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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Interview: 유병욱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랜드 시민 의식 반영한 ‘브랜드 액티비즘’ 시대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이 팔린다

강지남 | 315호 (2021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적극 참여하고 행동하는 브랜드 액티비즘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사람의 거짓말이 생명을 위협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면서 소비자가 겉만 번지르르한 브랜드보다는 브랜드의 ‘진심’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액티비즘의 핵심은 ‘어떤 이슈를 고르느냐’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본질과 핵심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각적인 재미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브랜드가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꾸준하게 발신한다면, 소비자는 브랜드를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처럼 여길 것이다.



브랜드는 더 이상 ‘사물’이나 ‘기능’이 아니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실천하는 훌륭한 인격체이길 바란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존재가 된 현상을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 브랜드 행동주의)으로 개념화했다. 코틀러는 “브랜드 액티비즘이란 공공선(公共善)을 증진시키고자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기업의 선언”이라고 정의하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1

코틀러 교수가 마케팅 권위자인 크리스천 사카와 공동 저술한 책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 From Purpose to Action)』에 따르면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 경영 활동과 사회적 이슈를 연계하는 마케팅)이 마케팅에서 시작해 사회로 나아갔다면, 브랜드 액티비즘은 사회에서 출발해 마케팅으로 나아간다. 브랜드 액티비즘에서 소비자는 단순히 브랜드 소비 주체인 고객(customer)이나 이해관계자(stakeholder) 역할을 넘어 ‘브랜드 시민’으로 진화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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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브랜드 액티비즘을 실천하려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소비자로부터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어디서부터 탈출구를 찾아야 하나. DBR는 광고•마케팅 현장에서 브랜드 액티비즘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유병욱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만나 브랜드 전략에 대해 물었다. 유 CD는 유튜브 누적 조회 수 590만 건 이상을 기록한 퍼시스그룹의 의자 전문 브랜드 시디즈의 ‘기대요’ 캠페인을 이끈 주인공이다. 한글대학 할머니, 길거리 버스커 뮤지션 등 의자가 필요한 이들에게 맞춤형 의자를 제작해 보내주는 시디즈의 사회 공헌 활동을 담백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한 이 캠페인은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지난해 5월 ‘2020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온라인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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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치명적 피해가 되는 시대

국내 기업들에 브랜드 액티비즘은 어느 정도 주목받고 있나.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이제 드디어 많은 기업이 ‘브랜드 액티비즘’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브랜드 활동에서의 진정성 추구를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다음 단계로 여기며 마땅히 가야 할 방향으로 본다. 여기서 진정성이란 진지함보다는 진심에 가깝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사업을 통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진심을 담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예전에는 멋지게 단장한 메시지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진정성 있게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브랜드의 진정성은 언제부터 화두가 됐나.

2009년 박웅현 TBWA 크리에이티브 대표가 이끈 대림산업 e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에 카피라이터로 참여했다. 당시 우리는 대림산업의 핵심 가치를 찾기 위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아파트의 설계나 건축 자재 선정 과정에서 친환경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등 ‘좋은 집을 짓겠다’는 진심을 발견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캠페인은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이 캠페인이 발신한 메시지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 캠페인은 2년 반가량 진행되고 2011년 종료됐는데 요즘에도 회자되곤 한다. 개인적으로 진정성 있는 브랜드 활동의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기업 전반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에 대한 관심이 확대된 것은 2∼3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LG전자와 오뚜기 사례를 떠올려보자. 대중은 LG전자가 광고하지 않는 뛰어난 제품 스펙과 남몰래 하는 선행을 찾아내 공유하며 열광했다. LG전자 홍보팀은 ‘바보 마케팅’을 한다는 애정 넘치는 질책(?)을 받았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상속세를 법대로 납부하고,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하게 벌여온 오뚜기는 ‘갓뚜기(신을 뜻하는 ‘God’과 오뚜기를 합친 말)’라는 애칭을 얻었다. 훌륭한 인격체와 같은 브랜드를 찾는 대중의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었다. 장기화된 저성장, 부의 양극화, 집단 간 갈등 심화 등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방황하는 대중이 보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고 본다. 예전이라면 ‘아, 선비’, ‘노잼’했을 메시지를 이제 대중은 쿨 하게 받아들인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꾸준하게 발신하는 브랜드를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처럼 여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브랜드의 진정성 추구를 가속화하고 있나.

확실히 그렇다. 일례로 최근 유통 스타트업인 컨비니와 어니스트플라워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농산품이나 식품, 화훼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자의 스토리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비니는 전국의 우수한 농수산물 생산자들을 영상 콘텐츠로 소개해 생산물이 제값에 판매될 수 있도록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또한 어니스트플라워는 ‘구독 경제’를 기반으로 소비자와 화훼농가 농부를 직접 이어주는 ‘Farm to table(농장에서 식탁까지)’ 서비스를 선보이는 스타트업이다. 두 비즈니스 모델 모두 농가, 즉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해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상품을 거래할 수 있게 했다.

