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많은 기업이 핵심 사업에 충실하는 것을 성공의 열쇠라고 여긴다. 하지만 파괴적인 위협이 존재할 때는 과감하게 핵심 사업을 포기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핵심 사업을 발굴하는 ‘변혁적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 물론 핵심 역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민과 후지필름의 사례는 핵심 사업이 사라지더라도 핵심 역량을 새롭게 활용하면 성장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사업에 진출할 때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경쟁 우위를 창출하고 고객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확장성을 갖춘 사업이 기존의 핵심 사업을 대체할 수 있다.
2024년 경영 컨설팅 업체인 PwC가 수행한 ‘27차 연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CEO의 45%가 자신의 회사가 현재의 추세를 지속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10년 내에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75%의 최고경영자가 이런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기술, 고객 선호도 등의 변화를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재창조가 필요함을 실감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 파괴당할 수밖에 없는(disrupt or be disrupted), 즉 파괴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핵심 사업이 파괴당하는 외부적 위협에 놓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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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핵심 사업을 전환하는 변혁적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
변혁적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기업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one-size-fits-all)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진은 자사에 가장 적합한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핵심 사업에 버금가는 새로운 핵심 사업을 발굴해야만 부활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함은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핵심 사업에 닥친 위협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기업들과 그렇지 못하고 실패한 기업들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핵심 사업을 바꾸는 환골탈태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들 기업에 대한 사례 연구가 기업 전략의 핵심인 ‘어디서 성장할지’ 혹은 ‘어디서 성장하지 않을지(where to grow, and where not to grow)’를 결정할 때 참고할 만한 프레임워크가 되기를 기대한다.
애플의 아이폰, 누군가에겐 재앙의 시작1997년 9월 16일, 이날은 스티브 잡스 본인이 공동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난 지 12년 만에 애플의 CEO로 복귀한 날이다. 당시 애플은 매출액 71억 달러에 약 11억 달러가량의 적자를 내며 파산 위기에 처했다. 잡스는 군살 빼기부터 시작했다. 뉴턴 PDA, 프린터, 디지털카메라, 기타 주변 기기 등 불필요한 사업과 제품들을 정리했다. 아울러 핵심 중에 핵심인 매킨토시, 그중에서도 소비자용 및 전문가용 데스크톱과 휴대용 컴퓨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 1998년 매출액은 59억 달러로 16%가 감소했지만 3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애플에 역사적인 날은 2007년 1월 9일이다. 이날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애플의 새로운 성장 동력임을 공표했다. “오늘 우리는 3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합니다. 터치 컨트롤이 있는 와이드 스크린인 아이팟, 혁명적인 모바일 폰, 그리고 혁신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 아이팟, 전화기, 인터넷, 이 세 가지는 더 이상 서로 별개의 기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합니다.” 애플은 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마트폰 시장의 게임의 규칙을 재정의했다. 그리고 1984년 이후 핵심 사업이었던 매킨토시 중심의 컴퓨터 회사에서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기 업체로 전환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심지어 자사 매출액의 40%를 차지하고 휴대용 음악 재생기 시장에서 74%라는 경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던 아이팟을 미련 없이 자기 잠식해 버렸다.
아이폰은 애플에 축복이었지만 많은 기업에는 재앙이 됐다. 아이폰은 많은 기존 기업의 핵심 사업을 무너뜨리는, 소위 빅뱅 파괴(big-bang disruption)를 가져온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대표적으로 차량용 GPS 내비게이션 전문 기업이던 가민과 스마트폰 업체 블랙베리의 핵심 사업을 위협했다. 또 후지필름과 코닥의 필름 사업과 디지털카메라 사업의 쇠퇴를 더욱 부추겼다. 이들은 애플의 빅뱅 파괴에 대응해 어떻게 새로운 핵심 사업을 찾아갔을까? 그 여정을 함께 살펴보자.
