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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혁신’ 멋지잖아요

김남국 | 5호 (2008년 3월 Issue 2)
산업계와 경영학계에서 사용되는 가장 흔한 용어 가운데 하나는 ‘혁신’이다. 기업 현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회의 시간을 줄이고 사무실 배치를 살짝 바꾸는 것도 혁신 활동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혁신에도 종류가 있다. 경영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점진적(incremental)’ 혁신과 ‘과감한(breakthrough)’ 혁신을 구분했다. 점진적 혁신은 사소한 개선을 뜻한다. 반면 과감한 혁신은 이전 제품이나 서비스와 차원을 달리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 필름카메라의 기능을 개선한 게 점진적 혁신이라면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것은 과감한 혁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혁신의 특징은 확연히 다르다. 주변 환경이 안정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점진적 혁신은 위험이 적다. 이미 시장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에 사소한 개선을 한 경우 통상 안정적으로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따라서 안정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점진적 혁신을 더 선호한다.
 
반면 과감한 혁신은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타격도 엄청나게 크다.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구조인 셈이다. 실제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점진적 혁신에 속하는 하이브리드카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GM 등 미국 업체들은 과감한 혁신에 속하는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했다가 요즘 갖은 고초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위험까지 감안한다면 어떤 혁신이 기업이나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까. 만약 과감한 혁신의 기대수익이 높더라도 위험이 이보다 더 높다면 점진적 혁신이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텍사스 A&M대학의 앨리나 소레스쿠(Alina B. Sorescu) 교수 연구팀은 무려 2만 개의 소비재 제품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실시했다. 전문가의 평가를 바탕으로 각 제품의 혁신성이 기업 성과에 미친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세계적 마케팅 학술지 ‘Journal of Marketing’ 3월호에 실린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감한 혁신은 완승을 거뒀다. 점진적 혁신도 기업 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과감한 혁신이 끼친 영향은 이보다 무려 50배나 높았다. 또 과감한 혁신은 주주들에게 평균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줬지만 점진적 혁신은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과감한 혁신은 예상대로 기업의 위험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과감한 혁신으로 인한 기업 가치 상승이나 주주 이익 증가는 점진적 혁신을 압도했다.
 
이 연구 결과는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과감한 혁신에 투자하지 않는 경영자에게 과학적 반론을 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감한 혁신을 추진하는 기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실제 미국 제품개발관리협회(PDMA) 조사 결과, 신제품 가운데 세계 최초나 기업 최초 출시 제품의 비중은 1999년 44%에서 2004년 30%로 확연히 감소했다. 한국에서도 기업의 투자 위축이 전반적 경기 침체를 불러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리스크 관리에만 신경 쓰는 기업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적 기업가 정신 하나로 우뚝 일어선 나라다. 지금까지 성과를 지키겠다는 소극적 자세로는 극심한 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혁신도 다 같은 혁신이 아니다. 지금 추진하는 혁신이 점진적인 것인지, 아니면 과감한 것인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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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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