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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영웅을 기술자로 분석 해야…

문휘창 | 110호 (2012년 8월 Issue 1)




동서양 할 것 없이 우리 주변에는 범인(凡人)들이 접할 수 없는 천재와 영웅들이 매우 많다. 얼마 전에 별세한 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 2011 10월에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기고한 ‘The Genius of Jobs’란 글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천재인지에 대해서스티브 잡스의 직관력은 전통적인 교육방식이 아닌 경험적 지혜를 기반으로 두고 있으며 특히 그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이 상상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았다라고 했다. 아이작슨은 또한빌 게이츠(Bill Gates)는 매우 똑똑(super-smart)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매우 기발(super-ingenious)하다라고 평가했다.

 

먼 미국 이야기에서 좀 더 가까운 우리나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2002년 한일 월드컵 10주년 기념으로 K-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TEAM 2002 TEAM 2012로 나누어 축구경기를 했는데 TEAM 2002의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의 영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가 맡았다. 2002년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을 달성하자 각종 언론들은 그를 영웅시 하며 거의 신비주의로 몰고 갔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 거스 히딩크의 경쟁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이들을 너무 천재 또는 영웅으로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홈티칭(Home teaching)을 하거나 또는 그냥 좋은 감독이나 선생님만 만나면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사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이렇게 입증되지 않은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와 거스 히딩크를 천재나 영웅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이들의 리더십을 기술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략수립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의 리더십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요즘 세계에 잘 알려진 한국 기업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기업으로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그룹의 설립자인 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게 평가 받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성공 패러다임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경제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이 두 거인들의 리더십을 분석해보고 이에 따른 시사점을 도출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DBR 103호에 실린 필자의 글인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는 이유 107호에 실린국제화+벤치마킹=국가고속성장을 통해 기업과 국가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국제화와 벤치마킹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기업가 중에서 가장 성공한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성공 방정식도 사실은 이와 같은 국제화와 벤치마킹이 핵심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191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네 번의 가출을 시도했다. 그의 눈에 농사일은 매우 힘들고 고됐지만 그 대가는 한 가족이 먹고 살기도 힘들만큼 너무나도 적어 보였다. 따라서 처음에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난을 피하고자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네 번의 가출 끝에 그는 다행히복흥상회라는 쌀가게의 종업원으로 취직을 하게 됐다. 그는 성실성,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심, 주변상황에 대한 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사업 수단을 발휘해 쌀가게는 물론 단골손님과 쌀 공급선을 모두 물려받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다른 분야의 사업에도 진출했다. 자동차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을 예측해 자동차 수리공장을 열기도 했고, 건설업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보고는 건설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또한 건설자재, 연료 및 전시물자를 운반하는 것을 보고 조선업이 활성화될 것이라 판단해 조선업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국민소득이 향상되자 자가용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해 자동차 제조업을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전자산업에 있어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삼성전자에 이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현() 하이닉스의 모체인 현대반도체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공사례들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정주영 회장이 미래를 정확이 예측하는 능력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정주영 회장은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거나 보통 사람과는 다른 동물적 감각을 가진 초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없고 배울 점도 없을 것이다. 이제 정주영 회장의 핵심역량을 좀 더 객관적인 경영학적 측면에서 분석해보자.

 

