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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경영

게임이든, 현실이든 데이터에 갇히면 상상력을 놓쳐

이경혁 |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30년간 많은 게이머의 사랑을 받아온 고에이 사의 ‘삼국지 시리즈’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전략 판단의 정석과 같은 게임이다. 인기 고전소설의 무대 한복판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스스로 후한 말의 군웅 중 한 명이 되는 상상을 데이터 기반의 게임 안에서 현실화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데이터로 구성된 가상의 후한 말 시대가 실제 역사 속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듯 현실에서도 데이터가 모든 현실을 완벽하게 보여준다고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입사 지원자를 받고, 성과평가를 하며, 수치화된 데이터로 시장의 흐름을 판단하는 경영자들도 데이터는 ‘수치화할 수 있는 일부’만 보여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사결정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는 전략적 판단과 의사결정의 훌륭한 도구지 그 자체로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터 기반의 시대, 데이터는 정말 객관적이고 완벽한가?

2009년 미국 워싱턴DC 교육부는 고교 교육의 효율화를 위해 무능한 교사를 가려내는 ‘임팩트(IMPACT)’라는 교사평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각 교사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이용해 하위 5% 평가를 받은 교사들을 해고하는 방식이었다. 워싱턴의 교사 새러 와이사키는 스스로도, 주변의 평으로도 꽤나 훌륭한 교사였지만 이 시스템의 도입 이후 하위 5%에 속하게 됐고, 끝내 교직에서 해임됐다.

정말 그는 부적격 교사였을까? 2017년에 출간된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2017, 흐름출판)』의 저자 캐시 오닐은 와이사키의 해고 이후 이야기를 파헤친다. 와이사키가 해고된 배경에는 데이터에 의거한 평가 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즉 와이사키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임교사가 문제였다는 것. 교사에 대한 평가가 오직 데이터로만 이뤄지는 구조하에서 와이사키의 전임 교사는 자신의 평가를 손쉽게 올리기 위해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관했고, 학생들은 시험에서 실제 실력보다 높은 점수를 손쉽게 올리고 있었다. 와이사키 같은 정상적인 교사가 새로 부임했을 때 이미 교육 수준이 엉망이 된 아이들의 점수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훌륭한 교사인 와이사키가 오히려 해임되는 아이러니로 이어졌다.

교육 분야뿐 아니라 사실 현대의 많은 전략적 판단은 데이터에 근거하며 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쌀 한 섬, 밀 한 포대를 세던 시절을 넘어 디지털의 힘을 빌린 현대에는 이른바 빅데이터라는 말이 일상화될 정도로 강력한 데이터 처리 방법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보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이터가 과연 ‘만능 해결사’일까. 세상 모든 일들이 양면성을 가진 것처럼 데이터라는 방법론 또한 일장일단을 품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가 제공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칫 길을 잃기 쉬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고는 수치 그 자체보다는 데이터라는 개념이 가진 장점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앞선 교사 와이사키 사례처럼 데이터는 우리의 생각보다 무척 주관적이며 편향돼 있다. 흔히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데이터의 함의를 한번 더 되새겨보기 위해 우리는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장 찬란한 콘텐츠 하나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데이터는 비단 비즈니스 현장의 전략적 판단만을 위한 기초 자료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의외로 데이터가 이뤄 낸 성과물 중에는 무척 재미있는 콘텐츠들도 많은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대표 사례다.

데이터로 만들어진 전략 시뮬레이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한국에서 1980∼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적지 않은 이들이 게임 ‘삼국지’를 기억할 것이다. 일본의 테크모-고에이 사가 1980년대 말에 처음 출시해 2017년 제13편을 출시하기까지 근 30년의 세월 동안 인기를 끌어온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삼국지’ 시리즈 말이다. 원작인 중국의 고전소설 『삼국지연의』가 인기를 끄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제작사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한 게임 콘텐츠다.

원작 소설 『삼국지연의』 자체가 경영과 전략 부문에서의 인용이 적지 않았기에 게임으로 등장한 ‘삼국지’ 역시 장르 분류를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다룰 수 있을 만큼 게임의 핵심에는 전략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조조, 유비, 손권 등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군주들 중 하나가 돼 천하 통일을 위해 국가를 경영하고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분류에 속하는 게임답게 삼국지는 플레이어에게 전략적 판단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를 위해 게임은 후한 말 혼란기의 중국 상황을 문자나 그림, 영상이 아닌 데이터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플레이어 영토의 위치와 생산력, 보유한 병력의 수와 훈련도, 군량과 무기, 장수들의 능력치와 타 세력과의 외교관계 등이 화면에 끊임없이 뿌려지면서 플레이어에게 천하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다. 천하의 정세를 데이터로 읽고, 지금 시점에 내정을 충실히 할지, 군대를 이끌고 정복에 나서야 할지, 강대한 적 세력과 동맹을 해 둬야 할 것인지, 아니면 약소세력과 연합해 먼저 강적을 꺾을 것인지를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림 1]은 1990년대 초반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삼국지 3’의 화면이다. 화면에 뿌려지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국가가 천하 통일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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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의 삼국지는 원작 소설 속에 직접 뛰어드는 플레이의 감각을 구현하기 위해 데이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후한 말 중국 도시들은 데이터를 통해 구현된다. 낙양, 장안 같은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어 징병과 산업에서 타 도시에 비해 압도적인 생산량을 보이며 당시 오지에 가까웠던 촉, 오와 비교할 때 사실상 몇 배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여준다. 적벽대전의 100만 대군으로 유명한 군사력 또한 병사들의 머릿수와 훈련도, 무장과 군량 등이 하나하나 데이터로 움직이면서 실제 군사 기동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게임이 데이터로 표현하는 것은 비단 국가나 영토 같은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이 문자로 풀어낸 인물들의 모습은 게임 안에서 데이터의 형태로 나타난다. 『삼국지연의』 내에서 무력으로 첫손에 꼽을 장수인 여포는 게임 안에서 1∼100 사이에 설정되는 무력 수치로 100을 가지고 있으며 전장에서 여포 캐릭터는 막강한 전투력을 기반으로 소설 속 천하무적 캐릭터의 입지를 놓치지 않는다. 원작 소설 속 최고의 지략가인 제갈량 또한 지력 100의 위엄을 뽐내며 군사로 삼을 경우 100%에 가까운 조언 성공률과 계략 성공률을 보이면서 천하 통일의 향방을 크게 좌우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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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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