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과 변화라는 두 가지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신의 개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의 HBR 리스트는 기발하다기보다 유용하고,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기보다 즉시 활용 가능한 아이디어들로 채워져 있다. 이 아이디어들을 한데 모으고 가려내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이미 수 개월 전이지만 우리는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시점에 펼쳐질 상황을 예측하고 고려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 글의 일부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략적 의사 결정, 신규 시장 개척, 최고의 인재 발굴 및 등용, 네트워크 효과 활용, 혁신적 기술 및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대처 등 비즈니스 리더들이 고심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최근 수 년 동안 우리는 에디터들이 전문가들과 맺고 있는 인맥을 동원하여 아이디어를 모았다. 또 2008년 6월 뉴욕에서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과 협력해 브레인 스토밍 회의도 열었다. 하루 종일 진행된 회의를 통해 많은 유망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우리는 이들에게 WEF·HBR 아이콘을 부여했다.
[01] 금융상품의 소비자 안전 규제
-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티아기
경기 침체기에는 ‘이것이 누구의 잘못으로 나타난 현상이냐’는 책임 추궁이 흔히 벌어진다. 현재 많은 사람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주택 담보 대출, 신용카드, 기타 소비자 금융 상품 판매를 감독하는 법제 체계다.
대부분의 소비자 구매부분과 달리 미국의 소비자 금융은 여전히 18세기 계약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09년에도 이 감독 체계의 기본은 1709년에 농업국이던 잉글랜드의 체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2명의 상인이 계약 조건에 대해 흥정을 하고, 법원은 그들이 결정한 바에 법적 효력을 부여한다. 구매자 책임 원칙, 즉 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그 상품에 어떤 결함이 있거나 어떤 손상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이는 2명의 영세업자가 쟁기를 거래하는 경우에는 매우 적절한 원칙이었다. 정부의 책임은 위험한 상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합법화하고 상업이 원만히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구매자 책임 원칙은 사라졌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미국에서 판매된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한 기본 안전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금융 상품의 경우 당사자들은 활발한 협상을 벌이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통상 금융 계약 조건에 대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다. 일반 소비자들이 1조 달러 규모의 거대 은행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개념은 터무니 없다. 신용카드, 주택 담보 대출, 승용차 융자의 계약 조항은 노련한 변호사들조차 해석하는 데 애를 먹을 만큼 장황하고 복잡하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한 대출자가 어떤 품목이나 계좌의 지불을 연체했을 때 신용 상태가 좋은 다른 계좌의 이자율을 올리거나 잠재적 신용 불량자로 규정하는 ‘유니버설 디폴트(universal default)’, 대출 상환 초기에만 최저 금리를 제시하고 이후에는 엄청나게 높은 고금리로 대출자를 압박하는 ‘미끼 금리 담보대출(teaser-rate mortgages)’, 대출자의 부담을 덜어준답시고 초기에 이자를 깎아주지만 할인해 준 이자를 원금에 추가해 나중에는 갚아야 할 원금이 당초보다 훨씬 커지는 ‘역 상각(易償却)’ 등이 성행하는 것을 봐 왔다. 이는 한결같이 복잡한 계약 조건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을 혼돈에 빠뜨려 돈을 우려내는 장치였다.
때문에 금융 계약을 다른 상품처럼 취급한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혼선을 빚고 있는 연방 및 중앙 정부의 현행 법제는 CPSC와 비슷한 신규 규제 기관에 의해 새로이 정돈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소비자신용안전위원회는 금융 상품을 더욱 투명화해야 하고, 여기에 포함된 교묘한 술수나 함정도 제거해야 하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금융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안전 규제는 금융시장을 일반 상품시장만큼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소비자 권익 및 공정성에 기반한 단기 계약과 명확한 계약 조건은 대부업체들의 저질 경쟁을 올바른 경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는 채무불이행 및 주택 차압 비율을 낮춤으로써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측 가능한 지불 및 지급불이행 비율 하락은 분명 미국 경제에 유익하다.
지금은 소비자 신용법을 하루 속히 재고해야 할 때다. 이제까지 미국의 소비 증가가 국제 경제를 뒷받침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가정은 더 이상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주택 유지비, 의료비, 육아비, 교통비, 식비 증가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중산층 소득 때문에 미국 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경제적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은 기초생활비 마련을 위해 신용 대출에 의존했지만 이는 단기적인 수단일 뿐이며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미국에서 이뤄진 6건의 주택 담보 대출 중 하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에서는 5000만 가구가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가구 가운데 하나는 대부업체의 추심 압박 전화를 받았으며, 100만 명 이상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주택 차압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이러한 위기는 중산층에게 닥친 곤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이 추세가 이미 10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혁신과 생산성이라는 미국의 강점은 활기찬 중산층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미국 중산층 구성원들은 더 이상 까다로운 금융 상품을 구매할 여유가 없으며, 금융시장 역시 그들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 미국 중산층은 지금 자신의 가정과 미국 경제 모두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세분시장에 기본적인 안전 기준만을 적용한다고 해도 소비자, 투자자, 국제 경제 모두에 절실히 필요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하버드 법학대학원의 레오 고틀립 법학 교수다. 8권의 책과 신용위기 및 경제난을 다룬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70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구제금융 관련 의회 감독 위원회(Congressional Oversight Panel) 위원이기도 하다. 아멜리아 티아기는 전직 맥킨지 컨설턴트로,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비즈니스 탤런트 그룹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다. 두 사람은 <맞벌이의 함정(Two-Income Trap)>과 <맞벌이 부부의 경제학(All Your Worth)>을 공동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