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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개발과 리스크 관리

뻔한 생각에 덫에서 벗어나자

이정호 | 57호 (2010년 5월 Issue 2)


신제품 개발 과정은 리스크의 백과사전, 지뢰밭과도 같다. 경쟁, 시장, 기술 환경은 물론 내부 프로세스에까지 수많은 불확실성이 산재해 있다. 신제품 개발 리스크는 또한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는 장애물 달리기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길 위에 산재한 장애물(risk)은 분명 경주에 큰 위협이 된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평지를 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체력 소모도 크다. 하지만 이것은 경쟁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애물을 철저히 파악해 힘과 시간을 적절히 안배한다면 후발 주자가 선두 주자를 앞지르기 위한 절호의 찬스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선두업체도 경쟁자를 견제하면서 부동의 우위를 다질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성공적인 신제품 개발을 위해 경영자는 전 과정에 걸쳐 리스크 관리가 효율적·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제품 개발과정에서 대두되는 핵심적인 리스크 요인은 크게 혁신, 시장, 기술, 운영 리스크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신제품 개발과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경영 주체들이 이 네 가지 측면의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I.혁신 리스크
‘최적 혁신수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정책 공유
2009년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간 실패한 10대 제품을 선정해 보도했다. 그 중 1억 달러의 자금과 10년의 시간을 투입해 개발된 1인용 전동스쿠터 세그웨이의 부상과 실패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세그웨이는 2002년 출시 전부터 ‘교통의 대변혁을 가져올 발명품’,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칭송 받으며 각종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출시 후 8년간 불과 5만대가 판매되는 뜻밖의 실패에 직면했다. 원인은 지나친 ‘나 홀로 혁신’에 있었다. 세그웨이를 자동차로 간주한 주정부는 인도의 폭을 넓히는 것을 불허했다. 4950달러짜리 고가의 장비였지만 이에 대한 초기 관공서 시장도 형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개인사용자를 위한 보험조차 개발되지 못했다. 제품 완성도 측면에서 세그웨이는 놀랄 만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인프라나 제도적 수준은 크게 뒤쳐져 있던 것을 최고경영자(CEO)가 간과했다는 게 문제였다.
 
또 다른 혁신실패 사례로 1997년 범세계 위성 휴대 통신(GMPCS·Global Mobile Personal Co-mmunications by Satellite)을 목표로 시작된 ‘이리듐’ 사업을 꼽을 수 있다. 모토로라가 주도해 전 세계 47개사가 참가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지구 궤도 위에 66대의 통신위성을 쏘아 올려 위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골자였다. 혁신적 서비스임이 분명했지만, 위성 발사 같은 설비 투자에만 50억 달러의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데다가 3500달러에 달하는 단말기 가격에 분당 5달러에 달하는 통신료는 시장확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리듐은 휴대폰 로밍 서비스라는 우수한 대체재에 밀려 94억 달러를 손해보고 1999년 파산, 서비스를 중단하고 말았다.
 
이상의 실패사례는 ‘신제품은 과연 어느 수준까지 혁신적이어야 하는가?’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우선 신제품은 ‘새롭다’는 점에서 크든 작든 혁신 유전자(DNA)를 내포하고 있다. 이 혁신은 적절한 수준일 때 시장질서를 재편하고 신시장을 창출한다. 하지만 혁신의 한계 효용을 뛰어넘어 과잉 기술이나 과도한 고급화로 이어질 때는 기업에 큰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즉 ‘최첨단’ ‘최대’ ‘최초’ ‘최고’의 매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혁신의 ‘오버슈팅’이나 얼리어댑터에서 전기 다수 수용자(Early Majority)로 넘어가지 못하는 ‘캐즘(chasm)’의 위험이 다가온다. 반대로 모든 면에서 혁신성이 없는 제품은 ‘유사(me too)’ 제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적당한 혁신성으로 타협한다면 기존 자사 제품 시장의 자기잠식(cannibalization) 위험성조차 있다. 한마디로 혁신의 최적 수준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신 리스크에 대응해 신제품 개발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CEO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혁신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더 커진다. 이노베이터는 리스크를 확실하게 하고, 그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CEO들은 자신만의 철학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사의 신제품이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혁신성을 추구할 것인지, 또 어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어떤 리스크를 기회요인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되고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대내외에 적극 공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내부 개발자들에게는 열정과 변화에의 자극을 제공하고, 외부 이해관계자를 혁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고객의 신뢰와 잠재수요를 불러일으킬 책임이 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기업 CEO 중에는 이상적 혁신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전파하는 ‘비전적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대표적이다. 스스로 독서광이자 소설가 부인을 둔 그는 ‘모든 언어로 된 서적과 인쇄물을 60초 내에 구해볼 수 있게 한다’는 장기 비전을 연차보고서는 물론, 각종 서적이나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전자책(e-book) 단말기 킨들에 대해서도 ‘제품이 아닌 독서체험을 주는 서비스’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아마존 사이트를 ‘온라인 서점만이 아닌 애플의 아이튠스와 같은 플랫폼’이라고 재정의하는 등 CEO 스스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적극적이다.
 
