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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배우기의 함정

생산 현장은 ‘경영 쓰레기 하치장’ 아니다

김기홍 | 26호 (2009년 2월 Issue 1)
2000
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도요타 따라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일었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도요타의 생산성과 저비용 생산 방식, 상생의 협력체제, 탁월한 운영 혁신을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들이 배우겠다고 나섰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익을 창출한 기업이 도요타였고, 시장 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노조에서 먼저 임금 동결을 요구하고 나서는 기업이 도요타였으며, 자회사인지 협력업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납품 업체들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바로 도요타였기 때문이다. 도요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 연간 64만 명, 하루 2000명이라는 수치만 봐도 얼마나 많은 기업이 도요타의 혁신 사례를 주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도요타를 따라 배우겠다고 나선 기업이 많지만 정작 도요타 방식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거나 더 나은 생산 방식을 이뤄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론이라면 도요타 생산 방식 만큼 많이 연구되고 잘 알려진 이론도 없다. 학교와 연구소의 가장 흔한 연구 주제이며, 서점에 가면 고르기 어려울 만큼 널려 있는 것이 도요타 생산 방식과 관련된 책이다. 심지어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생산 현장을 직접 방문해 그들의 생산 방식을 관찰할 수 있도록 현장까지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도 도요타만큼 성과를 내는 기업은 없다.
 
도요타 생산 방식의 구조
도요타 따라 배우기가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보다 도요타 생산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먼저 ‘TPS(Toyota Product System) House’라고 불리는 도요타 생산 방식의 체계도를 살펴보자.(그림1) 가장 밑바닥에는 도요타 생산 방식의 철학인 도요타의 DNA가 깔려 있다. JIT(Just In Time·적시생산)와 지도카(Jidoka·자동화)가 2개의 기둥을 이루고 있으며, 가장 중심에는 가이젠(Kaizen·개선 활동)이 위아래로 ‘인재육성’과 ‘낭비 제거’의 지지를 받으며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도요타의 DNA는 계승을 의미한다. 이 DNA는 유전자 전승을 위한 매체로, 끊임없이 개선하는 도요타의 문화와 문서로 작성된 다양한 기록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통해 선배들이 이뤄 놓은 개선의 성과와 경험·지식·가치가 후대로 계속 이어진다. 도요타의 사상·가치·철학은 이 DNA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JIT와 지도카로 이뤄진 2개의 기둥은 개선의 방향을 뜻한다. 모든 개선 활동의 결과는 적소·적량, 적시로 대변되는 JIT 체계와 체계적인 생산시스템 속에서 문제가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지도카 두 방향으로 취합된다. 이를 통해 물류와 조립의 전 공정에 걸쳐 막힘이 없는 ‘흐름생산체제’가 구축된다.
 
가이젠은 도요타 생산 방식의 핵심이자 JIT와 지도카를 이루는 힘의 원천이다. 가이젠은 아래 위에서 낭비 제거와 인재 육성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이 부분이 도요타 생산 방식의 본질이다. 낭비 제거는 ‘미에루카(見える化)’라고 불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관리’로 이뤄진다. 미에루카는 생산을 위한 기준 조건과 정상 조건이 항상 눈에 띄도록 생산 현장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상 조건이 명확히 드러나면 이 조건에서 어긋난 것은 바로 ‘문제’가 된다. 문제가 눈에 띄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가이젠 활동이 바로 뒤따른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개선 활동을 어느 정도 지속하다 보면 “더 이상 개선할 게 없다”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도요타는 이것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식이 부족하니 더 이상 문제를 못 찾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때문에 인재 육성은 가이젠 활동을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개념이 된다. 일반 기업이 ‘문제 해결 역량’ 강화를 고민할 때 도요타가 ‘과제 도출 능력’ 강화를 얘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TPS 하우스 지붕에는 흐름생산체제 구축이라는 개념과 함께 품질·원가·안전·동기부여가 목표로 놓여 있다. 품질·원가·안전·사기진작이 활동의 대상이 아니라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가이젠 활동이 끊임없이 지속되기만 하면 궁극적으로 우수한 품질과 낮은 생산원가, 작업장의 안전, 작업자의 동기부여는 가이젠의 산출물로 저절로 얻어진다는 뜻이다.
 
도요타 따라 배우기의 실패 원인
이제 왜 많은 기업이 도요타 따라 배우기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첫째 이유는 도요타 생산 방식의 핵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요타를 벤치마킹했다는 기업들은 간판 시스템(Kanban System)을 도입하고 라인스톱(Line Stop), 안돈(アンドン) 방식 등을 적용한다. 또 자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하거나 ‘풀(Pull) 생산방식’을 적용하기 위해 애쓴다. 이는 TPS 하우스의 핵심은 제쳐 두고 도요타 제조 현장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개념과 방법·방향만을 모방하는 꼴이다. 이러면서 기업들은 “일본식이 우리 기업과 맞지 않는다”“우리는 사람이 문제”라고 불평한다.
 
TPS 하우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도요타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방문 초기에도 도요타를 배우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TPS라는 용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때도 도요타 현장에는 JIT 및 지도카와 간판 시스템이 있었고, TQC(전사적 품질관리) 활동도 이뤄지고 있었다. 명칭이 바뀌고 활동 내용 또한 변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가이젠 활동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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