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에 들어 있는 성분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알레르기를 유발하지는 않는지 친절하게 해석해주며 5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이끌어낸 앱 ‘화장품을 해석하다(이하 화해)’. 화해의 성공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1. 스타트업 성공의 핵심은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있다: 화해는 ‘화장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2. 소비자가 서비스 업그레이드의 주인공: 화해는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소비자 니즈에 귀 기울이며 리뷰, 랭킹, 커머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왔다.
3. 수익화를 서두르기보다는 신뢰부터 쌓았다: 화해는 좀 더디더라도 이용자 규모를 확대하며 탄탄한 신뢰도를 쌓은 뒤 돈이 되는 광고나 커머스는 지난해 이후에야 도입했다.
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고은진(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싼 브랜드니까 뭔가 다르지 않겠어?”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하얀색 액체이건만 가격은 왜 수백 배씩 차이가 나는 것인지 소비자들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브랜드 이미지나 입소문, 리뷰에 의존해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화장품이었다. 어떤 제품이 피부에 무해한 친환경 성분을 사용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교해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골라내기란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었다.
물론 접근 가능한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화장품 제조에 사용된 모든 성분을 기재토록 하는 화장품 전(全) 성분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50ml 이하 제품 겉면에는 성분이 표시되지 않았고, 설령 표시가 돼 있다고 하더라도 ‘페녹시에탄올, 클로페네신’과 같은 화학성분이 도대체 피부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소비자가 의미를 해석하기란 불가능했다. 사실상 반쪽짜리 정보였던 셈.
이런 정보 불균형 상태를 해결해보겠다는 포부로 시장에 뛰어든 이가 바로 버드뷰의 이웅 대표와 2명의 고교 동창. 3명의 창업멤버들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화장품을 해석하다(이하 화해)’는 피부과 교수, 화장품 연구소 대표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소비자들이 이름만 들어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화장품 성분의 특징과 영향을 자세히 소개했다. 식약처의 지침에 따라 화장품 포장에 표기되고 있는 전 성분을 미국 시민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대한피부과의사회 등이 고지하는 기준에 맞춰 분석하고 위험 성분, 알레르기 주의 성분 등을 소비자가 보기 편하게 알려준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값진 정보를 제공하자 그동안 ‘깜깜이’ 상태로 화장품을 구매해야 했던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탈모나 민감한 피부로 고민하던 직장인에서부터 아토피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까지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2030 직장 여성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화해는 서서히 인기 앱 반열에 올랐다. 2013년 7월 출시 이후 4년여간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 화장품 카테고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한 끝에 2015년 2월 100만 다운로드, 2016년 2월 200만 다운로드, 2016년 8월 3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더니 올해 들어 누적 다운로드 500만 건을 돌파했다. 화장품 구입 전후 화해를 사용하는 사람(MAU·월간 활성이용자 수)은 월 기준 110만 명에 이른다.
보유 데이터양도 4년여 새 무섭게 불어났다. 화해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화장품은 2017년 6월 현재 4757개 브랜드의 8만5000여 개 제품. 국내 출시된 전체 화장품 중 약 70%에 달하는 제품들의 성분 정보가 화해에 모여 있다. 화해는 화장품 리뷰가 공유되는 ‘리뷰 허브’이기도 하다. 230만 건가량의 사용자 리뷰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기업 중 화해만큼 막대한 양의 소비자 반응 및 평가 데이터를 가진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레 화해는 대기업들도 무시 못할 화장품 업계의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가 됐다. 일부 대기업에서 인수를 고려했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관심의 주인공이 된 화해는 지난 2015년 말 투자자들에게 톡톡한 수익을 돌려주며 나이스그룹에 편입됐다. ‘버드뷰의 독립적인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수익모델을 일궈내지 못한 스타트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성분 분석과 소비자 리뷰, 신뢰와 영향력이라는 화해만의 독자적인 ‘자산’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그 후로도 이용자 규모를 꾸준히 확대해 온 화해는 이제 광고, 커머스를 통해 영향력은 물론 ‘수익’이라는 토끼까지 잡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화해의 성장 스토리를 DBR이 분석했다.
값진 두 번의 실패, 고배를 마셨지만 ‘교훈’은 거뒀다‘컨설팅? 금융회사?’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이 뛰질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슴속에 자리한 창업의 꿈에 대한 미련만이 자꾸 그를 괴롭혔다. “딱 3번만 도전해보자.” 다행히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이웅 대표의 곁에는 되든지 안 되든지, 함께해보자는 든든한 고교 동창 2명이 있었다. 의기투합한 3명의 남자들은 다른 동기들이 열심히 면접을 다닐 때 코딩 등 앱 개발 공부를 하며 창업을 위한 실무준비를 해나갔다.
2012년, 첫 번째 시도는 여행 관련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사실 별다른 창업자금이 없는 대학생들끼리 뭔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창업경진대회’가 가장 쉬운 통로였다. 갖가지 창업경진대회의 문을 두드렸다. 10여 차례 고배를 마시다가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이 바로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했던 창조관광 사업이었다. 사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여행족도 아니었는데 덜컥 경진대회용 아이템을 낸 것이 수상을 하면서 여행 앱으로 창업의 첫발을 내디딘 셈.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여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의 ‘만남’도 큰 의미를 가지는 만큼 여행 중인 사람들이 같은 도시를 여행하는 다른 여행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앱의 이름도 travel+friends를 합쳐서 ‘트렌즈’라고 지었다. 나름 신선한 발상이라고 자부했건만 인기 앱을 만드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도 700명 이상으로는 다운로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700명마저도 사실상 관광공사의 홍보에 따른 것이었다.
