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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기 기업 경영의 진화

거창한 혁신보다 ‘작은 성공의 반복’을

김은환 | 380호 (2023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디지털 전환은 전담 부서와 IT 전문가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기술을 이해하고 운용할 때 원활히 추진될 수 있다. 스마트 제조를 자기 부서보다는 다른 부서에 우선 적용하고, 향후 결과를 보고 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태도가 지배적이라면 제조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조직 구성원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단계적, 국소적으로 스마트 제조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재 가진 인력,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만으로도 스마트 제조의 취지에 부응하는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로 사용할 수 있는 IOS 앱을 개발해 크레인 동선을 효율화한 덴마크 풍력터빈 업체 베스타스가 대표적이다. 규모가 작더라도 현장에 필요한 스마트 혁신을 시도하고 작은 성공을 반복해 나가는 것이 제조업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아날로그의 힘

디지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디지털이 모든 아날로그 영역을 정복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날로그 현실에선 상상하기 힘든 초거대 규모의 서점, 백화점, 음반 숍을 온라인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간단한 패스트푸드나 음료조차 온라인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없다. 물질의 디지털화는 아직 요원한 셈이다. 제조업은 바로 이런 물질을 다룬다. 물질이 갖는 거칠고 완강한 물성은 디지털 전환의 큰 장벽 중 하나다. 초콜릿을 3D프린팅하고 인공지능이 냄새를 식별하는 세상이지만 아날로그의 존재감이 쉽게 퇴색하지 않는 이유다.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무게가 없고 유통 비용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디지털이 인공지능이나 암호처리 연산, 또 대용량 통신에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 드러나면서 디지털보다 안전하고, 확실하고, 저렴한 아날로그의 존재감이 점점 부각되는 추세다.

디지털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의 가치사슬을 살펴봐도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100% 대체할 순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도체 가치사슬의 핵심에는 노광장비1 가 있다. 삼성전자, TSMC에 납품하는 ASML의 노광장비는 수천억 원에 달하며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또 이 회사의 배후에는 고정밀 거울을 납품하는 칼자이스가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는 반도체의 배후에 결코 디지털화되지 않는 정밀한 아날로그 기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노광장비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 전환되는 것 같아 보여도 대체 불가한 고부가가치는 사람의 감각과 솜씨가 깃든 곳에서 나온다. 안경 판매 플랫폼 기업 와비파커는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시력을 검사하는 등 전 프로세스를 디지털 전환하면서도 안경 소재나 가죽 케이스는 이탈리아 장인 기업으로부터 조달한다. 온라인이 갖는 저가 이미지를 극복하고 상품의 아우라를 갖추기 위해 아날로그 요소를 동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대체나 수렴보다는 각자의 강점을 더욱 예리하게 부각하는 방향으로 차별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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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환serikeh@gmail.com

    경영 컨설턴트·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김은환 컨설턴트는 경영과학과 조직이론을 전공한 후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25년간 근무했다. 근무 중 삼성그룹의 인사, 조직, 전략 분야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삼성 계열사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조직문화 진단 툴을 설계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및 컨설턴트로서 저술 활동과 기업 및 공공 조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저서 『기업 진화의 비밀』로 정진기언론문화상 경제·경영도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기업과 전략의 변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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