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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 본부장

약점도 장점으로 바꾸는 반전(反轉) 커뮤니케이션

이방실 | 63호 (2010년 8월 Issue 2)
 

“바꿔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의 처음과 끝입니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은 “브랜드 리뉴얼(Renewal), 리포지셔닝(Repositioning), 리바이털라이제이션(Revitalization·재활성화) 등 ‘Re’로 시작되는 브랜딩(branding) 활동에서 언제나 명심해야 할 점은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유산)를 지켜나가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재항 본부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 본부장은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에서 약 16년간 근무하며 삼성그룹 및 삼성전자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 수립과 포스코 KTF 등 국내 대형 광고주 대상 서비스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1999년 국내 광고대행사 최초의 브랜드 전략담당 주재원(AP팀장)으로 제일기획 미주법인(뉴욕)에 부임, 4년여간 미주 지역 삼성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주도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국내 광고주 대상 전략 서비스 총괄 팀장(AP1 팀장, 2004∼2006년),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소장(2006∼2009년) 등을 역임했다. 작년 10월 현대자동차 계열 종합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으로 자리를 옮겨 현대와 기아 브랜드의 전략 수립 및 실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2002)>, <브랜드 마인드(2004)> 등 저술 활동과 함께 브랜드 컨설팅 및 트렌드 연구 분야에서도 활발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명심해야 할 제 1 원칙은 무엇입니까?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리브랜딩 과정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는데, 바꿔야겠다는 의지가 너무 앞선 나머지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적 유산까지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오류는 브랜드 정체성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그 정체성을 알리려는 일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정신을 명확히 정립하지 않은 채 무조건 밖으로 알리는 데에만 집중하면, 브랜드의 근본적인 쇄신 없이 외피에 덧칠만 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리브랜딩을 시도할 때도 많습니다.
이럴 때조차 과거의 유산을 지켜나가야 할까요?
2007년 초 미국 뉴올리언스 컨벤션 관광 사무국(The New Orleans Convention and Visitors Bureau·이하 사무국)이 전개한 광고 커뮤니케이션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뉴올리언스는 원래 재즈와 환락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어닥치면서 상황이 180도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뉴올리언스를 낭만적 도시로 인식하지 않게 됐지요. 열악한 인프라, 인종 갈등, 빈곤 등 부정적 연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게 됐습니다. 뉴올리언스가 회생 불능의 폐허가 아니라 유서 깊은 재즈의 발상지이자 미국의 대표적 관광도시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을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사무국이 내놓은 게 ‘Shaken. And Stirred’라는 슬로건이었습니다. 이 슬로건의 뜻은 말 그대로 ‘(뉴올리언스가 카트리나 피해로) 뿌리째 흔들려 완전히 전복됐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무국은 이 슬로건을 흑인 재즈 뮤지션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광고와 함께 제시함으로써 ‘(뉴올리언스가 강렬한 재즈로 인해) 흥에 겨워 뒤집어졌다’는 의미로 이중 해석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다른 광고 슬로건 ‘Soul is Waterproof’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허리케인이 왔다지만, 뉴올리언스의 재즈 혼(魂)은 태풍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안심하고 와서 즐겨라’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Shaken’ ‘stirred’ ‘water(-proof)’ 모두 태풍 카트리나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입니다. 뉴올리언스가 감추고 싶어하는 약점, 만신창이가 돼 버린 도시 환경을 환기시키는 단어들이지요. 하지만 이런 약점들은 부정한다고 감춰지는 게 아닙니다. 카트리나 피해로부터 완벽하게 복구됐으니 걱정 말고 (뉴올리언스로) 놀러 오라고 아무리 이야기한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도시 복구가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한번 덧입혀진 부정적 이미지를 소비자 머릿속에서 원천적으로 삭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무국은 이 같은 사실을 잘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약점을 숨기지 않고 공공연히 드러냈습니다. 대신 이 단어들이 뉴올리언스의 긍정적 이미지(재즈)와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교묘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친 것이지요.
 
제아무리 볼품없는 유산이라도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극적인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멕시코 코로나 맥주 사례도 이런 측면에서 적절한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 맥주가 북미 시장에 진출한 건 1980년대 말이었습니다. 막강한 잠재 경쟁자의 출현으로 당시 미국 업체들은 코로나의 행보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버드와이저가 때마침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330ml짜리 유리병에 담긴 코로나 맥주의 양이 병마다 제각각 다르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지요. 버드와이저는 이 틈을 놓칠세라 “맥주 양 하나 못 맞추는 코로나는 전혀 위협거리가 되지 못한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버드와이저의 비난은 흔히 사람들이 멕시코 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부정적 연상들, 즉 나태함, 게으름, 무절제, 마약, 공해 등의 이미지에 다분히 기댄 측면이 있습니다. 나태하고 게으르며 절도(節度)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멕시코 회사니 어쩔 수 없다, 맥주의 기본인 제조기술부터 형편없다며 대놓고 비방한 것이지요. 아마 버드와이저는 이 같은 지적을 하면서 내심 코로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들끓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코로나가 “당장 현대화된 공장을 건설해 맥주 양을 제대로 맞추겠다”고 발표했다면, 소비자들은 버드와이저의 기대처럼 코로나 맥주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병마다 맥주 양이 다른 것 자체가 멕시코의 여유와 낭만”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코로나는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멕시코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간파했고, 이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약점을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다른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사람들이 멕시코와 관련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연상 이미지들이, 실상은 무질서의 표출이 아니라 진정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자세라고 점잖게 훈수한 것이지요.
 