‘관람객 중심의 동물 행동 전시’를 구현해 히트한 일본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의 성공 이면에도 ‘동물들에게는 대단한 능력이 많이 있으므로 동물원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는 고스게 마사오(小菅正夫) 원장의 통찰과 철학이 있었다. 매각설까지 나돌 정도의 경영위기에 대해 사육사 출신인 고스게 원장은 희귀동물을 들여오거나 여타 위락시설을 유치하는 등 비용만 들고 곧 식상해질 ‘뻔한 대응‘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대신 사육을 통해 사육사들이 매일 느끼는 발견이나 감동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스태프들과 논의했다. ‘동물원은 원래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역(易)발상적 시도를 통해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당시 부동의 1위였던 도쿄의 우에노(上野) 동물원을 뛰어넘는 혁신을 달성했다.
 
혁신에 대한 CEO의 통찰력과 정책이 일정 기간 이상의 시행 착오와 성공 신화와 결합될 때 조직 스스로 최적 수준의 혁신성을 선택할 줄 아는 기업문화가 만들어진다. ‘남들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제품만 만들라’는 창업주의 금언을 항상 되새기는 샤프, ‘성공할 수 있는 자유’와 동시에 ‘실패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하는 3M 등 혁신제품으로 유명한 선진기업들은 저마다 CEO의 주도 하에 오랜 기간 공유하는 ‘창의성 신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창조적 기업의 CEO들은 혁신제품 개발에 대한 의지가 위축되거나 타성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도화, 시스템화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관련된 CEO의 일방적 간섭은 실무자들의 창의성을 제약한다. 하지만 상호작용에 기반한 적절한 관여는 프로젝트의 복잡성을 줄여주고 현실 안주를 경계하는 ‘메기형 리더십’(미꾸라지 무리 속에 풀어놓은 메기 한 마리가 무리들을 건강하게 만들듯이 적당한 자극으로 조직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드는 리더십) 구현에 여전히 유효하다. P&G CEO인 A.G. 래플리는 사업부장들에게 R&D 연구원을 채용하는 대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아이디어의 50% 이상을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하라고 지시하는 등 수치적 가이드라인을 부여한다.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CEO가 앞장서 제시함으로써,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II. 시장 리스크
드러나지 않는 95%의 고객 니즈를 파악
신제품 출시의 실패는 대부분 실제적인 고객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비롯됐다. 마케팅 분야 세계적 석학인 필립 코틀러는 “고객 니즈의 이해는 마케팅의 출발점이며, 경영에서 이것이 없으면 마치 장님과 같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고객 니즈가 까다로워지고 있고 구매의사결정이 기능적 속성 이외에 제품의 감성적 특성, 브랜드의 상징성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신제품의 컨셉트를 발굴하거나 테스트하기 위해서 주로 대단위 설문이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장조사는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일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시장조사는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대단위 시장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조건이 통제된 상황에서의 만족도와 가상의 구매의향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마케팅경영자(CMO)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방법은 ‘정성적 평가’다. 하버드대학교의 제럴드 잘트만 교수가 “말로 표현되는 니즈는 5%에 불과하다”고 밝혔듯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니즈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소비행동, 축소되고 있는 평균의 의미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성적 조사방법을 최대한 활용, 기존 조사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신제품 개발 리스크를 크게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정성적 평가와 관련해서는 현재 다양한 툴이 개발돼 있다. 고객의 무의식 속의 니즈를 비(非)언어적, 시각적인 이미지로 유추하여 파악하는 ‘잘트만식 은유 추출 기법(ZMET)’, 제품의 물리적 특성과 고객가치(Values)간의 연결관계를 파악하여 일종의 심리지도(Mental Map)를 만드는 ‘래더링(Laddering)’기법, 고객의 일상생활 속에서 행동과 그 배경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참여 관찰‘, 그리고 전문가 모니터링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P&G는 문화인류학자를 가정에 일정 기간 동안 같이 생활하도록 하는 ‘Living it’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소비자의 생활패턴을 직접 관찰하고 소비자와 쇼핑을 함께 다니며 제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고객 니즈를 파악한다. 일렉트로룩스 역시 문화인류학자가 소비자의 집에 일정기간 직접 방문해서 전기기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정성적 소비자 분석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DBR 55호 Special Report “Market Research” 새로운 소비자 조사법 참고)
 
