어도 회사가 주력할 분야는 아니었다.

오래 공들인 만큼 아깝긴 했다. 이미 임상 2상에만 150억 원을 투입했을 정도로 매몰비용이 컸다. 정부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서 지원받은 80억 원을 고려하더라도 여기서 임상 2상을 중단하면 그간 쏟아부은 자원은 허공에 날리는 셈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150억 원을 추가 투입했을 때 두 번의 실패 위험을 떠안는 게 더 큰 부담이었고,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했다. 연구소 SRC도 위험분산의 필요성에 합의했고, 결국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 대신 추가 사업화를 맡아줄 파트너를 찾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척추질환 치료제 R&D만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스파인바이오파마가 이정희 대표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임상 2상에 재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프로젝트는 1년 9개월 만에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스파인바이오파마가 제시한 기술 이전료는 그간 유한양행의 개발 비용과 노력에 비춰볼 때 큰 액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한양행에 이 라이선스 아웃은 단지 금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내의 비핵심 과제로 없어질 뻔했던 치료제가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제2의 기회를 얻고, 제한적이나마 그 수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기술 이전의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스파인바이오파마는 이미 디스크 관절염 치료제 개발을 완료해 상업화에 성공한 경험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과제에 집중하고, 그렇지 못한 과제는 지나간 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외부 전문기관에 과감히 넘기자는 게 유한양행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골자였다.


DBR mini box III: 이색 외향형 개방 사례: 유한야행-브릿지바이오 협업

통상 라이선스 아웃은 바이오 벤처가 국내 대형사를 상대로, 국내 대형사가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를 상대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후속 단계로 갈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내부 과제를 대형 글로벌 빅파마에만 개방하지 않았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못 하는 것을 넘기자는 원칙이 서자 작은 회사들도 눈에 들어왔다. 시너지만 확실하다면 파트너 규모는 관계없었다.

유한양행이 개발 과제를 작은 벤처에 라이선스 아웃한 첫 사례가 바로 한국의 브릿지바이오다. 브릿지바이오는 외부 파트너로부터 도입한 신약 후보 물질 개발만 전문으로 하는 국내 대표 ‘개발 중심 바이오 벤처(NRDO No Research Development Only)’다. 유한양행은 브릿지바이오에 10억 원의 기술료를 받고 2015년부터 자체 발굴해 연구해왔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BBT-931’을 넘겼다. 면역 항암제 공동 연구를 위해 제휴를 맺고 상호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20억 원에 브릿지바이오 지분 1.4%를 취득하며 직접투자까지 병행했다. 내부에서 잘 안 되던 프로젝트를 외부에 넘겼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전달하거나 ‘대형사도 손 놓은 물질’ ‘가망 없는 물질’이란 꼬리표가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분 투자는 회사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표시였다.

유한양행이 브릿지바이오에 손을 내민 이유는 명료했다. 브릿지바이오가 규모는 작지만 면역 항암제 개발 능력에서는 대형사보다 앞서 있고, 미국에서의 임상계획 승인(IND) 경험도 더 풍부했다. 면역 항암제는 표적 항암제보다도 개발하기가 훨씬 까다로운 약이다.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를 바로 죽이기 때문에 물질의 효능을 비교적 확인하기가 쉽지만 면역 항암제는 면역에 작용한 뒤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도록 하다 보니 변수가 많다. 유한양행도 예외 없이 면역 항암제인 BBT-931의 약효를 실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진도가 잘 안 나자 점차 프로젝트를 후순위로 미루던 중이었다. 회사의 ‘계륵’ 같은 존재였고, 유한양행보다 더 잘 맡아줄 만한 전문적인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유한양행의 고민을 접한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BBT-931의 개발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에 ‘옵션 앤 라이선스(option and license)’ 계약을 맺었다. 언제든 사갈 수 있는 ‘옵션’을 가지고 일정 기간 이 후보 물질을 자세히 평가한 뒤 기간 내 가치가 확인되면 라이선스 인하는 방식이다. 브릿지바이오라고 해도 면역 항암제 개발이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작은 벤처의 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특히 개발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섭외하고 필요한 비용을 투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 대표는 “대형 제약사로 치면 연구소장급 경력의 박사들끼리 합을 맞춰 일하고 실무까지 맡다 보니 돈을 들일 만한 아이디어란 판단만 서면 누구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도 바로 실행에 옮길 수가 있다”며 “현재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와 연세대 등 관련 분야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에게 이 면역 항암제를 위탁해 관련 실험을 수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유한양행의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졌어도 벤처의 민첩함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아직 면역 항암제 개발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유한양행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행(洋行)’의 사명
지난해 유한양행은 1조5188억 원 매출을 거두며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이익 창출력에 신약 파이프라인까지 갖춰나가면서 호재가 연일 이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신약 기술 이전이 일반적인 수출 계약과 다른 점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데 있다. 현재 레이저티닙을 사간 얀센 바이오테크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올해 상반기 후기 2상의 데이터 발표가 예정돼 있다. 경쟁사 대비 의미 있는 장점을 보여줄지, 조건부 시판 허가를 받아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지 아직 지켜봐야 한다.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도 올해 임상 2상에 다시 들어가며, 길리어드에 넘긴 NASH 치료제도 올해 비임상을 끝낸다. 모든 과정은 ‘진행형’이다.

