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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 나비엔의 성장 및 글로벌 전략

고객니즈 정조준한 기술개발 옹고집, 국내시장 넘어 미국과 러시아 공략 성공!

고승연 | 147호 (2014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현(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

 

20여 년 전 처음 전파를 탄 이 TV광고 속 카피는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가 없던 시절임에도 코미디프로는 물론 각종 TV쇼에서 패러디까지 됐을 정도다. 경동나비엔(구 경동보일러)의 이 광고는 보일러 역사상 최고의 광고로 꼽힌다. 국내 TV 광고 중감성마케팅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 이후 경동나비엔은 최악의 시련기를 보낸다. 물론 크게 히트 친 광고 때문은 아니다.

 

경동나비엔은 90년대 들어서 린나이와 귀뚜라미에 이어 가스보일러 시장점유율 3위에 머무르는 뼈아픈 시절을 보낸다. 그것도 2위와 차이가 많이 나는 3등이었다. 이 시기가 바로 경동나비엔의잃어버린 10이다. 기름보일러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쟁사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지만 당시 기름보일러에서 가스보일러로 대세가 바뀌던 시점이었음을 감안하면 경동나비엔의 아픔은 컸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경쟁사와 1위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1999년까지 시장점유율 3위였던 경동나비엔이 불과 3∼4년 만에 1위를 다투는 수준이 되고 또다시 4∼5년이 지난 2009년이 되자 시장점유율 30%를 넘기고 매출에서도 경쟁사를 앞서는 독보적 1위가 됐다. 국내 시장 1위만 된 게 아니다. 2008년부터 제품을 출시하며 진입한 미국에서는프리미엄 온수기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전체 순간온수기 분야 2, 콘덴싱 순간온수기 분야 1위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진출한 러시아에서도 벽걸이 가스보일러 시장 1위에 올랐다. 2012년 한국무역협회 기준 국내 보일러 및 가스온수기 수출액의 63%를 점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은 35%를 넘나들고 있다.1

 

 

1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DBR이 기름보일러 강자에서 가스보일러 시장 3위로 추락했다가국내 시장 1해외 진출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동나비엔의 성공 스토리를 취재했다.(그림 1)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기술 개발, 그러나

 

1980년대 이전까지는연탄보일러의 시대였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연탄 아파트가 바로 연탄으로 방바닥과 물을 덥히는 보일러를 갖춘 주택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기름보일러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80년대의 대세는 누가 뭐래도 기름보일러였고 보일러 시장 전체의 성장도 기름보일러가 이끌었다. 1980년대 후반 기름보일러 시장은 연간 150만 대 수준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부터 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 붐이 일어나고 서울·수도권 지역 곳곳에도시가스 배관이 깔리면서 가스보일러의 시대가 도래한다. 기름보일러는 현재 연간 20만여 대 수준으로 축소됐고 가스보일러는 120만 대 이상 시장으로 성장했다. 전통적인 온돌 난방 문화를 바탕으로, 인구의 50%가 밀집돼 있는 지역(서울, 수도권)부터 도시가스 보급률이 90%에 육박하는 등 가스 공급 인프라가 갖춰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 보일러 시장이 커졌고 이후 도시가스로의 전환도 빨랐다. 실제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보일러 시장이기도 하다.2  그러나 기름보일러 시대를 지나 가스보일러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시장도 커지던 시기에 경동나비엔은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동이 처했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보일러 산업의 특징과 경쟁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 1980년대 대세였던 기름보일러 시장은 전통적으로 경동과 귀뚜라미가 양분하고 있었다. 90년대 가스보일러로의 전환 과정에서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린나이다. 가스보일러 시장은 기름보일러의 두 강자를 린나이가 제압하면서 형성된다. 과점시장인 보일러 시장에서 가스보일러 부문 시장점유율 75%를 린나이, 귀뚜라미, 경동이 놓고 다투는 상황이 됐고 90년대 초반 일본 기술 기반의 린나이가 온수기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가스보일러 기술의 표준규격을 함께 들고 들어오면서 시장을 장악해 30% 이상의 점유율로 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대략적으로 귀뚜라미는 25% 2, 경동은 16% 정도의 점유율로 시장 3위 업체가 됐다. 앞서 언급했듯, 1위와 2위 간 차이보다 훨씬 큰 격차가 나는 3등이었다.

 

문제의 원인은 너무 앞서간 기술이었다. 1988년 가스보일러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상한 경동나비엔(당시 경동보일러)은 네덜란드 회사와 기술제휴를 하며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국내 최초, 아시아 최초로콘덴싱 기술을 개발한다.3  당시 유럽에서는 이미에너지 효율성이 화두였고 콘덴싱 기술을 도입한 보일러를 사용하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줄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달랐다. 경동의 과감한 투자와콘덴싱 보일러대량 생산은 90년대 내내 독이 됐다. 우선 가격이 2배였다. 물론 3∼4년만 쓰면 에너지 소비 효율성으로 인해 충분히 값어치를 할 수 있는 제품이었지만 국내 보일러시장은 B2B 중심이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불어 닥친 아파트 건설 붐에 따라 가스보일러의 가장 큰 시장이 열렸고 건설회사들은 자신들이 지불하지도 않을 미래의 가스요금을 생각하면서 굳이 2배 비싼 경동의 콘덴싱 보일러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즉 경동은 당시 보일러를 개별 설치하는 단독주택 거주자들만 공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기름보일러 시장에서 여전히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현금이 계속 돌았기 때문에 10년간의 암흑기를 버틸 수 있었다.

 

10년간의 인내와 교훈, 그리고 도약

 

1) 반전의 기회를 잡다

 

‘회사가 진짜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 무렵, 결정적인 반전의 계기가 찾아온다. 첫 번째 계기는 초기에 보급된 가스보일러의 교체시기가 도래한 것4 이었다. 두 번째 반전의 요소는 경동이 또 한 번 기술혁신에 성공한 것이었다.

 

보일러는 교체시기가 도래하면 비즈니스의 특성이 B2C로 바뀐다. 아파트 부녀회든, 다가구 주택 입주자든, 단독주택 거주자든 스스로 새 보일러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10년간의 암흑기에도 꾸준히 콘덴싱 기술을 연구개발하면서 일반 보일러 대비 1.5배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전력투구하던 경동은 때마침 신임 회장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따라 일반 보일러와 가격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콘덴싱 보일러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 심지어 린나이의 첨단 기술인비례제어’5  기술과 각종 안전장치 기술까지 가미된다. 소비자들이 경동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이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지면서 경동의 가스보일러 시장 점유율은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998∼1999년에는 여전히 3위였지만 불과 4∼5년이 지난 2001년과 2002년에는 린나이, 귀뚜라미, 경동나비엔이 25∼26%의 시장점유율을 각각 차지하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됐다. 90년대 중반의 가스보일러 교체 수요까지 몰리는 2008∼2009년에는 30% 점유율을 달성하고 이후 35%까지 오르며 독보적 1위가 된다. 기술혁신과 교체시기 도래(B2C로의 시장전환)라는 결정적인 두 요인만으로 경동의 부활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결정적 계기에 적절하게 대응한고객중심주의역시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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