최근 들어 개방형 혁신과 함께 아예 신제품 출시 전 단계에 걸쳐 고객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법도 각광받고 있다. 소위 ‘집단적 소비자 참여(CCC·Collective Customer Commitment)’가 그것으로, 수많은 고객들이 직접 제품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개발·생산에 들어가야 할 제품 콘셉트를 선정한다. 또한, 이들의 구매의향에 따라서 초기 제품의 재고 수준을 결정하고 이에 따른 고정 비용·초기 판매수익 분석을 사전에 실시하여 수익분기점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제품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미국 패션업체 스레드리스(Threadless)는 CCC의 대표적 사례다. 스레드리스는 12만명의 온라인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이들이 제안한 3만 5000개 정도의 디자인 풀(Pool)을 보유하고 있다. 주당 약 400∼600개의 디자인이 등록되고 있으며 제안된 디자인은 평균 1500명의 회원들이 5점 척도로 집단평가를 한다. 정량적 평가와 동시에 고객들에게 사전 주문을 받아 수익분기점을 넘기기에 충분한 주문량이 몰려드는 디자인 4∼6개를 골라 최종 생산에 들어간다. 이 같은 검증 과정을 통해 스레드리스는 수백, 수천 개의 디자인이 사장되는 패션시장에서 놀라운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1) 이 방법은 시시각각 트렌드가 변하는 유행 산업과 고객군이 매우 다양한 산업에서 주효하다. 특히 이전에 고객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때 리스크 감소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III. 기술 리스크
‘참여’와 ‘가시화’가 성공의 관건
신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단계에서도 무수히 많은 실패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나타난 위험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다만 실패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실패는 특히 개발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공유가 되지 못해 제품을 중복 개발하거나, 중요한 정보의 누락이나 착오로 인해 발생할 때가 많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와 1999년 화성 탐사선 ‘폴라랜드’의 궤도 진입 실패 등 NASA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두 사건은 개발부서간 단위 착오에서 생긴 사고였다. 개발 과정에서 ‘센티미터’와 ‘인치’가 혼동된 부품이 챌린저 호에, ‘그램’대신 ‘파운드’로 잘못 계산된 로켓이 화성 탐사선에 장착되면서 세기의 재앙이 만들어졌다.
 
제품 개발과 제조 단계에서 발생하는 실패 사례들을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은 ‘소통’의 부재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서간 갈등은 본래 기획했던 혁신적인 효용(가치)이 구현되지 못하게 한다. 부서간 착오와 맹신은 개발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 이런 모든 위험요인들은 결국 개발자와 생산자간, 내부와 상위 의사결정자간, 내부와 외부고객간의 소통 부재가 가져온 리스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거나 관리하는 것 못지않게 각 부서간 ‘참여’를 도모하고 업무 프로세스의 ‘가시화’를 확보하는 데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우선 ‘참여’는 제품 개발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서로가 아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넘어, 서로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에 따른 행위를 하는 ‘실제적 참여(Commitment)’ 수준까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물론 입장이 다른 부서간 일체감 형성이란 쉽지 않다. 최근 생산 기술분야가 제품 설계 단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실제적 참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생산 부서가 세부적인 가공조건 등을 아무리 제품 설계자에게 말해봐야, 서로간 기본적인 용어 조차 통일돼 있지 않아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다반사일 테니 말이다. 따라서, 개발 설계와 생산 간의 ‘실제적 참여’ 문제는 범용 생산기술과 지식을 사용되는 용어 정의부터 미리 정리해서 설계 표준서에 반영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렇게 되면 설계자가 특별히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제품 개발에 생산기술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 사례로 마쓰시타를 들 수 있다. 이 회사에선 제조요건을 고려한 부품의 3차원 데이터를 라이브러리(library)화해서 설계부분이 바로 적용될 수 있게 한다. 일본의 아이싱정기도 생산 기술부문이 제조요건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해서 설계부문에게 제공함으로써 참여를 실제화하고 시스템화했다.
 
