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SR Seminar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주현(서강대 중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홍콩 주룽(九龍)반도 북쪽 신계지에 위치한 타이포(大浦)는 전통적인 재래시장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타이포 재래시장은 한국의 재래시장처럼 백화점, 할인점 등과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급기야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의 확산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더욱 뜸해졌다. 1980년에 문을 연 타이포 지역 내 대표 청과시장인 타이위안(大元) 시장 역시 위기에 봉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홍콩 최대 부동산투자회사인 링크매니지먼트(The Link Management Limited)가 2010년 타이위안 시장에 손을 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링크매니지먼트는 ‘재래시장=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며 불편한 쇼핑 장소’로 생각하는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데 최우선 목적을 두고 건물 현대화 작업에 들어갔다. 쇼핑객들의 동선을 고려해 야채, 수산물, 정육 등 품목별로 구역을 정한 후 길거리에서 지저분하게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던 상인들을 체계적으로 입주시켰다. 에너지 절약형 전구를 달고 냉방 시스템을 정비해 친환경적이면서도 쾌적한 쇼핑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힘썼다. 무엇보다 ‘음식물 쓰레기 비료화 시스템(a food waste composting system)’을 도입,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태계 사이클(self-contained ecological cycle)’을 구축했다. 즉, 건물 지하에 비료제조시설을 갖추고 재래시장에서 나오는 각종 음식물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비료로 만든 후 건물 옥상에서 유기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12월 새롭게 문을 연 타이위안 마켓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장을 찾아오는 방문객 수가 급증하면서 입주 상인들의 수익이 리노베이션 이전에 비해 배로 늘어났다. 과거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재래시장에 실망해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이제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사기 위해, 또 생동감 있는 재래시장의 풍취를 즐기기 위해 타이위안 마켓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다.
지난 2011년 12월8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기업의 공유가치 창조를 위한 혁신’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회 글로벌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연사 세미나’의 주요 연사로 나선 프란시스코 로만(Francisco Roman) 아시아경영대학원(AIM·Asian Institute of Management) 교수는 “링크매니지먼트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은 공유가치 창출을 통한 대표적인 혁신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연세대학교 경영학, 행정학, 법학, 철학 분야 전문 교수진이 참여하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글로벌러닝센터와 ㈔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GCEF) 간 협력 프로그램인 ‘연세-GCEF CSR 프로그램’의 첫 행사(kick-off event)로 국내외 CSR 분야 석학 및 전문가들을 초청해 CSR 관련 지식과 통찰을 나누기 위해 기획됐다.
로만 AIM 교수는 “링크매니지먼트는 소비자들이 전통 재래시장에 대해 가장 우려하던 ‘건강’과 ‘환경’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해 공유가치를 창출했다”며 “그 결과 부동산 투자업체 및 상가 입주자의 수익 증대는 물론 쇼핑객과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링크매니지먼트의 타이위안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2011년 ‘아시아 CSR 어워드 환경혁신 분야 최고상’도 받았다.
로만 교수는 또한 이날 발표에서 독일원조청(GIZ)의 지원을 받아 필리핀에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추진해 온 ‘스콥(SCOPE)’ 프로그램도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업과 지역사회 간의 경제적 사회적 공유가치 창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민관협력 우수 프로젝트를 지원해 준다. 공유가치 창출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라면 어느 기업이든지 신청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 예로 필리핀의 한 부부 사업가가 운영하는 보테센트럴(Bote Central Inc.)을 꼽을 수 있다. 보테센트럴은 필리핀의 영세 커피 재배 농가들에게 자체 발명한 로스팅 기계(Community Coffee Roasting Facility)를 공급,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최상품은 아니지만 꽤 양질의 커피 열매를 직접 로스팅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영세 커피 농가를 비롯한 지역사회에는 자활의 기회를 열어 주고 보테센트럴은 양질의 커피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보테센트럴은 이 사업의 공유가치 창출 성공을 인정받아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와 카페트 부헤이(Kape’t Buhay) 지역사회 커피농업 단지 역량 강화를 위한 커피 재배 산업 발전 양해각서(MOU)까지 맺었다. 사업 내용은 영세 커피 농가 대상 교육, 자본 및 사업 지원 등이다. 필리핀 농림부와 필리핀 커피 연합과 협력해 해당 지역 커피 산업 클러스터의 발전 및 안정된 공급과 매출 판로를 개척해주는 지원 사업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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