핵심 사업을 바꾸는 환골탈태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1. 가민: 내부에서 숨어 있는 핵심 사업 발굴차량용 GPS 내비게이션 전문 기업에서 웨어러블(wearable) 기기 업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가민을 살펴보자. 가민은 시야를 기업 외부로 돌리기 전에 기업 내부의 사업 중에 제2의 핵심 사업을 발굴해 성장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가민은 GPS의 대중화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틈새시장에 초점을 맞춰 성장했다. 1990년 미 국방부의 GPS 기술을 활용해 보트나 소형 제트기에 탑재되는 개인용 GPS 100을 출시했다. 이는 접이식 지도를 완전히 대체하는 게임 체인저였다. 1998년 세계 최초로 개인용 차량 내비게이션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면서 가민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1999년에는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대용 기기를 출시했다. 2003년 3월 GPS가 탑재된 러닝(달리기)용 손목시계인 포어러너 101을 선보였다. “우리는 모든 GPS 기기를 만드는 회사다. 러너들을 위한 GPS 제품도 있으면 어떨까”라는 사내 조깅 모임의 제안에서 출발해 이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회사는 웨어러블 또는 스마트워치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 오히려 개인용 차량 내비게이션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창업 후 2007년까지 17년 연속으로 매출이 늘어났는데 이런 성장에는 2007년 당시 전체 매출액의 74%를 차지한 자동차, 트럭, 오토바이를 위한 차량용 내비게이션 사업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민은 곧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 그 시작은 2007년 6월 구글 지도 앱이 탑재된 아이폰의 출시였다. 2008년 9월에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출시했고, 1년 후인 2009년 10월 구글 지도 앱을 모든 스마트폰에서 공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개인용 차량 내비게이션 기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고. 아이폰 출시 후 1.5년 만에 가민의 시가총액은 최고점 대비 87% 감소했다. 2007년 10월 말 주당 120달러가 넘던 최고가에서 2008년 11월 말 16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2009년 매출은 사상 최대의 매출액인 34억9000만 달러를 기록한 이전 해에 비해 5억4000만 달러(15.5%) 감소해 29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가민은 2008년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2019년에야 매출액이 2008년 수준인 35억 달러를 회복했다. (그림 3) 그래도 가민은 흑자 기업이었다. 가민의 부활은 2013년 1월 클리프 펨블이 CEO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그 당시 스마트폰은 모든 기기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며 웨어러블 기술의 성장에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예컨대 소니는 블루투스 방식으로 안드로이드폰과 연동되는 스마트워치를 2012년 4월 출시했다. 조본, 핏빗, 나이키 같은 회사들은 스마트폰과 연동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피트니스 경험을 향상시키려 했다.
가민의 클리프 펨블 사장은 GPS 기반 웨어러블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가민의 비즈니스 모델의 수익원을 자동차에서 손목으로 옮겼다. 핵심 기술인 GPS 장치를 고가의 스포츠, 해양, 항공용 웨어러블 기기에 특화해 연동시킴으로써 저가 시장의 핏빗이나 조본 또는 주류 시장에 있는 애플이나 삼성전자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는 전략을 취했다. 특히 배터리 수명이 길고 정확한 GPS 추적, 지도 기능, 고급 트레이닝 기능이 필요한 스포츠 열성팬을 대상으로 하는 틈새시장에서 독점적 경쟁 우위를 유지했다. 2020년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펨블 사장은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다음 위기에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업을 구축합니다”라고 말했다.물론 가민의 성장 전략에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마트폰에서 쓴맛을 본 가민은 다시 스마트폰으로 대응하려 했다. 2009년 2월, 가민은 GPS를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300달러짜리 스마트폰인 누비폰을 대만의 컴퓨터 부품 회사인 아수스(ASUS)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개발, 출시했다. 그러나 터치스크린의 반응도가 좋지 않았고 카메라 화질은 낮았고 동영상 기능도 없었다. 심지어 애플과 다른 휴대폰 업체들이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한 날씨와 교통량 정보, 지역 행사 등의 확인 서비스에 6달러를 받았다. 2010년 10월, 결국 가민은 1년 8개월 만에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터치스크린은 스마트폰의 핵심 기술로 고난도로 간주됐다. 그런데 가민은 터치스크린 기술의 경쟁력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빅뱅 파괴에 의해 자사의 차량용 GPS 내비게이션의 가치를 파괴한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한 것은 가민의 전략적 실수로 평가할 수 있다.
