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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Interview: 정김경숙 구글 디렉터

“커뮤니케이션은 ‘큰 그림을 짜는’ 활동
새 기술도 스토리로 설명하면 큰 효과”

김윤진 | 352호 (2022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터내셔널 기업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의 난제 중 하나는 어떻게 본사에 대한 접근 문턱을 낮추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기업의 이야기를 글로벌 대중에 널리, 빠르게 전달할 것인지다. 여기에 기술 기업일 경우 과제가 하나 추가된다. 난해한 기술을 널리 알리면서도 대중이 이 기술을 무섭게 느끼거나 사람과 동떨어진 객체로 인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구글 본사에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 및 스토리텔링’ 업무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직접 본사로 건너가 이 업무를 진두지휘하게 된 정김경숙 디렉터는 커뮤니케이션이 ‘크게 보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이해관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하고, 그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아직 놓치고 있는 기회를 능동적으로 발굴해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라는 의미다.



2019년 9월. 미국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에 새로운 직무를 담당하는 작은 조직이 생겼다. 본사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와 글로벌 지사의 커뮤니케이션팀을 이어주고, 세계 각국에서 파견돼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60여 명의 특파원을 지원하는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International Media Liaison)’이란 포지션이 생겨난 것이다. 이 조직에는 구글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셜미디어 채널 등 뉴미디어를 통해 세계로 송출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임무도 부여됐다.

직원 3명에 불과한 작은 별동대지만 3년 전에는 없었던 이 신생 조직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 전무로 근무했던 정김경숙 디렉터(54)가 있다. 정김 디렉터가 2019년 6월 구글의 전 세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수백 명이 모이는 연례행사 ‘오프사이트(offsite)’에 참석해 구글 부사장과 각국의 리더 앞에서 “구글과 전 세계를 잇는 ‘중개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행사가 끝난 뒤 그는 국가별 수요를 파악한 구체적인 제안서를 만들어 부사장에게 보냈고, 3주 뒤 이 제안은 현실이 됐다. 이어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 리드를 뽑는다는 공고가 각국에 뿌려졌을 때, 정김 디렉터 역시 도전에 나섰다. 그렇게 그는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소속,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 및 스토리텔링 디렉터가 됐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제안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구글과 더, 자주 연결되기를 원하던 각국의 커뮤니케이션팀과 미국에 파견된 해외 특파원 및 인플루언서들은 이 같은 변화를 환영했다. “구글이 문을 열었다(Google Opened the Door)”는 평가도 나왔다. 대개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미국 현지 미디어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연히 해외 미디어가 글로벌 빅테크의 문을 두드리거나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있어 진입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멀리서 파견된 특파원들도 미국 매체를 거쳐 2차 정보를 취득하는 데 그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사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각국의 대중에게 닿기까지의 여정에 병목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구글의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이 2주에 한 번씩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열고 간담회, 라운드테이블 등의 형태로 해외 미디어와 만나는 장을 확대하자 전통적인 미디어는 물론 뉴미디어들이 회사에 접근하기에 더 수월해졌고, 구글로서도 글로벌 대중에게 메시지를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한 정김 디렉터를 DBR가 만났다. 약 12년간 구글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다 돌연 미국행을 택한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실무를 담당하며 느낀 글로벌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무엇인지, PR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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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업무에 대해
소개해 달라.

구글코리아 근무 시 해외 미디어들이 구글과 소통하고 연결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이 ‘놓치고 있는 기회(missing opportunity)’가 분명 있었다. 미국 현지에 주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몰려온 특파원들이 구글 내부 취재원을 직접 만나거나 궁금한 내용을 바로바로 물어볼 기회가 제한됐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국에 상주하는 각국의 특파원이 미국 팀에 바로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사무소를 통해 취재를 요청하는 비효율이 존재했다. 미국-한국-미국의 다리를 거치려면 시차도 있고 궁금증을 바로 해소할 수도 없지 않나. 이에 각국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을 직접 만났을 때, 본사에 구글과 인터내셔널 미디어를 이어줄 중개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며 공감을 해줬다. 이후 각 나라 팀에 수요 조사를 해봤더니 역시나 본사에 기자들이 취재를 갔을 때 미국에서 이를 잘 응대해 줄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제품을 출시했을 때 미국 소비자에게만 그 자세한 내막을 알리는 게 아니라 글로벌 매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송출해야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도 닿을 수 있는데 이런 링크(link)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직접 맡게 된 역할이 바로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이다.

조직의 역할이 주로 취재원 연결을 담당하는 것인가?