정주영 회장의 국제화와 벤치마킹 전략

1952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서울에 변변한 호텔 하나 없었다. 이에 미군은 운현궁을 임시거처로 삼았는데 화장실과 난방이 문제였다. 미군이 정주영 회장에게 부탁을 하자 그가 고물상에서 버려진 변기 등을 찾아내서 당시에는 힘들었던 수세식 변기와 현대식 난방공사를 완성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군 측의 신임을 얻은 정주영 회장은 그 이후에 오산 미공군기지 활주로 공사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라고 했던 인천항 제1독 복구공사 등 미군의 많은 공사들을 수주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현대건설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정주영 회장은 국내 기업이 계획하기 힘들었던 해외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다. 1965년 현대건설의 최초 해외사업이었던 태국의파나니 나라티왓고속도로 입찰경쟁에서 현대건설은 최저가인 520만 달러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했다. 이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현대 기술진은 인근 독일, 이탈리아 및 일본 회사의 현장을 견학해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지 면밀히 살펴봤으며 이들을 벤치마킹 하면서 3년 만에 고속도로를 준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 방정식은 사실 매우 간단했다. 다른 일류기업들과 같은 품질을 유지하되 그들보다 공기(工期)를 더 단축해서 비용을 줄이면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 ‘일류기업 벤치마킹 + 스피드 경영인 것이다. 여기에다 사업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국제화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건설은 더 나아가 해외 타 건설업체들이 꺼리던 어려운 공사에 도전해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축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주영 회장을 평가할 때 그의 기발한 발상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러한 기발한 발상의 근저에는 일류기업을 벤치마킹 하면서 폭넓은 국제화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동차 사업에 있어서도 정주영 회장은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해외진출을 벤치마킹 해 일찍부터 해외로 나가게 된다. 한국 시장에서는 아무리 많이 팔아봐야 결국은 규모의 경제가 작아 장기적으로 크게 발전할 수 없었다. 당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정주영 회장은 해외진출 전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자동차 사업에 대한 정주영 회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역시 간단했다. 일본 자동차를 벤치마킹 해 비슷한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되 값이 조금 더 싸고 서비스는 더 좋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조선과 전자 등 다른 사업에 진출할 때도 일류 기술의 벤치마킹과 국제화는 정주영 회장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되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1910년 경남 의령에서 대지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이병철 회장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에서 유학한 엘리트였다. 귀국 후 이병철 회장은 부친에게서 받은 쌀 300석분의 토지로 고향과 가까운 마산에서 첫 사업으로 쌀 도정을 하는협동정미소를 창업했고 마산에서 운송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운송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유통업, 제당산업, 모직산업 및 전자산업 등에 뛰어들어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이병철 회장은 기업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대를 이어 가면서 연구를 하는 것과 끊임없이 품질을 향상시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병철 회장은 삼성이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로 이 품질을 기업의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품질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참여해 입사지원자들의 취업당락을 결정했다는 것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莫用用人勿疑)’는 생전에 이병철 회장이 즐겨 썼다는 문구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한 가지 있다. 4.19 직후 제2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정부는 3.15 부정선거와 부정축재자 문제를 함께 처리하고 있었다. 이때 삼성그룹도 탈세혐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담당검사는 삼성그룹의 직원들을 차례대로 불러 탈세혐의를 조사했고 나중에 이병철 회장까지 검찰에 출두하게 됐다. 당시 담당검사는 이병철 회장에게삼성에서는 서로 자기가 탈세의 주범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진짜 주범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병철 회장은그야 물어보나마나지요. 당연히 최고경영자인 내 지시를 받고 한 일이니까, 내가 그 주범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담당검사는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서로 자기가 탈세를 주도했다고 하는 회사는 지금까지 삼성밖에 없었다며 이병철 회장이 훌륭한 아랫사람들을 두고 있다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품질향상, 인재, 믿음 등이 이병철 회장의 리더십을 설명하기에 충분한가? 이렇게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더욱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성공 방정식을 경영학적으로 풀어보자.

 

이병철 회장의 국제화와 벤치마킹 전략

이병철 회장은 젊었을 적 유학을 한 덕분에 국제화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해외시장 조사는 물론 국외의 선진기술까지 깊이 파악한 덕분에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벌였던 거의 모든 사업에서 성공했다. 일찍이 그는 대구에삼성상회를 연 후 평양, 신의주, 원산, 흥남, 만주 및 베이징을 방문하고 어떤 제품을 팔면 이익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 꼼꼼히 살폈다. 당시 대부분의 상인이 국내만 바라보고 사업을 하던 때에 해외무역을 하고자 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장상황을 잘 파악한 이병철 회장은 사과와 건어물 등을 국내와 만주는 물론 후에는 일본에까지 수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각종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후에도 이병철 회장은 매년 초가 되면 일본 도쿄에 가서도쿄구상으로 회자되는 사업구상을 하곤 했다. 이때 이병철 회장은 특히 일본의 여러 방송매체들이 지난 해 경제동향에 대한 총결산을 하는 프로그램과 신년 전망에 대한 일본의 저명한 석학들이 논하는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전문가, 사업가, 기자 등을 만나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한국에 있는 비서실에 지시해 타당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미래였고 일본시장을 철저히 벤치마킹 하면 한국 시장의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시장뿐 아니라 일본 기업을 철저히 벤치마킹 해 삼성은 한국 기업 중 일본 기업에 가장 가까운 경영방식을 택하게 됐다. 이러한 벤치마킹 전략은 나중에 삼성전자가 소니 등 일본 전자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게끔 한 밑거름이 됐다. 철저한 지피지기(知彼知己)만이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전략인 것이다.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에게서 배울 수 있는 시사점

