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경영 성공 전략

새로 쓰는 문화마케팅 2.0

62호 (2010년 8월 Issue 1)

 
문화마케팅 라떼: 경제커피에 문화우유를
역설적이지만 성공하는 기업의 문화마케팅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오고 있던 일방적인 스포츠마케팅, 아트마케팅, 디자인마케팅과 같은 문화마케팅 구체제를 모두 삭제(delete)하고 새로 고쳐야 할 것 같다. 왜 그런가?
 
한국의 문화마케팅은 상업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문화마케팅을 주도하는 한국 대표 기업들은 물론이고 크게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 자체가 상업주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 정부 고위층이 외국을 순방할 때 기업인을 대동하고 비즈니스 외교를 펼치는 것은 점잖게 말해 너무 ‘사무적’이다.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런던에 가서 대영박물관을 돌아본 뒤 현지 한국 예술가들을 초청하면 안 되는가.
 
한국 기업들 가운데 문화마케팅을 모르거나 안 해본 기업은 없을 것이다. 굳이 시기구분을 해 본다면 한국에서 문화마케팅은 기업메세나 활동 조직이 만들어지며 학습해가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제2기, ‘문화마케팅 2.0’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문화마케팅을 새로 쓰는 작업이다. 이 유쾌하고 행복한 과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제하는 마음과 문화하는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해주는 균형 잡기다. 이 글에서는 상업주의 이미지를 벗고 어떻게 문화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살펴보겠다.
 
문화생업(業): 생산과 본업으로서 문화콘텐츠
기업들은 보통 <문화애호가/문화를 애호하는 마음>으로 문화마케팅에 착수한다. 하지만 이 마음은 문화를 액세서리 정도로 여겨 제품이나 서비스에 걸쳐 놓으려 하는 가장 낮은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문화를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문화애호가/문화를 애호하는 마음>은 문화하는 마음 4개 그룹 가운데 문화 참여의 정도가 가장 낮다.
 
문화생업이라 함은 손쉬운 생활의 취미에서부터 문화를 배우는 학업, 문화를 테마로 삼는 한시적인 과업 수행, 문화를 부업으로 영위하는 형태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뜻을 품고 기발한 발상을 하는 것부터 문화 체험을 위한 시간 안배, 구체적인 창조 활동을 위한 기획, 개발까지 포괄한다.
 
<문화지원자/문화를 지원하는 마음>은 문화생업의 정도는 전면적이고 높지만 문화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소극적이고 간접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나 특징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프로듀서라고 부르는 영화제작자들은 영화라는 문화콘텐츠에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헌신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문화를 전업으로 삼고 있다. 간혹 영화사업을 다각화해 출판이나 미술, 부동산 쪽을 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생업을 중심으로 그리는 동심원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문화창업과 문화겸업이 이 그룹에 속하는 이유다.
 
<문화분석자/문화를 분석하는 마음>은 문화생업의 정도는 낮은 편이지만 문화생산에 끼치는 영향력은 아주 높은 그룹이다. 영화 담당 전문기자나 문화 현상을 연구하며 논문이나 칼럼을 쓰는 학자와 평론가들은 즉각적인 성과는 없지만 아주 장기적으로 점진적인 문화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사상계를 펴낸 장준하, 씨알의 소리의 함석헌, 창작과 비평의 백낙청, 문학과 지성의 김병익, 뿌리깊은 나무의 한창기, 공간의 김수근과 같은 이들이 좋은 예다. 이들은 마당을 쓸고 천막을 가려치고 말뚝을 박음으로써 사물놀이패가 오게 했고 새싹 같은 문인들을 받아냈다. 이들의 공로는 문화콘텐츠 창조라기보다 문화환경, 문화여건, 문화 인프라의 창조에 가깝다. 또 작가와 창작자가 내놓은 작품을 사회 필터를 통해서 코멘트하고 다듬어서 좀 더 깊은 의미와 가치를 갖게 해 제2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재창조(Re-Creation) 활동의 주역이기도 하다.
 
<문화창조자/문화를 창조하는 마음>은 문화생업과 문화생산의 최고 역량이 겹치는 극치의 지대다. 문화/예술인으로서 창작과 예술 활동에 전념하는 작가가 가장 전형적인 예다. 이 그룹은 문화지원자의 지원과 문화분석자 진영의 정보 제공, 문화애호가 그룹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마침내 전문제작과 창조의 최고봉을 오르는 알피니스트와 같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은 주로 전업 작가, 전문 창작자이지만 최근에는 문화콘텐츠 방식의 공동 창작, 기획 제작이 늘어남에 따라서 개념과 성격이 상당한 폭으로 변하고 있다.
 