2. 후지필름:핵심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접 사업을 찾아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크리스 주크 컨설턴트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할 때 핵심 사업으로부터 몇 단계나 떨어진 사업으로의 확장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경영 그루 짐 콜린스 또한 원칙 없는 사업 확장은 기업을 몰락의 길로 인도할 수 있으니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예로 잭 웰치의 비관련 다각화를 통해 성장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 10년간 매각과 분사를 통해 사실상 해체됐다.
하지만 핵심 사업에서 축적된 핵심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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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면 핵심 사업과 몇 단계 떨어진 사업에서도 새로운 고객이나 시장을 찾아낼 수 있다. 기존의 본업이 무너지더라도 변혁적 전환을 통해 새로운 핵심 사업을 찾아 성장할 수 있다. 후지필름 사례는 필름이 필요 없는 시대에 필름 회사가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후지필름은 위기 속에서 반등의 기회를 노렸고, 세상에 없는 기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사내에 축적된 핵심 기술을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했다. 또 자사의 핵심 기술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인접 사업에 진입했다.
199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후지필름은 디지털 시대의 생존 및 성장에 필요한 전략을 고민했다. 1999년도 회계연도에 매출의 58.1%가 필름, 디지털카메라, 사진 인화기 등과 같은 자사의 이미징 솔루션 사업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사업에서 최대한 많은 수익을 짜내려 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컬러필름의 수요가 정점을 찍었고 보급형 디지털카메라가 확산됐을 뿐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휴대폰 카메라까지 등장했다. 2001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55% 증가한 것은 2001년 후지제록스가 자회사로 편입된 효과일 뿐이었다.
2003년 6월, CEO로 임명된 고모리 시게타카는 필름이 필요 없는 시대에 필름을 핵심 사업으로 하는 회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해, 카메라 폰의 판매 대수(6500만 대)가 디지털카메라 판매 대수(4341만 대)를 처음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창업 70주년을 맞이한 2004년 1월, 고모리는 생존을 위한 제2의 창업(New Departure)을 선언하면서 ‘VISION75’라는 향후 5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후지필름은 매출액 측면에서 코닥을 상당히 앞서고 있었다. 그래서 경영 목표는 ‘코닥 타도’가 아닌 ‘탈(脫)필름’이었으며 사업 구조 재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후지필름의 이미징 솔루션 사업은 2005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06년 1월 말, 컬러필름 시장이 매년 20%씩 감소함에 따라 필름사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해서 이 사업 인력의 3분의 1에 달하는 5000여 명을 감축하기로 발표했다. 무엇보다 VISION75의 핵심은 그간 사진 필름 사업을 통해 축적된 원천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신사업에 신속하고 과감하게 진출하는 신성장 전략이었다. 2005년부터 이미징 솔루션 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짐에 따라 고모리 시게타카는 “만약 우리가 이미징 기업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기업이 돼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축적된 필름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헬스케어를 미래의 핵심 사업으로 지목했다. 2006년 필름과 피부의 주성분이 콜라겐으로 같다는 점에 착안해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후지필름은 이듬해인 2007년 노화방지용 스킨케어 화장품인 ‘아스타리프트’를 40~60대 여성을 대상으로 출시했다. 필름 제조와 바이오 의약품 제조의 공통점인 세포 배양을 토대로 바이오 사업에도 진출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고객 가치 명제 측면에서도 이 신사업은 기존의 X-선 검사, 영상진단, 내시경 등 진단용 의료기기 사업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울러 필요시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신사업의 역량을 강화했다. 2008년 도야마화학을 인수해 바이오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고 머크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을 담당하던 다이오신스를 2011년 인수했다. 2017년에는 배아줄기세포나 유도만능줄기세포 배양에 사용되는 시약 제조 등의 기술을 보유한 일본 최대의 연구용 시약 개발업체인 와코퓨어 케미컬 인더스트리스를 인수해 제약업에도 진출했다. 후지필름은 재무적인 여력을 활용해 적극적인 M&A를 바탕으로 한 신사업 진출의 돌파구를 마련했다.2023년 말 기준 후지필름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4개 사업부로 구성돼 있는데 카메라와 관련된 이미징 부문의 매출 비중은 15.9%에 불과했다. 