브랜드 유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은, 본질을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그 본질이 기업의 의도대로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입니다. 설령 약점이 있더라도, 그 약점까지 장점으로 비쳐질 수 있게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반전(反轉)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염두에 둔 마케터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대목이지요.
브랜드 유산을 성공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 모범 사례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2000년대 중·후반 가장 성공적인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사례로 HSBC를 꼽습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HSBC의 커뮤니케이션은 그다지 모범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HSBC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대규모 은행이다’ 등의 메시지를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로 잡았습니다. 1992년 당대 최대 규모의 금융권 인수합병(M&A) 사례로 꼽히는 영국 미들랜드 은행 인수를 계기로 잇따른 M&A를 통해 몸집을 키워나간 회사 전략의 영향 탓으로 보입니다. 아시아(홍콩·상하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의 대형 은행을 인수한 세계적 은행이라는 점을 의욕적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글로벌 은행이라고 스스로 떠들어대도,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HSBC는 금융 변방인 아시아 지역에 뿌리를 둔 로컬 은행이었을 뿐입니다.
 
HSBC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빛을 발한 건 2002년 ’The World’s Local Bank’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슬로건을 내세우면서부터입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금융 변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오히려 현지 문화와 현지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컬 은행이라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켰습니다. 아시아라는 태생적 한계를 떨쳐버리려는 헛된 노력 대신, 뉴올리언스나 코로나 사례처럼 이를 강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이지요.
 
기업 규모 측면의 강점을 내세운 1990년대 HSBC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비록 회사의 전략적 방향과 일치한다 하더라도 모범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물리적 특성은 절대 브랜드의 차별적 가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HSBC는 2000년대 들어 브랜드 유산을 재조명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행함으로써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브랜드의 진정한 차별적 가치는 브랜드 유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유산의 지속적 계승 발전 외에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에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외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 앞서 내부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선행돼야 합니다. 리브랜딩의 내용, 즉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가야 할지에 대해 내부 조직원들의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지 않은 채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지요.
 
1990년대 중·후반 가장 성공적인 리브랜딩 사례로 대개 IBM을 듭니다. IBM이 하드웨어 회사에서 소프트웨어(솔루션) 기업으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앞서 내부 조직원들의 마인드가 먼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IBM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가치는 하드웨어 장비가 아니라 솔루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직원들을 ‘Solution Provider(솔루션 제공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세계 각국에 나가있는 IBM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솔루션을 제공하는지를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 가장 모범적인 리브랜딩 사례라 할 수 있는 휴렛 패커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99년 칼리 피오리나 회장 취임과 함께 대대적인 CI 변경에 나선 이 회사는 휴렛 패커드 이름의 앞 글자를 소문자로 따서 hp 로고를 만듦과 동시에 브랜드 슬로건 ‘invent’를 집어넣습니다. 창의적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차고(garage)에서 밤을 지새우던 창업자들의 초기 벤처 정신을 다시금 부활시키자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슬로건이지요. 휴렛 패커드는 이 같은 경영 이념을 조직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종업원들을 ‘Inventor(창조자, 혹은 발명가)’로 명명합니다. 그리고 ‘휴렛 패커드 발명가들과의 만남 캠페인(Meet the HP’s Inventors Campaign)’을 통해 연구 활동에 매진하는 휴렛 패커드 직원들의 모습을 사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명심해야 할 리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리브랜딩의 궁극적 목적은 장수 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브랜드가 영속적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런 면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 ‘원 프러덕트 원 브랜드(One product one brand)’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무한한 제품을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제품의 속성과 형식이 바뀐다 하더라도 브랜드는 영구적으로 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처럼 제품이 곧 브랜드로 취급되는 상황에선 제품이 없어지면 브랜드도 사라집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정립하기 힘든 건 물론, 브랜드에 영속적 생명을 부여하겠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목표가 돼 버리는 구조지요. 브랜드 아키텍처(brand architecture)나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도 힘듭니다. 외국에선 종종 모기업에서 파생해 브랜드가 얼마나 확장됐느냐 여부로 브랜드의 성공 여부를 따지곤 하는데, 우리 나라에선 이런 평가를 할 만한 대상도 없습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엔 제대로 된 세탁기, 냉장고 브랜드 하나 없었습니다. 그저 ‘통돌이 세탁기’ ‘공기방울 세탁기’ 등 물리적 기능과 특성을 거명해 커뮤니케이션 했습니다. 전자 제품에 ‘트롬’ ‘지펠’ ‘디오스’ 같은 브랜드를 입히기 시작한 건 10년도 채 안 된 일입니다. 한국 기업들에서 제대로 된 브랜드 전략이 나오려면 제품과 브랜드를 동일시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영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브랜드 정체성과 상황에 맞춰 바꿔야 할 것을 구분하는 리브랜딩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이 기사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진경(26•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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