결국 기업의 문화마케팅은 담당자와 의사결정자 그룹 자신이 문화를 애호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점차 문화생업 정도와 문화생산 정도가 높은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키워 나가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
 
기업 문화예술경영 성공 노하우- 문화마케팅 2.0
기업들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문화마케팅 활동을 펼치려면 ‘문화생업’으로 표현한 ‘성숙된 문화하는 마음’을 가진 이후에 바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기업이라는 아웃사이더의 논리로 문화를 마케팅해 왔던 문화마케팅 1.0과의 결별이다.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문화마케팅 2.0> 시기의 노하우는 그야말로 ‘문화’의 이름으로 마케팅을 하는 일이다. 문화예술의 주역인 창작자, 제작자, 기획자 등이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고유의 랭귀지(언어)가 <문화마케팅 2.0>의 소프트웨어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기업들이 경제관념과 현란한 마케팅 매뉴얼로 문화를 마케팅해 왔기 때문에 상업주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기업의 경제관념과 마케팅 기술은 기본 사양으로 삼고 여기에 문화예술인들이 해온 고유의 전통적인 문화적 마케팅 방식을 수용할 때다. 문화생업 마인드로 무장한 기업이라면 누구나 이 창조적 파괴를 감행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의 문화마케팅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문화콘텐츠의 직접 사용, 간접 사용 차원이다. 둘째는 개별 콘텐츠 중심과 콘텐츠를 에워싼 주변 맥락, 즉 콘텍스트 중심을 가르는 차원이 있다. 끝으로 이분법적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초월적 위치에 있는 독자적인 영역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림2>에서 횡축의 2개 영역은 문화콘텐츠 아이템 자체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차원으로서 이는 <문화콘텐츠를 위한 마케팅(Marketing of Culture or Marketing for Culture)>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마케팅 기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문화콘텐츠 자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이와 구분되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문화콘텐츠 아이템 자체보다는 콘텐츠가 위치하는 상황과 맥락, 즉 콘텍스트(Context)를 더 강조하는 차원이다. 이는 <문화콘텐츠를 통한 마케팅(Marketing through Culture or Culture for Marketing)>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이 원하는 마케팅 목적에는 판매 촉진이나 이미지 제고 같은 기업의 목적과는 상당히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 사회·문화적 영향력 제고나 새로운 트렌드 창조, 예술적 표현, 정치적 선언, 자기 발언 등 다양하고도 무정형적인 개념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의 요구와 문화예술인의 요구가 일치해야 한다. 제품을 판촉하고 홍보하는 ‘경제하는 마음’만으로는 이러한 일치에 도달하기 힘들다. 하지만 기업 스스로가 문화생업 마인드로 ‘문화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갖게 되면 서로 공존, 공생, 윈윈(win-win)해 한층 더 격상된 문화마케팅을 시작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축은 문화콘텐츠의 원형, 즉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와 문화콘텐츠의 변형, 즉 메타 콘텐츠(meta content)를 간접 사용하는 경우다. 이는 다시 말해 문화·예술인이 자신의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경우와 자신의 콘텐츠를 또 다른 형태로 변형, 축약, 재구성, 재창조하는 부가적 편집 과정을 거침으로써 마케팅 활동 자체를 또 하나의 콘텐츠 생성 및 표출 과정이자 행위로 간주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 횡축과 종축의 총 네 가지 차원과 영역(2*2 구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차원이 있다. 또는 네 가지 영역에 다 걸쳐 있고 속해 있으면서도 어느 한 차원에 전형적으로 편입되지 않는 독립적인 차원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소개한 다섯 가지 영역에 속하는 문화마케팅 유형을 살펴보고 각각에 대해 기업들이 취해야 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소개하겠다.
 