‘가시화’는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간의 상호이해도를 높이고 실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툴이 된다.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이해하면서 일의 중복을 없애는 한편, 상호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가시화’에서는 특히 IT 기술이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일례로 앞서 언급했던 제품 설계와 생산기술 부서간의 상호이해를 생각해보자. 제품개발 단계에서 3차원 CAD나 시뮬레이터 등이 가시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신제품의 성능이나 디자인을 점검하는 데 있어 설계가 3차원화 되고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지면서 개발 초기단계부터 생산 기술자가 설계검토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일반 제조산업을 비롯해 디자인 산업이나 패션 산업처럼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산업에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IV.운영 리스크
제휴를 통한 신제품 가치 극대화
MIT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에게 ‘100달러 노트북’을 공급하자는 취지의 OLPC(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출시가 임박할수록 공급가격은 130달러, 148달러, 176달러, 188달러, 200달러로 번번이 인상되었다. 니켈, 실리콘과 같은 소재가격의 인상과 환율 변동이 근본 원인이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저가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본래의 혁신성을 살리지 못한 채 실패 사례로 남고 말았다.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품질이나 성능 외 매장 이미지나 구입과 관련된 총체적 편의성이 구매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조달이나 유통 전반에 관련된 운영 리스크 관리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조달이 정해진 시간, 비용, 품질을 충족하지 못할 때 신제품의 ‘적기 시장화(time to market)’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용 절감을 넘어 신상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스마트 소싱(smart sourcing)’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스마트 소싱은 통상적인 갑을(甲乙) 관계를 뛰어넘어 공급업체와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상호 계약서 상의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 시스템 등까지 찾아내 개선하는 게 주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의 파트너가 되기에 적합한 공급업체를 고르는 안목과 장기적 시각에서 강한 신뢰와 전폭적인 협력, 이들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지식경영 인프라가 필요하다.
유통업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차별화된 혁신 신제품의 생산 못지않게, 신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모처럼 달성한 혁신의 취지를 설득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신제품 개발의 운영 리스크 관리는 조달부터 유통까지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전방위적 관리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생태계 관점의 제휴와 협력을 통해 가치사슬 전반의 위험 인자를 포착, 공동으로 대응해 리스크를 최소화함으로써 신제품 성공가능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혁신을 달성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기업의 최고조달경영자(CPO)나 CMO들은 조달 활동과 생산활동, 생산활동과 마케팅, 유통이 긴밀하게 일체화하도록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품 개발과 생산, 부품 조달이라는 제조의 전 과정에서 사내외 치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전략적으로 부족한 역량이 무엇이며 누가 그 역량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과거처럼 부품업체와의 힘겨루기나 부품 업체간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공급자의 수를 줄이고 그들이 서로 협력하게 하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또한 확산되고 있다. 즉, 계획과 성과를 수시로 비교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발신하고 외부 공급자 및 유통업체들을 가치 창조에 자발적으로 동참시키려 하고 있다.
 
P&G와 월마트간 효율적 소비자 대응(ECR·Efficient Consumer Response) 사례는 기존 유통점과의 제휴 수준을 높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이다. P&G는 1987년 월마트와 정보 공유 제휴를 맺으면서 기존의 대립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거래, 운영, 전략의 세 수준에서 양사 정보시스템을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1991년에는 월마트 판매시점관리(POS) 시스템을 P&G와 연계시킴으로써 고객의 행태 변화를 즉각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P&G가 축적한 소비자 연구결과를 월마트와 공유했다. 심지어 P&G는 신제품 개발도 월마트와 협력해 내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출시한 ‘베네토’ 커피다. 당시 P&G는 중소경쟁사인 시애틀스 베스트커피가 월마트에 P&G의 폴저 브랜드보다는 2달러 비싸고 동사의 프리미엄 커피인 마일스톤 브랜드보다는 2달러 싼 중간 가격대의 커피를 제안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P&G는 월마트가 실시한 소비자 입맛 테스트를 지원하는 등 월마트와 긴밀히 공조해 ‘베네토’ 커피라는 신제품을 내놓는다. 베네토는 큰 인기를 끌며 월마트내 중간 가격대 커피 부문에서 매출액 1위를 달성했다. 이 같은 ECR 활동으로 인해 P&G는 ‘신제품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제품 개발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경영환경 이슈들
여타의 경영활동과 마찬가지로 신제품 개발 역시 급변하는 경영 및 경쟁, 시장환경에 노출돼 있다. 경영자들은 앞서 언급한 주요 리스크에 더해 이들 잠재적 환경변화가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최근에는 신제품 자체의 속성이 변화하고 개발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리스크 요인도 부각되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있어서 특징적인 변화와 파생되는 리스크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신제품 개발과정의 글로벌화’이다. 선진기업을 중심으로 생산기능은 물론이고 연구와 디자인 등의 업무까지 해외로 옮겨서 진행하는 신제품 개발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미국 애플 본사는 제품 기획과 판매 일부만을 담당하고 나머지 기업활동은 세계 각지의 전문기업들에 의뢰해 신속한 개발과 저비용을 실현하고 있다. 신흥국 시장 확대 및 가격 경쟁으로 인해 향후 이와 유사한 개발 방식은 더욱 일반화될 전망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의사소통의 문제를 위시해 각종 글로벌 리스크를 가중시킬 것이다. 실제로 에어버스는 2006년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4개국 합작으로 개발 중이던 초대형 항공기 A380의 납기가 지연되면서, 추후 벌어진 보잉과의 수주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도면을 설계한 프랑스 공장과 2D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설계한 독일 공장에서 만든 부품이 서로 안 맞았던 게 화근이었다. 심지어 영국에서 제작한 날개는 무게가 설계 내용과 달라 쓰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글로벌 리스크 요인에 대한 사전조사 및 시뮬레이션을 통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이밖에 소통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글로벌 지식경영시스템의 정비, 책임소재 명확화 및 의사결정 채널의 최적화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밀누설과 기술축적 저해의 부작용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에도 고심해야 한다.
 
