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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객원교수

“성공은 깨지기 쉬운 유리잔 변화의 방식 자체를 바꿔라”

최한나 |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동아비즈니스포럼 2013 둘째 날 연설에 나선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객원교수는조직원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죽이는 위계질서를 파괴하라며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조직 운영의 새로운 원칙을 세우는 데 웹(Web)을 참고할 만하다며 실험과 분해, 시장, 커뮤니티, 행동주의, 열정 등을 그 특징으로 꼽았다. 하멜 교수는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전략 및 국제경영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뽑은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철학자로 선정된 바 있다. ‘핵심 역량’ ‘전략적 의도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 경영계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의 강연의 주요 내용과 조동성 서울대 교수와의 패널 토론 내용을 요약한다.

 

<기조강연>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지난 100년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발명은 무엇이었을까?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꿨으며 이제는 그것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핸드폰? 자동차? 전기? 인터넷? 항생제?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경영 자체의 발명이다. 과학 기술의 발명도 경영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을 한곳에 모으고, 대규모로 일을 추진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모든 방식이 바로 경영이다. 경영 덕분에 조직이 초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고 자원을 조직화할 수 있었다. 경영은 인류 전체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영은 격변기에 성공할 수 있는 적응성을 기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대규모로 일을 추진할 수 있게 하기는 했지만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데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동아일보 박영대

우리는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세계의 변화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2000년에 신용디폴트스와프(CDS)라는 금융상품이 새로 만들어졌다. 당시 잔액이 1조 달러가 채 안 됐다. 하지만 2007년에는 이 규모가 62조 달러로 급증했다. 전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성장세였다. 어떤 은행이나 경영자, 규제 당국에서도 이 같은 변화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의미를 파악했을 때 세계 경제는 이미 파국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시대 개인과 사회와 조직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그런 변화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느냐다. 기존 기업들은 변화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신규 진입자들은 혁신을 몰고 왔다. 하지만 곧 이들도 다음 진입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런 상황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신규 진입자들이 기존 기업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다. 매년 혁신기업 명단이 발표된다. 2001년과 2013년 명단을 비교해봤더니 아마존 한 곳만 겹쳤다. 휴렛팩커드와 델, 인텔은 10년 전만 해도 세계 상위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뒤로 밀려나 그 영향력을 상실했다. 모바일로의 전환이라는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를 놓쳤기 때문이다. 노키아도 마찬가지다. 1993년 노키아의 최고경영진과 일을 함께한 적이 있다. 노키아는 당시 세계 최초로 개방형 혁신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수백 개 전략을 검토하고 어떻게 하면 모토로라를 앞지를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핸드폰이 리모컨처럼 될 것이라는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20년 전 일이다. 핸드폰이 삶의 중심에 놓일 것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비전을 토대로 노키아는 여러 가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경영진이 교체됐고 MS에 인수됐다. 이런 결과는 모든 기업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성공이 매우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었던 적이 없다. 전 세계의 가장 훌륭한 기업들조차 자주 변하지 않고 충분히 빠르지도 않다. 이제는 변화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때다.

 

운동을 하면 심박 수가 증가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지나갈 때 동공이 커진다. 많은 사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면 긴장한다. 이런 것들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조직 변화를 논할 때는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변화를 다루는 논문이나 책들은 위험한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커다란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조직에 큰 변화를 가져오려면 CEO나 리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어떤 기회가 커지고 명백해져서 CEO나 이사회가 주목할 만한 시점이면 이미 늦는다.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추격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꾼다. 공부를 다시 한다거나 새로운 음악이나 패션을 찾는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변화에 열광한다. 즉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지 않는다. 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를 즐긴다. 그리고 잘 적응한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이 적응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직원들이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변화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토대로 수동적이며 방어적인 자세를 가지면 변화는 대응하는 것, 닥쳐오는 것, 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변화 관리가 아니라 진화라는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진화해서 위기를 겪지 않고도 성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이것이 현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명확성, 안정성, 신뢰성, 엄격한 규율은 뛰어난 경쟁우위였다. 이런 가치는 수십 년간 계속 유지돼왔다. 하지만 창조경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통적인 조직 구조는 여러 부작용을 지닌다. 중요한 결정을 소수만 내릴 수 있고 극히 소수의 사람만 결정권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구조는 위기를 증폭시킨다. MS를 보자. 최근 10년간 MS 주가는 심하게 요동쳤다. 이 기업은 거의 모든 핵심 변화에서 뒤처졌다. 광고에서도, 연구에서도, 검색이나 모빌리티, 태블릿에서도 뒤처졌다. 똑똑한 기업이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조직에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빌 게이츠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한때는 PC가 디지털 세상의 중심이었지만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사고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가장 큰 위협은 꼭대기에 소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전략과 방향을 제시한다. 소수의 사람만 권한을 갖고 조직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성공적이었던 기업이 실패의 길을 걷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계질서는 지적인 동질성을 강요한다. 이 시대 가장 혁신적인 사람으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가 빌 게이츠 아래서 일했다고 상상해보라. 이들은 자신의 혁신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자동차를 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대출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를 구매하겠다는 결정은 스스로 내린다. 하지만 이 사람을 조직에 데려다 놓으면 자신이 앉는 의자를 바꾸는 것조차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멀쩡한 사람이 멍청이가 된다. 신뢰를 받지 못한다. 전 세계 300개 조직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가 있다. 질문은 이렇다. 조직에서 상사가 당신과 권한을 공유합니까? 22.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정서적이며 지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이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는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인간 역량에도 단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복종과 성실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단계다. 그 다음은 지성이다. 교육을 통해 능력을 갈고 닦으며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 세 가지만으로는 혁신을 가져올 수 없다. 그 다음 단계인 이니셔티브, 창조성, 열정이 필요하다. 이니셔티브는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적극성이다. 창조성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도전하는 단계다. 열정은 자신의 일에 최대한 에너지를 투입하는 단계다. 이니셔티브와 창조성, 열정은 통제되거나 관리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기업 성장의 핵심이다. 관리자들은 직원들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뽑아낼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떤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얼마나 더 많은 자율성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분명 관료주의는 철폐돼야 한다. 나는 많은 CEO나 리더들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 중에 관료주의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관료제가 사라져야 한다는 사람도 못 만나봤다. 우리는 지금 경계에 서 있다. 위계적인 기존 질서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 아랫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리더들이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영진에 정신적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례를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 한다. 고어텍스로 유명한 미국 화학기업 고어의 예를 들겠다. 이 기업은 지난 50년간 손실을 낸 적이 없다. 섬유에서 고어텍스 같은 새로운 소재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나이키나 P&G 등 까다로운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경영 범위는 전 세계에 달하며 직원을 1만 명 이상 두고 있다. 그런데 고어사 직원들을 만나면 명함에 직책이 없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사람에게만 가서 손바닥을 비비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모두에게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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