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을 통한 창조

디자인 통합사고가 기업 살린다

11호 (2008년 6월 Issue 2)

창조성은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이다. 창조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절대적인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조합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빚어내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세포와 특질이 반반씩 융합되어 새로운 개인으로 창조되는 아기, 붉은색과 흰색의 조합에 의해 탄생하는 분홍빛 꽃과 같이 조합과 융합은 창조의 기본적인 원리다.
 
창조에 있어 조합과 융합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역설되어 왔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차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창조성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조합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창조의 기본적인 원리는 융합
이와 같이 창조, 즉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모두 이미 존재하는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이 조합되어 나타난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책 ‘물리와 철학’에서 “인간 사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열매를 맺은 발전은 두 개의 다른 생각의 선이 만나는 곳에서였다”고 강조했다.
 
창조의 과정은 첫째, 마음의 눈을 통하여 대상을 바라보는 ‘상상’, 둘째, 그 상상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력’, 그리고 창조성을 실재화하는 ‘혁신’의 단계로 구분된다. 이런 모든 과정의 핵심은 융합이다.(그림1)
 
실제 비즈니스와 제품에서도 융합을 통해 창조적 혁신을 이뤄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선정한 찰스 이엄즈는 “성공적인 디자인은 내 견해와 경영자,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 일치하는 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때 가능했다”며 디자인 경영과 사회가치의 융합을 강조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는 서양 중심의 국제적인 보편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일본의 전통복식 미학을 바탕으로 한 이국적 이미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대표적인 현대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대상의 물질’에 ‘대상의 정신’을 융합해 직관적이고 대중에게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창조성과 융합의 기본적 방법들
이처럼 창조를 위한 융합의 재료는 무척 다양하다. 다시 말해 창조는 전체적, 통합적 가치를 고양해 확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대립적 요소 간의 융합을 먼저 해야 한다. 나아가 최상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다양한 연령층과 문화,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 환경, 그리고 전문분야를 뒤섞는 것’이다.(그림2)
 
기발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현재의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고 남과 다른 관심과 방향으로 세상을 보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즉 ‘그것은 단지 ○○이 아닙니다’와 같이 남과 다른 생각을 해내야 한다는 말이다.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은 흔히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유연한 창작 활동을 한다. 그리고 수치나 근거자료에만 의존치 않는, 직관적 통찰을 활용한 새로운 가치의 발견에 능하다.
 
나아가 창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협동과 소통, 교류, 네트워킹이 필수적이다. HP의 전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는 “혁신을 위해서는 협동만이 유일한 답안이다”라고 말했다. 또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의 저자인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조적이고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집단이 어떻게 함께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MIT 방사선 연구실은 전문영역별로 사무실을 나누지 않는다. 방사선의 개별 기능에 따라 과학자와 공학자가 함께 협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공동 연구실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인의 통합적 사고를 활용하라
비즈니스위크는 지난해 8월 특집에서 ‘기업의 경영자들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디자인 스쿨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비즈니스 교육기관들이 디자인 교육기관과 교류하거나 그들 고유의 디자인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저 마틴 교수는 “앞으로 기업 경영자들은 알고리즘이나 미세한 수치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통찰과 발견의 달인이자, 융통성에 기반을 둔 통합적인 문제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디자인의 통합적 사고 및 문제해결 능력이 기업 경영에 커다란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위리에 소타마 헬싱키 국립예술디자인대(UADH) 총장은 “디자인은 여러 분야를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전체론적인(holistic)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학문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시각화해 문제해결과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디자인과 경영, 엔지니어링 등을 융합해 새로운 지식과 혁신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가속화하고 있다. P&G는 앨런 래플리 회장 취임 후 타 분야의 인력을 줄이고 대신 과거의 4배에 달하는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그리고 마케터와 관리직 직원들이 디자이너의 직관적이며,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융합하는 사고방식을 배우게 했다. 두바이에서는 2000명의 디자이너가 21세기형 문화교육 도시를 건설하는 모하메드 국왕의 ‘브레인’ 구실을 하고 있다.
 
한편 창조적 인재 육성을 위해 디자인을 다른 분야와 묶는 다양한 교육모델도 시도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UIAH와 헬싱키공과대학, 헬싱키경제대학을 하나로 통합해 ‘혁신대학’을 만들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디자인스쿨은 세계 최대의 디자인 전문회사 아이디오(IDEO)와 연계해 인간 기술 경영이 결합된 통합디자인 프로그램을 2003년 구축하고, 대학 내 통합 혁신 교육의 핵심이 되도록 했다.
 
폭넓은 시각으로 디자인을 조망해야
통합과 융합은 새로운 다양성을 창조하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이자 핵심적 방법이다. 기업이 통합과 융합을 통해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과 상호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산업계는 물론이고 연구, 사회, 교육계 등 다양한 분야와 밀접하게 협동하고 소통하는 열린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해 전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적극적인 융합은 새로운 시장기회의 창출을 도우며 기업이 궁극적으로 혁신에 신속히 이르게 한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여러 기능과 디자인적 사고를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디자인을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기업은 디자인을 수익증진의 도구로 보는 좁은 시각을 버리고 사회적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도구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는 환경친화 및 도시 디자인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천연소재를 사용한 운동화와 오염물질이 없는 포장지를 내세워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 디자인은 단지 도시의 모습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한결 편안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디자인은 기업이 조화로운 융합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조화로운 융합의 모델을 우리 고유의 ‘태극(太極)’ 문양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과 양이 함께 어우러지는 태극은 다양한 가치를 균형 있고 조화롭게 융합시켜 이상세계를 향해 평화롭게 발전하는 것과 이를 위해 상호 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제품디자인 및 방법론을 전공했고 핀란드 UIAH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디자인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세계디자인학회 이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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