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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전염된다!

김남국 | 7호 (2008년 4월 Issue 2)
한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경쟁사들은 이를 은근히 즐긴다. 경쟁사가 위기로 고전할 경우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한 기업에서 발생한 위기가 때로는 다른 기업으로 전염되기도 한다. 이른바 ‘위기의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다.
 
한국에서도 위기의 전염 현상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면 업계에 발생한 ‘공업용 우지(牛脂) 파문’이다. 1989년 라면을 공업용 우지로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접수된 후 파문이 확산되면서 당시 선두업체이던 삼양뿐만 아니라 농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업체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또 2004년에는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몇몇 업체가 문을 닫고 한 중소업체 사장이 투신자살을 하는 등 업계 전체가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최근에도 황토팩에 중금속이 들어갔다는 한 방송사의 보도로 업계 전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최근 생쥐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농심 새우깡에서 발견된 후 녹슨 칼날이 동원 참치캔에서 발견되는 등 식품 안전 문제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2003년 봄 미국에서 한 내부 고발자가 푸트남인베스트먼츠(Putnam Investments)의 부적절한 거래를 폭로했다. 푸트남의 펀드 매니저들이 마켓타이밍(market-timing)으로 불리는 부적절한 거래로 폭리를 취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마켓타이밍이란 각국의 시간 차이를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얻는 단기 투자 관행을 말한다. 예를 들어 뉴욕 증시가 개장한 시간대에 삼성전자와 관련한 초대형 호재가 알려졌다면 다음날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정보를 토대로 한국 증시 개장 전 미국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높은 펀드에 투자하면 위험을 낮추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투자는 당시까지 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펀드의 거래 비용을 상승시켜 장기 투자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캔들이 터지면서 푸트남은 최고경영자가 사임하는 등 쑥대밭이 됐다.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푸트남에 투자를 위탁한 기관투자가들은 200억 달러의 자금을 인출했다. 이어 기관투자가들은 푸트남뿐만 아니라 다른 뮤추얼펀드 회사도 마켓타이밍 거래를 했는지를 조사했고 유사한 스캔들이 잇따라 터졌다. 결국 상당수 업체들이 벌금을 내야 했고 기관투자가의 자금 인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증권감독 당국은 마켓타이밍 거래를 규제하기로 했다.
 
이런 사례들은 위기의 전염 현상이 업계 전체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경쟁기업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할 일이 아니다. 위기의 특징과 업계의 상황을 분석해 전염성이 얼마나 강한지 파악하고 적절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 보스턴 칼리지의 티에잉 유(TieYing Yu) 교수 등은 저명 학술지인 ‘Academy of Management Re- view’에 게재한 ‘비참함은 기업을 사랑한다(Misery Loves Company)’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위기의 ‘스필오버’ 현상을 집중 분석했다. 유 교수 등은 위기가 발생한 조직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면 위기의 전염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뮤추얼펀드 업체들은 비슷한 조직 구조에서 비슷한 형태로 영업 했기 때문에 위기가 쉽게 확산됐다. 또 처음에 위기가 발생한 조직의 구조가 매우 단순할 때에도 위기는 쉽게 전염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은행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의 경우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정확한 원인과 파장을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뮤추얼펀드 회사는 은행보다 구조가 단순하므로 위기의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은 유사한 다른 회사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조직 구성원간 동질성이 높은 경우에도 위기의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처음 위기가 발생한 기업보다 시장에서 더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선도적 업체라면 위기의 전염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 1996년 미국 저가 항공사인 밸류젯(Valuejet)의 항공 사고 사례를 제시했다. 사고 발생 후 언론들은 원가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안전 관련 조치를 소홀히 한 저가항공사의 경영 관행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상당수 저가 항공사들의 주가는 오랜 기간 동안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저가 항공 산업의 선두 주자인 사우스웨스트는 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간에 매출이 18%나 늘어났다.
 
비슷한 조직 구조를 갖고 있는 경우 위기 전파가 잘 된다는 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위기의 확산을 막을 방법도 고안해 낼 수 있다. 바로 차별화(differ-entiation)다. 비슷한 구조나 단순한 구조를 가진 업종 내 대다수 기업과 달리 차별화에 성공하면 위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공업용 우지 파문이 일어났을 때 농심은 차별화로 인해 손해를 입지 않았다. 농심은 1980년대 들어서 제품 차별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다른 기업들이 전통을 가진 라면 한두 가지 상품에 의존하고 있을 때 농심은 사발면 같은 용기 라면 시장을 개척했고 안성탕면 등 신상품도 잇따라 출시했다. 특히 차별화의 일환으로 농심은 우지 대신 팜유를 사용했는데 이는 위기의 전염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상승시킨 일등 공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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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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