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의 저주’를 ‘ 혁신의 축복’으로…

7호 (2008년 4월 Issue 2)

‘다음은 뭐지?’ ‘터치스크린’
최근 삼성전자가 출시한 터치스크린폰 ‘애니콜 햅틱’의 광고 멘트다. 지난해 LG전자의 프라다폰과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터치스크린 방식 휴대전화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올 봄 국내 시장에서 전지현의 ‘햅틱(Haptic)폰’과 김태희의 ‘뷰티(Viewty)폰’이 뜨거운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보고 터치스크린이란 혁신적 기술이 세상에 등장한 게 불과 1년 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모멘타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1세대 터치스크린 방식 PC가 입력 오작동으로 사용자들에게 외면당했고, 애플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개인휴대 단말기(PDA) ‘뉴튼’마저 웃음거리가 됐던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놀라운 혁신 제품들이 왜 수년 혹은 수십 년간 천대를 받았을까. 수많은 창의적 기업가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혁신의 저주’는 왜 생기는 것일까? 최근의 ‘터치폰’처럼 혁신의 저주에서 풀려난 제품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혁신의 저주(the curse of innovation)’라는 말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존 구어빌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거의 모든 혁신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매년 미국에서 출시되는 신제품의 90%가 실패한다는 충격적 수치도 제시했다.
 
‘저주받은 혁신’의 대표적 사례는 1인용 첨단 전동스쿠터인 ‘세그웨이(Segway)’다. 수많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열광했고,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과 같은 스타 경영자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나 세그웨이는 18개월 동안 6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는 당초 판매 목표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태블릿 PC’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차세대 PC의 주요 모델로 수차례 언론에 소개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현재는 극히 작은 규모의 틈새시장에서 이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혁신의 저주로 인해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경영자가 수없이 많다.
 
혁신의 저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혁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혁신은 쉽게 표현하면 ‘매우 새로운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들여다보는 두 가지 렌즈는 바로 제품의 ‘편익(benefit)’과 ‘기술적 능력(capability)’이다. 즉 ‘기존 고객의 니즈를 얼마나 더 잘 충족시켜주는가’와 ‘기술적으로 기존 제품의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는가’가 혁신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창업자들과 제품 개발자들은 보통 이 두 가지 렌즈로 혁신을 바라보며 스스로 만든 제품에 감탄한다.
 
그러나 혁신 제품을 이 두 가지 렌즈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저주의 길로 가는 ‘직행 티켓’이 된다. 왜냐하면 시장과 고객은 더 큰 세번째 렌즈로 혁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세 번째 렌즈는 혁신의 저주를 풀어낼 마법의 렌즈이기도 하다. 이는 바로 ‘고객행동의 변화(customer’s behavioral change)’라는 렌즈다. 제품의 편익과 기술적 능력을 상쇄하고도 남는 혁신의 아킬레스건이 여기에 있다.
 
전기자동차를 타는 고객은 친환경자동차가 주는 매력보다 전기충전의 불편함과 불안함에 고심한다. 무료배달이란 편익을 제공하는 인터넷 슈퍼마켓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고를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 포기’라는 복병 앞에 무색해지고 만다. 20년간 혁신의 저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전기자동차와 초기의 성공에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넷그로서(Net Grocer)같은 인터넷 슈퍼마켓의 운명은 사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고객행동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기존제품에서 혁신제품으로 이행할 때 발생하는 전환비용이다. 전환비용은 새 제품을 구입하는 데 드는 재무적 비용과 실제 취득에 소요되는 제반 거래 비용뿐만 아니라 신제품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학습 비용을 포함한다. 특히 혁신 수용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심리적 전환 비용’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제품의 가치를 비합리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혁신제품에 대한 비합리적 저항감을 갖기도 한다. 혁신을 창조한 기업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종종 심리적 전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혁신을 거부하는 쪽으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렇다면 혁신의 저주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을까. 세 번째 마법 렌즈에 그 답이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는 ‘혁신의 저주’를 ‘혁신의 축복’으로 바꾼 사례다. 전기자동는 사용자에게 엄청난 행동변화를 요구하는 제품이지만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는 전기충전의 불편함을 확실히 제거해 대박을 터뜨렸다. 닌텐도의 신형 콘솔게임기 위(Wii)는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가격(경제적 측면) △기존 게이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호환성 확보(행동적 측면) △이전에는 게임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여성과 중장년층 등의 신규고객 확보(심리적 측면)를 통해 마법과 같이 혁신의 저주를 풀어냈다.
 
당신과 당신의 회사가 혁신을 외치고 있다면 저주를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마법의 렌즈를 통해 혁신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해서 혁신을 축복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김상훈 교수가 주도하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비즈트렌드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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