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의 참외 상품화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유나연(숙명여대 영어영문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경상북도 성주는 전국 최대의 참외 재배지역이다. 성주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성주참외는 들어본 경우가 많다.
현재 성주군 전체 농가 8900여 가구 중 절반이 넘는 4682가구가 참외 농사에 종사한다. 성주군 참외 재배 면적은 총 3969ha로 전국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한다. 올해 성주군이 참외로 벌어들일 예상 조수입(농산물 판매금액)은 약 3570억 원. 성주군 내 참외 농가가 4682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농가당 평균 약 7600만 원의 조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현재 성주에는 1억 원 이상의 조수입을 올리는 ‘억대 농가’들이 무려 1000가구를 웃돈다. 지난해 억대 농가(563가구) 숫자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처럼 부농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원인은 참외 농가의 소득이 부쩍 증가했기 때문이다. 성주군에 따르면 올해 전체 억대 농가(1082가구, 성주군 전체 농가의 12%) 중 참외 농가가 총 750가구로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약 70%)을 차지했다.
성주가 이처럼 전국에서 부유한 농촌으로 손꼽힐 수 있었던 데는 중간상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참외박스를 규격화하는 데 성공하고 저급 참외를 수매해 액체 비료로 만들어 농가에 보급하는 등 민관이 하나가 돼 참외 품질의 고급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성주참외의 성공 요인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
참외 상자 규격화 통해 부가가치 창출
참외 도매상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로 ‘고봉(高峯)’이란 게 있다. 참외를 상자에 담을 때 뚜껑 위로 수북이 빠져나올 만큼 쌓아서 참외 더미가 높은 봉우리처럼 솟아나온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참외를 담으면 당연히 상자 뚜껑은 덮지도 못하고 박스 뚜껑을 연 채로 포장해야 한다. 2005년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성주참외의 99%는 대부분 이런 고봉 포장 형태로 유통됐다. 참외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포장하다 보니 15㎏ 상자에 최소 2∼5㎏ 정도 참외가 더 담겨 20㎏ 내외의 무게로 유통됐다. 최창진 성주군 참외담당(계장)은 “크기가 작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참외의 경우엔 15㎏ 박스가 실제로는 30㎏까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런 고봉 포장 관행은 성주참외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주범이었다. 정량보다 훨씬 많은 참외를 담아내는 데 따른 참외 농가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농민들이 참외를 포장하면서 정품 참외 외에 질이 떨어지는 저급품 참외를 군데군데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일명 ‘속박이’ 관행으로 고봉 포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폐단이었다.
비규격 15kg 열림형 상자에 '고봉'포장으로 담긴 참외 규격화된 15kg 상자로 정량포장된 참외 경매 현장
(사진제공:성주군)
문제점을 인식한 성주 지역농협은 1997년 성주참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박스 규격화 사업을 시도했다. 말 그대로 15㎏ 박스에는 정확하게 15㎏의 참외만 담아 유통시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는 중간상인들의 반발과 재배 농가들의 협조 부족으로 무산됐다. 참외를 도매로 대량 매입한 후 이를 다시 2㎏, 3㎏, 5㎏ 등으로 소포장해 파는 중간상인들 입장에선 중간중간 저급 참외가 섞여 있다고 할지라도 가능한 싼값에 많은 참외를 공급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1차 구매자인 중간상인이 정량 포장 원칙을 반대하고 계속해서 덤을 얹어주길 바라는데 농민들이 섣불리 규격화 사업에 동참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괜히 혼자서 정량 판매를 고집하다가 중간 도매상들에게 ‘미운 털’이라도 박히면 한 해 지은 농사 자체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도 먼저 나서서 규격화 사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결국 농협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성주군청은 그러나 2006년, 더 이상 고봉 포장 관행을 방치했다가는 농가의 지속적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그릇된 포장 관행 탓에 성주참외의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농가의 작업 부담이 과도하게 늘고 있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농가 인력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현장 일꾼 중 부녀자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량을 훨씬 초과하는 포장 관행은 작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농가 인력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정형외과 의사들이 돈을 벌고 싶으면 성주로 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성주에는 관절병 환자들이 많다”며 “성수기인 4∼8월에는 15㎏짜리 박스를 하루에 수백 개씩 날라야 하는데 여기서 평균 5㎏이 더 나가는 박스를 수도 없이 나르다 보면 웬만한 장정도 병이 안 생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성주군은 2006년 10월 우수 작목반 대표와 농협 관계자 및 군의회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참외규격상자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과거 농협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으면 박스 규격화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찌감치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후 추진위원회는 성주군 내 10개 읍·면을 순회하며 중간상인 및 농가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하며 규격화 작업의 필요성을 적극 알렸다. 산지공판장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관계자 회의를 열고 서울 가락공판장, 대전공판장, 부산공판장 등 20개 대도시 공영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중도매인들을 설득했다. 처음엔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중간상인들도 “농가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상자 규격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위원회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승복했다.