대중이 소비자를 상대로 장난을 치거나 겉차림만 번드르르한 브랜드 대신 진정성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감정 기제에 범퍼(충격완화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감염병 대유행 시기에는 한 사람의 거짓말이나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 당장 나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타고 매우 빨리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굉장하게 화를 낸다.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는 진정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때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 경기 호황 시절이 다시 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상대가 적(敵)이 되지 않는 사회로 돌아갈 수도 없다. 또 다종다양한 미디어가 개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시대에는 몇억 원씩 들여 단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하나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조근조근하게 발신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진정성’이란 화두를 바라보는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의 차이가 있나.

아무래도 서구 브랜드가 과감하게 사회 이슈에 뛰어들고 있다. 나이키 사례가 대표적이다.3

미국에서도 나이키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캠페인에 반대하며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이키는 소비자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됐고 브랜드 진정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매출과 주가도 크게 올랐다. 일본에서도 캠페인 초기에 저항을 겪겠지만 분명 이를 지지하는 일본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또 글로벌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소비자 등이 이 캠페인을 지지함으로써 더 많은 브랜드의 팬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국내 기업은 날카로운 이슈에는 잘 뛰어들지 못한다. 호불호가 없는 환경보호에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양쪽이 첨예한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많은 기업이 광고 이미지에서 남녀를 고정관념대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전형적인 젠더상을 피로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성전자 비스포크 광고에서 아내는 맥주, 남편은 와인을 마시고 아내 취미는 기타, 남편 취미는 식물 기르기로 묘사된다. 광고를 통해 고정된 성 역할이 더욱 해체되고 이것이 다시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젠더 이슈를 다루는 브랜드가 등장하리라 본다.

브랜드 가치 정립이 우선

브랜드 액티비즘의 영역은 크게 6가지(정치•경제•사회•법•환경•직장)로 나뉜다.4 국내 기업은 어떤 영역에서 브랜드 액티비즘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업이 참여하고자 하는 영역이 반드시 멋있고 중대할 필요는 없다. 기업은 영역을 택하기 전에 자신의 본질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례로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평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면 ‘운동에서는 젠더나 나이가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만들어 실천해 나가면 된다. 브랜드의 스펙트럼에 맞지 않는 이슈는 어차피 공감받기 어렵고 깊게 파고 내려갈 수도 없다. 브랜드 액티비즘 시대에는 마케팅 차원에서 사회 참여를 ‘기획’해선 안 된다. 브랜드의 본질을 바탕 삼아 자신만의 가치를 설정한 뒤 그 가치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은 필요치 않은 플라스틱 스팸 뚜껑을 만들어 환경에 해를 입힌다는 항의를 받았다.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 행동을 했다고 비판을 받은 브랜드는 그다음 행보를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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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 역시 스팸 뚜껑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CJ제일제당은 시민단체가 플라스틱 뚜껑에 반대하며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진행하자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부터 뚜껑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오는 설 명절에도 일부 뚜껑 없는 스팸 세트를 선보이고, 올 추석에는 모든 선물세트에서 스팸 뚜껑을 없앨 계획이다. 소비자가 문제 제기한 것이 합당하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다음 행동을 취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진심이다. 꾸며내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다. 구체적 행동 방안을 마련하기 전에 ‘미안하다’ 한마디를 먼저 해야 한다. 이렇게 대응하면 소비자는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여 준 브랜드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고 이후 브랜드와 긍정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위기가 오히려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 시대, 광고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요즘 유튜브 영상에 붙는 5초 분량의 광고가 인기다. 그런데 진정성을 추구하는 캠페인은 메시지가 길어질 수밖에 없어 5초 안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시디즈의 ‘기대요’ 캠페인 영상도 1분30초였다. 유튜브 시대에 과연 사람들이 이렇게 긴 영상을 볼 것인지 모두가 걱정했다. 하지만 진정성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기대요’ 영상을 끝까지 본 비율이 비슷한 시기에 TBWA가 진행한 다른 캠페인들의 6배에 달했다. 스토리텔링은 매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브랜드 액티비즘을 고민하는 기업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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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사회 참여라고 해서 거대 담론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의 브랜드를 깊게 들여다보며 핵심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다음, 사회에 발신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립하고 최소 2∼3년간 꾸준하게 해당 메시지에 따른 브랜드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동아제약 박카스는 지난해 ‘우리에겐 회복하는 힘이 있습니다’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선보였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실제 부부를 통해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박카스는 개인의 피로 회복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회복에도 기여하는 브랜드로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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