반면 헬스케어 사업부가 32.9%로 가장 크고, 반도체, 바이오 소재 등 재료사업부가 23.3%, 복사기 등 비즈니스 혁신사업부는 27.9%를 차지했다. 비즈니스 혁신사업부 비중의 감소는 기업의 페이퍼리스(paperless) 전환에 따른 인쇄량 감소에 기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후지필름의 2006년과 2009년의 매출액이 각각 235억8100만 달러와 234억5900만 달러로 거의 비슷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카메라와 관련된 이미징 부문의 매출액은 28% 감소했다는 점이다. 애플의 아이폰 혁명에 따른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오랜 기간 세계 필름 시장에서 경쟁자였던 코닥과 상이한 성장 궤도와 운명을 맞이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혁신적인 사업 구조조정 덕분에 파산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2007 회계연도 이후 2023 회계연도까지 성장이 정체된 것으로 판단된다. 엔화 기준으로 이 두 회계연도의 매출액이 각각 2조8468억 엔과 2조9609억 엔으로 비슷하지만 2011년 이후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3년에 이르러 거의 반토막이 났는데 엔화 가치의 하락이 후지필름의 매출액에도 그대로 반영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필름은 지난 20년에 걸쳐서 필름 사업으로부터 예방·진단·치료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나는 대전환에 성공했다. 인구 노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헬스케어 관련 지출이 증가할 것을 감안한다면 후지필름의 성장 전망은 밝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코닥, 블랙베리:확장성을 키울 수 있는 (신)사업 발굴 실패돈줄 역할을 하는 핵심 사업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은 자사의 핵심 사업 자체가 와해되는 외부적 변화에 직면할 때 더 큰 타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환을 통해 제2의 S자형 상승 곡선으로 도약하려면 회사 스스로 확장성(scalability)을 키울 수 있는 (신)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발굴해야 한다. 확장성이란 비용보다 매출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또는 역량파괴형 혁신이 핵심 사업이 지닌 수익 잠재력을 완전히 파괴하더라도 생존과 부활이 가능하다. 아무리 핵심 역량 또는 원천기술 기반의 (신)사업이라 하더라도 확장성을 키울 수 없다면 기업의 부활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장담할 수도 없다. 즉 이미 성숙된 산업이나 급성장하고 있더라도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는 산업은 피해야 한다. 코닥과 블랙베리의 실패 사례는 확장성이 없는 신사업 추진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1) 코닥의 오판
코닥은 2007년 2월 디지털 중심의 성장 전략에 주력하며 잉크젯프린터 시장에 진입했지만 파산으로 철수했다. 우선 코닥이 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1990년대 후반은 코닥의 최전성기였다. 매출은 1996년에 거의 160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고, 주가는 1997년 2월 14일 주당 93달러에 근접했으며, 당기순이익은 1999년에 25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앞으로 닥쳐온 디지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시기였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코닥의 왕국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디지털카메라의 판매량이 필름 카메라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설상가상으로 디지털카메라가 내장된 카메라폰이 확산되고 있었다. 코닥은 아날로그 사업이 회복 불가능한 하락세에 있음을 인정하고 2007년까지 사진, 의료 영상, 상업 인쇄 분야에서 디지털 강자가 되기 위한 야심 찬 전략을 세웠다.
2004년 1월, 코닥은 아날로그 필름 사업을 정리하기로 하고 향후 3년 동안 5만 명이 넘는 직원 중 1만5000명을 감원하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2005년 코닥은 미국의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연속 2년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점유율은 2004년의 21%에서 24.9%로 늘었다. 그해에는 142억68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1년 만에 5억4400만 달러 흑자에서 12억61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디지털 이미징의 매출은 전년 대비 36% 증가했지만 본업이자 영업마진이 높았던 필름 및 인화 사업의 매출 감소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지 못했다. 위기를 겪은 회사는 코닥뿐만이 아니었다. 140년 전통의 아그파필름은 2005년에 파산을 선언했다. 2006년 1월, 미놀타와 합병한 일본의 코니카도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사업에서 손을 떼고 관련 기술을 소니에 넘겼다. 이 당시 카메라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전자, LG전자, 소니/에릭슨 등 휴대폰 업체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됐다. 코닥의 CEO인 안토니오 페레즈는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형편없는(crappy) 사업이라고 언급했다.