이에 따라 성주군은 2007년 7월, 총 1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체 3698개 참외 농가가 보유하고 있던 비규격 박스 176만4729개를 보상 회수했다. 이후 관내 공판장에서 규격화된 15㎏ 박스만 반입해 경매하도록 농협과 민간단체에 협조를 구했다. 기존 15㎏ 상자 크기는 가로 450㎜×세로 250㎜×높이 250㎜로 상자 윗 부분을 덮는 날개 부위 아래 쪽에 꺾음 선이 들어가 있어 참외를 넘치게 담아도 뚜껑을 닫지 않고 포장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아예 고봉 포장 관행에 맞춰 정량 이상 초과 포장이 가능하도록 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규격화된 박스에는 이 같은 꺾음 선을 없앴다. 따라서 포장을 하려면 반드시 뚜껑을 닫아야만 안전하게 포장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크기는 가로 450㎜×세로 305㎜×높이 250㎜ 규격(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승인 규격)으로 바꿔 세로 길이를 조금 더 넓혔다.
박스만 바꿨을 뿐이지만 성과는 놀라웠다. 2006년 기준 15㎏ 고봉 포장된 박스의 공판장 평균 가격은 3만130원. 하지만 2007년 규격화된 15㎏ 박스의 평균 공판장 가격은 3만240원으로 110원이 상승했다. 이 규격화 사업으로 성주군은 지방행정혁신분야 유공기관 표창을 받았으며 그해 경북도지사로부터 농정업무 종합평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경제부총리로부터 지역특화 발전특구평가 최우수기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올해에는 15㎏ 규격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 규격화 사업을 추진했다. 최근 급속한 핵가족화의 진행에 따라 소비자의 소포장 선호 현상이 두드러져 15㎏ 상자도 너무 무겁다는 판단에서였다. 간혹 남아 있는 속박이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아 성주참외의 품질을 한층 더 개선하겠다는 뜻도 숨어 있다. 도기석 성주군 농정과장은 “15㎏ 박스의 경우 참외를 3단으로 쌓아야 하지만 10㎏ 박스로 바꾸면 2단으로 쌓게 된다”며 “박스 포장을 뜯어 참외 상태를 확인할 때 외관상 저품질 참외가 들어 있는지 여부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성주군은 지난 2월 총 25억 원을 투입해 15㎏ 상자 약 250만 장을 회수(보상수거)한 후 관내 공판장에 반입하는 박스 규격을 10㎏ 상자로 통일했다.
사실 10㎏ 박스 규격화는 2006년 박스 규격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미 검토됐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비규격화 박스를 규격화 상자로 바꾸자는 것도 매우 급진적인 변화인데 포장 정량까지 바꾸면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고 한발 물러섰었다. 일단 무게는 15㎏으로 유지하고 규격화 박스 사업을 진행하되 10㎏ 박스로의 변경은 규격화 사업의 향방을 약 5년간 지켜본 후 2012년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하지만 15㎏ 규격화 사업이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면서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당초보다 1년 앞당겨 올해 10㎏ 변경 사업을 추진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소포장 유통으로 오히려 ㎏당 단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2009년 ㎏당 평균 단가는 2211원이었는데 2010년 2394원, 2011년 2644원 등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10㎏ 박스 경량화로 고령자와 부녀자 농업인들의 선별작업 능률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성주군 측은 이 10㎏ 규격화 사업으로 2010년 대비 약 300억 원 이상 농가 소득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규격화된 포장 상자를 전면적으로 보급해 유통 참외의 품질 제고, 가격 상승 및 작업 능률 향상을 통한 농가 소득의 증대가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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