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중심을 바꾼 위대한 혁명들

43호 (2009년 10월 Issue 2)

1900년대 초 세계 최고의 배영 선수들은 모두 ‘1분의 벽’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그 벽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1935년 8월 올림픽도 아닌 고등학교 수영 대회에서 17세의 미국 소년이 사상 최초로 ‘1분의 한계’를 깼다. 아돌프 키에퍼는 58.5초로 일리노이 주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1년 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이후 15년 동안 아무도 그의 기록을 깨지 못했다.
 
키에퍼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과거와 전혀 다른 독특한 턴 방식, 즉 플립턴(flip-turn)이다. 기존의 배영 선수들은 전부 손으로 벽을 짚고 턴을 했다. 벽을 짚으면 턴을 하는 순간 선수가 그간 보유했던 운동량이 모두 사라진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벽에 도달하기 1m 전 수중에서 스스로 턴을 하는 플립턴은 신체의 무게 중심이 둥글게 회전하기 때문에 기존의 운동량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다. 에너지 손실 없이 최대한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키에퍼의 플립턴은 이후 자유형과 접영 등 모든 종목에 쓰이기 시작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높이뛰기 결승전에서 딕 포스베리가 2분 2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을 때 세계는 놀랐다. 그가 바(bar)를 넘을 때 몸을 뒤로 누인 후 허리를 활처럼 휘어 넘는 기술, 즉 배면뛰기를 최초로 시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선수들은 가위뛰기나 ‘벨리 롤 오버’ 방식으로 불리는 앞으로 뛰기만을 시도했다. 누워서 뛴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포스베리의 배면뛰기는 그 모습만으로도 큰 충격을 줬다.
 
배면뛰기는 가위뛰기나 앞으로 뛰기와 달리 무게 중심이 신체 밖에 위치한다. 이 방식으로는 신체의 한계보다 최대 10cm 더 높게 뛸 수 있다.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의 방식을 모방했고, 배면뛰기는 아직까지 현대 육상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존 운동량의 손실을 최소화해 수영 역사에서 속도 혁명을 일으킨 ‘키에퍼의 플립턴’, 높이뛰기 역사에 혁명을 일으킨 ‘포스베리의 배면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게 중심을 바꿨다는 점이다. 모두가 똑같은 무게 중심에서 승부를 겨루고 있을 때, 이들은 새로운 무게 중심을 찾아내는 혁명에 성공했다.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 혁명적 기업들을 보면 역시 무게 중심의 이동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닌텐도다. 소니, 마이크로소프트(MS), 세가, 반다이 등 경쟁자들이 고성능과 고화질에만 집착할 때 닌텐도는 다른 곳에 관심을 뒀다. 즉 ‘가치’의 무게 중심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게임기는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소모적 매체로 지탄받았다. 하지만 닌텐도 DS가 선을 보이자 이제 게임기는 두뇌를 개발시키는 등 생산적이고 유익한 매체로 평가받고 있다.
 
닌텐도가 주목한 또 하나의 가치는 ‘관계’다. 과거의 게임은 가족 간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아이들은 게임에 몰두해 부모와 대화하는 걸 꺼렸다. 하지만 닌텐도 위는 게임을 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야 하는 게임기였다.
 
폐쇄 위기를 벗어나 연간 30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아사히야마는 동물원 관람의 무게 중심을 동물의 ‘형체’ 전시에서 ‘행동’ 전시로 바꿨다. 즉 오랑우탄의 우리 밖에 먹이를 놓은 후 오랑우탄이 먹이를 먹기 위해 외줄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동물의 야생 생활을 그대로 보여줬다. 사람들은 기존 동물원이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고 관람객 수는 급증했다.
 
도시를 발전시키는 방법도 같다. 전남 함평은 인구 3만8000명의 작고 가난한 도시였다. 산업, 관광 자원은 전무했고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했다. 1998년 부임한 이석형 군수는 함평이라는 공간의 무게 중심을 완전히 바꿨다. 모두가 ‘땅’에서 나는 농작물 재배만을 생각할 때 그는 ‘하늘’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함평 나비축제, 세계 나비 엑스포, 나비 박물관 건립 등 나비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이벤트를 열어 도시 전체를 나비로 가득 채웠다. 나비가 함평에 가져다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1998년 18만 명에 불과했던 방문객이 2008년 317만 명으로 급증했다. 나비 축제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연간 100억 원대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지점에 무게 중심을 둔다면 위대한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무게 중심을 바꿀 때 새로운 혁명이 탄생한다. 대담하고 놀라운 발전을 원한다면 먼저 무게 중심을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 회사의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보자.
동아비즈니스리뷰 330호 플라스틱 순환경제 2021년 10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