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로부터 오랫동안 북방의 야만족 취급을 받았다. 발칸반도와 유럽대륙의 접합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지금도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는 테베의 속국이었다. 15살이던 소년 왕자 필립(훗날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필립포스 2세.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은 테베에 인질로 보내졌다.
당시 테베는 스파르타마저 격파한 그리스의 패권자였다. 병학적으로도 그리스에서 제일 앞선 역량을 자랑했다. 테베는 우직하게 중장보병대만으로 승부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통에서 좀 더 자유로웠다. 그들은 기병과 경보병을 활용해 좀 더 역동적인 전술을 사용했다. 명장 에파미논다스는 사선대형(중장보병대 전체를 동시에 충돌시키지 않고 사선으로 배치해 부대별로 시간차를 두고 충돌시키는 방법)을 창안함으로써 전쟁터를 보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기병이 없어 애를 먹었던 아테네, 스파르타와 달리 테베가 위치한 테살리아 지방(그리스 북부)부터 마케도니아까지는 좋은 말과 기병도 양산됐다.
중장보병대에 집착한 그리스
스파르타를 격파함으로써 테베는 페르시아전쟁 이후 그리스 도시국가 간 그리스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툰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최종 승자가 됐다. 이 덕택에 페르시아전쟁과 펠로폰네소스전쟁이라는 긴 전쟁 동안 그리스 곳곳에서 개발된 새로운 전술적 아이디어들이 테베에서 집약됐다. 이 중에는 혁신적 변화를 암시하는 놀라운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뭉개지고 사장되고 있었다.
테베는 비록 그리스의 전통적인 전술에 변화의 불을 댕겼지만 그리스의 전통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장군 이피크라테스는 장창 전술을 고안했다. 기존 2∼3m였던 창을 3.6m로 늘렸다. 창이 길어지면 짧은 창을 든 적보다 먼저 찌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단지 창을 길게 하는 것만으로 적을 먼저 찔러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창을 늘렸을 것이다.
창이 길어지면 부러지기 쉽고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어진다. 장창과 단창이 일대일로 맞부딪칠 때 길기만 해선 오히려 짧은 창의 튼튼함과 정교함에 제압당하기 쉽다. 창의 약점은 창의 안쪽 공간이다. 적이 창날 안쪽으로 들어오면 손 쓸 방법이 없다. 장창은 길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위험공간이 더 넓어진다.
장창의 길이가 주는 진정한 장점은 여러 명이 한 사람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창의 길이가 같다면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진행된다. 사실상 일대일 대결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창이 길면 적의 창의 사정거리 밖에서 방어를 신경 쓰지 않고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이 생긴다. 이때는 일대일 대결이 아니라 적군 한 명에 대한 집단공격이 가능하다. 또 창이 길면 뒷열의 창이 전열의 앞으로 튀어 나와 뒷열 부대도 함께 공격에 가세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창은 단창에 뒤지는 기술과 정교함의 약점을 창의 수와 힘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무겁고 긴 창을 신속하고 집단적으로 다루려면 중장보병의 신체를 가볍고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피크라테스는 과감하게 중장갑의 경량화를 시도했다. 8㎏이나 되던 금속방패를 가볍고 작은 가죽방패로 바꿨다. 다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무릎 아래를 보호하던 금속의 정강이 보호대는 아예 버렸다. 몸통을 보호하는 청동 판금(板金) 갑옷도 아마포로 속을 누빈 훨씬 가볍고 편리한 형태로 바꿨다. 그리스군의 팀 전술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얼굴 전체를 감싸서 옆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투구였다. 이 투구도 시야를 개방하는 트라키아식(후대의 로마군 투구와 비슷한 모양)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피크라테스의 개혁은 인기가 없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이 새로운 전술의 위력을 이해하지 못했던 탓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것이 주는 파괴력을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 군대의 주력인 중장보병대는 지배층인 시민층에 의해 충당됐다. 중장보병이 된다는 것은 자신들이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고 이는 지배계급으로서 지배권리를 창출하는 근거였다. 그런데 중장보병이 되려면 비싼 청동장비를 자비로 마련할 수 있는 재산이 필요했다. 그 정도 재력을 지니려면 상당한 토지와 노예가 있어야 했다. 오늘날처럼 재산과 토지를 공증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중장보병이 된다는 자체가 자신의 부와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장비가 경량화하면 장비값이 떨어진다. 보다 가난한 사람들, 즉 신분은 낮지만 부를 축적한 졸부들도 중장보병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배층(시민층)의 증가는 결국 지배층으로서 시민들이 누리던 특권의 약화를 뜻한다. 자신들이 전쟁에 나가 피를 흘리는 것은 특권층으로서의 권리를 얻고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장비의 경량화는 거꾸로 전쟁을 통해 새로운 특권층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통 시민계층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필립포스 2세의 개혁
어린 시절 테베에 약 3년간 볼모로 잡혀와 있던 마케도니아의 왕자 필립은 그리스군의 다양한 전술들을 배워 고향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그저 모방하기만 하지 않았다. 고국 마케도니아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필립포스 2세는 그리스의 전통 전술과 신전술 모두를 관통하는 원리를 찾아냈다. 바로 ‘시민층의 계급적 특권 과시’다. 이 원칙은 그리스 중장보병대의 가입조건뿐 아니라 중장보병의 세부 전술 전체에 적용되는 원리였다. 그리고 이 원칙은 ‘전술적 효용성’보다도 우선시되는 최상위 원칙이라는 점을 필립포스 2세는 간파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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