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야, 멈추어 다오. 나는 내리고 싶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이를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저절로 이런 말을 내뱉게 된다. 삶이 이렇게 각박해진 이유는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변화를 주도하는 기술은 오히려 인간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사람을 닮은 로봇은 최대한 인간의 기능을 흉내내려 한다.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3DTV는 TV 영상이 최대한 눈앞에 바로 펼쳐져 보이는 것처럼 하면서 인간의 시각에 호소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오히려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삶의 지혜를 되찾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일부 기업들은 시각적 사고의 부활을 기민하고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시각적 사고의 부활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펴보고, 우리 선조의 지혜를 부활시킬 방법을 알아본다.
문자로 계급화된 세상에서 힘을 잃은 시각적 사고
인간은 매우 시각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시각을 통해 풍부한 색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청각은 이보다 덜하다. 인간의 청각으로는 좁은 주파수 대역의 소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는 그림 그리기가 인류에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보여준다. 인류는 일찍부터 그림으로 시각적, 입체적 사고를 해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인류는, 지난 수백 년간 그림보다 문자를 통해 정보를 전달, 축적하려고 했다. 문자 중심의 사고와 의사소통은 필연적으로 선형적인 사고를 하게끔 한다. 상상력은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그림과 달리, 문자는 개념화된 객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문자를 통하면 그림을 이용했을 때보다 건조하고 다양성이 부족할 때가 많다.
게다가 문자는 사회계층을 고착시키고 계급화한다. 그림은 물체나 현상을 실제와 비슷하게 묘사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문자는 추상적인 형태여서 특정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또 문자 언어는 구두 언어보다 엄격하게 문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문자를 사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게 말을 할 때보다는 어려울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지배계층은 문자 사용을 통해 계급사회의 질서를 강화하기도 했다. 문자 사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지배계층에 진입하지 못했다. 또 지배계층은 갈수록 문자사용법을 고도화해서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과거 유럽 사회에서 지배계층이 자국어를 외면하고 라틴어를 고집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라틴어 성경을 고집했다. 이들은 미사도 라틴어로 진행했다(한국의 가톨릭 교회도 1964년까지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미사에 참여해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성직자들은 신과의 만남을 중재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종교적인 가르침이 사회 질서의 기반이 됐던 중세 시대에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한 것과 비슷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가 대중적 지지를 얻었던 것도, 그가 독일어 성경을 만들어 일반 대중이 성직자라는 매개체 없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이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외국어를 사용한 사례는 또 있다. 조선의 사대부가 한글 창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자를 조선의 공식언어로 유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른바 ‘랭귀지 디바이드(Language divide)’로 불리는 언어에 따른 계급 차별화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대한민국이 영어 열풍에 휩싸이는 현상을 글로벌 경쟁력을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만 볼 수 없다. 영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영어를 통해 나머지 다수에게 상대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 영어 열풍을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각적 사고, 테크놀로지에서 꽃피우다
20세기 정보기술(IT)이 일상에 깊이 파고들자, 랭귀지 디바이드는 컴퓨터를 매개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도스(MS DOS)로 컴퓨터를 구동하던 시절, 사용자는 컴퓨터 명령어를 알아야만 했다. 간단한 DOS명령어 하나를 해독해보자.
C:> Copy add.txt prn
이는 add.txt라는 문서파일을 프린터(prn)로 복사하라는, 즉 출력하라는 컴퓨터의 명령어다. 유럽 언어 대부분이 알파벳을 사용해도 영어는 아닌 것처럼, 이 컴퓨터 명령어도 알파벳을 사용했을 뿐이지 영어가 아니다. 초기에 컴퓨터 사용자가 10대와 20대로 국한됐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컴퓨터 사용자는 한글, 영어와 함께 컴퓨터 용어라는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해야 했다.
컴퓨터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컴퓨터가 그림을 통해 의사소통을 시작한 이후다. 제록스가 1970년대 개발한 ‘스타(STAR)’는 최초로 아이콘 개념을 도입한 컴퓨터다. 사용자가 아이콘을 통해 직관적으로 컴퓨터와 의사소통 할 수 있게 한 그래픽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 GUI) 방식은 전문가 집단에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1984년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선보이면서, GUI 방식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프랑스 라스코 지방에서 발견된 구석기 후기 시대 동굴벽화
인류의 시각적 의사소통 방식은 컴퓨터의 아이콘 사용방식에서 부활했다. 감상이 아닌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그림을 사용하는 현대인과 동굴 벽화를 통해 부족의 역사와 이야기를 계승했던 고대 원시부족은 닮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은 원시적인 형태로 회귀하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원시적인 시각적 의사소통 방식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보된 기술은 비로소 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작은 그림을 아이콘(Icon)이라 부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과거 이 아이콘으로 인해 교회가 서방가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분리됐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던 로마제국이 분열하면서 서로마제국은 가톨릭교회의 지배 아래 여러 국가로 분열됐다. 동방 민족을 개종하기 위해 동방정교회는 아이콘(성화상)을 적극 사용했는데, 서방가톨릭은 여기에 이단적 요소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콘 논쟁’으로 동방정교회와 서방가톨릭이 분리됐다. 이미 7∼8세기에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아이콘을 사용하려는 집단과, 문자 중심의 선형적 사고를 고집한 집단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림은 정보의 대중화를 확산하는 장치며, 계급사회의 질서에 도전하는 변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시각적 사고, 창조적 우뇌를 해방시키다
최근 들어서 시각적 사고의 대명사인 아이콘이 힘을 얻게 됐다. 이른바 아이콘과 이코노믹스가 합쳐진 ‘아이코노믹스(Iconomics)’의 시대가 도래했다. 시각적 사고의 부활은 인류가 단지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가 수평적 사고를 하는 ‘창조적 우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간 인류는 발전 과정에서 좌뇌의 사고 방식에 크게 의존해 시각적 사고를 활성화하지 못했다. 좌뇌는 논리적이고 수직적인 사고를 담당한다. 쉽게 말하면 사전 속에 단어가 나열되어 있듯이, 논리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의미다. 각종 자원을 결집해 군대와 정부 등의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서 좌뇌의 수직적 사고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했고 유능한 행정능력의 기본이 됐다.
주로 예술분야와 연관이 있는 우뇌의 사고방식은 좌뇌만큼 논리적이거나 치밀하지 않아서 종종 열등한 사고방식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통해 정보의 유통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자 좌뇌적 사고만으로는 각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차별화하기 힘들게 됐다.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사고가 가치창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우뇌와 수평적 사고방식은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