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루멜트 UCLA대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
‘동아비즈니스포럼 2013’ 첫날 오후 B세션 연사로 나선 리처드 루멜트(Richard P. Rumelt) UCLA대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포럼에 초대된 연사 중 ‘전략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줬다. 그는 무엇이 나쁜 전략이고 무엇이 좋은 전략의 요소인지, 왜 좋은 전략을 구상하기 전에 나쁜 전략과 나쁜 습관부터 없애야 하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들어가며 논리정연하게, 때로는 시니컬하게 설명했다. 루멜트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 <이코노미스트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구루다. 대표 저서로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Good Strategy Bad Strategy)>가 있다. 공학을 전공하고 NASA에서 제트엔진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일흔을 넘긴 고령이지만 암벽등반 등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구에선 여전히 청중들을 압도하는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강연 내용과 류주한 한양대 교수 및 청중과의 토론 내용 가운데 요점을 소개한다.
<기조 강연>
‘전략’과 ‘목표’를 착각하지 마라
내가 처음 전략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던 1960년대 초에는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서는 딱 두 권의 책과 한 편의 논문만이 나와 있었다. 지금은 셀 수 없이 많은 경영 전략서가 있고 경영전문대학원에서는 전략 프로그램을 가르친다. 기업엔 CSO(Chief Strategy Officer)라는 직책도 생겨났다. 이처럼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됐다. 전략이란 개념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아졌다.
동아일보 박영대
어느 날 내게 전화가 왔다. 그래픽 아트 회사를 운영하는 채드 로건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그래픽 아트를 하는 회사의 CEO라면서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 회사의 현재 전략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로건은 “우리 회사에는 20/20라는 게 있습니다. 연간 20% 수익 성장, 연간 20% 이익 성장이라는 의미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건 굉장히 야심에 찬 목표네요. 그건 그렇고, 전략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로건은 짜증난 표정으로 주먹으로 책상을 치더니 “제가 미식축구 선수 출신입니다. 이길 의지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밀어붙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경쟁우위는 무엇인지, 업계 동향은 어떤지, 경쟁사는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에 역점을 둘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로건은 잭 웰치의 책을 꺼내더니 줄친 것을 보여줬다. 거기엔 “불가능한 것을 겨냥하라”고 써 있었다.
로건은 우선 재무적인 목표(goal)가 전략(strategy)이라고 착각했다. 그의 회사는 또 “우리는 최고의 그래픽 아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전략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문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건 전략이 아니다. 회사의 가치를 진술하는 문장일 뿐이다.
많은 리더들은 3개 년, 5개 년 재무목표를 놓고 전략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그것은 숫자를 나열한 것뿐이다. 그건 재무적 목표, 실적 목표다.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과거에는 ‘전략은 주어진 과제를 극복/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방침’이라는 정의가 널리 통용됐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전략이라는 개념이 왜곡되고 있다. 전략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라는 희망사항이나 염원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쁜 전략들이 만연해 그것이 전략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잡스의 전략
1996년 <비즈니스위크>紙에 ‘애플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당시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5를 출시한 이후 애플은 파산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당시紙에서는 ‘애플을 살릴 수 있는 101가지 방법’이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음성인식 기능을 개발해라,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라이선스로 팔아라(애플 자전거 등), IBM에 회사를 팔아라, 맥OS를 윈도에 맞추고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라 등이었다.
파산까지 2달 정도 남았다고 여겼던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가 복귀했다. 잡스는 예전에 애플에서 한번 실패했던 경영자였다. 그는 복귀하자마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억50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15개의 데스크톱 PC 모델을 단 하나로 줄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잡스의 대답은 ‘우리 처제가 어떤 모델로 살지 고민을 하길래 나도 같이 들여다봤더니 나도 뭘 사야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못 고르면 고객도 못 고른다’고 얘기했다.
잡스는 프린터와 스캐너 사업도 접었다. 당시 개발 중이던 모든 소프트웨어 사업을 중단했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건 어떤 전략이었을까? 잡스의 전략은 회사가 파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도 상당수 해고했다. 그는 넥스트사에서 개발 중이던 소프트웨어를 가져왔고 미국 내 유통채널 6개 중 5개를 정리했으며 제조 부문은 대만으로 옮겼다. 인터넷에서 고객들이 직접 제품을 살 수 있게 했다.