2005년, 2006년의 누적 적자가 18억6200만 달러에 이르자 코닥은 2007년 1월, 111년 역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업을 23억5000만 달러에 매각했다. 한 달 후인 2007년 2월, 지난 100년간 자사의 성공을 이끌어 온 아날로그 필름 대신 데스크톱 잉크젯프린터를 신성장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페레즈는 코닥을 디지털 프린팅 분야의 강자로 변신시키는 데 중점을 뒀으며 이는 그가 이전 회사인 휴렛패커드에서 배운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후지필름이 이미징 솔루션을 넘어서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구축한 접근 방식과 상반됐다.
코닥의 프린터 사업은 확장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프린터 사업에 성공하더라도 본업이었던 필름에 비해 작은 사업이었기에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필름 사업의 하락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닥이 프린터 사업을 ‘새로운 코닥’의 번영을 위한 길로 여긴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카메라와 필름 제조에 쓰이는 이미지 및 인화 기술을 프린팅 기술에도 쉽게 접목할 수 있었다. 둘째, 2005년 5월 코닥의 CEO로 승진한 페레즈가 2003년 4월 코닥으로 이직하기 전에 휴렛패커드의 잉크젯프린터 사업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경쟁이 치열한 프린터 시장에서 후발 주자였던 코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당시 휴렛패커드, 캐논, 엡손 등 대부분의 프린터 업체는 프린터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잉크 카트리지를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했다. 그러나 코닥은 정반대로 고마진 프린터와 저마진 잉크 카트리지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했다. 2007년 2월, 코닥은 프린터 3종을 각각 149.99달러, 199.99달러, 299.99달러에 판매했는데 기존 경쟁사 제품보다 75~200달러 더 비쌌고, 가장 저렴한 프린터 가격은 휴렛패커드 제품 80달러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그러나 잉크 카트리지는 흑백은 9.99달러, 컬러는 14.99달러로 경쟁 업체들의 절반 가격에 팔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 당시 소비자들은 잉크 카트리지가 너무 비싸다고 불평을 했다. 페레즈는 이러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코닥의 화학 전문 지식을 활용해 잉크 카트리지를 50% 더 저렴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런 가격 경쟁 전략은 성공했을까? 아니다.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코닥의 프린터가 휴렛패커드보다 훨씬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이 구매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코닥 입장에서 프린터 사업을 확장하려면 더 많은 프린터를 판매해 확보된 고객 기반(installed customer base)을 넓혀야 했다. 다시 말해서 프린터 매출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여야 했다. 그러나 코닥은 프린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개선하는 식의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 업체보다 훨씬 느렸고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렴한 프린터가 많았다. 따라서 굳이 범용화된 프린터를 비싼 가격에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잘못된 가정으로 인해 코닥은 3년 안에 전 세계 잉크젯프린터 시장에서 3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2011년 말 코닥은 전 세계 잉크젯프린터 시장에서 휴렛패커드(34%), 캐논(15%), 엡손(11%), 브라더(4%)에 이어 5위(3%)를 차지했다. 2012년 1월 19일, 67억5000만 달러 규모의 파산을 신청했다. 코닥은 2005년부터 파산을 선언한 순간까지 2007년을 제외하고는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파산을 선언한 직후인 2월 초, 코닥은 애플의 아이폰, 삼성전자의 갤럭시폰 등 스마트폰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자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의 철수를 결정했다. 또한 같은 해 10월 잉크젯프린터 사업도 정리하기로 했다. 이로써 코닥의 디지털 중심의 성장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2) 블랙베리의 추락
스마트폰 선구자였던 블랙베리는 앞서 가민처럼 내부에서 새로운 핵심 사업을 발굴하려 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던 해에 블랙베리의 매출액은 30억4000만 달러, 가민의 매출액은 31억8000만 달러로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이었다. 그런데 이후 15년 사이 성장 궤도를 달리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블랙베리는 코닥과 마찬가지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자사의 능력으로 신사업을 확장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서비스/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984년 무선 데이터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블랙베리는 2002년에 쿼티(QWERTY) 키보드를 장착했으며 보안성이 뛰어나 업무용 스마트폰으로 인기가 많았던 ‘블랙베리 5810’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했다. 10년 만에 199억 달러(약 21조 7100억 원)의 매출에 도달한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 성과로 여겨졌다. 