기존 연구들에 의하면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이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행력으로 현대그룹을 키워냈고, 이병철 회장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의 와세다대에서 유학까지 했던 엘리트로 세심함과 주도면밀함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을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 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측면의 전략적 변수(정주영: 자신감과 실행력, 이병철: 세심함과 주도면밀함)만으로는 이 두 거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편 이들의 핵심경쟁력으로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과 남다른 리더십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남다른 리더십이란 말은 애매모호하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사업에서 대부분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는 그들이 초인적인 예지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선진국 시장을 잘 관찰해서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가 세운 경제개발계획에서 미래에 어떤 사업이 유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었다.

 

이제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공통적인 핵심역량을 종합해 보자. 첫째, 앞으로 하고자 하는 사업을 선진국의 상황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고려해서 결정한다. 둘째, 그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을 벤치마킹한다. 여기서 다른 기업을 벤치마킹만 하면 어떻게 그 기업을 이길 수 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관련 분야에서 이미 어느 정도 경쟁우위가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 기존의 일류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면 곧바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덧붙여 더 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4년 서산 간척 공사 시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 고철로 쓰려고 했던 유조선을 가라앉혀 완성한 물막이 공사는 매우 기발해서정주영 공법이라고 불리며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정주영의전설적인 기발한 아이디어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대그룹의 다변화된 사업 포트폴리오에 의한 시너지 효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현대는 건설을 중심으로 조선, 기계산업 및 자동차 등의 여러 산업에 진출해 있어 정주영 회장은 이 산업들과 관련된 종합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건설과 선박 활용, 그리고 관련된 기계 공법 등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소했겠지만 정주영 회장에게는 자유자재로 활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리더십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 역시 많은 사업에서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특히 전자산업은 당시 상황에서 발전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대규모의 투자를 했다. 이후 전자산업 내에서도 반도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하드웨어 면에서 사업을 다각적으로 발전시킨다. 이병철 회장의 이러한 리더십 정신은 이건희 회장에게도 이어져 후에 삼성전자는 전자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 덕분에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세계 시장을 단번에 석권했을 때에도 삼성전자는 불과 몇 달 만에 이를 벤치마킹해서 갤럭시폰을 내놓고 얼마 안 가서 아이폰보다 더 많이 팔게 된다. 삼성전자의 성공 모델이 무엇인가? 바로 아이폰을 벤치마킹해서 장점을 받아들이고 삼성만의 장점을 추가함으로써 아이폰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발자 우위(latecomer’s advantage)의 핵심이다.

 

새로운 사업에서 선도자의 장점을 잘 벤치마킹하면 후발자는 새로 얻은 장점을 자기가 갖고 있는 기존의 장점과 잘 결합해서 선도자를 따라 잡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사업 경험이 많았던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이러한 능력이 남달리 뛰어나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 확대 해석해서 무분별한 문어발식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 서로 시너지를 창출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사업 다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벤치마킹 전략은 기술습득과 시장개척 등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국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국제화를 통해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벤치마킹과 국제화 전략은 비교열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쟁우위를 창출해 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2의 정주영, 이병철이 되고자 하는 경영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만을 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경영의 두 가지 원칙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리더십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효율적인 경영전략이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cmoon@snu.ac.kr

필자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강의했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쟁력, 경영전략, 해외직접투자, 문화경쟁력 등이다. 현재 국제학술지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기업, 외국정부(말레이시아, 두바이, 아제르바이잔, 중국 광둥성), 및 국제기구(APEC, UNCTAD, IBRD)의 자문을 담당했다.

 

  • 문휘창 문휘창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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