스티브 잡스가 한 이런 일들이 바로 전략이다. 전략은 하나의 일관된 목적을 가진 행동의 집합이다. 잡스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고 애플의 역량을 핵심 부문으로 집중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취했다. 이렇게 일관된 전략을 가진 조직은 많지 않다. 여러 가지 충돌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대학들은 교수에게 연구도 잘하고 강의도 잘하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내려준다. 기업들은 소수 마니아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만들라고 하면서도 대중의 사랑도 받으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개성이 있으면서 대중적이길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전략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나쁜 전략의 특징
그렇다면 나쁜 전략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의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그건 나쁜 전략이다.
1. 템플릿을 채운 전략
<그림 1>은 다우(Dow)사의 전략 템플릿이다. 비전, 미션, 가치, 전략 등 4개 항목으로 나눠져 있다. 이런 템플릿을 쓰는 회사들은 각 항목 옆에 빈칸만 채우면 된다. 이는 19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젠 기업뿐 아니라 NGO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The Vision:돈도 벌고 존경도 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건 자기만족, 야망이다. 전략이 아니다.
The Mission:열정, 혁신, 인류, 진보, 지속가능 등의 키워드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화학회사로서 다우가 무엇을 하는지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The Values:사람을 존중하고 지구를 보호한다는데, 엔론(Enron)1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주주들과 직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2001년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회사도 이런 말을 썼었다. 여기엔 전략이 없다.
The Strategies:아주 많은 단어들이 써있지만 초등학생이 시험에서 이렇게 썼다 해도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알맹이가 없다. 허풍이다.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나쁜 전략이다. 이런 식의 템플릿을 쓰면 나쁜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쓰는 일관된 정책과 행동 방침들의 묶음이다.
전략을 잘 세운 회사도 소개해본다. 이하모니(eHarmony)라는 결혼중매 회사가 있다. 미국에서 결혼하는 커플 중 2%가 여기서 만난다고 한다. 엄청난 수다. 인터넷으로 중매를 해주는 사이트들이 많지만 이하모니는 뭐가 달랐기에 이렇게 성공했을까?
이 서비스에 회원으로 등록하려면 우선 250개 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기말고사 보는 기분이 든다. 에세이도 써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치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최소한 1시간은 걸리고 평균 2시간반이 소요된다.
장애물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매월 60달러의 회비도 내야 한다. 데이트 상대를 바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루를 기다려야만 7명 정도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바로 그들하고 연락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부모님 소개를 받듯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준다.
이렇게 장애물이 많은 서비스를 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까? 고객들은 왜 이런 서비스에 만족할까? 내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장애물을 거쳐왔기 때문에 이하모니에는 정말 진지하게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이 모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장애물을 장치로 둠으로써 이 회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하나의 정책을 갖고 일관된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2. 실적 목표로 가득한 전략
미국에 인터내셔널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라는 농업용 기계장비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1979년에 <그림 2>와 같은 전략을 발표했다. 그래프는 위에서부터 매출, 자산, 수익을 나타낸다. 향후 5개년 동안, 즉 1984년까지 이 세 가지 항목을 그림처럼 향상시키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현실은 어땠을까? 1981년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1984년에는 회사가 조각조각 나뉘어 팔렸다. 공중분해된 것이다. 위의 전략을 다시 보자. 저것은 전략이 아니다. 실적 목표, 재무적 목표를 그려놓은 것뿐이다. 전략이 아니라 전망(forecast)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이 회사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농기구 산업에는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회사마다 파업에 파업이 꼬리를 물었다. 노사관계야말로 이 회사의 가장 치명적 부분이었고, 결국 이것이 이익 악화로 이어져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 이 회사의 전략은 왜 이런 치명적인 위험을 놓쳤을까? ‘원대한 목표만 세우면 돼. 그러면 직원들은 저절로 따라올 거야’라고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진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건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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