단순히 ‘연결’을 넘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제품 담당 팀들은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일 때 론칭 발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사활을 건다. 가령, 구글의 검색 서비스인 ‘멀티서치’를 출시할 때는 미국에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글로벌에선 어떤 메시지로 홍보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그리고 해당 시점에는 계획한 대로 뉴스가 쏟아진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뉴스의 배포가 일회성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또한 제품 담당 팀의 관심은 곧바로 다음 제품 론칭으로 옮겨 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 소식들로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게 된 뒷이야기는 아무도 모른 채 사장되는 게 안타까웠다. 왜 이 서비스를 처음 고안했는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UX(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 ‘사람 중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술 기업에 스트레이트 뉴스보다도 그 해설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기술 회사가 기술을 알리는 건 당연하지만 기술만 설명하면 대중이 무섭게 느끼거나 사람과 동떨어진 객체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기술과 사람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 조직에서는 제품 중심 ‘day 1 스토리(제품이 출시돼 발표된 날의 스토리)’ 외에도 ‘day 2 스토리(제품 출시 이후에 나오는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개발자 등 사람 중심의 이야기를 롱폼(long form)으로 전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고, 이 스토리의 영향력을 소셜미디어로 확산시키는 ‘소셜 인플루언스 아웃리치(social influence outreach)’까지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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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지 사례를 들어 달라.

구글에는 정말 별별 사람, 별별 팀이 다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이 소재를 발굴하기만 하면 된다. 한 예로 구글 안드로이드에서 론칭한 ‘라이브 트랜스크라이브(Live Transcribe)’라는 실시간 자막 앱은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어 자막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청각장애인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번역 기능까지 있기 때문에 언어가 다른 사람끼리도 소통할 수 있다. 한국어로 말해도 영어로 자막이 나오는 식이다. 이 앱은 구강 구조, 발성 구조가 독특해 발음을 똑바로 하지 못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입 모양과 말소리에서도 규칙을 도출해 자막으로 전환해 준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나온 배경에도 사람 이야기가 있다. 라이브 트랜스크라이브의 개발자는 인도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인도에 워낙 지역 방언이 많아 사람들 간 소통이 잘 안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보편화’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한다. 이 같은 출신 배경과 유년 시절의 경험은 사람들이 지역,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경계 없이 소통했으면 하는 사명감으로 이어져 앱을 탄생시키는 동력이 됐다. 이런 개발자의 이야기는 기술 이면에 따뜻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역할은 이런 소재를 찾은 뒤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위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스피치 연습을 도와주고, 그들의 이야기가 미디어 채널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이렇게 사람 이야기를 발굴해 전하니
긍정적인 반향이 있나?

물론 아직 신생 조직이니 대중(mass)을 상대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틈새시장(niche)이 있고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열성 ‘리스너(listener)’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기성 언론들은 주로 ‘뉴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당장 시급하지 않거나 발생 사건과 무관한 사람 이야기를 톱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인물면 박스 기사 정도로 나가면 다행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기술 개발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갈증을 해소했다는 점, 아울러 이런 이야기에 대한 수요를 확인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미디어와 플랫폼이 다양해진 덕분에 기업들이 스토리텔링을 직접 시도해볼 여지가 생겼다. 나아가 이 스토리를 ‘인터내셔널’하게 만드는 것까지 우리 조직의 역할이다.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부 홍보도 한다. 사실 구글 구성원이라고 해서 모두 동등한 수준으로 글로벌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위치한 곳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관심이 적어질 수 있다. 이에 구글러의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미국 본사와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지사의 직원들을 연결하는 가교가 되고 글로벌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반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내셔널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체감한
계기가 있나?

