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보다 해결!” 긍정은 힘이 세다

41호 (2009년 9월 Issue 2)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보자. 딱 5초 동안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 자, 여러분은 정말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코끼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필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A를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더욱 A를 생각하게 돼 있다.
 
지난 호에서 배드 뉴스(bad news)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상상을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위기관리에 부정의 기술만 필요할까? 아니다. 조직이 갖고 있는 배드 뉴스에 대해 내•외부에 커뮤니케이션 할 때는 반대로 ‘긍정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빛을 발하는 긍정의 기술
다시 코끼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미국의 진보주의자이자 인지언어학을 통해 정치를 분석하는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통해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 공화당을 공격하기 위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유권자들은 더욱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부정하고자 하는 대상을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아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사례 1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논란으로 전국이 한창 들끓던 때,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방송 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어도 절대 안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곧바로 각종 언론에 기사화됐고, 오히려 국민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물론 심 의원이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하려 했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발언 역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당시 국민들에게 가장 부정적인 단어 중 하나는 바로 ‘광우병’이었다. 그런데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광우병’을 부정하는 프레임을 사용하게 되면, 듣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과 부정적 견해가 더 강해지는 법이다.
 
사례 2 2008년 4월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발언 및 발표를 살펴보자. “최악의 선거, 정당 정치의 후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고 또 다른 피해자는 민노당.” “정치 불신이 가중된 책임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있다.” “정책 선거는 실종되고 민생은 뒷전이 됐다.” “민노당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 상대방의 프레임 안에서 ‘코끼리’를 부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국민을 위할 것인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여당을 부정하는 이미지만 강하게 부각시킬 뿐이다.
 
사례 3 2006년 2월 28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교육, 사회, 문화 대정부 질문이 있었다. 이날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간에 설전이 벌어졌고, 결국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말았다. 당시 하이라이트 한 장면. 이 전 총리와 홍 의원 간의 설전 도중 홍 의원이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을 놓고 “나는 총리처럼 브로커하고 놀아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에 흥분한 이 총리는 “인신공격하지 말라”며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냐, 사실을 갖고 말하라”고 응수했다. 자신의 입으로 다시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냐”고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는 셈이 된다. 단순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 후 자신의 결백을 말하는 게 더 낫다.
 
이 사례들에서 본 것처럼 부정하고자 하는 대상(광우병, 브로커, 편파적 운영 등)을 부정하게 되면, 긍정이 되기보다는 더욱 강한 부정적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앞의 사례들처럼 언론의 부정적 헤드라인을 장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처럼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식의 오류는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위기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해결책(긍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부정적 사건과 거리를 두려는(부정을 부정하는) 해명으로 시간을 써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의 실수나 잘못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다면 언론이나 대중이 오해하는 점에 대해 명확하게 바로잡되, 변명조로 길어져서는 안 된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변명만 하고 있을 때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더욱 ‘매를 버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7가지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사건이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기업이 점수를 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실제 위기관리를 할 때도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해결책을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논의하고 빨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기업이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 해결책 7가지를 살펴보자.
 
①입장 위기 사건 발생 후 회사의 입장을 빨리 정리해 발표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입장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사건 발생에 대해 일단 해당 기업이 인지했으며, 현재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발표라도 해줘야 한다. 이때 기업은 무엇이(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 일어났는지 정도의 기본적 사항은 확인해줘야 한다. 다만 왜(why) 사건이 발생했는지, 어떻게(how) 보상할 것인지, 누구의(who) 책임인지에 대한 내용은 섣부르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므로 현실적으로 빨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의 입장이 명백하다면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발표해야 한다.
②문의 리콜이나 제품 이상 등의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들은 궁금한 게 많아진다. 기업은 콜센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들의 문의에 재빨리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③조사 위기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는 즉각 이뤄져야 한다. 자체 조사도 가능하겠지만, 정부 관련 부처나 검찰 등 제3자가 조사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메시지가 공정성 보장에 더 바람직할 때도 많다.
 
④처벌 기업이 위기 사건에 대한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스스로 규제를 가하거나 처벌 안을 내놓는 사례가 있다. 담당 임원이 책임지고 물러나거나, 사회에 기부를 하거나, 해당 사업을 철수하는 게 대표적이다.
 
⑤사과 사과는 궁극적으로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 공방에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해결책 중 하나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유감이나 피해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고(“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해당 기업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나아가 책임을 인정한다(“이번 사건에 대해 ○○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과는 책임을 인정하는 데 있다.
 
⑥방지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거의 습관처럼 발표한다. 하지만 이런 ‘습관적’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다. 대신 같은 실수나 잘못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구체적 대안 없이 단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만 내놓는 것은 그 기업이 방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⑦보상 특정 사건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 보상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상책은 기업 내부에서 법적인 검토가 끝난 상태에서 신중하게 발표해야 한다. 발표를 할 때는 보상 기준과 함께 구체적인 보상 방법과 시기 등도 함께 제시한다.
 
“위기관리란 발생한 일에 대해 해명하는 게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해당 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에 관한 것이다(Crisis management is not about what happened, but what you do with what happened).”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이 조언은 실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필자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 중이다. 글로벌 PR 컨설팅사인 에델만 한국 대표를 거쳐 현재 오길비헬스 파트너와 더랩에이치 대표로 있으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에게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하는 코칭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