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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에크리 : 우리는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

강신주 | 68호 (2010년 11월 Issue 1)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해외로 파견근무를 떠나게 됐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는 아내는 걱정이 앞선다. 그가 공항 탑승게이트로 사라질 때 눈물로 범벅이 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멀리 가는 남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그녀는 남편이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연습을 반복했다. 웃으면서 사랑하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두 사람이 잠시 헤어지는 숙명적인 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탑승게이트로 사라지는 남편을 보았을 때, 그녀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조금씩 사라져, 이제는 거의 소멸한 것일까? 사랑이란 감정은 연인의 부재에서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동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친구로서만 알았던 그녀가 유학을 떠나게 됐다. 그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배웅을 나갔다. 원하던 공부를 한다면, 그녀가 더 멋진 친구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슬픔이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잠식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된다. 마침내 그녀가 탑승게이트로 들어갈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뒤늦게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셈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이 아니고, 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런 비극은 특별한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우리 삶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실제 삶이 불일치되는 상태로 영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업데이트했던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삶과 생각, 혹은 존재와 생각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실제로 사랑할 때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우정일 때 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동서양의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이 모두 고민했던 난제였다.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Socrates, BC469∼BC399)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고, 공자(孔子, BC551∼BC479)도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라캉의 위대함은 그가 바로 이 난제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았다는 데 있다. 생각과 존재 사이의 불일치를 해명하려는 노력 끝에 마침내 라캉은 인간의 욕망 구조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환상은 가장 일반적 형식, 즉 공식 ‘$◇a’로 정의된다. 이 공식은 내가 이 목적을 위해 대수학에서 수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는 “∼을 욕망한다”라고 읽어야 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도 동일한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 공식은 … 주체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 <에크리(Écrits)>
 
난해한 말이지만, 천천히 풀어보도록 하자. 우선 라캉은 인간이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욕망은 금지된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만약 금지가 없다면 욕망도 생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어느 공사장 외벽 한켠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하자. “들여다보지 마시오” 이때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니 들여다보지 말아야지”라고 가볍게 돌아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비록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보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를 사로잡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 다시 정신분석학의 논의로 돌아가자.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은 두 살 때까지 구강기(oral stage)를 거친다. 이 시기에 유아는 자신의 입에서 가장 강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유아가 엄마의 젖꼭지에 매달리는 것은 젖을 먹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유아는 엄마의 젖꼭지를 빨면서 쾌감을 느낀다. 유아가 인공 젖꼭지를 물고서 행복하게 잠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엄마는 유아에게 젖꼭지를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유아는 자신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젖꼭지가 이제는 금지됐다고 느끼게 된다. 쾌락을 주었던 엄마의 젖꼭지가 금지된 후 젖꼭지는 유아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변한다. 이 순간 유아는 욕망의 주체로 탄생한다. 라캉은 이렇게 금지된 젖꼭지, 즉 욕망 대상을 ‘대상a(objet a)’라고 표현하고, 간단히 ‘a’라고 표기한다. 반면 금지가 일어났기 때문에 탄생한 욕망 주체를 라캉은 $라고 표기한다. ‘분열’을 뜻하는 사선(/)을 ‘주체’를 뜻하는 S(sujet)에 덧붙인 것이다. 이제 라캉이 말한 욕망의 공식, 혹은 환상의 공식, ‘$◇a’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금지된 쾌락이 잃어버린 쾌락으로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엄마의 젖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된 유아는 볼펜이나 인형을 입으로 빨거나, 더 자라서는 누군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욕망하는 것은 과거 부모나 사회로부터 금지된 쾌락 대상의 아우라를 가진 것이다. 현재 작동하는 우리의 욕망은 모두 과거 금지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라캉이 인간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까 라캉의 해석에 따르면 생각 속에서 애인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유년 시절 금지된 쾌락 대상으로서 젖꼭지를 그리워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 때문에 생각과 삶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머릿속에서는 애인을 사랑해서 키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젖꼭지에 대한 잃어버린 쾌락을 절망스럽게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결국 생각과 존재의 불일치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과거에 자신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각인된 금지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라캉은 정신분석학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주체는 타자(the Other)로부터 욕망되는 자로서건 아니면 욕망되지 않는 자로서건 간에 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한다. 정신분석의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프로이트가 밝힌 진리의 본성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에크리(Écrits)>
 
여기서 타자는 부모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개인적 이유에서든 사회적 이유에서든 부모는 젖꼭지를 더 이상 탐하지 않는 아이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금지다. 우리의 욕망에는 타자의 욕망이 깊이 개입돼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분열된 주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라캉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던 것이다.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과거 타자가 욕망했던 것, 혹은 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불일치를 극복했을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사랑이 아니었으며, 혹은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사랑이었다는 때늦은 후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강신주 철학자·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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