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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수칙

인샬라: 모든 것이 신의 뜻 시간을 갖고 긍정적 에너지를 찾자

이희수 | 131호 (2013년 6월 Issue 2)

 

 

 

해외에서 만난 현지 기업인이 다짜고짜중국인이세요?”라고 물어오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일본인으로 인식돼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이란 기업인에게 “Are you Arab?”이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 민족적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좀 더 보탠다면당신과 비즈니스 하지 않겠다와 동의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란은 인종적으로 백인 계통이고 언어도 인도-유럽어를 쓴다. 아랍과는 종족과 언어는 물론 역사적 배경과 문화 인식에서 완전히 다르다. 이들에게 아랍은 역사적 적대 세력이고 그들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욕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오늘날 중동에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연대감보다는 개별국가 중심주의 및 부족주의가 훨씬 강하다. 부족 내 연대나 이익이 국가보다 우선시되고 이슬람의 종교적 결속력은 상당히 느슨해졌다. 다만 이슬람은 이미 삶 속에 녹아 문화적 총체가 된 지 오래다.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보고, 라마단 기간 동안 한 달간 금식을 하고, 300만 명이 한꺼번에 성지순례를 하는 모습은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종교적 도그마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이자 존재가치다. 이런 관습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아랍=이슬람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다. 아랍은 종족적 개념이고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이다. 일부다처, 근친결혼(사촌결혼), 여성 억압, 여성 할례, 명예살인, 피의 복수 등은 이슬람의 종교적 계율이라기보다는 지독히 가부장적인 아랍의 유목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토착 관습에 가깝다. 따라서 같은 이슬람권 비즈니스라도 아랍권, 동남아권, 중앙아시아권, 아프리카권, 터키, 이란 등에 따라 전략과 준비가 달라야 한다.

 

부족주의, 족내혼, 부족 간 협력과 상호연대라는 생존 법칙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동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누구든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서구로부터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고통받아 온 것은 물론 최근에는 서구의이슬람=테러리즘시각 때문에 이슬람권 전체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크게 위축됐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와 진정한 파트너로서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잘 바꾸지 않고 한번 신뢰를 쌓은 회사에 계속해서 발주하는 이들의 태도는 시간과 공을 들여 신뢰를 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 글에서는 아랍권 중심의 중동 지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문화적 습속을 간단히 설명하고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 유념해야 할 팁을 정리한다.

 

아랍인의 인사법

인샬라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꿔라

아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사법을 총칭해서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용어가 ‘IBM’이다. 아랍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도 익숙한 표현이다. I는 인샬라(Inshallah·신의 뜻이라면), B는 부크라(Bukra·내일), M은 말리시(Malish·걱정 말아라)의 머리글자다. 이 세 가지는 아랍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말인데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이 미루기만 하는 아랍인들의 행동을 대변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부정적 IBM을 긍정적 IBM으로 바꾸는 지혜가 비즈니스의 묘수다.

 

먼저 부크라와 말리시를 보자. 아랍인들은 부정적인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이괜찮아” “문제없어” “걱정 마등의 자기암시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말리시라는 무책임한 긍정의 메시지를 보낸다. 비즈니스 의사와 능력이 정말 있는 것인지, 사실은 같이할 생각이 없는데 말로만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임회피와 신뢰구축의 기다림은 또 다른 용어부크라로 표현된다. 그들은 비즈니스 업무를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며 유리한 조건과 시기를 기다린다. 늦출 수 있는 한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 급할 것도 없다. 약속된 날짜는 쉽게 파기되고 아주 천연스럽게 부크라를 내뱉는다. 다음 날, 또 부크라가 남발된다. 부크라는 아직 결정할 준비가 안 됐다는 막연한 표현이다. ‘내일이라는 의미지만 내일 된다는 보장은 없는 그야말로 의례적인 단어일 뿐이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인샬라는신의 뜻이라면!’이라는 의미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끼어드는 고약한 단어다.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신의 뜻에 맡길 뿐이라는 이 말은 1970∼1980년대 아랍에 막 진출하기 시작한 많은 한국 기업인들을 당황하게 했다.

 

인샬라는 종잡을 수 없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믿기 어려운 아랍인들의 기질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인샬라는 신의 뜻을 걸었기 때문에 노력에 따라 반드시 성사될 수도 있다는 강한 긍정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무슬림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과정은 물론 비즈니스도 우주를 주관하는 알라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예지사상에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씨를 뿌리고 땅을 가꾸며 수확했다가 비축해서 1년을 계획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순환경제 패턴의 농경 사회와는 달리 전쟁과 교역이 삶의 주된 방편이어야 하는 아랍 유목 사회의 전통적 삶에 뿌리를 둔다. 인샬라는 척박하고 제한된 생태계를 무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삶의 지혜이자 철학을 담고 있다. 모든 성패를 알라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저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의 뜻에 맡기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상대방의 태도나 신뢰를 시험한다. 이들은 불확실성 강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신뢰가 두텁지 않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하다. 그들과 거래하려면 반드시 신뢰가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샬라다.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비즈니스적 속셈은 기본이다. 그들은 자신이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정해진 시간 내 반드시 해치워야 하는 강박관념 대신 스스로 시간을 창조해 간다는 생각을 갖는다. 상대방과 정한 어떤 날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고 이만 마무리해야겠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바로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시점이다. 그 시점은 알라만이 아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다.

