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조직은 외부 환경 변화에 발맞춰 진화를 계속했다. 대표적인 기업 조직의 진화는 1900년대 초반에 이뤄졌다. 철도, 내연 기관 등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도적인 기업가들은 대량생산에 가장 효과적인 조직 체계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중앙 집중적 통제가 이뤄지는 조직 체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U-폼(Unitary-form)’ 형태의 조직이 나타났다. 모델 T를 만들던 포드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모든 자원 배분과 통제에 대한 의사결정은 중앙에서 이뤄지고, 하부 조직은 일사분란하게 상부의 명령을 집행하는 체계다.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U-폼이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한 기업이 여러 제품을 생산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이런 환경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M-폼(Multidivisional-form)’이다. 포드에 대항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차종을 여러 사업부에서 생산한 GM의 조직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의 대기업 대부분은 M-폼 형태의 조직 구조를 갖고 있다. 엔지니어링 회사인 ABB처럼 지역 본부와 제품별 사업부 양쪽 모두의 통제를 받는 매트릭스 조직도 등장했지만, 이는 M-폼의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M-폼 이후 미래의 조직은 어떤 형태로 진화할까. 레이몬드 마일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등은 저명 경영저널인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 리뷰>(Vol. 51, No. 4)에 기고한 글에서 미래의 조직이 ‘I-폼’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I’는 ‘혁신(Innovation)’을 뜻한다. I-폼은 대량생산과 맞춤형 생산에 이어 이제 기업들이 항구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의 조합에서 나온다. 따라서 기업 내부 역량에만 의존하는 폐쇄형 체제로는 항구적인 혁신의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다른 기업과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I-폼이다. 이 형태의 조직에서 개별 기업들은 네트워크를 이뤄 협력하며 혁신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신디콤(syndicom)’을 사례로 제시했다. 외과의사와 의료장비 제조업체 등은 신디콤이란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신상품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의사와 개발자들이 지분 형태의 보상을 받으며 작업을 진행해 신제품을 개발한다. IBM이 주도해 2006년 설립한 ‘블레이드(Blade.org)’도 I-폼의 사례로 제시됐다. 이 네트워크에는 개방형 블레이드 서버 개발자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이미 60개의 새로운 솔루션이 기업 간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고 한다.
I-폼 조직은 현재 수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지식이나 기술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는 정보기술(IT)이나 기술 집약형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산업 분야에서 신규 진입자가 속속 등장하고 지식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I-폼은 제조업 등 전통 산업 분야에서도 혁신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I-폼 형태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연구팀은 내부 기술 유출 우려의 불식, 상대방에 대한 신뢰, 원만한 협력을 위한 노하우 확보, 효율적인 지배구조 확립 등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면 I-폼 조직은 결코 성과를 낼 수 없다. 또 자기 몫만 챙기려는 이기심이 발동하면 네트워크는 쉽게 깨진다. 그러나 개방형 혁신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 조직의 진화 모델로 새롭게 제시된 I-폼은 지속 성장의 유력한 대안으로 신중하게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