①프로덕트(Product): 문화콘텐츠와 동반 성장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콘텐츠 자체를 구체적인 제품으로 인식하고 마치 보통 기업들이 상품을 직접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처럼 마케팅 하는 유형이다.
기업으로서는 제품, 서비스와 결합하는 문화콘텐츠를 독립된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이 요소 자체의 가치가 제품, 서비스와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치밀한 노력이 요구된다. 일례로 루이비통이 일본의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와 손잡고 모노그램 체리 백 컬렉션을 디자인함으로써 일본 디자인 파워와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디자이너는 일약 세계 톱클래스로 도약할 수 있었다. 회사 제품만 실익을 챙기지 않고 협업한 디자이너도 높여주는 예인(譽人: 남을 칭찬하는 미덕)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 이미 대가가 된 명인보다는 신진 작가 디자인이나 문화콘텐츠를 채택해서 꾸준하게 키워 함께 성장한다면 경제매출은 물론 문화가치도 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례소주 ‘처음처럼’
H사장은 대우중공업을 거쳐 진로그룹 진로 발렌타인 수석부사장, 오비맥주 부사장을 역임한 뒤 2005년부터 두산 주류 BG를 맡았다. 국내 최초 알칼리수 소주인 ‘처음처럼’을 창안해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직장 생활에서 유독 신설 부서를 맡았다. 일복이 터졌는지 늘 새로운 일을 하게 됐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인계해주고 가르쳐주는 이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그는 독서를 선택했다. 대학 전공이 사범대였기 때문에 경영 이론도 죄다 독서로 독파했다. 잘 모르는 분야는 독서로 극복한다는 생각을 밀고 나갔다. 오마에 겐이치의 <기업경영과 전략적 사고>,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쟁전략> <경쟁우위>, 잭 트라우트의 <성공의 조건>과 같은 책들이 그의 사설 가정교사이자 MBA 프로그램이었다.
 
과거 H사장이 본 경영 서적들은 주로 원서였다. 당시엔 번역본이 없어서 자신이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번역본을 사용했다. 손수 만든 이 번역본을 지금도 빛바랜 종이뭉치로 간직하고 있다. H사장은 우연히 필사본으로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을 보게 됐다. 바로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다. 그 책에 실린 시 ‘처음처럼’과 해후하게 된 건 행운이었다. H사장이 소주 신상품 이름을 맡긴 디자인 회사가 골라 온 1천 개 후보 중 ‘처음처럼’을 골랐기 때문이다. H사장은 새로 출시하는 소주의 이름을 확신을 갖고 결정할 수 있었다. 기어이 보상을 거부하는 신영복 선생을 위해 성공회대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처음처럼’ 소주는 처음 책에서 만났지만 수억 병의 소주에 찍히면서 H사장의 또 다른 핸드 메이드 히트 상품이 됐다.
 
②이미지(Image): 고자세로 일관하라
문화·예술인들은 마케팅 대상인 오리지널 문화콘텐츠를 홍보, 광고하기 위해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광고 매체에 적합한 형태로 또 다른 형태의 메타 콘텐츠를 만든다. 이미 설정돼 있는 기존 미디어(광고 등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논법을 따르는 형태의 유형이다.
 
기업으로서는 이 부분에서 문화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이엔드 프리미엄 고급문화에서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속성을 문화가 지니기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중현이나 윤도현 같은 로커(rocker)나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을 광고 모델로 삼을 때는 제품을 앞세워 예술인을 조연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철저하게 문화예술인을 주인공으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면서 다소 거만하고 도도하게 기업 제품을 내세우는 고자세(high profile) 접근이 더 잘 통할 수 있다.
 
사례 신격호 회장과 샤롯데
롯데그룹 총수인 신격호 회장은 문학 지망생이었다. 문청 시절 열심히 했던 독서가 훗날 사업가로서의 변신에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롯데’의 상호는 그가 젊었을 때 읽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도 책 속에 모든 정보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 축적했던 롯데 창업자의 역량으로 인해 오늘날 롯데는 그야말로 ‘입속의 연인’ 이미지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③메시지(Message): 소셜 문화마케팅을 창출하라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문화적 의도를 발신하는 것 자체를 마케팅적 활동으로 여기는 형태다. 또는 문화콘텐츠 판매에 더해 문화적 의미와 의도를 전달하기도 한다.
 
기업은 이 전략을 지렛대로 활용하면 된다. 기부, 나눔, 봉사를 메시지로 전하고 싶다면 기업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아예 마케팅하는 것이다. 마침 소셜 미디어, 소셜 플랫폼은 2010년 들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종전의 기업홍보와 광고가 알려주고 권유하는 계몽주의였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의 문화마케팅은 <제안/발의-경청-집단지성-피드백-수정/보완-공동 재창조-재발신-협업-공유>를 거듭하는 눈높이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이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들의 영혼을 이미 매혹시켜 놓았다. 시나브로 기업이 소셜 문화마케킹이라는 새로운 전법을 만들어보일 때다.
 