실패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두 번째 도전에 나선 이들. 이번에는 가볍게 자판기 사업을 아이템으로 잡았다. 자판기 사업에 ‘올인’을 하기보다는 자금력이 떨어진다는 게 굉장히 부담인데 자판기로 꾸준히 현금 소득을 거둘 수 있으면 그것이 향후 제대로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일반 자판기는 도저히 사업성이 없을 것 같아서 머리를 짜낸 것이 헬스장에 들어가는 단백질 보충제 자판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판기를 구입해 신촌에 3군데에 입점시킨 뒤 상황을 지켜봤지만 소비자들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이제 어느덧 한 번의 기회만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신중하게 해보고, 안 되면 일단 어디든 취업을 해 경험을 쌓고 다시 도전하자.” 앞서 2차례 겁 없이 도전했던 이들은 비로소 두 번의 도전을 찬찬히 복기해보기 시작했다. 한 발짝 떨어져 보니 그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첫 번째 아이템인 해외여행에서 친구를 연결해주는 앱은 해외에서 매칭이 이뤄져야 하는 등 그들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일정 규모 이상이 돼 쉽게 여행친구를 찾을 수 있어야 가입을 할 ‘니즈’가 있는, 네트워킹 효과가 바탕이 돼야 하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따라서 고도화된 마케팅 능력이 필수였다. 보충제 자판기 사업의 경우, 시장이나 소비자 니즈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했다. 자판기 사업을 하기 전에 ‘헬스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가’라는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안일하게 ‘자판기를 갖다 놓으면 사람들이 헬스를 하다가 먹겠지’라고 기대했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헬스를 즐기는 이들은 본인이 까다롭게 검증한 보충제를 사물함에 넣어두고 틈틈이 섭취하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꺼내먹는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그렇다면 도대체 마지막 아이템은 어떤 것이 돼야 하는가. 뼈아픈 2번의 실수를 경험한 그들은 기본적으로 본인들이 흥미를 갖고 있고,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결정적인 조건은 큰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섣부르게 아이템을 결정하지 않고 몇 달간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아이데이션(Ideation)’ 과정을 거쳤다.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남성 화장품 시장. 그러고 보니 주변에 한 달에 30만∼40만 원을 화장품에 쏟아붓는 남성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신조어)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반면 아직까지 화장품의 ‘화’자도 모르는 남성들도 많았다. 이는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순간 머릿속에 ‘큰 그림’이 스쳐 지나갔다. 노트북 하나를 살 때도 몇 달씩 성능을 비교하고, 또 비교하는 남성들의 습성을 화장품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화장품의 스펙을 비교하고 공부하며, 이를 쉽게 고를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이 생기면 화장품 시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남성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1. 해결하고 싶은 과제에 집중한 화해이처럼 당초의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처럼 ‘스펙 비교’를 즐기는 남성들을 위한 화장품 큐레이션 플랫폼이었다. 노트북을 살 때 밤을 새워가며 CPU(중앙처리장치) 등 각종 사양을 비교하고, 자동차를 장만하기 전 출력과 엔진스펙을 줄줄 꿸 정도로 공부하는 남성들을 위해 화장품에 대해서도 스펙 분석의 ‘장(場)’을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펙 비교를 해주려고 보니 ‘성분’이 자연스레 눈이 들어왔다. 수십만 원짜리 크림부터 단돈 1만 원짜리 크림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인데 도대체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를 알 수 없었다. “만약 성분만 제대로 정리해낼 수 있다면 ‘A 화장품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제로인데, 용량 10ml당 가격이 제일 저렴하다, 즉 가성비 갑.’ 이런 식으로 분석이 가능해질 수 있을 텐데….” 알고 보니 정부가 시행 중인 ‘전 성분 표시제’ 덕분에 성분을 알 통로가 없진 않았다. 대한피부과의사회,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들이 공개해놓은 데이터들만 해도 수두룩했다.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가끔 들여다보긴 하는데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안 보는데…” 대다수의 반응이 그러했다. 성분이 공개되고 있었지만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웅 대표는 돈을 떠나서 꼭 풀고 싶은 커다란 과제를 만난 느낌이었다. 정부는 ‘전 성분 표시제’를 시행만 할 뿐 추가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식이었다. 소비자들에게 이를 제대로 제공하는 민간 업체도 없었다. ‘우리가 여기 뛰어들어 성분을 제대로 분석하고, 쉽게 풀어내줄 수 있다면 어떨까.’ 3명의 창업 멤버는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이라는, 해결하고 싶은 명확하고 큰 과제를 설정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화장품 시장의 하위 카테고리라면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은 화장품 시장과 전체 소비자를 둘러싼 큰 과제였다. 이들에게는 더 가치 있고 큰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화장품 시장에는 남되 남성 화장품이라는 키워드를 버리고 ‘성분 정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과감한 ‘피버팅(Pivoting)’1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