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성장의 페달을 멈추면 곧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사업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시장과 사업 영역을 개척해야 합니다. 신사업 창출을 고민하고 계신 비즈니스 리더 분들을 위해 신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체크리스트’와 ‘사업성 평가 방법론’을 제시해드립니다. 또 체계적인 신사업 기획 방법론과 실제 기업들의 사례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내년 사업 계획 작성에 골몰하고 계신 비즈니스 리더 여러분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우수한 기업이라도 30년 후에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핵심 기술은 진부해지고, 시장은 점점 포화 상태로 변하며, 산업 자체가 쇠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업이 끊임없이 신사업을 추진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애플은 침체 일로인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에서 아이팟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부활에 성공했다. GE와 IBM 역시 서비스 분야의 신사업을 추진해 성장 모멘텀을 잡았다.
그러나 신사업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로 끝날 때가 더 많다. 더 큰 문제는 신사업 하나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존망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쌍용, 진로 등 국내 우량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이유도 바로 잘못된 신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실패의 위험도 큰 신사업은 최고경영자(CEO)에게도 부담을 준다. CEO가 반드시 알아야 할 신사업 평가 이슈가 중요한 이유다.
데이터와 개인적 신념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CEO에게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도록 한다. 많은 CEO들이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통계 자료나 숫자에 연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숫자가 지니는 명확성과 가시성은 의사결정권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광범위한 시장 조사와 계량 분석으로 도출된 숫자는 모든 사람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물로 인정한다. CEO들의 최종 의사결정에서 숫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문제는 숫자가 도출되기 전의 시장 상황보다 결과로 나타난 숫자 그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가 전형적인 본말 전도라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3년 안에 매출 3000억 원이 가능한가?”라고 묻는 CEO에게는 냉철한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CEO는 매출의 ‘결과’보다 매출을 일으키는 ‘전략’의 기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CEO의 의사결정에서 숫자 못지않은 힘을 발휘하는 요인은 CEO의 자기중심적 독선이다. 인간은 누구나 심리적으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응하는 대상은 쉽게 믿지만, 자신의 생각과 모순되는 대상은 쉽게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다.
시장의 변화보다 조직의 역사나 자신의 경험과 취향에 근거한 CEO의 신념이 확증 편향과 결합하면 부정적 독선이 되기 쉽다. 삼성의 자동차 신사업 실패, 코카콜라의 게토레이 인수 포기처럼 CEO의 독선으로 인한 신사업 실패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의 참모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신사업을 평가해야 하는가?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블링크>를 보면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연주단원을 뽑는 오디션에서 장막을 치고 심사를 하기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즉 예전에 비해 여성 및 흑인 단원의 비율이 급증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도입한 장막 오디션은 피부색과 성별에 관한 편견을 없앴다. 좋은 소리라는 평가의 본질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심사위원의 정확한 판단을 도왔기 때문이다.
성공한 신사업도 막상 그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사업성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을 때가 있다. CEO들이 신사업을 포장하고 있는 계량적 자료나 개인적 신념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사업 추진을 결정하는 CEO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사업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장막을 설치했듯, CEO들에게도 신사업의 올바른 사업성을 평가할 수 있는 의사결정 도구가 필요하다.
올바른 신사업 의사결정을 위한 CEO의 4가지 질문
사업은 크게 ‘고객’ ‘경쟁’ ‘역량’이라는 3가지 요인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모든 CEO들은 이러한 요인을 살펴보고 사업의 가능성을 평가한다. 그러나 각 요인의 핵심을 짚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올바른 의사결정과 잘못된 의사결정이 갈린다. 그렇다면 신사업의 사업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핵심 질문은 무엇일까.
1 통계 자료 너머에 있는 고객의 마음속 소리를 들었는가?
일반적인 시장 분석 자료가 갖는 맹점은 문항을 만들고 자료를 만드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고객의 요구를 단정 짓는다는 점이다. 이런 자료로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거나, 고객이 말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내재 요구, 즉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 스위트 스팟을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정성적 소비자 조사다. 표적 집단 면접, 래더링(초코파이의 정[情] 캠페인처럼 제품의 기능적 만족이 아니라 상위 가치를 부여해 차별화를 꾀하는 방식), 참여 관찰법처럼 고객의 표현을 직접 듣고, 고객과 함께 호흡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CEO는 고객의 욕구를 포착할 때 정량적 자료가 아니라 정성적 방법을 통해 도출한 결과를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많은 선진 기업들은 정성적인 소비자 조사를 의사결정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한다.
인텔의 사례를 보자. 인텔은 첨단 기술의 개발만으로 고객의 요구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다.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과 경험에 기초해 제품 개발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인텔은 PPR(People and Practice Research)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PPR은 심리학자, 인류학자, 마케팅 담당자, 개발 담당자, 재무 담당자가 한 팀을 구성해 신세대 가족, 알래스카 어부, 브라질 빈민처럼 전 세계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섞여 지내며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인텔은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와 열망을 이해함으로써 고객 지향적인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인텔의 주력 노트북 PC 플랫폼인 센트리노 개발도 사람들이 휴대용 PC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활용한 사례다. 인텔은 지금도 TV와 PC 기술이 통합될 것인지, 베이비붐 세대가 현재의 TV 및 PC 사용 습관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스마트폰이 PC 기능의 대부분을 따라잡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고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2 기존의 게임 법칙을 바꿀 수 있는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발명해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이미 경쟁업체가 있고 이들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경쟁의 측면에서 CEO들이 의사결정 기준으로 활용하는 요인은 경쟁사 대비 매출 확대 방안이나 원가 절감 방안이다. CEO들은 자사가 경쟁사와 어떻게 다른 차별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경쟁사보다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