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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분 수업, 30분 놀이’ 역발상이 기적을…

한인재 | 40호 (2009년 9월 Issue 1)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남한산초등학교. 여느 산촌 학교가 그렇듯 급격한 거주 인구 감소로 2000년 전교생 수가 2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폐교 직전까지 갔던 이 공립학교에 전학생이 넘쳐나고 있다. 인근 도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전학을 온다. 2009년 현재 학생 수는 6배 가까이 늘어난 154명으로 교사들이 과밀 학급을 우려할 정도다.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존폐의 위기로 내몰리다
남한산초교가 있는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는 구한말까지만 해도 군사, 행정, 경제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주변 1000호의 민가가 강제 이주돼 300호만이 남게 됐다. 해방 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중부면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또한 이 지역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사유지라고 해도 임의로 건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인구가 유입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1975년 4000명에 육박하던 중부면의 5∼49세 인구수는 2000년 1354명으로 줄어들었다.
 
주변 지역의 인구 감소로 남한산초교의 학생 수도 줄어들었다. 1971년 231명이던 재학생 수는 1981년 123명, 1991년 49명, 2000년 26명으로 감소했다. 그 결과 1996년부터 부분적으로 복식 학급을 편성했으며, 1999년에는 복식 3학급을 운영하기도 했다. 마침내 2000년 광주시 교육청은 교육부가 1982년부터 시행한 ‘영세 초등학교 통폐합 운영 계획’에 따라 2001년 3월 1자로 남한산초교 폐교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 같은 외부 환경의 제약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조직 구성원들의 가시적인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교사들은 다른 학교로 전출되기만을 기다렸다.


 
고정관념을 넘어서다
당시 정연탁 교장은 부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폐교 선고를 받았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어차피 그가 잘못해 내려진 결정도 아니고, 폐교되더라도 공립학교 교사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정 교장은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학교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 유적들로 둘러싸인 남한산초교의 존립이 위협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그만큼 좋은 교육의 재료도 없지 않은가?
 
정 교장은 교사들에게 남한산초교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교육 과정을 만들어보자고 설득했다. 다른 학교에까지 찾아가 남한산초교로 올 열의가 있는 교사들을 찾아내 교육청을 설득했다. 그래서 모인 교사들이 안순억, 서길원, 최지혜 교사였다. 이들은 일부 뜻있는 학부모들과도 의기투합해 주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남한산초교만의 ‘체험학습’ 과정을 개발했다. 학생들이 등교하면 숲 속에서 산책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활기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정규 수업은 ‘40분 수업, 10분 휴식’에서 ‘80분 수업, 30분 놀이’로 바꿨다. 80분이라는 수업 시간은 교사의 강의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토론과 발표로 채워져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10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에는 화장실 다녀오기도 바쁘다. 하지만 30분의 시간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며 놀기에 충분한 여유를 준다. 아이들은 즐거운 기분으로 교실로 다시 돌아온다.
 
체험학습만으로 구성된 계절학교도 만들었다. 여름방학 직전에 열리는 일주일간의 계절학교에서 학생들은 목공예와 도예, 퀼트, 연극, 춤 등 자신이 관심을 가진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마지막 이틀 동안에는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영하며 뒷산의 숲에서 자연을 체험하는 ‘숲속학교’가 열린다. 숲속학교는 ‘수풀 터널 통과하기’ ‘숲의 요정 만들기’와 같은 15가지 체험학습으로 채워진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생태적 사고와 공동체 의식을 기른다. “손으로 땅을 만지니까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왠지 진짜 여름이 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이렇게 미션을 통해 같이 친해지니 하나가 된 것 같아요.”(남한산초교 6학년 강동혁)


 
기적을 이루다
교사들은 이에 머물지 않고, 남한산초교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도 시작했다. ‘공립학교이니 학생은 오는 대로 받는다’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깬 것이다.
 
먼저 2000년 여름방학 기간에 학교에서 ‘남한산성 역사 이야기 캠프’를 열어 남한산초교만의 독특한 교육 방법의 장점을 알렸다. 지역 주민 등 캠프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남한산초교의 홍보 대사가 됐다. 이들은 교사들과 더불어 ‘전·입학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성남 시내의 초등학교를 돌며 전학 설명회를 열었다. 그리고 남한산초교의 스토리와 독특한 교육 과정을 담은 브로셔를 만들어 관심 있는 학부모들에게 제공했다.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들의 열정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외지에서 잇따라 학생들이 전학을 왔다. 체험학습이 창의력 발달에 좋다는 ‘입소문’까지 퍼져 학생 수가 금방 100명으로 늘어났다. 20년 전 수준으로 학생 수가 늘어나자 폐교 결정은 자연스럽게 철회됐다.
 
2009년 현재 남한산초교의 학생은 154명이다. 이 중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인근 도시에서 온 학생들이 135명이다. 독일에까지 입소문이 나서 남한산초교로 전학 오는 해외 교포 자녀들도 있다. 지금도 이 학교로 자녀를 전학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졸업과 입학 시즌만 되면 살 곳을 구하려는 학부모들 때문에 집값과 전셋값이 들썩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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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재

    한인재dbr@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 AT 커니 코리아 컨설턴트/프로젝트 매니저
    - 에이빔 컨설팅 컨설턴트/매니저 - 삼성생명 경영혁신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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