사례
클레멘트와 친구들
‘클레멘트(Clemente) 코스’라고 있다. 미국의 인문학자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만들었다. 쇼리스는 시카고대에서 공부했으며 언론인, 사회비평가, 대학강사,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뉴 아메리칸 블루스> <위대한 영혼의 죽음>과 같은 책을 냈다. 그는 1995년부터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운영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 처음 20명의 예비 수강생 중 13명이 강의를 신청했다.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갔다. 초창기에 끝까지 강의를 들었던 17명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는 ‘주먹밥 강좌’가 있다.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다시서기)이다. 다시서기의 ‘성 프란시스 대학’은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다. 다시서기 건물 지하에 있는 교육 공간에서는 매주 월, 수, 금 하루에 두 시간씩 수업이 이루어진다. 영역은 문학, 철학, 예술사, 글쓰기 등이다. 2005년 9월 개강했고 매년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며 관계를 유지한다.

④메타포(Metaphor): 문화를 베개 삼아 꿈꾸어 보라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콘텐츠를 통해 직접적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발신하기보다는 은유적인 메타포를 통해 문화, 예술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마케팅적 효과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는 세계문화를 문화메타포를 통해 설명한 마틴 J. 개논의 접근법과도 상통한다. 개논은 ‘문화 메타포(cultural metaphor)’가 특정 문화권 사람들이 감성적, 인지적으로 표출하는 활동, 현상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메타포에는 그 문화 자체를 대표하는 가치가 내포돼 있다.1)개논은 ‘문화 메타포’라는 개념으로 지구상의 문화를 이해하고 비교한다. 예컨대 미국의 문화 메타포는 미식축구고 독일의 문화 메타포는 심포니, 영국의 문화 메타포는 전통적인 벽돌집,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문화 메타포는 둘 다 투우다. 그러나 같은 투우라도 두 나라의 문화 차이만큼 미묘하고, 때로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한 문화권의 고정된 가치 기준으로 볼 때 황당하고 불합리해 보이는 문화 현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문화를 하나의 상징으로 포착하고 그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면 문화의 본질에 깊숙이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뭔가 미완성인 채로 소비자에게 던질 수 있다. 이른바 ‘오픈 시스템 문화마케팅’이다. 문화콘텐츠 자체가 메타포로서 모호한 상징성을 갖기 때문에 기업도 너무 똑 떨어지는 기계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하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가령 ‘만주 벌판에서 유기농 콩을 키웁니다’ 라는 마케팅보다 ‘만주 벌판에서 비 맞으며 메밀국수를 먹으니 눈물이 나네요’라는 식으로 몽환적인 시적 표현을 동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기업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과 조금은 풀어헤친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문화마케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례 드림보이즈, 빌 게이츠와 손정의
빌 게이츠도 비전을 앞세우고 미션을 뒤세우는 꿈 그리기를 성공의 비결로 꼽고 있다. “나는 10대 시절부터 세계의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한 대씩 설치되는 것을 상상했고, 또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외쳤다. 그게 시작이다.” 여기서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 는 게 개인 자신의 미션 설명문에 해당한다. 그가 1970년대 초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시애틀의 허름한 가게에서 컴퓨터 언어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소프트웨어 개발 과업이라는 미션을 통해 ‘그렇게’ 꿈을 이루어가겠다는 소망을 실천해보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실리콘 밸리 역사에도 등장하는 대단한 행운이 찾아왔다. 게리 킬달이 개발한 DOS라는 컴퓨터 운영체계를 직접 구하지 못한 IBM 중역들이 시애틀로 그야말로 무명인 빌 게이츠를 찾아왔을 때,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은 현란한 꿈이 아니라 훗날 MS-DOS로 발전할 소프트웨어 원천 기술이었다. 결국 빌 게이츠는 비전은 품고 미션은 드러냄으로써 IBM과 손을 잡는 쾌거를 이뤄냈다.
 
