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마이클 포터
편집자주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손자와 마이클 포터’를 연재합니다. 고대 동양의 군사전략가인 손자와 현대 서양의 경영전략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전략 모델들을 비교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선두주자다. 1997년에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모델인 프리우스를 출시한 뒤 현재 세계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따를 정도다. 지금은 에너지와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중요한 이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주요 선진국들만 환경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1990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이라는 환경규제를 제정했는데 앞으로 캘리포니아 주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1998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대수 중 완전 무공해차(Zero emission vehicle·ZEV)의 비율이 2%에 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무화했다. (2005년부터는 10%의 비율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미국 자동차 수입의 주요 관문으로서 외국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교두보였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높은 리스크 때문에 당시 수석 엔지니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는 결국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경쟁사들이 지지부진한 사이 도요타는 1000명의 엔지니어와 10억 달러가 넘는 투자로 여러 기술장벽과 어려움을 극복해 1997년에 성공적으로 세계 첫 하이브리드차를 양산함으로써 친환경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게 됐다.
만일 도요타가 기존 자동차 시장에만 투자를 고수했다면 기존 경쟁자들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쟁우위를 창출해 선도적 위치에 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요타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새로운 환경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경쟁자보다 먼저 하이브리드차를 상업화시킴으로써 친환경차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실제로 도요타의 프리우스(Prius)는 라틴어로 ‘앞서 가다’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선두주자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도요타 프리우스의 성공전략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을 <손자병법> 4편과 포터의 본원적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손자병법> 4편의 핵심 군사전략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손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손자 군사전략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포터의 본원적 전략을 설명하고 <손자병법> 4편의 핵심전략과 연계해 이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의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군사전략과 경영전략의 비교를 통해 경영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사점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손자병법> 4편의 핵심 군사사상: 이승(易勝)사상
손자는 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둬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싸웠다고 말하는 승리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戰勝而天下曰善,非善之善者也)”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막대한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진정으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승리를 하되 쉽게 적을 이긴다(所謂善戰者,勝于易勝者也)”라고 했다. 즉,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적을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놔서 적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손자는 이러한 여건을 ‘형(形)’이라고 했다.
‘형’은 적군과 아군의 전력 배치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전장에서 병력의 배치뿐만 아니라 전투시설, 병사들의 훈련, 사기, 국민의 지지, 주변 국과의 관계 등 전쟁 전 준비태세도 포함한다. 전쟁에서 어떠한 형을 만드느냐에 따라 전쟁의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손자병법>의 3편(모공 편)에서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전승(全勝)’사상을 강조했다면 4편에서는 적을 이길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형을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는 ‘이승(易勝)’사상에 중점을 뒀다.
압도적인 형을 만들기 위해 손자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다음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서 승리를 얻는다(先爲不可勝,以侍敵之可勝)”라는 중요한 용병원칙을 제시했다. 전자는 적에게 패배하지 않게 하는 방어의 ‘형’이고 후자는 적의 빈틈을 찾아 공격을 하는 공격의 ‘형’이다. 따라서 아래 방어와 공격의 ‘형’이 어떠한 것이고, 이를 조성하기 위해 손자가 어떠한 전략을 제시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방어와 공격의 ‘형’
전쟁에서 ‘형’은 방어와 공격의 두 가지 ‘형’으로 구성돼 있다. 방어의 ‘형’은 적이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 하고 설령 적이 공격을 하더라도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 태세를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가 잘된 방어라도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 약점이 적에게 드러나면 역이용돼 불의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방어를 할 때 이러한 약점이 적에게 드러나지 않게 잘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손자는 “방어를 잘하는 사람은 방어를 하는 데 있어서 마치 깊은 땅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善守者,藏于九地之下)”고 했다. 하지만 손자는 단순히 방어를 적의 공격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 또는 저항보다는 공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봤다.
그런데 방어는 적에게 지지 않게는 할 수 있지만 결코 적을 이길 수는 없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공격을 해야 한다. 손자는 적을 공격할 때 적의 약점이나 빈틈을 역이용해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최소의 투입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적에게 특별한 약점이 없다면 적의 약점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적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도적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적을 아군의 계획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즉, 아군이 반드시 적을 이길 수 있다는 100% 확신은 없다. 따라서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는 할 수 있지만 적을 반드시 이길 수는 없다.
적의 공격에 지지 않는 것은 아군의 방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통제 가능하다. 하지만 적을 이기는 것은 ‘적에게 지지 않는 것 외’에 적의 약점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손자는 “적에게 지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지만 적을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다(不可勝在己,可勝在敵)”라고 말했다. 방어와 공격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방어는 아군의 역량을 보존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는 없다. 반면, 공격만 하고 방어가 부실하면 적이 이 빈틈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방어와 공격을 모두 잘해야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 있다. 손자는 “승리하는 군대는 우선 승리의 조건을 다 갖춘 후 전쟁을 시작하지만 패배하는 군대는 전쟁을 시작한 후에 승리를 구한다(勝兵先勝而後求戰,敗兵先戰而後求勝)”라는 말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와 패배의 핵심적 차이를 묘사했다. 즉, 승자는 전쟁을 하기 전에 필승의 여건을 만들어 놓고 전쟁은 이미 패배한 자를 상대로 싸우는 데 반해 패자는 충분한 준비 없이 요행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전쟁이나 경영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명언이다.