블랙베리는 데이터를 암호화해 영국과 캐나다에 위치한 자사의 별도 서버에 저장하는 등 강력한 보안성을 자랑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2009년 ‘가장 안전한 폰’이라 불린 블랙베리는 2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1년 매출액은 199억 달러로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데 2012년 블랙베리폰의 시장점유율은 5% 수준으로 추락했다. 2013 회계연도에서 블랙베리는 전년 대비 40% 감소한 11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6억46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2013년 1월 말 사명을 리서치 인 모션(Research in Motion)에서 회사의 시그니처 제품명인 블랙베리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회사의 전략이 일반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신호였다. 아울러 블랙베리 10 운영체제를 탑재한 Q10(쿼티 키보드를 살린 스마트폰)과 Z10(쿼티 키보드를 없앤 첫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동시에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시장점유율이 92%에 달했던 당시 후발 주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2013년 11월, 블랙베리는 외부에서 존 첸을 CEO로 영입했다. 그런데 4개월 후 발표된 2014 회계연도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44% 감소한 68억 달러였고 거의 59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존 첸 신입 CEO는 블랙베리 폰의 경쟁력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사이버 보안 기술을 블랙베리의 핵심 역량으로 간주했다. 그는 블랙베리가 스마트폰 시장에 있는 일반 소비자(B2C)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 수익성 있고 충성심이 높은 보안 고객(B2B) 또는 그들의 최고정보책임자(CIO)를 간과했다고 판단했다. 블랙베리 폰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8만 개 이상의 기업, 정부, 공공기관 고객들은 이미 확보된 고객 기반이었다. 보안을 중시하는 이들 고객을 위해 블랙베리는 블랙베리 서버를 통해 기기를 관리하고 안전한 네트워크를 통해 보안 메시지를 전송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이는 블랙베리 매출의 80%를 차지했다. 이에 착안해 블랙베리는 서버와 사이버 보안 서비스를 새로운 핵심 사업으로 지정했다. (그림 7)
사이버 보안 사업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모바일 뱅킹 웹사이트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뒀으며 2015년부터 자동차용 보안 사물 인터넷(IoT) 소프트웨어 시장에도 진출했다. 그런데 이런 변혁적 성장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블랙베리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사이버 보안 사업의 확장성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첫째, 직원들이 개인 소유의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도록 허용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기존 보안 서비스 고객의 이탈률이 높아졌다. 둘째, 누적된 적자로 인해 새로운 블랙베리 폰을 출시할 자금이 부족해진 블랙베리는 2016년 9월 블랙베리 폰의 설계, 생산,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13 회계연도부터 2016 회계연도까지 4년 동안 누적된 적자가 70억 달러에 달했다. 대신 중국의 TCL에 4년간 블랙베리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블랙베리의 시장점유율은 0.1%에 머물렀다. 2019년 이후 스마트폰 하드웨어 자체가 시장 조건과 부합하지 않는 레거시 사업(legacy business)으로 전락하면서 서비스 관련 매출도 줄었다.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센티넬원,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강자와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뒤처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부터 보안 연구개발에 매년 10억 달러씩 투자했으나 2021년에는 향후 5년간 사이버 보안 사업 강화에 2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고, 소규모 보안 업체들을 인수해 그들의 보안 관련 기술 역량을 확대해 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보안 매출은 2021년 100억 달러에서 2023년 200억 달러 규모로 2년 사이에 두 배나 늘었다. 엔드포인트(end-point) 보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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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블랙베리의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는 가격경쟁력을 갖춘 센티넬원과 더 나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라우드스트라이크다. 그런데 블랙베리의 경영진은 양질의 보안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의적절한 업데이트의 부족과 사후서비스 부족으로 이로 인해 고객들이 경쟁사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2024 회계연도 블랙베리의 사이버 보안 부서 매출액은 3억7800만 달러로 전체 매출의 44%를 차지했으나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핵심 사업으로 선택됐지만 지난 2014년 이후 흑자를 기록한 해는 3년에 불과할 만큼 적자에 허덕였기 때문에 사업을 제대로 키울 여력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블랙베리의 하드웨어에서 서비스 회사로의 전환 자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지 못했다.