 

이런 아랍인과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의 기다림 전략에 익숙해야 한다. 함께 어울리며 여유를 갖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예배 시간이 되면 종교와 상관없이 함께 예배를 보거나 적어도 관심을 표명하고 음식과 모임이라는 그들의 소통 방식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외부자나 이방인의 위치에서 얼마나 빨리 내부자로 편입되는지가 관건이다. 일단 내부자가 되면 신뢰가 형성됐다는 것이고 비밀 보장은 물론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한번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과 오랫동안 거래를 지속한다.

 

인샬라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신의 뜻을 건 이상 함부로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비즈니스는 반드시 성사된다. 인샬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교적 분위기 속에 끝없는 탐색이

“마 쌀라마(평화가)!” 무슬림들이 만날 때마다 던지는 첫인사다. 만날 때도 평화, 헤어질 때도 평화다. 평화로 만나고 평화로 헤어진다. 사실 아랍과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평화보다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오랜 기간 잦은 분쟁과 갈등의 역사가 반복되며 만들어진 이미지다. 평화를 약속하고 갈구하는 무슬림들의 열망이 인사말로 압축됐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무슬림, 특히 아랍인들은 만나면 서로 껴안고 상대의 볼에 입술을 맞춘다. 상황에 따라 횟수는 다르다. 통상 비즈니스 미팅에서 사용하는악수는 거리를 두는 인사법이다. 이를 적대거리(hostile distance)라고 한다. 악수를 나누는 거리는 적의가 스며들 수 있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서로 껴안고 공간을 없애는 것은 적의 대신 친근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제스처다. 악수만 할 때와 껴안고 체취를 나누며 공간을 없앨 때는 친밀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반갑게 껴안고 인사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탐색과정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물론 악수도 인사법의 하나다. 다만 이때 주의할 것은 왼손 사용이다. 아랍인에게는 왼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 관습상 오른쪽은 선과 행운, 왼쪽은 악과 불행의 상징이다. 왼손은 화장실에서의 뒤처리에나 사용하고 음식을 먹거나 코란을 다룰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쓴다. 악수할 때 왼손을 내밀면 분위기가 좋지 않아질 수 있다. 또한 동성끼리는 껴안고 양 볼에 입맞춤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이성끼리는 가볍게 악수하는 것에 그친다.

 

아랍인은 대화나 인사 중에 감정이나 행동을 나타내려고 할 때가 많다. 외국인에게는 자신의 존재감이나 생각을 깊게 각인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아랍인들은 목청을 한껏 키워 말하거나 크고 과장된 제스처를 사용한다. 외국인이 볼 때는 다소 긴박하거나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아랍인의 인사 예절로 이해해야 한다. 또 아랍인은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주시하거나 상대방의 어깨를 두드리며 팔을 잡거나 얼굴을 바싹 들이대는 등 상대방과 몸을 접촉하며 대화한다.

 

아랍인은 만나서 인사하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민족이다. 날씨에서 안부로, 세상 돌아가는 현안에서 어제 들렀던 맛있는 식당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체면치례의 인사말을 나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친근감을 높여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서야 본론이 아주 천천히 뜸을 들여가며 시작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아랍인들은 부족이나 고향 같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면이 강하다. 직원을 채용하거나 제품을 살 때도 개인의 장점이나 성취, 제품의 장점보다는 인간관계를 훨씬 많이 고려한다. 손님 접대도 후하다. 남을 환대하면 그만큼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생활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가족 중 여자에 대해 서로 물어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랍인의 삶은 철저히 가족 중심적이다. 가족에 대한 예의와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녀 간 내외 관습과 이성 간 격리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아내나 딸의 안부를 묻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부인끼리, 자녀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면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아랍인들의 행동양식은 협상에 임할 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지 말고 신뢰를 먼저 쌓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과시하되 건방진 태도는 금물이다.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방문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좋고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접대를 받을 때는 반드시 한 번은 공손히 거절한 후 받아들인다. 접대를 받았다면 충분히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후한 태도를 보일수록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질 것이다. 첫인상이 특히 중요하다. 흔히 첫 만남에서는 여유 있고 사교적인 분위기가 유지되지만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평가받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은우리가 이 사람과 국제 거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탐색하고 있을 것이다. 환대받고 있음에 안심할 일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아랍인들의 특성을 간파해야 한다. 관계를 많이 맺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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