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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가 ‘영광의 자리’ 떠난 까닭

231호 (2017년 8월 Issue 2)

2006년에 남아프리카에서 아우디와 BMW가 ‘광고 배틀’을 벌였다. 아우디가 남아프리카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되자 BMW가 ‘2006년 세계 올해의 차(World Car of the Year)’ 수상자로서 축하 광고를 집행하며 시비를 걸었다. 아우디는 비슷한 형식으로 BMW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발신자는 2000년부터 6년 연속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아우디로 표시돼 있었다. 고작 한 해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게 무슨 대수냐는 의미가 더 컸지만 르망 24시간 레이스라는 자동차 경주 자체가 ‘올해의 차’에 필적할 만큼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사실 아우디는 2000년 이후 계속 우승컵을 가져갔다. 2009년에만 푸조에게 밀렸을 뿐
2014년까지 총 13회 우승하며 21세기 절대왕조를 건설했다. 지난 세기인 1998년에 16번째 우승으로 자신의 최다 기록을 경신하며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떠났던 포르셰의 기록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포르셰는 2011년에 르망 24시간 레이스 2014년 대회부터 다시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설의 컴백에 팬들은 열광했다. 비록 복귀 후 첫 출전인 2014년 대회에서 포르셰는 1, 2위를 석권한 아우디는 물론이고 도요타에게도 밀리며 11위에 그치는 불명예를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매년 기적과도 같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3연패라는 새로운 신화를 썼다.

팬들의 함성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포르셰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프로토타입(LMP1) 경쟁 분야에서 철수하고, 양산차로 겨루는 GTE(Grand Touring Endurance) 부문에만 참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포르셰가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발을 빼는 수순을 밟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포르셰는 LMP1에서 발을 빼는 대신 전기차 경주인 포뮬라-E(Formula-E)에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돌아온 영웅으로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셰가, 역사가 일천한 레이스에, 그것도 파워와 주행거리에 치명적 한계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전기차로 경쟁을 벌이겠다는 건 일견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그럴 만한 이유와 노림수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포르셰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 한 번 더 포르셰가 우승한다고 하더라도 그 감동은 2017년의 3연패만큼 진할 수 없다. 마치 마이클 조던이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로 뛰기 위해 은퇴를 했다가 되돌아와서 시카고 불스를 다시 한번 3연패로 이끌었던 때를 연상시킨다. 그 직후에 조던은 시카고 불스를 떠났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정점에서는 다른 목표를 향해 떠나야 한다.

둘째, 전기차 경주인 포뮬러-E에서 포르셰는 잃을 게 없다. 테슬라가 주행거리나 파워에서 전기차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전기차와 포르셰는 거의 대척점에 있다. 물론 포르셰가 2015년에 콘셉트 전기차를 선보이고 2020년까지 슈퍼 전기차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다른 전기차 메이커에 비하면 포르셰는 언더독(underdog)이다. 게다가 르망에서의 영광을 뒤로하고 전기차 레이스에까지 뛰어들었다. 돌연 농구코트를 떠나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로 전업했던 조던에게 성적과 관계없이 열광했던 팬들이 생각난다.

셋째, 전기차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강력하게 알리는 계기가 된다. 자동차 엔지니어는 자부심이 높은 만큼 아주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3분의 1 정도의 부품만으로 제작되는 전기차를 두고 “전기차는 차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들을 꽤 봤다. 포르셰의 엔지니어들은 자부심이나 보수성에서 다른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전기차로 순위를 매기며 경쟁한 결과가 외부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대회 자체가 포르셰 내부 엔지니어들에게 엄청난 압력이자 동기로 작용한다. 글로벌하게 금액으로 브랜드 가치를 매겨 발표하는 기관들이 있다. 가치 산정의 정확도를 떠나서 명단이 언론 기관에 나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업 일변도의 기업 내부에 브랜드를 향한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폴크스바겐이라는 포르셰의 모기업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다. 알다시피 폴크스바겐은 소위 ‘디젤 게이트’라는 치명상에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포르셰가 폴크스바겐그룹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고객이 훨씬 많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 집단, 특히 정부나 규제 기관의 관련 인사들은 포르셰와 폴크스바겐의 관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 포르셰의 이번 전기차 레이스 대회 참가 발표에서 친환경 자동차를 향한 폴크스바겐 전체의 노력을 읽어달라는 외침이 계속 배경음처럼 울리고 있다.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될 때 다른 도전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 언더독이 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소한 잃을 것은 없다. 그런 새로운 목표가 내부 결속의 중심추가 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기업 전체에 그 기운이 스며들게 된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글로벌 마케팅기업인 하바스그룹 한국법인에서 국내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트렌드 분석 및 마케팅 실행 전략을 제시하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플래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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