블랙베리의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영진의 관심은 사이버 보안에서 자동차용 보안 사물인터넷으로 점차 옮겨갔다. 왜냐하면 후자가 더 매력적이고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현대자동차 등 세계 10대 완성차 업체 중 9곳에 2억3500만 대 이상의 차량에 보안과 안전이 결합된 큐닉스(QNX) 운영체제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동차용 보안 사물 인터넷 사업은 2024년 매출의 28%를 차지했다. 그러나 자동차용 보안 사물인터넷을 통해 블랙베리가 부활할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며 주주들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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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 사례는 두 가지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경쟁 기업의 새로운 혁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은 자사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다. 블랙베리는 기업 고객을 위한 보안 솔루션에 강점이 있었고 사용자가 자사의 앱을 다운로드하도록 허용하면 운영체계의 보안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앱 생태계 구축에 소홀했다. 그러나 애플은 다양한 앱을 자사의 강점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이는 자사의 약점을 빨리 만회하는 것이 강점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기업의 극적인 쇠퇴를 가져오는 전략적 변곡점은 그 기업의 성과가 나빠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가 시작된 시점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2007년에 출시됐지만 블랙베리의 성과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해는 2013년이었다. 심지어 2012년 회계연도가 끝날 무렵 전 세계적으로 블랙베리의 사용자 수는 7700만 명으로 늘었다. 그래서 블랙베리 경영진은 아이폰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베리가 2007년을 전략적 변곡점으로 삼았다면 블랙베리 10의 출시를 훨씬 서둘렀을 것이고 블랙베리의 운명도 달랐을지 모른다.잘나갈 때일수록 변혁적 성장을 꾀하라많은 기업이 핵심 사업에 충실하는 것을 성공의 열쇠라고 여긴다. 그래서 핵심 사업이 약한 경우 이를 강화하거나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 핵심 사업에 충실할수록 나락의 길로 들어서는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은 핵심 사업을 포기하고 대체 가능한 또 다른 핵심 사업을 빨리 찾아야 한다. 물론 핵심 역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민과 후지필름의 변혁적 성장 사례는 ‘핵심 사업은 파괴되더라도 핵심 역량의 가치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준다. 비유를 하자면 ‘더러운 목욕물을 버릴 때 아기도 함께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변혁적 성장에 성공한 후지필름과 실패한 코닥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축적한 핵심 역량인 필름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했는지에 있었다. 가민과 블랙베리 사례는 그들이 축적한 핵심 역량을 어떤 시장에서 활용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연결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의 핵심 사업은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은 핵심 역량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다.특히 기존의 핵심 사업을 대체하는 변혁적 성장의 중요한 원칙으로 확장성을 키울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코닥과 블랙베리 사례에서 본 것처럼 핵심 역량은 기업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데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른 시일 내에 경쟁 우위를 창출해 고객 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코닥과 블랙베리는 기존 핵심 사업의 실패에서 누적된 적자로 인해 재무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사업 진출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 적자 기업은 새로운 사업의 확장성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가민과 후지필름의 경우 신사업에 진출했을 때 흑자 기업이었다. 그래서 각 사의 재무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신사업에서 스스로 확장성을 이룩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애플처럼 잘나갈 때 핵심 역량에 기반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변혁적 성장을 꾀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삼성전자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가 필요 없는 시대에 SK하이닉스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TV가 필요 없는 시대에 LG전자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자사의 핵심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