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은 대기근과 전염병, 전쟁, 국제질서 재편이 한꺼번에 겹친 복합 위기의 시대였다. 그러나 위기의 크기 자체보다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성패를 갈랐다.
내부 역량을 결집하고, 현실에 맞게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며, 위기를 제도 혁신의 계기로 삼은 리더들은 혼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인재를 보호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 역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했다. 오늘날에도 위기를 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량을 결집하고 시스템을 혁신하며 사람을 지키고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다.
‘격변기(激變期)’라는 단어는 역동성 못지않게 두려움과 버거움을 떠올리게 한다. 물결이 거세게 부딪혀 오듯이 변화의 양상이 격렬하고, 위기가 중첩되며,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17세기 조선도 그러했다. 몇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기근이 세 차례나 밀어닥쳤고, 천재지변이 계속됐으며, 전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앗아갔다. 패권국 교체로 국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조선인의 세계관이 뒤흔들렸고 임진왜란의 상처를 극복하기도 전에 두 차례의 호란(胡亂)이 벌어졌다. 각종 제도가 시의성(時宜性)을 잃은 상황에서 반란과 역모,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야말로 복합 위기의 시대.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이 이러한 17세기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지금까지 스무 번의 아티클을 통해 살펴봤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인했는가.
위기의 크기가 아닌 대응의 질이 결과를 좌우
우선 내부의 역량을 결집했느냐가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광해군은 옥사를 남발하고 폐모살제(廢母殺弟)로 조정의 분열을 촉발하면서 스스로 고립됐다. 갈라치기 리더십으로 인해 그의 곁에는 소수의 대북 강경파만 남았다. 여기에 과도한 토목 공사로 국가 재정마저 파탄에 이르게 하면서 결국 정권이 붕괴했다. 인조도 지나친 정치 보복으로 혼란을 가져왔고 즉위 초에는 생부인 정원군을 추숭(追崇)하는 문제로, 후반기에는 강빈 옥사로 조정의 힘을 낭비했다. 숙종은 세 차례나 환국(換局)을 단행하면서 공존의 정치를 무너뜨렸고 상대 당파를 ‘악’으로 규정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세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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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