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3권의 비밀

5호 (2008년 3월 Issue 2)

 

필자가 S전자 대구 경북 지사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사는 당시 기업체, 정부기관, 공공단체 등에 전자제품을 납품하는 판매 전문직 사원 채용 공고를 냈다. 이때 34살의 김기대(가명) 씨가 지원했다. 김 씨는 외환위기 때 직접 운영하던 IT업체가 부도가 나 산전수전을 겪은 뒤 대기업 판매사원으로 응시한 처지였다. 필자는 각오와 결단력을 높이 사 그를 채용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한지 2개월 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노력하는데도 그의 실적은 저조했다. 필자는 주의 깊게 계속 지켜보다 어느 날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방문하는 기업체나 관공서마다 납품 경쟁이 치열하다”며 “결국은 가격 경쟁력이 경쟁업체들보다 떨어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판매 영업직의 첫 번째 노트는 상권 분석
하지만 필자는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전문가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필자는 평상시 두꺼운 대학노트 대여섯 권을 서랍에 준비해뒀다가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에게 나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을 때 노트를 건네주곤 했다. 필자는 김 씨가 최선을 다하는 사원이라고 판단해 대학노트 한 권을 꺼내놓고 그를 불렀다.
 
“이제부터 판매 영업에 관한 공부를 차근차근 해보겠습니다. 이 두꺼운 노트에 건물을 하나하나 그리세요. 예를 들어 빌딩 1층에는 은행 지점, 2층에 은행 사무실, 3층에 건설사 사무실이 있다고 합시다. 1층의 은행 지점 매장을 상세히 그린 뒤 컴퓨터는 몇 대를 사용하고 있고, 어느 회사의 제품이며, 얼마 뒤 교체할 것인지 적어 넣으세요. 그리고 1층 은행 지점장의 이름과 업무 스타일, 구매 담당자가 누구인지 파악해 노트에 기입하세요. 이런 방식으로 2층, 3층, 4층도 각각 기록하세요.”
 
필자는 김 씨에게 이런 방식으로 공공 기관이나 각 기업체의 현황을 일일이 파악해 노트에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지금은 잘 알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김 씨가 이런 식으로 노트를 가득 채우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공략하고자 하는 고객과 시장을 미리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이 노트를 조금 더 활용하면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고객의 인구 통계적 특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노트는 바로 ‘상권(商圈)’이라는 노트다. 필자는 판매 마케팅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상권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어 필자는 두번째 노트를 꺼냈다. “두번째는 분류를 위한 스크랩 노트입니다. 일반적으로 판매사원들은 기업체나 공공기관에 제품을 제안할 때 경쟁업체의 카탈로그를 모두 들고 가서 설명합니다. 이렇게 하면 설명하는 사람도 카탈로그를 찾아야 해서 불편하고, 이를 보는 고객도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따라서 29인치 완전평면 TV를 고객에게 제안한다면 두번째 노트에 각 회사의 TV모델 사진, 가격, 주요 스펙, 장단점, 핵심 소구대상을 본인이 직접 차트화해서 만드십시오.”
 
필자는 이렇게 자기만의 카탈로그를 만들어 브리핑 차트로 활용하면 고객도 편리하고 판매원들도 자신 있게 제품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각 제품별로 이런 ‘나만의 카탈로그’를 만들 것을 권유했다.
 
“경쟁업체 제품과 비교한 결과 자사의 제품이 비슷한 스펙과 기능에도 불구하고 B사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연구개발실에 직접 올라가 따져야 하고, 또 왜 이렇게 비싼 지를 고객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현장 판매사원들은 회사가 만들어준 카탈로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사가 만든 카탈로그는 범용성을 가지고 있지만 직접 연구 개발한 ‘브리핑 차트형 카탈로그’는 나만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DBR TIP] 현장영업 성공을 위한 노트 3권
 
① 상권(商圈) 노트: 거래처의 위치와 판매 현황, 담당자의 모든 것을 정리하라
② 자기만의 브리핑차트: 고객에게 쉽게 설명 가능하도록 자체 제작한 브리핑 차트를 만들라
③ 고객의 품격을 높이는 노트: VIP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고객 정보를 담은 노트를 만들어라

 
‘고객의 품격을 높여주는 노트’는 영업의 히든카드
필자는 마지막으로 고객의 품격을 관리하는 노트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우리는 영업을 하고 다니면서 최고경영자(CEO) 및 지점장 등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VIP를 많이 만납니다. 하지만 이들의 명함을 명함꽂이에 무심코 넣어 친구나 선후배 명함과 함께 보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CEO, 지점장, 구매담당 등 업무상 중요한 분들의 명함을 세번째 노트에 한 장씩 붙여 놔야 합니다. 노트 한 장에 그분들의 명함 한 장 씩을 붙여놓고 이 사람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세번째 노트의 이름은 바로 ‘고객의 품격을 높여주는 노트’입니다. 고객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당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 지점장의 구두에 먼지가 붙어 있으면 구두를 닦아드릴 수 있습니다. 기업체 사장이 무공해 식품을 좋아한다면 무공해 깻잎 한 봉지라도 갖다 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분들을 이용해서 ‘얼마를 납품해야겠다’거나 ‘내가 의도했던 목적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절대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성공한 이들의 삶을 배우겠다는 자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정보들을 명함 옆에 적어 둬야 합니다. 이들의 취미, 가족 관계, 개인적 성향 등을 주변에서 습득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씩 기록해 두세요.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고객을 위한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VIP 고객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때 당당히 전자제품 부문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임을 보여 드리세요. 이런 신뢰를 구축하면 경쟁 입찰에서 본인이 제안한 것이 채택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며칠이 지난 후 김 씨가 다시 필자의 자리로 왔다. 필자가 시킨 대로 자기만의 카탈로그를 만들어봤더니 자사의 완전평면 TV가격이 다른 경쟁사들보다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당장 연구실로 올라가 왜 가격이 비싼지를 파악한 뒤 고객들을 설득할 방안을 찾게 됐다고 의기양양했다.
 
“우리 회사의 TV는 모든 메이커의 DVD가 구현되지만 경쟁사 TV는 다른 회사 DVD를 구현할 때 10만 원대의 별도 컨텐츠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비싼 게 아니라 오히려 싸다는 것이 연구실의 설명이었어요.” 그는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을 깨우친 듯 의기충천해 열심히 영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5개월이 지난 뒤 그는 수 천만원의 수당을 받는 베스트 판매사원으로 거듭나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만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은 평생 먹고살 공부를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학교다. 사회 경험 또한 제일 큰 스승이다. 필자는 ‘노트 3권의 비밀’을 제시했다. 누구든, 어느 업종이든 자신만의 노트 3권을 만드는 노력으로 접근한다면 현장 영업의 성공 열쇠를 쥘 수 있을 것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