동양으로 건너와 보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있다. 그는 “19세에 내 꿈을 명확히 설계했다. 20대에 내 분야에서 이름을 얻고, 30대에 현금 1천억 엔을 모으고, 40대에 정면 승부를 걸고….” 건축가처럼 자신의 꿈과 할 일을 상세 설계한 손정의는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늘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처럼 살고 있다. 성공은 마술처럼 그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졌다. 그는 비전과 미션을 따를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기적과 같다고 열광했다.
 
⑤아우라(Aura): 문화를 남발하지 말고 희소하게 다뤄라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콘텐츠를 이용하지 않고도, 혹은 이용하지 않는 듯 보이게 하면서 의도하는 마케팅적 효과를 일컫는다. 이는 기업들이 스스로 약점을 공개하는 등의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선보이고 있는 역마케팅(Reverse Marketing)이나 마케팅 없는 마케팅 같은 개념과 맥락이 통한다. 기업들이 자사 상품을 많이 판매하기보다 오히려 고객들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디마케팅(demarketing)과도 비슷하다.
 
기업으로서는 문화마케팅에 대한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문화콘텐츠야말로 희소해보일 때 빛을 더 발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다림, 애태움, 설렘이 있는 문화콘텐츠와의 만남을 기업이 주선할 수 있을 때 문화의 신비주의 아우라는 물론 기업의 아우라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매거진으로 치면 월간지, 계간지보다는 언제 나올지 기약 없는 무크(mook)지, 동인지 형태가 문화마케팅에 더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이 월드컵처럼 4년마다 나오거나 바비킴의 신곡이 오는 4분기에 꼭 나온다고 믿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게 문화예술인의 리듬, 라이프스타일과 철저하게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문화마케팅 2.0의 노하우다.
 
사례비즈니스계 베토벤과 서체
애플 신화의 총 설계사 스티브 잡스에겐 비즈니스계의 베토벤이라는 극존칭 찬사가 모자랄 정도다. 대학을 다니다 만 그에겐 숨은 책 인연이 있다. 지구백과와 서체(calligraphy)다. 어릴 때 본 지구백과가 무한한 상상력을 안겨줬다면 대학 시절 자퇴한 후 들었던 서체 과목은 생각 특허권을 그에게 쥐어주었다. 아름다운 서체, 서체 개발, 서체 역사에 빠졌던 그 기분, 그 열정 그대로를 살려 인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로 탄생한 매킨토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창조할 수 있었다. 매킨토시 GUI는 운 나쁘게도 도루의 명수 마이크로소프트에 차여 윈도 브랜드로 세상이 평정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브랜드야 어찌됐든 지금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글자체, 글자꼴, 아이콘과 같은 이미지 중심 운용 체계는 모두 스티브 잡스 덕택이다. 출판계에선 여전히 매킨토시 편집을 숭상하고 있을 정도다. 젊은 날 서체 공부, 서체 책 한 권이 괴짜 귀재를 움직여 정보화 혁명을 일으켰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테고, 맥을 따라한 윈도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거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정규 수업을 듣느라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잡스는 18세기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톡톡 튀는 발명들이 잡스의 이러한 문화 취향에서 길어 올린 시원한 물줄기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가 내뿜는 아우라(혼, 정신)는 지금도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문화생업 실천하는 스마트한 문화마케팅
누구나 하는 문화마케팅에서 조금 더 격상된 문화마케팅으로 변모시키려면 기업들은 단기 업적주의에 몰려 제품과 서비스에 문화를 끌어와 맞추려는 경제관념, 경제동물 방식 접근에 대해 차분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제는 문화예술인 마을과 공유해 협업을 강조하는 소셜 오픈 문화마케팅, 즉 문화마케팅 2.0 시대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나갈 때가 왔다. 문화생업을 실천하는 기업의 스마트한 문화마케팅을 보고 싶다.
1)마틴 J.개논 (지은이), 김선옥, 김숙현, 김화원, 박기순, 성백환, 이두원, 전연희, 정현숙, 최윤희 (옮긴이), ‘세계 문화 이해 - 김치에서 오페라까지, 상징과 비유로 읽는 세계 문화(원제 Understanding Global Cultures: Metaphorical Journeys Through 23 Nations), 커뮤니케이션북스, 2002
 
필자는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석사(MBA, Finance 전공)를,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신여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문화콘텐츠 자원 조사와 관리, 한국문화의 글로벌화, 문화마케팅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이해(2009)> <컬처비즈니스.(2007)> <문화콘텐츠입문(공저, 2006)>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