아직 축배를 들기는 이르지만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국내 개발 글로벌 신약의 꿈을 한발 앞당겼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남 박사는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후보 물질이 기술 이전에 성공한 적은 있지만 세계적으로 팔리는 매출 1조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은 나오지 않았다”며 “아직 개발 선상에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레이저티닙이 그 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후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여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유한양행은 지난해 3월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의 하나인 샌디에이고에 ‘유한USA’ 법인을 설립하고, 올해부터 현지 파트너들과 신약 개발, 임상 공동 진행, 판매 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라이선스 인과 아웃 등 개방형 혁신의 주 무대를 한국을 넘어 미국으로까지 넓히기 위해 지난 2월 직전 중앙연구소장인 최순규 전무를 유한USA 법인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한양행의 ‘양행’은 사실 글로벌, 서양으로 간다는 의미다. 이제라도 정말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회사가 되려면 제약사로서의 정체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는 그 답을 개방형 혁신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참고문헌
1. Chesbrough, W. Henry (2003). “Era of Open Innovation”, MIT Sloan Management Review.
2. Pammolli, F., Magazzini, L., Riccaboni, M (2011). “The productivity crisis in pharmaceutical R&D”,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3. 안지영 (2018).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과 제약산업”, Bio Economy Brief.
4. 엄기현 (2017). “신약개발 역량 강화를 위한 혁신시스템”, 산은조사월보.
5. 이상원, 이의경, 신준석 (2016).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개방형 혁신 유형과 특성에 대한 분석”, 약학회지.



