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종합
Article at a Glance – 경영전략
‘산업(industry)’은 경영자를 위한 개념이 아니다. 800㏄ 경차와 최고급 스포츠카를 같은 ‘자동차 산업’이라 할 수 있을까? 산업의 틀을 넘어서 변화를 읽고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은 경영전략 분야의 오랜 과제다. 리타 건터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다양한 사업자가 고객집단과 맞물려 변화해 가는 arena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플랫폼 사업자를 매개로 한 양면시장과 네트워크 효과는 arena의 ‘연결과 변화’를 이끄는 동인(動因)이다. 특히 이질적 사업의 결합에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 경영자는 삶의 현실에서 다양한 의미를 읽지 못하면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없다. |
‘산업’은 경영자의 개념이 아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산업을 넘어서 새로운 경쟁의 틀을 생각해야 한다.”
이젠 그다지 새롭지 않은 말이다. 정보기술(IT)의 발전과 보급으로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기도 하다.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를 만들고 알리바바가 모바일 결제에 이어 TV에까지 손을 뻗친다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산업(industry)’은 제품시장의 경쟁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비슷한 성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묶어서 농림어업, 제조업, 숙박업 등을 설정한 뒤 각각의 카테고리 안에 채소작물, 운송장비, 호텔 등으로 나누는 것이 이른바 표준산업분류(SITC) 체계에서 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산업정책의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할 때도 있다. 800㏄ 경차와 최고급 스포츠카를 같은 ‘자동차 산업’이라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스포츠카 회사는 고급 패션 브랜드와 연계해서 같은 고객 집단을 공략하기도 하는데 고객도, 사업모델도 다른 경차 회사를 같은 범주로 묶어 어떻게 정책을 편다는 뜻일까?
주변을 돌아보면 산업의 경계를 판단하기가 애매한 사례가 정말 많다. 예컨대 대도시 근교의 주말농장에서 펜션과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서 식당과 편의점 사업까지 하고 있다면 이 농장 주인은 과연 어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개념적인 범주인 ‘산업’을 염두에 두진 않는다. 나의 ‘사업모델’이 중요하고 이 모델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버텨줘서 돈을 벌게 해줄지만을 고민할 뿐이다. 제품과 서비스는 사업모델의 일부이고 관련된 부품, 원재료, 판로 등 다른 사업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경쟁자는 사실 나의 사업기반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별 경쟁관계에 있지 않는데도 표준산업분류상 같은 칸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산업’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기존의 산업분류가 여전히 정책의 대상이 되는 데는 ‘산업별 노조’란 말이 상징하듯 해당 분야의 직업체계라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경차와 스포츠카는 고객도 사업모델도 다르지만 정비사 면허는 같다. 이는 중세 영주들의 사업면허나 길드(guild) 체제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세든, 현대든 경영자의 역할은 영역을 넘어선 경쟁과 협력에 있다. 따라서 산업이란 범주는 적어도 경영자를 위한 분류는 아닌 게 확실하다.
산업을 넘어선 경쟁과 협력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산업경제학, 특히 일정한 구조적 특징을 가진 산업에서 기업의 경쟁적 행태가 어떻게 전개되고, 이것이 어떻게 산업의 경쟁구도와 수익률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 일련의 연구들을 종합했다. 일명 ‘Bain IO’라 불리는 이 연구들은 ‘어떤 산업이 돈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보여줬다. 포터의 경쟁전략(5-force model)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현장 전문가들은 분석 대상이 되는 ‘산업’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같은 패션산업이라도 고가의 명품 브랜드와 저가 의류는 전혀 다른 사업이며, 공급업자나 구매자와의 관계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산업을 넘어선 경쟁’을 포터 교수는 대체적 압력(substitute pressure)으로 정의해 분석에 포함시켰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분석의 범위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포터 교수는 기존 산업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동태적 분석을 통해서 좋은 사업 분야(industry segment)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니 ‘산업’이란 범주는 그에게도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다. 클레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이러한 대체적 압력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경영자의 역할은 끊임없이 이런 변화를 읽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있다.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은 이를 두고 “편집증 환자나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판카즈 게마와트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는 분석대상을 ‘산업’이 아닌 경영자가 제품, 사업활동, 지역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업활동의 폭(scope)을 결정한 결과인 포지셔닝(positioning)에 뒀다. 흔히 얘기하는 ‘사업모델’과 거의 같은 개념인데 경쟁자의 모방, 다른 형태의 기술이나 제품이 가져오는 대체효과(substitution), 관련 사업자가 이득의 큰 부분을 빼앗아가는 홀드 업(hold-up) 등은 사업모델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다.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융합된 사업모델은 ‘차만 마시는’ 유행에 밀려나거나 옆의 유료 주차장만 돈을 버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기존 산업분류를 고집해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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