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 / 동양그룹

무리한 차입경영, 양날의 검으로 돌아오다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기업이 쓰러지는 과정

 

웅진그룹에 이어 STX그룹, 동양그룹이 차례로 투자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기업 활동의 연속성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어렵지만 기업에 몸담고 있던 임직원과 그들의 가족, 거래관계에 있던 다른 기업들, 자금을 공여해 준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경제활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느 창립자 혹은 경영자가 자식과도 같은 기업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겠느냐마는 기업이 수명을 다해 문을 닫거나 팔려나가는 일은 꾸준하게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기업이 수명을 다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수익성 악화에서 출발해 차입 부담 증가로 이어진 후 결국 원리금 상환에 차질을 빚으면서 문을 닫는 순서를 밟는다. 누군가 돈을 계속 빌려주는 한 부도나는 기업은 없다. ‘이 기업이 과연 빚을 잘 갚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번지기 시작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웅진, STX, 동양 등 최근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그룹들은 영위하는 사업도 다르고 규모도 각기 다르지만 상황이 전개된 흐름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력 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차입금이 점차 늘었고 상환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기며 결국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기업의 수익성은 왜 나빠지나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기적으로는 경기 변동에 따른 수요 감소가 있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쟁자 혹은 더 우수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자가 출현하거나 아예 차원이 다른 신기술이나 신제품의 등장이 기존 제품을 대체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기업은 기존 사업의 떨어지는 수익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규 시장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런 시도가 실패할 때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영자 혹은 경영진의 오판이 사태를 한층 빠르게 악화시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그룹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역량을 넘어선 무리한 사세 확장이나 잘못된 선택과 집중,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STX그룹

 

STX그룹은 해운 및 조선 중심의 그룹으로 2001년 출범했다. 2000년 자신이 근무하던 쌍용중공업(STX)을 사들인 강덕수 회장은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사들여 정상화시키면서 그룹을 키웠다.

 

 

때마침 조선 및 해운 시황이 호조를 보이는 운도 따랐지만 부실화된 회사를 인수해 살려내는 경영능력이 탁월했다. 부실화된 회사를 M&A를 통해 인수한 뒤 정상화시키고 상장 등을 통해 인수자금을 조기에 회수해서 또 다른 부실회사를 인수해 살리는 선순환이 이어지면서 STX그룹의 사세는 조선에서 해운에 이르기까지, 지역적으로는 유럽, 중국 등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확장됐다.

 

 

하지만 결국 외부 차입이 발목을 잡았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다 쉬지 않고 연관 산업 M&A에 나섰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초기에는 신중했다. 투입한 자금의 조기 회수 계획이 있었고 이런 계획에 맞춰서 자금을 회수한 뒤 또 다른 인수에 나서는 식으로 그룹을 확장했다. 하지만 성공 경험이 누적되면서 초심이 점차 사라졌다. 어느 순간 회수가 지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사업에 자금이 계속 투입됐다. 때마침 업황마저 꺾이면서 공든 탑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특히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조선 및 해운 경기가 급랭하면서 그룹의 수익성이 빠르게 잠식됐다.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선택과 집중이다.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잘할 수 있는 분야 또는 기존에 경쟁력을 확보해 이미 어느 정도 시장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이 일반적으로 효과적이다. STX그룹으로서는 선택과 집중의 대상으로 조선업과 해운업을 고른 것인데 문제는 두 산업 모두 시황산업인데다 호경기와 불경기 사이의 변동성이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이런 전략이 업황 개선과 잘 맞아 떨어지면서 그룹이 단기 급성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민감 업종에만 집중하는 실수를 범했다. 변동성 높은 사업에 외부 자금을 과도하게 끌어다 쓴 건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실수였다. 업황 부진이 몇 년간 이어지자 과거에는 부담스럽지 않던 원리금 상환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졌고 결국 차입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기업이 추진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과 집중은 무엇일까? 일단 영위하는 사업의 특성을 살펴야 한다. 예컨대 사업에 독과점적 특성이 있다면 집중하는 게 맞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느린 산업에서 다른 기업이 넘보기 힘든 기술을 갖고 있다거나 성숙산업에서 경쟁자들의 난립이 정리되고 최후의3’ 정도가 남았을 때가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기술의 발전이나 변화가 빠른 경우, 즉 산업 자체의 변동성이 심하고 경기에 연동되는 정도가 강하다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시장 변화 속도를 이길 자신과 능력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특정 산업에 대한 자원집중도를 최대로 높이기보다는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방식이 적합하다. 산업 내 변화나 기술 발달에 발맞춰 신속하게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다. STX그룹처럼 업황 변동성이 큰 산업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은 변동성을 줄여줄 수 있는 다른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거나 업황 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게 재무구조를 슬림화해야 한다. , 호경기에 벌어들인 자금을 무리한 사세 확장에 사용하지 말고 곧이어 다가올 불경기에 대비하는 용도로 유보해야 한다.

 

그룹의 차입 부담이 작지 않았는데도 조금만 참으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STX그룹은 기존 차입금을 계속 연장하는 동시에 부진한 사업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자금 수요에 대해 신규 차입을 동원했다. STX그룹의 첫 번째 실수가 변동성 높은 산업에 집중한 것이고, 두 번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 부담을 높게 가져간 것이라면, 마지막 실수는 구조조정에 신속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력 산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데 이 산업이 불황을 맞았다면 가급적 신속하게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주력 산업 경기가 턴어라운드(turn-around)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다른 산업들이 뒷받침하기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STX그룹은 자산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고 원매자가 나서도 가격을 문제 삼으며 매각을 지연시키는 등 구조조정이 시급한 기업이나 그룹이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일삼았다. 일반적으로 내가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들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따라서 아주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면 팔리기 힘들며 설사 매력 있는 매물이라도 업황이 한창일 때를 생각해 높은 가격을 고집하면 역시 매각이 성사되기 힘들다. 그런데 STX그룹은 매각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매각 가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국 그룹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았다.

