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구던 인터넷 뉴스 기사가 있었다. 내용은 이랜드그룹의 뷔페 레스토랑인 ‘애슐리’의 주방에는 요리사가 없고 ‘알바’가 모든 메뉴를 다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SNS에서는 그 기사를 공유하며 다들 속았다며 공분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그 기사가 놓친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센트럴 키친’의 존재다. 센트럴 키친 없이는 1만 원대 애슐리 뷔페 메뉴는 구현 불가능하다. 센트럴 키친에서는 메뉴를 반조리 또는 완전 조리해 급속 냉각 후 매장으로 배송한다. 각 매장의 주방에서는 이를 덥혀 내거나 단순히 끓이는 정도의 최소한의 조리 후 바로 테이블에 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센트럴 키친을 통해 각 매장에서는 주방의 사이즈를 최소화할 수 있고, 조리사가 없어도 되므로 인건비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매장별 음식 품질을 균질하게 유지할 수 있다. 1990년대에 국내에서 센트럴 키친 시스템을 가장 빠르게 구축한 CJ푸드빌은 그 역량을 바탕으로 VIPS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외국 브랜드 일색이던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를 제패한다. VIPS의 성공은 당시 미끼 메뉴였던 ‘샐러드 바 뷔페’에 기인하는데 이는 센트럴 키친 없이는 구현 불가능했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마켓 리더인 CJ푸드빌이 구현한 이 센트럴 키친을 발 빠르게 벤치마킹한다. 이랜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VIPS의 샐러드 바 뷔페를 ‘리엔지니어링’해 만들어 낸 브랜드가 바로 애슐리다. 즉, 애슐리는 VIPS의 샐러드 바 뷔페의 뒷 단에 있는 센트럴 키친의 역량을 이랜드의 방식으로 빠르게 구현해 낸 결과물이고, 이는 전형적인 ‘비혁신 분석자(Analyzer without Innovation) 전략’의 성공적 사례다.
비혁신 분석자 전략은 마켓의 후발 주자가 리더를 쫓아가는 위협적이고도 얄미운 전략이다. 비혁신 분석자는 마켓 리더가 어떤 움직임을 가지는지만을 바라보며 그를 끊임없이 분석한다. 그리고 빠르게 반응한다. 이 비혁신 분석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정보력과 분석력, 그리고 그 결과를 빠르게 시장화하는 민첩성(Agility)이다. 삼성도 1980년대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소니를 쫓아갔고, 국내 연예 기획사는 SM, YG, JYP만을 바라보며 비슷한 연예인들을 빠르게 복사해 TV에 내보낸다. Zara의 성공적인 fast fashion도 결국 이 비혁신 분석자 전략의 결과물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제패한 CJ푸드빌은 ‘계절밥상’이라는 브랜드로 한식 뷔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었다. 이랜드는 역시 빠르게 반응해 ‘자연별곡’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한다. 그런데 이랜드의 시장 반응성 및 확장성이 어찌나 기민한지 지금은 매장 수에서나 브랜드 인지도에서 오히려 오리지널 브랜드인 CJ의 계절밥상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연별곡의 평일 점심 뷔페 가격은 고작 1만2000원이다. 이 엄청난 ‘가성비’를 내는 효율적인 센트럴 키친을 구축한 이랜드는 실로 무시무시한 기업이다. 하지만 비혁신 분석자의 위기의 순간은 벤치마킹의 대상을 잘못 선정할 때 찾아온다. 요컨대 벤치마킹 대상인 마켓리더가 잘못 읽은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면 비혁신 분석자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런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서 비혁신 분석자는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분석해야 한다. 이랜드의 진짜 핵심 역량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랩 연구소장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버팔로 뉴욕 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마쳤다.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 연구소장을 맡아서 ‘먹고, 마시고, 노는’ 산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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