2016년 3월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국이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진행됐지만 국경을 넘어 영향력을 발휘했던 가장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따로 법인이 설립된 게 아니다 보니 구글코리아에서 장소 선정, 인프라 구비 등을 다 직접 해야 했다. 더욱이 구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에릭 슈밋 당시 구글 회장도 방한할 정도로 큰 이벤트라 한국 매체뿐 아니라 해외 매체에도 국가별로 내용을 계속 브리핑해야 하고 실시간 중계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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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부터 이 이벤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대국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바둑 기자 외에는 알파고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없었고, 바둑을 잘 알든 모르든,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전 세계인을 상대로 대국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총괄로서 맞닥뜨린 가장 큰 과제였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전 세계에 알리려면 모멘텀(momentum)이 필요했고, 영국에 있는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창업자와 한국기원에 있는 이세돌 9단을 화상으로 연결해 일종의 ‘출정식’을 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당시만 해도 화상회의가 일반적이지 않던 시기라 둘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됐고, 두 사람이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을 포착해 캡처했더니 인터넷에 이미지가 빠르게 유포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더욱 증폭됐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취재진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가치 있는 일을 그 지역을 넘어 최대한 널리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워낙 글로벌 이벤트인 만큼 메시지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그렇다. 구글 딥마인드와 한국 커뮤니케이션팀이 함께 브레인스토밍하면서 메시지를 만들었다. ‘알파고가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라는 걱정도 있었다. 설령 알파고가 패하더라도 구글 딥마인드가 알파고를 열심히 개발해 왔고 바둑 프로그램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향후 환경, 건강 등 구글이 해결하려는 모든 인류의 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범용적 목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음을 알려야 했다. 반대로 이세돌이 패하더라도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거나 기술을 지나치게 경계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를 위해 알파고가 이긴다면 인공지능의 승리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의 승리’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이렇게 알파고가 이길 때의 시나리오와 질 때의 시나리오를 모두 상정한 뒤 ‘누가 이기든 승리하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구글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을 동시에
총괄한 적도 있는데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의
주된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회사마다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 차이가 있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나눠 보자면 마케팅은 주로 비용을 써서 ‘페이드(paid) 미디어’, 즉 TV 광고, 옥외 광고,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플랫폼 광고 등을 활용해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행위라면, PR와 커뮤니케이션은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공중이 직접 참여하고 재생산하는 ‘언드(earned) 미디어’를 활용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광고에서 제품을 접하는 것과 기사나 소셜미디어에서 제품을 접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중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국엔 스토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역시 PR의 중요한 요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마케팅은 사전에 계획하고 집행하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PR는 사후 대응까지도 포함하고 위기관리도 그 일부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은 ‘깊게 보는’ 활동이라면 PR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크게 보고’ 위기 징후를 파악해 사전에 대비하는 활동이다.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봐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개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기보다는 ‘이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고민해서 큰 그림을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글코리아에 직원이 몇 명 없을 때부터 최소한 한국에서는 내가 구글 브랜드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구글이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사람들이 구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신이 내린 직장’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회사의 본질이나 전부는 아니지 않나. 이에 사내 정책팀과 함께 구글이 한국에 있는 기업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탐색했고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곧장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파트너십을 맺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들이 알려지자 정부 부처가 구글코리아에 ‘K-스타트업’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해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들을 실리콘밸리에 데려가 벤처캐피털과 연결해주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일련의 과정은 단순히 한국에서 구글의 이미지를 제고했을 뿐만 아니라 구글 본사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존재를 인지하는 계기가 됐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설립될 수 있었던 것도 스타트업과 공생하는 이런 생태계의 기반이 다져졌고, 본사에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업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면 이해관계자들이 반응하고, 연관 사업으로 계속 이어져 기업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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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을 가시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가 어렵지 않나?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것이 단기적인 성과로 가시화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이어 능동적으로 혁신을 도모했던 게 미디어 생태계였다. 실제로 2014년부터 디지털 언론인 양성을 위해 시행했던 ‘구글 넥스트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거쳐 간 국내 저널리스트만 200명이 넘는다. 이런 교육 과정이 당장 우호적인 기사 하나를 더하고, 부정적인 기사를 덜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이수한 기자 대부분이 현재 각 언론사 디지털룸에서 요직을 맡고 있고, 각 사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구글의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들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론사의 문제해결을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문, 방송, 라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 현장에서 새로운 저널리즘과 콘텐츠의 형식을 실험하고 타깃 오디언스를 실험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협업 모델의 성과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회사가 다른 이해관계자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한 뒤 시장에서 문제를 포착하고, 연결하고, 외부와 내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커뮤니케이션팀이 그릴 수 있는 ‘큰 그림’이 아닌가 싶다.

앞서 PR는 위기 대응도 포함한다고 했는데
위기관리는 어떤 식으로 했나?

당연히 최선의 위기관리는 예방이다. 인터내셔널 기업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국내 정책 변화다. 가령, 한국에서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해 반드시 개인정보를 받아 실명을 인증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이제는 실명 인증이 불법이 됐다. 정책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사람들의 민감도도 변한다.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들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게 해도 사람들은 플랫폼이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며 경계심을 보인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개인 사생활 보호만큼 보안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이를 위해 보안 관련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개인의 비밀번호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구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계속해서 주지하고, 정기적인 비밀번호 변경 필요성을 일깨우는 것도 구글이 선제적으로 했다. 이렇듯 작게는 개인정보 보호 방침에 대해 이용자들을 교육하는 것도 위기관리의 일환이다. 보안 사고가 터진 뒤 막으려고 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인 확인을 할 때 2단계 인증을 하는 것도 지금은 보편적으로 도입됐지만 이 2단계 인증 제도를 처음 적용하고 그 중요성을 알린 것도 구글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심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회사 내부와 외부, 사람들을 잘 연결하고 관계 맺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도 하나의 중요한 자질일 수 있다. 다만 관계를 꼭 자본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고, 사람을 대할 때 진정성을 가지고 윈윈할 수 있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포천 500대 기업의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들을 위한 단체인 ‘페이지 소사이어티(Page Society)’가 운영하는 커뮤니케이션 관련 과정을 듣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매니징 디렉터가 자사의 직원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 사례로 한 캠페인을 소개한 적이 있다. 회사 임직원들이 직장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일하는 모습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을 영상으로 담은 캠페인이었다. 자식이 자랑스럽다는 어머니부터 동생이 일터에서 밝게 지내는 모습에 기뻐하는 형의 모습 등 가족의 생생한 반응이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캠페인 사례를 접하면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임직원들도 이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가족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임직원의 가족도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만큼 이렇게 이해관계자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신뢰 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은 커뮤니케이터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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