동양그룹

 

동양그룹은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해 설립한 동양제과가 모태기업이다. 1957년 주력회사인 동양시멘트를 설립했고 1974년에는 일국증권(동양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했다. 2001년 초코파이로 유명한 동양제과를 비롯해 16개 사가 동양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오리온그룹으로 출범했다. 이번 동양사태 때는 동양그룹이 내민 손을 오리온그룹에서 잡지 않으면서 동양그룹의 부실화 속도가 빨라지기도 했다.

 

동양그룹의 사업내용을 보면 건설업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다. 계열사가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덩치가 작아 사실상 건설 중심의 동양과 건설경기와 밀접한 동양시멘트가 그룹의 주력사이기 때문이다. 동양그룹도 STX그룹과 본질적으로 구조가 비슷하다. 일단 그룹의 운명이 건설업 경기에 좌우되는 구조인데다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낮은 수익성이 재무 부담 증가로 이어지면서 차입 부담이 상당히 큰 수준이었다. 변동성 높은 산업에의 집중과 장기간 지속된 업황 부진, 취약한 재무구조와 지지부진한 구조조정까지, 놀라울 만큼 두 그룹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건설 중심의 그룹인데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 건설 호황기에 그룹이 성장했다거나 수익성이 높았던 것도 아니고 늘 이자부담에 허덕일 정도로 재무구조가 부실했다. 일례로 지배회사격인 동양의 연결재무제표를 살펴보면 2007년 이후 부채비율이 1000% 아래였던 때는 900%대를 기록했던 2011년 단 한 해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간은 1300∼1800%대에서 움직였다. 100%대가 아니라 1000%대다.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 주주가 아니라 진작부터 채권자였다는 얘기다.

 

그룹의 수익성 악화가 상당히 해묵은 이슈다 보니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낮은 수익성은 비용절감 같은 축소지향 경영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고가 장비와 같은 하드웨어적 투자부담이 낮은 건설업에서 비용 문제로 소프트웨어 쪽 투자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면 치열한 경쟁에서 버티기 힘들 수밖에 없다. 아파트 브랜드가 대표적 예다. 아파트 건설이 한창 붐이었던 시절, 대부분 건설사들은 저마다 브랜드를 도입해 인지도를 높이고 긍정적인 이미지 만들기에 주력했다. 브랜드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동양그룹의 아파트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앞서 언급했지만 누군가 돈을 계속 빌려주는 한 기업이 부도나는 일은 없다. 동양그룹은 투기 등급이었고 계열사인 동양증권이 외부 자금 조달의 창구 역할을 도맡고 있었다. 동양증권 고객 입장에서 동양그룹 혹은 동양증권은 그동안 좋은 투자처였던 게 사실이다. 증권이 맡아 판매한 동양그룹 채권이나 기업어음은 투기 등급이었던 만큼 상당히 높은 금리를 제시해왔다. 따라서 한 번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경험한 이 같은 투자 성과가 반가웠을 수밖에 없고 만기 상환 받은 자금으로 2, 3차 투자에 나서거나 오히려 투자금을 더욱 늘렸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투자자나 투자금이 많을수록 동양그룹의 부도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은 폭탄 돌리기였던 셈이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규제 강화로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이나 기업어음을 계열 증권사가 취급할 수 있는 한도가 줄어드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언론에서 동양그룹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룹의 원활한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일순간 확산되면서 정작 취급한도가 줄어들기도 전에 그룹이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동양그룹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주력사업의 낮은 수익성과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속도를 감안하면 사실 시간의 문제였을 뿐 궁극적인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양날의 칼, 외부 차입

 

타인 자본 혹은 외부 차입은 양날의 칼이다. 사업의 수익성이 차입비용에 비해 상당히 높으면 일단 차입을 많이 사용할수록 주주가치에 긍정적이다. 주주에게는 번 것에 비례해 배당 등의 형식으로 나눠줘야 하지만 채권자에게는 정해진 이자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외부 자금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주주에게 유리하다. 문제는 다양한 이유로 차입 부담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지는 상황이다. 배당은 의무가 아니지만 이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자 상환이 힘들어지면 해당 기업이나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다행히 호평받는 신상품 출시에 성공하거나 경기 호전 등에 힘입어 이전의 높은 수익성을 회복한다면 차입 부담이 줄어들면서 고비를 넘길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이렇게 되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기업 수익성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차입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해서 차입금을 줄이거나 증자 등을 통해 신규 조달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갚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일단 수익성이 훼손된 기업은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팔고자 하는 자산을 제값 받고 파는 것이 쉽지 않다.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원하는 가격을 고집하다 보면 그 사이 재무구조는 더 악화되고 오히려 기업 수명이 더욱 단축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증자를 추진할 때도 주가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금액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익성 확보에 최우선 순위를 두되 경기가 나빠지거나 예상치 못한 외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심정으로 되도록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두 그룹이 오늘날 기업들에 던지는, 지극히 근본적이면서도 쉽지 않은 교훈이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 hj.lee@ibks.com

필자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와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를 거쳐 현재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