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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숄다이스 병원

군에서 얻은 아이디어 병원에 접목…치료받던 환자들 동창회 만들기도

조진서 | 139호 (2013년 10월 Issue 1)

 

 

 

 

 

2012 2,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탈장수술의 위험성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냈다. 탈장수술은 가장 흔하게 또 간편하게 이뤄지는 외과수술로 여겨지지만 의외로 부작용이 많아서 30%가 수술 후에도 장기적인 통증, 감염, 이물감 등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 중 상당수1 는 기사에는 나오지도 않은숄다이스병원(Shouldice Hospital)’을 언급했다. 그중엔나는 1977년 숄다이스졸업생’이다. 왜 이 기사는 숄다이스를 소개하지 않았는가? 숄다이스는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라는 글도 있었다.

 

194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문을 연 숄다이스병원은 병상이 89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탈장전문 병원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만 유명하던 이 병원은 1983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제임스 헤스킷 교수가 쓴 케이스 스터디로 일반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03년 개정된 이 케이스 스터디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케이스 스터디 중 하나로 꼽힌다.

 

헤스킷 교수가 주목했던 것은 운영의 효율성이었다. 이 병원은 철저히 탈장만 다룬다. 다른 병과 복합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더 큰 종합병원으로 보내고, 비만해서 재발이 우려되는 경우는 먼저 살을 빼고 오라고 돌려보낸다. 그런 다음에도 매년 7500여 건의 탈장 수술을 한다. 10명의 의사들이 인당 연간 무려 750, 근무일 평균 세 건을 집도하는 꼴이다. 연간 25건에서 50건 정도의 탈장 수술을 하는 일반적인 종합병원 외과의들에 비해 숄다이스의 탈장 전문의들이 전문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월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헤스킷 교수가 보여준 것처럼 집중과 속도만이 숄다이스 성공 비결의 전부일까? 그렇다면 왜 병원을 확장하거나 지점을 내지 않을까? 왜 다른 병원에선 숄다이스를 따라 하지 않을까? 숄다이스를 거쳐 간 환자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이해하기 힘들다. 숄다이스의 숨겨진 경쟁력 원천은 무엇인지, 또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문제점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DBR이 직접 찾아갔다.

 

군대 훈련소에서 시작된 병원 운영 철학

토론토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에드워드 얼 숄다이스(Edward Earle Shouldice, 1890년생)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의 신병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하는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당시 군대에 오는 캐나다 청년들이 가장 흔하게 앓고 있는 질병 중 하나가 탈장이었다.

 

 

탈장을 앓는다고 당장 죽거나 쓰러지지는 않는다. 당시 징집된 청년들 중에는 탈장증세가 있지만 치료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터에서는 한 명의 군인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탈장 증세가 있다고 군복무를 면제해주지는 않았다. 군의관 숄다이스의 임무는 훈련소 입소자 중 탈장 환자들을 치료해 3∼4주 안에 다시 부대로 보내는 일이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훈련소 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했다. 마취과 의사가 필요한 전신마취나 간호사의 친절한 간호는 기대하기 힘들었기에 병사들은 부분마취와 진통제 처방만을 받고 수술이 끝나면 자기 발로 걸어 나가야 했다. 식사도 누가 가져다주지 않고 직접 가져다 먹었다.

 

비인간적이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수술 후에 적당한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빨라진다는 게 숄다이스의 소신이었다.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신진대사를 원활히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어차피 혈기왕성한 나이에 입대한 청년들은 입원실에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수술을 마치면 그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돌아다니고 또 서로의 수술자국을 비교하며 농담을 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는 탈장 수술이라는 공통의 의식을 함께 치른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렇게숄다이스 방식에 의해 치료받은 환자들은 신체적, 정신적 회복이 빨랐고 재발률도 낮았다.

 

전쟁이 끝난 후 얼 숄다이스 박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이용해 토론토 시내에 탈장 수술 전문 병원을 열었다. 높은 수술 성공률과 낮은 재발률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숄다이스는 병원 확장을 위해 1953년에 토론토 교외에 있는 현재의 부지와 건물을 구입했다. 원래 이 건물은 토론토 최대 일간지인 <글로브 앤 메일> 창업자의 별장이었다. 신문 재벌이 급사하자 이웃집에 살던 숄다이스가 미망인으로부터 별장을 구입해 병원으로 개조했다.

 

병원은 대지가 23에이커( 9만㎡, 3만 평)에 달하고 작은 골프코스와 과수원, 넓은 정원을 갖추고 있다. 개원 당시는 주변이 한적한 밭과 농장이었지만 지금은 이 일대까지 도시화가 진행돼 고층 빌딩들이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환자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살려라

이 병원의 특징적인 수술법을 이해하기 위해선 리들리 스콧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프로메테우스(2012)’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뱃속에 들어간 외계 이물질을 꺼내기 위해 스스로 개복수술을 한다. 무인 수술장비는 주인공의 복부를 부분마취만 하고 피부를 절개해 이물질을 꺼낸다. 스테이플러 심처럼 생긴 의료용 클립으로 상처가 봉합되자마자 주인공은 바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간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끔찍하다고 눈을 가리지만 숄다이스 박사가 만든숄다이스 방식(Shouldice Method)’은 실제로 이와 비슷하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술 영상을 보면 부분마취만 받은 환자는 개복수술 중에도 의식이 남아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뱃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의사와 농담까지 한다. 절개부위는 바늘과 실이 아니라 철제 클립2 으로 순식간에 봉합된다는 것도 영화와 같다. 수술은 낭비되는 시간 없이 매뉴얼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된다.

 

기자가 본 수술구역의 광경도 다르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서 양쪽으로 2개씩 총 4개의 수술실이 있는데 조금 지켜보고 있으니 방금 수술이 끝난 남성 환자가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진통제에 취해 몽롱한 표정이었지만 걷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고 심지어 기자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그는 열 걸음쯤 걸어서 수술실 입구에 있는 휠체어에 앉았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고 나가자 곧이어 바로 다음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피부를 봉합하자마자 환자를 두 발로 걷게 하는 이유는 마취로 인해 느려졌던 신진대사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또 동시에 환자 마음속으로도수술도 별 것 아니구나. 몸을 움직여도 괜찮구나라고 깨닫게 해준다. 이때 걷는 몇 걸음이 입원기간 내내 큰 자신감을 준다. 수술을 마친 환자라고 해서 침대에만 누워 있지 말고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한에서는 자꾸 움직여줘야만 상처도 빨리 아물고 장도 빨리 제자리를 찾는다는 게 창업자 숄다이스 박사의 철학이었다.

 

환자들은 수술 당일만은 자기 침대에서 저녁 식사를 먹도록 허락된다. 다음날부터는 이런 배려가 없다. 직접 식당에 내려가서 밥도 먹고 휴게실에 모여 회복 운동을 한다. 몸도 물론 스스로 씻어야 한다. 정원에는 게이트볼장이 있고 휴게실에는 당구대와 가벼운 운동기구들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집단 체조는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올 때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

 

매일 몇 건씩 탈장 수술만 하다 보니 의사들의 전문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다른 의사가 하는 1백 회의 수술에 보조의(assistant surgeon)로 참여해야 하고, 다시 1백 회의 수술을 1명의 보조의(이 경우엔 베테랑 의사)가 보는 앞에서 치러야 한다. 물론 워낙 많은 수술을 하다 보니 몇 달이면 이 요건을 채울 수 있다. 이 정도 경험이 쌓이면 어지간한 탈장에 대해서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고 재발 가능성이 있는 부위도 족집게처럼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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