압도적인 ‘형’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요소
압도적인 ‘형’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적군과 아군의 군사력 차이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강한 군사력이 없는 형은 적에게 위협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따라서 압도적인 형을 만들려면 전쟁을 할 수 있는 실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손자는 군사력이 승리를 결정하는 핵심적 원리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국토면적의 크기가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물적 및 인적 자원을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 전차, 무기 등을 포함한 전력이 결정된다. 양측의 전력을 비교해보면 승리의 가능성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적군과 아군의 역량에 대한 고찰을 통해 방어 또는 공격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방어와 공격의 형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손자는 “전력이 부족하면 방어를 하고 전력이 남으면 공격을 한다(守則不足,攻則有餘)”라고 주장했다. 이는 방어보다 공격이 상대적으로 많은 군사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손자는 3편에서 아군의 병력이 적군보다 10배가 되면 포위하고 5배가 되면 공격하지만 적보다 열세하면 정면대결을 피하고 필요하면 도망가라고 했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 강한 군사력은 필수조건이지만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향과 지점에서 적을 압도할 수 있는 병력의 집중이 중요하다. 즉, 전반적인 군사력에서는 적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특정 공격지점에서 적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으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적보다 강한 군사력을 만드는 것보다는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적에 비해 군사력의 절대적 우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손자는 승리하는 군대는 마치 무거운 일(鎰)의 무게로 가벼운 수(銖)의 무게를 상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여기서 일과 수는 고대 중국 무게의 단위로서 1일은 480수에 해당한다. 즉 승리하는 군대의 병력은 패배하는 군대 병력의 480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절대적 우위를 갖춘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적의 군대를 여러 군데로 분산시키고 아군의 군대를 특정 지점에 집중시켜 공격하면 이러한 전략이 가능하다.
손자가 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소련의 승리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모스크바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련의 예상과 달리 독일은 갑작스럽게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해 전투 초반에 주도권을 잡았다. 한편 소련은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독일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단 한 발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라고 외치며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소련군은 9월부터 약 2달간 소모전을 계속하면서 반격에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축적했다. 겨울이 다가오자 충분한 동계전투 준비를 하지 못한 독일군은 보급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소련군은 독일 동맹국의 취약 부분인 루마니아군과 이탈리아군이 방어하고 있는 측면을 공격해 방어선을 무너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은 소련군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혹독한 추위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소련의 승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선 적에게 지지 않게 한 다음 적의 빈틈을 타서 공격을 한다”는 손자의 군사전략에 부합해 보이지만 손자가 주장하는 ‘이승(易勝)’사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어떠한 대가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려고 했다.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기 위해 소련은 2달 동안의 시가전을 벌였고 전쟁 후반에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포위됐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후퇴를 허락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만 양측 모두 합쳐 약 2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서1 인간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됐다. 비록 소련이 최종 승리를 거뒀지만 독일보다 더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Winston Churchill)이 쓴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란 책에서 히틀러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노력을 ‘하나의 결정적인 재앙’으로 묘사했다. 손자가 말하는 ‘이승’은 전쟁 전에 압도적인 ‘형’을 조성해 최소의 비용으로 쉽게 승리를 거두는 것이 목적인 데 비해 히틀러와 스탈린은 전쟁의 승리 자체만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스탈린그라드의 특별한 상징성2 때문에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히틀러와 스탈린의 개인적 대결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손자병법>의 기본 사상에 어긋난다. 전쟁은 국가 존망의 대세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만 준비하고 시행돼야 한다고 손자는 주장했다.
포터의 4가지 본원적 전략
기업 경쟁전략의 핵심은 경쟁자에 비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기업은 경쟁자에 비해 다양한 우위를 가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원가 우위와 차별화 우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포터는 주장했다. 기업은 두 가지 경쟁 우위 중 하나를 통해 경쟁사보다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데 전자는 기업이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에 비해 더 낮은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얻는 우위이고 후자는 차별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로부터 가격 프리미엄을 받음으로써 얻는 우위를 의미한다. 포터는 경쟁 우위와 경쟁영역(산업전체 또는 산업 내 세분영역)을 두 축으로 저원가(cost leadership), 차별화(differentiation), 집중화(focus) 등 세 가지 경쟁전략으로 구분했다. 그 후 포터는 집중화 전략을 다시 원가 집중화와 차별적 집중화 전략으로 나눠 총 4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 특정 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본원적 전략’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본원적 전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저원가 전략:기업이 경쟁사에 비해 원가 우위를 달성해 원가 선도자(cost leader)가 되는 것이다. 기업의 사업 범위가 넓을수록 원가 우위를 창출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은 흔히 산업 내 넓은 사업영역에 걸쳐 있거나 관련된 다른 산업에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업 내에서 원가 우위를 가진 기업이 하나가 아닌 다수인 경우에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원가 우위를 창출하는 특별한 원천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 이 전략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별화 전략:경쟁사에 비해 차별화 우위를 실현해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저원가 전략이 기업 업무 프로세스에 있어 원가절감에 집중한다면 차별화 전략은 제품의 특성에 집중하면서 특정 고객 집단을 목표로 한다. 동일한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요구하는 속성은 여러 개가 될 수 있기에 차별화 전략은 저원가 전략과 달리 산업 내에서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서로 다른 차별화 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차별화를 위해서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해야 하지만 가격 프리미엄으로 이윤을 높일 수 있다.
집중화 전략:저원가와 차별화 전략이 산업 전반을 목표로 한다면 집중화 전략은 산업 내 특정 세분 시장 또는 틈새시장에 집중한다. 원가 집중화와 차별적 집중화는 특정 세분시장에 집중해 원가 우위 또는 차별화 우위를 실현하는 전략이다. 집중화 전략은 특정 세분시장에만 특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 규모가 작고 다른 기업의 추격을 받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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