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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두 과목에 올인(All-in) 하라

전옥표 | 4호 (2008년 3월 Issue 1)
필자가 전자통신 유통기업을 운영할 때의 경험이다. 통신가입자 유치를 주도하는 사업본부장이 어느 날 자금 3억 원이 필요하다면서 필자에게 결재를 받으러 왔다. 통신가입자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거래처들보다 가격경쟁력을 잘 유지하기 위해 한달에 약 3억 원 정도 펀드 기금을 마련해 미리 가격에 반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번 주에는 우선 7000만 원의 자금을 투입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필자는 “가격을 깎아서 판매하는 것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와 처음에는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듯싶지만 또 다른 업체에서 자금을 투입해 가격을 무너뜨리면 서로 ‘제살 깎아먹기’만 된다”고 설득했다. 가격 경쟁력을 위해 자금을 사용하는 대신 정정당당하게 시장논리에 의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며칠이 지난 후 통신사업본부장은 관리본부장과 함께 다시 필자를 찾아왔다. 이제는 관리본부장이 가격경쟁력 때문에 통신가입자 유치가 힘들다며 선도적인 자금 투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사장인 나를 설득하지 말고 시장과 고객을 설득해 가격이 비록 비싸지만 우리 회사가 가진 강점부분을 강조해 가입자를 유치토록 하라”고 설명하고 돌려보냈다. 또 며칠이 지난 후 이제는 통신본부장이 회사의 임원들을 대동하고 와서 가입자유치를 위해서는 선(先)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며 약 1억 원의 돈을 미리 집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필자는 즉시 통신사업에 관련된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에서의 경쟁우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 물론 가격일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과목이 반드시 A+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고객은 그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하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반드시 선택하게 돼 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가격이라는 한 과목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시장 경쟁에는 가격이라는 과목 외에 두 과목이 더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는 상품이라는 과목이다. 남이 가지지 못한 인기 있는 상품을 잘 준비해 비록 가격은 비싸지만 고객이 그 상품을 가진 우리 회사를 선택하도록 하라. 결국 상품이라는 과목에서 A+를 맞아야한다. 이것이 두 번째 과목이다. 세 번째는 친절이라는 과목이다.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데는 개통을 도와주는 여직원들의 능력과 친절한 자세가 다른 업체보다 뛰어나야 한다. 따라서 직원의 친절이라는 과목에서 A+를 맞도록 훈련하고 교육하라. 또 개통성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달리 하라. 쉬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라는 과목을 잘못 손대면 시장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만다. 예를 들어 가격이라는 과목에서 A+를 맞고 상품이라는 과목에서 C+, 종업원의 친절도라는 과목에서 C+를 맞으면 평균 합이 B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과목에서 B+를 맞고 상품에서 A+, 친절도에서 A+를 맞는다면 비록 과목별 가중치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평균평점이 A정도는 될 것이다. 여러분이 주목해야할 것은 가격이라는 과목 외에 두 과목이 더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항상 두 과목이 더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가 천천히 한 시간가량 교육 겸 설명을 해주자 직원들은 그때서야 수긍이 간다며 근본 취지를 이해하겠다고 했다. 그 후 통신개통 여직원들의 친절도 향상을 위해 필자는 직접 별도 교육을 세 번에 걸쳐 실시하고 판매성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달리했다. 그런 우여 곡절 끝에 한달을 마감하고 나서 평가를 한 결과 전략이 적중해 엄청난 개통성적을 올리게 됐다. 물론 가격 질서도 유지되고 자금이 추가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통신을 맡고 있는 직원들이 이기는 습관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남이 하지 않는 영역인 온라인 개통이라든지 틈새시장으로 남아 있는 직판 개통 등의 여러 경로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때 쉬운 길을 선택하였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게 된다. 이때 신념이 가리키는 쪽의 선택을 우선해야 한다. 군중의 힘이라는 거센 파고에 떼밀려 ‘밀어붙이기식’으로 결정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 파묻혀서 결국엔 엉뚱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는 항상 현재의 대안이외에 두 과목이 더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과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찾아내야 한다. 이기는 기업과 지는 기업의 차이는 이 두 과목을 누가 먼저 발견해 전략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온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시장 해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한 과목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 ‘인식의 올가미’에 매몰되어 있다. 이제는 솔루션을 구할 때 두 과목을 더 찾아야 할 것이다.
 
가격으로 팔지 말고 이름으로 팔아라
A전자 전략마케팅 팀장 시절 국내 대형 유통회사인 M유통에서 프리미엄급 전략제품의 공급가격을 더 낮춰달라고 요청해왔다. M유통은 당시 A전자회사의 제품을 많이 판매하는 회사라서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공급가격을 조정하다보면 다른 거래처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었다. 실무담당 부서장들은 공급가격을 조정해 많이 판매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는 공급가격을 더 싸게 해주면 이를 통해서 상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했다. 결국 M유통은 A전자의 프리미엄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며 매장 진열에서 이 제품들을 제외시키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최고 경영진과 실무 부서장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성토라도 하듯이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투였다. 하지만 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프리미엄 제품들의 소비자 홍보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보름이나 지났을까 M유통의 대표는 공급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현재의 조건대로 거래를 지속하겠다며 식사를 요청해왔다. 흔쾌히 응하고 식사자리에 나갔는데 M유통의 사장이 중요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는 “매장에서 A전자의 프리미엄 제품들을 진열하지 않았더니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해 고급제품을 취급하지 않은 매장으로 인식해 매장을 중·저급 디스카운트 스토어로 취급했다. 이런 보고들을 받고 거래를 재개하기로 했다. 전략마케팅 팀장님의 고집이 그렇게 센 줄 몰랐다”며 그 동안의 고충을 떨어놓았다.
 
나는 잘 선택하셨다고 격려해주면서 지속적인 거래를 약속했다. 결국 가격으로 팔지 말고 이름으로 팔다보면 제대로 된 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값이 싸면 고객들이 무조건 많이 살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구매행태를 보더라도 상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유용한지, 또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가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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