두 번째 이슈로 ‘제품의 소프트화’를 들 수 있다. 수요의 변화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제품의 수명주기와 개발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이러한 트렌디한 변화 속에서 신제품 개발도 본질적인 속성을 바꾸는 혁신적인 개발보다 디자인이나 감성적 기능 등 소프트한 면을 부가시키면서 차별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볼 때 이 같은 상황변화 속에서 더욱 중시되는 것은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는 스피드’이다. 즉,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하되, 개발 단계와 제품출시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짧게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수요를 반영한 견본(prototype)을 신속하게 만들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재(再)반영해 다듬을 수 있는 유연한 체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기업 IDEO는 소위 ‘신속한 견본 제작(rapid prototyping)’ 즉, 가급적 빨리 아이디어를 평가 가능한 형태로 형상화하는 프로세스를 매우 중시한다. 즉,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마분지나 쿠킹 호일, 비닐 따위로 유사한 형태의 견본을 만들어 직접 쥐어보거나 가상으로 작동해 보면서 아이디어를 다듬고 문제점을 미리 점검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디자인 보안 문제다. 디자인과 브랜드 등에 대한 소유권이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에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보안은 향후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중요하게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 소니는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3 개발 과정에서 진동기능의 특허를 가진 이머전과의 분쟁에 휘말려 진동기능을 뺀 채로 출시했다. 결국 이로 인해 경쟁제품인 마이크로소프트 Xbox 360과의 초기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한 바 있다. 이처럼 출시 시기가 중요한 제품 카테고리일수록, 소비자에게 중요한 디자인이나 핵심 기술, 브랜드 등에 대한 법률적 관계는 신제품 개발과정 초기단계에서부터 분쟁의 소지 없이 관리돼야 한다.
 
신제품 개발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변화 요인으로 ‘소비자 파워 확대‘를 들 수 있다. 모바일을 비롯한 새로운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소비자로의 정보편중 현상은 점차 심화되면서 소비자 권력화 경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언제 어디서든지 온라인 상태로의 접속이 더욱 용이해짐에 따라 소비자 불만 확산 리스크 또한 배가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리스크 요인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출시 지연, 요구사항 미반영 등으로 인한 일부 고객들의 불만이 다소 와전된 형태로 확산돼, 급기야 제품 실패로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자 파워 확대는 한편으로는 핵심 우군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충성도 높은 핵심 고객을 제품 개발 단계에서 활용하는 식으로 우군화할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레고는 자사 제품을 해킹한 사용자들과 반목하기보다는 사용자의 창의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그 결과 해킹의 공식적 권한을 획득한 해커들이 비(非)공인 자작부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마니아 사이트까지 만들 정도로 의외의 효과를 거둔 적이 있다.
 
올림픽 허들 선수는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결코 자세를 흩뜨리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각종 불확실 요인이 대두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가 증가할수록 신제품 개발에 능한 프로 기업과 아마추어 기업간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다. 경영자들이 신제품 개발의 최전선에 서서 장기적 안목과 큰 그림 하에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때 신제품 개발 리스크는 위협 요인만이 아닌 신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멘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정호 수석연구원은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마케팅 전공)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마케팅 전략과 소비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정태수 연구원은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와 포항공대 산업공학과를 거쳐 2004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마케팅과 경영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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