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전문가들은 전화나 인터넷에 의존하지 말고 가능하면 협상 상대방을 직접 만나라고 권한다. 전자 매체가 편리하긴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때와 달리 전자 매체에는 중요한 정보 전달과 관계 형성을 돕는 시각적 신호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몸짓과 표정을 파악할 수 없는 원격 협의에서 상대방의 어조를 정확히 읽어내거나 친밀감을 쌓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협상 당사자들은 비(非)언어적 행동을 통해 정확히 무엇을 파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을까? 비언어적 행동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면 협상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비언어적 행동이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음 3가지 상황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흉내, 낼까 말까?
면접을 앞둔 당신이 회의실로 들어섰다고 가정하자. 면접관은 당신을 반갑게 맞이한 후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으라고 권한다. 20분이 흐르고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다 우연히 면접관의 자세가 당신의 눈에 들어온다.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모습. 문제는 당신도 면접관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뒤늦게 그 점을 깨달은 당신은 갑자기 앉은 자세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자세를 바꿀지 말지 고민하며 안절부절못한다.
마이클 윌러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각각 다른 자세를 취했던 2명 이상의 사람들이 조금씩 자세를 바꿔 모두 같은 자세를 취하기까지는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자세나 몸짓을 따라 하면서 숨 쉬는 패턴과 심장 박동 수까지 비슷해진다.
당신이 상대의 행동을 따라 했거나 혹은 상대가 당신의 행동을 따라 했다면, 당황하거나 바보 같다고 느낄 게 아니라 축하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서로 따라 하기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모방이 서로 친밀감과 친분을 쌓고,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한다는 신호라는 사실이다. 또한 모방은 함께 있는 자리를 덜 어색하게 만들어주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타냐 차트랜드 미국 듀크대 교수는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모방을 하는 사람의 말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모방이 지닌 장점을 알고 있는 협상가는 상대방이 하는 몸짓을 의도적으로 따라 한다. 협상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친밀감을 쌓고, 다른 장점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DBR TIP] 얼굴과 신뢰성의 상관관계
우리는 사람을 지나치게 잘 믿을 뿐 아니라, 정직성과는 무관한 부분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실수도 종종 저지른다. 프린스턴 연구소의 니콜라스 오스터호프와 알렉산더 토도로프가 실시한 연구를 보자. 이들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인위적으로 표정을 조작한 여러 장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자, 참여자들은 눈두덩이 넓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사람에게 믿음이 간다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눈두덩이 좁고 광대뼈가 낮은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왜 얼굴에 따라 신뢰성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걸까?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믿음이 간다는 평가를 받은 얼굴형은 금방이라도 미소를 지을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반면 후자는 화를 낼 듯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외형적 특성과 그 사람의 신뢰도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즉 우리는 상대방의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
이미지,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미지의 위력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보자. 독일 출신인 크리스티안 카를 게르하르츠라이터는 수년간 미국에 살며 자신이 록펠러 가문 출신이라고 거짓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말쑥한 차림새를 무기로 내세웠고, 사람들은 그가 정말 록펠러 가문 사람이라고 믿었다. 경험과 능력이 모두 부족했음에도 그는 투자회사의 고위 임원이 됐고,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에 칼럼을 썼으며, 결혼까지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무턱대고 믿는다. 이후 깜짝 놀랄 만한 증거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그 믿음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게르하르츠라이터의 이야기는 시각적 신호가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협상 상대방이 믿을 만한가를 평가할 때, 특정한 비언어 신호가 다른 비언어 신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모리스 슈바이처 와튼 MBA스쿨 교수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과 그 사람이 전달하는 내용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즉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No)’라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협상 상대방의 신뢰도를 평가할 때 비언어적 신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맥스 베이저먼 하버드대 교수는 상대방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려면,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같은 질문을 대화 중간에 다른 방식으로 여러 차례 물어 대답에 일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방이 과연 당신의 마음을 읽을까?
까다로운 사건의 법정 변호를 앞둔 변호사가 있다. 그의 의뢰인은 좋은 사람이지만 성격이 급한 편이라 가끔 짜증이 날 만큼 지나치게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변호사는 고객에게 정중히 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질문에 최대한 답변해주려 애쓰지만, 솔직히 의뢰인의 행동이 영 못마땅하다. 그는 의뢰인이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눈치채지 않을까 불안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 앞에서도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점은 노련한 협상가조차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상대방에게 인내를 보여주고, 친근하고 참을성 있게 대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을 숨기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자신의 진심과는 다른 감정을 얼마나 능숙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폴 에크먼 교수는 은연중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비언어적 행동을 ‘미세 표정(micro-expressions)’이라고 칭했다. 미세 표정은 얼굴을 붉히거나 찌푸리는 등 순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진심을 드러내는 신호다. 문제는 이 ‘미세 표정’을 보통 사람이 쉽게 파악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캐나다 핼리팩스 소재 댈하우지대 교수인 스티븐 포터와 린 텐 브링케는 최근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두 교수는 실험 전 참가자들을 2개 집단, 즉 반응을 보일 때 진심을 드러내는 집단과 거짓된 표정을 짓는 집단으로 구분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감정 표현이 담긴 사진과 무표정한 사진을 연속으로 보여준 후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거짓 표정을 지은 집단이 각 사진을 보고 지은 표정에는 일관성이 없음이 드러났다. 진심을 드러낸 집단과 달리, 거짓 표정 집단은 사진을 본 후 눈을 깜박일 때가 많았다. 특히 이들은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을 숨기는 걸 더 어려워했다. 즉 사람이 슬프거나 화난 척을 하기보다는 기쁜 척을 하기가 더 쉽다는 뜻이다. 문제는 특별히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거짓 표정을 간파해낼 가능성은 단순한 확률 수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두 교수는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도 어렵지만, 상대방이 그 감정이 거짓임을 눈치채기는 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신이 밝은 표정을 짓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테니 안심하라. 더불어 복잡한 감정이 들수록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말을 하는 연습도 해둬야 한다. 협상에서는 행동보다 말이 중요할 때가 많다.
편집자주 이 글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www.pon.harvard.edu)’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Negotiation)>에 실린 ‘How Body Language Affects Negotiation’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NYT 신디케이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