DBR mini box IV: 유한양행 성공 요인과 시사점

유한양행 오픈 이노베이션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은 ‘신뢰’에 기반해 개방형 혁신 과정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제약 산업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은 신약 후보 물질의 발견부터 전임상, 임상, 시판 허가 등 신약의 개발 및 판매의 다양하고 긴 단계를 제약사 혼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벤처기업, 다국적 제약사, 대학 및 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와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이 길고 지난한 과정에서 다양한 기업의 내·외부 참여자 간 상호이익을 얻고 신약 개발을 성공시키느냐는 결국 참여자 간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유한양행의 경우에는 후보 물질이나 타깃 시장의 선정이 적절했던 것보다는 기존 조직과 마찰 없이 라인선스 인을 빠르게 추진하도록 중간관리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라이선스 인 기업에 대해 개발 단계마다 수익 배분과 직접투자 등으로 신뢰를 확보하고, 라이선스 아웃을 위해 파트너 입장에서 역방향으로 접근한 점 등이 두드러진 성공 요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참여자 사이의 신뢰를 강조하는 이유는 특허에 담긴 기술을 더 발전시켜 고객을 만족시키는 동력은 특허 자체보다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IT 기업인 시스코의 경우 자사는 핵심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핵심 제품에 부가가치를 더해줄 벤처기업을 인수합병하는 ‘A&D(Acquisition & Development)’라는 혁신 방식으로 정보통신 장비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등극했다. 시스코는 성공적인 A&D를 달성했는지를 인수한 기업의 지적자산의 양과 질이 아니라 인수 후 계속 근무하는 연구원의 비율로 측정했다. 인수 후 연구원 가족의 이사 걱정까지 고려해 인수 후에도 근무지를 다른 도시로 하지 않는 원칙을 사용할 정도였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여부가 특허 자체보다는 특허를 만든 과학기술자에게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유한양행이 자사의 ‘약점 극복’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2015년 당시의 유한양행에는 강력한 오너가 존재하지 않았고, 신약 개발 경험이 짧았으며, 관련 인력도 부족했다. 더욱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성장전략으로 선택하긴 했어도 다른 경쟁사와의 경쟁 등 어려운 여건이 산적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오너가 없으니 오픈 이노베이션 참여자들에게 더 적절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었고,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하니 후보 물질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가져오겠다는 개방성을 허용하고 자사가 해야 할 일을 빠른 임상 진행과 적절한 라인선스 아웃 진행 등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IT 분야의 오픈이노베이션의 최초 사례로 많이 이야기되는 1990년대 IBM의 경우도 그동안 중시하던 하드웨어(HW) 역량에 비해 소프트웨어(SW) 개발 역량이 경쟁사 대비 부족함을 절감한 것이 혁신의 시발점이었다. IBM은 개발자 커뮤니티에 과감한 기부와 인프라 제공을 통한 커뮤니티 기반 SW 개발을 단행한다. 그 결과 자바를 처음 만든 선보다도 더 좋은 자바 프로그래밍 개발 SW를 출시해 1등 제품으로 등극시키고, 이후에는 데이터마이닝, 데이터베이스, 응용 프로그램,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공적인 SW 회사로 변신했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선택에 따른 ‘현명한 포기’다. 유한양행의 경우 자사가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후보 물질인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등 프로젝트를 수익을 내면서 라이선스 아웃하는 현명한 포기를 단행했다. 단순히 포기해 추가 사업화에 실패할 위험도, 쓸데없는 노력을 추가로 투입할 위험도 모두 피했다.

복사기 회사인 제록스의 경우는 인터넷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PDF, 이더넷, 전자잉크, GUI 등 훌륭한 기술을 연구소에서 개발하고도 자사 제품에 활용하지도 않고 라이선스 아웃도 하지 않은 채 썩혀뒀다. 그 결과 개발에 참여한 제록스 연구원들이 퇴사해 제록스가 포기한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고 훌륭한 기업을 수십 개 만든 반면, 제록스는 더 이상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속하지 않는다. 이 사례는 현명하지 않은 포기의 대가를 잘 보여준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창시자인 체스브로 교수는 “전통적 혁신이 자사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을 위한 기술 혁신만 고려한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은 다른 회사에 기술을 이전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제약 기업에 있어서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전통적인 이노베이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전통적인 이노베이션의 범위가 자사의 역량과 자원을 이용하는 것에 한정됐다면 이제는 가용할 만한 모든 조직의 역량과 자원으로 확대한 것뿐이다. 다시 말해, 오픈 이노베이션은 전통적인 이노베이션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더욱이 제약 산업의 경우 신약 개발이란 혁신의 과정이 어떤 산업보다도 오래 걸리고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므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배격하고 신약 개발의 모든 단계를 자사의 역량과 자원만으로 하겠다는 기업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다.

둘째, 제약기업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발판으로 글로벌 진출을 통해 우리나라 제약 산업을 도약시킬 시점이 도래했다. 그동안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디스플레이, 정보통신기기 등 산업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출현했다. 반면 제약 산업의 경우 통신 산업, 인터넷산업과 달리 글로벌 순위권에 드는 우리나라 기업이 전혀 없다. 이 같은 차이는 기업이 내수시장에서 잘하듯 글로벌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지냐의 문제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은 위탁생산(CMO)이나 라이선스 아웃 등의 오픈이노베이션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다. 우리 제약기업들이 이제 글로벌 강자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을 제외한 국가 출신으로 유일하게 글로벌 톱 제약사 중 하나가 된 이스라엘의 ‘테바’처럼 우리 기업이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R&D, 해외 제조공장 신설, 해외 제약사 인수합병(M&A) 등 지금까지의 라인선스 인, 라이선스 아웃 이상의 폭넓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이희상 성균관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leehee@skku.edu
필자는 서울대 공과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산업시스템공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외대 교수를 거쳐서 성균관대에 재직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기술경영전문 대학원장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SK텔레콤, KT, LS산전, 현대모비스 등의 기업에 개방형혁신 등과 관련해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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