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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개발과 리스크 관리

뻔한 생각에 덫에서 벗어나자

이정호 | 57호 (2010년 5월 Issue 2)


신제품 개발 과정은 리스크의 백과사전, 지뢰밭과도 같다. 경쟁, 시장, 기술 환경은 물론 내부 프로세스에까지 수많은 불확실성이 산재해 있다. 신제품 개발 리스크는 또한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는 장애물 달리기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길 위에 산재한 장애물(risk)은 분명 경주에 큰 위협이 된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평지를 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체력 소모도 크다. 하지만 이것은 경쟁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애물을 철저히 파악해 힘과 시간을 적절히 안배한다면 후발 주자가 선두 주자를 앞지르기 위한 절호의 찬스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선두업체도 경쟁자를 견제하면서 부동의 우위를 다질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성공적인 신제품 개발을 위해 경영자는 전 과정에 걸쳐 리스크 관리가 효율적·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제품 개발과정에서 대두되는 핵심적인 리스크 요인은 크게 혁신, 시장, 기술, 운영 리스크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신제품 개발과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경영 주체들이 이 네 가지 측면의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I.혁신 리스크
‘최적 혁신수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정책 공유
2009년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간 실패한 10대 제품을 선정해 보도했다. 그 중 1억 달러의 자금과 10년의 시간을 투입해 개발된 1인용 전동스쿠터 세그웨이의 부상과 실패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세그웨이는 2002년 출시 전부터 ‘교통의 대변혁을 가져올 발명품’,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칭송 받으며 각종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출시 후 8년간 불과 5만대가 판매되는 뜻밖의 실패에 직면했다. 원인은 지나친 ‘나 홀로 혁신’에 있었다. 세그웨이를 자동차로 간주한 주정부는 인도의 폭을 넓히는 것을 불허했다. 4950달러짜리 고가의 장비였지만 이에 대한 초기 관공서 시장도 형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개인사용자를 위한 보험조차 개발되지 못했다. 제품 완성도 측면에서 세그웨이는 놀랄 만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인프라나 제도적 수준은 크게 뒤쳐져 있던 것을 최고경영자(CEO)가 간과했다는 게 문제였다.
 
또 다른 혁신실패 사례로 1997년 범세계 위성 휴대 통신(GMPCS·Global Mobile Personal Co-mmunications by Satellite)을 목표로 시작된 ‘이리듐’ 사업을 꼽을 수 있다. 모토로라가 주도해 전 세계 47개사가 참가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지구 궤도 위에 66대의 통신위성을 쏘아 올려 위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골자였다. 혁신적 서비스임이 분명했지만, 위성 발사 같은 설비 투자에만 50억 달러의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데다가 3500달러에 달하는 단말기 가격에 분당 5달러에 달하는 통신료는 시장확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리듐은 휴대폰 로밍 서비스라는 우수한 대체재에 밀려 94억 달러를 손해보고 1999년 파산, 서비스를 중단하고 말았다.
 
이상의 실패사례는 ‘신제품은 과연 어느 수준까지 혁신적이어야 하는가?’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우선 신제품은 ‘새롭다’는 점에서 크든 작든 혁신 유전자(DNA)를 내포하고 있다. 이 혁신은 적절한 수준일 때 시장질서를 재편하고 신시장을 창출한다. 하지만 혁신의 한계 효용을 뛰어넘어 과잉 기술이나 과도한 고급화로 이어질 때는 기업에 큰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즉 ‘최첨단’ ‘최대’ ‘최초’ ‘최고’의 매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혁신의 ‘오버슈팅’이나 얼리어댑터에서 전기 다수 수용자(Early Majority)로 넘어가지 못하는 ‘캐즘(chasm)’의 위험이 다가온다. 반대로 모든 면에서 혁신성이 없는 제품은 ‘유사(me too)’ 제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적당한 혁신성으로 타협한다면 기존 자사 제품 시장의 자기잠식(cannibalization) 위험성조차 있다. 한마디로 혁신의 최적 수준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신 리스크에 대응해 신제품 개발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CEO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혁신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더 커진다. 이노베이터는 리스크를 확실하게 하고, 그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CEO들은 자신만의 철학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사의 신제품이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혁신성을 추구할 것인지, 또 어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어떤 리스크를 기회요인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되고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대내외에 적극 공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내부 개발자들에게는 열정과 변화에의 자극을 제공하고, 외부 이해관계자를 혁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고객의 신뢰와 잠재수요를 불러일으킬 책임이 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기업 CEO 중에는 이상적 혁신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전파하는 ‘비전적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대표적이다. 스스로 독서광이자 소설가 부인을 둔 그는 ‘모든 언어로 된 서적과 인쇄물을 60초 내에 구해볼 수 있게 한다’는 장기 비전을 연차보고서는 물론, 각종 서적이나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전자책(e-book) 단말기 킨들에 대해서도 ‘제품이 아닌 독서체험을 주는 서비스’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아마존 사이트를 ‘온라인 서점만이 아닌 애플의 아이튠스와 같은 플랫폼’이라고 재정의하는 등 CEO 스스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적극적이다.
 
‘관람객 중심의 동물 행동 전시’를 구현해 히트한 일본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의 성공 이면에도 ‘동물들에게는 대단한 능력이 많이 있으므로 동물원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는 고스게 마사오(小菅正夫) 원장의 통찰과 철학이 있었다. 매각설까지 나돌 정도의 경영위기에 대해 사육사 출신인 고스게 원장은 희귀동물을 들여오거나 여타 위락시설을 유치하는 등 비용만 들고 곧 식상해질 ‘뻔한 대응‘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대신 사육을 통해 사육사들이 매일 느끼는 발견이나 감동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스태프들과 논의했다. ‘동물원은 원래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역(易)발상적 시도를 통해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당시 부동의 1위였던 도쿄의 우에노(上野) 동물원을 뛰어넘는 혁신을 달성했다.
 
혁신에 대한 CEO의 통찰력과 정책이 일정 기간 이상의 시행 착오와 성공 신화와 결합될 때 조직 스스로 최적 수준의 혁신성을 선택할 줄 아는 기업문화가 만들어진다. ‘남들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제품만 만들라’는 창업주의 금언을 항상 되새기는 샤프, ‘성공할 수 있는 자유’와 동시에 ‘실패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하는 3M 등 혁신제품으로 유명한 선진기업들은 저마다 CEO의 주도 하에 오랜 기간 공유하는 ‘창의성 신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창조적 기업의 CEO들은 혁신제품 개발에 대한 의지가 위축되거나 타성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도화, 시스템화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관련된 CEO의 일방적 간섭은 실무자들의 창의성을 제약한다. 하지만 상호작용에 기반한 적절한 관여는 프로젝트의 복잡성을 줄여주고 현실 안주를 경계하는 ‘메기형 리더십’(미꾸라지 무리 속에 풀어놓은 메기 한 마리가 무리들을 건강하게 만들듯이 적당한 자극으로 조직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드는 리더십) 구현에 여전히 유효하다. P&G CEO인 A.G. 래플리는 사업부장들에게 R&D 연구원을 채용하는 대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아이디어의 50% 이상을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하라고 지시하는 등 수치적 가이드라인을 부여한다.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CEO가 앞장서 제시함으로써,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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