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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와 가격공정성

이방실 | 61호 (2010년 7월 Issue 2)
요즘처럼 더운 날씨엔 청량 음료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다. 코카콜라는 1999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자동판매기에 온도감지 센서를 달아 기온이 올라가면 콜라 값을 평소보다 더 올려 받겠다는 계획이었다. 제품 가격을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실시간으로 달리해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가격 차별 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똑똑한’ 자판기에 대해 소비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소비자들을 착취(exploitation)하는 처사다” “갈취(gouging)와 다름없다” 등 원색적 비난도 난무했다. 결국 코카콜라는 “단순한 아이디어일 뿐 여름철 추가 요금을 부과할 계획은 전혀 없다”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비난은 이율배반적 측면이 있다. 동네 편의점에서 500원에 살 수 있는 콜라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5000원에 팔아도 비난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여름철 해변가에 설치한 자판기와 회사 구내 자판기 콜라 값이 달라도 모두 수긍을 한다. 우리 주변엔 이미 가격차별화가 일상화 돼 있다. 그런데도 왜 소비자들은 코카콜라의 아이디어에 분노했을까?
 
소비자들의 이런 반응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가격 공정성 인식(price fairness perception)’이라는 게 있다. 사람들은 어떤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를 평가할 때 과거 경험이나 현재 상황을 고려한다. 즉, 어떤 제품(혹은 대체재)을 어느 정도 가격에 구입했었는지 생각해보고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기대 가격(준거 가격·reference price)을 정한 후 이에 비추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제시된 가격이 준거 가격과 차이를 보일 때 소비자들은 공정치 않다고 인식하고 때로는 불쾌감과 배신감, 분노 등 부정적 반응을 표출한다.
 
물론 소비자들이 가격 차별을 언제나 용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기업, 특히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회사가 원재료가 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올릴 때에는 공정하다고 판단한다. 반면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차별적 가격을 내세운다면 불공정하다고 본다. 또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비자들이 가격 책정 과정에 참여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하면 공정하다고 여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똑같은 제품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어도 소비자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 차별이나 변동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소비자가 반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와 관련, 란 시아 미국 벤틀리대 교수 등은 2004년 저널오브마케팅(Journal of Marketing)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제품 판매 시 다양한 부가 서비스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제품과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힘들어 공정성에 대한 판단 자체가 어려워진다. 제품의 비용 구조와 품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품의 비용 구조상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 소비자들도 공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좋은 평판을 쌓고, 다양한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와의 신뢰가 쌓이면 설령 가격을 조금 인상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반응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흔히 투입 비용과 목표 이익 등 계량적 수치만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곤 한다. 그러나 부당한 가격(unfair price)이란 인식을 주지 않으려면 소비자가 인지하는 제품 가치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격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코카콜라가 더운 날씨에 콜라 값을 올려 받는 게 아니라 추운 날씨에 싸게 판다는 점을 집중 홍보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불공정성(advantaged inequality)’에 대해선 부정적 감정 표출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십중팔구 ‘멍청한’ 자판기에 큰 호응을 보였을 게 분명하다. 코카콜라는 겨울철 콜라 소비량을 늘림으로써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코카콜라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마케터들은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가져야 한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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