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위기 탈출 신화와 함께 고객만족(CS)이 경영의 화두로 등장했다. 1981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얀 칼손은 CS 경영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뒤 취임 1년 만에 800만 달러의 적자를 7100만 달러의 흑자로 전환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뒤 30여 년 동안 수많은 기업이 성공의 열쇠로 CS 경영을 택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구매해 주길 바라는 기업 수만큼이나 많은 각종 고객만족지수(CSI)가 등장했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추종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이 미션을 누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를 CSI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기업은 CS 경영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너도 나도 CS를 부르짖으니, 고객이 ‘OK’ 하고 기업이 방긋 웃는 파라다이스는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는 CS 경영
기업에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고객 중 80%가 불만족한 고객이 아닌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수록 고객의 눈높이 또한 높아졌다. 기존 제품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이 대거 양산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CS 경영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객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으며 노력해도 고객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도 못하는, 그렇지만 쉽게 내던질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가 바로 CS 경영일까? 그렇지 않다. CS는 ‘큰 소용은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 존재가 결코 아니다. CS 경영을 계륵으로 오해하게 되는 첫째 원인은 바로 ‘CS=고객충성’이라는 공식에 대한 맹신이다. 고객이 기업의 제품을 반복해서 찾는 이면에는 분명 만족 이외의 여러 이유가 있다. 혹자는 제품이 좋아서 다른 제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한 제품에만 손을 뻗는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 그저 그 제품을 구매할 따름이다. 반복적 구매라는 결과는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충분히 만족했지만 더 이상 그 제품을 살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예산 부족 등 다른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다른 제품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고객은 만족하고 충성하기도 하지만, 만족하지 않고도 충성하기도 하며, 만족하되 충성하지는 않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물론 고객을 만족시키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충성을 이끌어낼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러나 오늘의 만족이 내일의 구매를 100% 담보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분명 내일의 구매를 위한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충성도와 만족도는 별개일 수도
이런 측면에서 만족도와 충성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충성도를 관리하는 첫걸음은 무엇이 고객의 발목을 붙잡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한 예로 필자는 스카이(SKY) 휴대전화만을 고집하는 한 지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스카이 휴대전화의 디자인이나 기능 때문에 반복 구매를 하는 줄 알았지만 전혀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바로 문자 입력 방식이었다. 처음 산 휴대전화가 스카이인데 그때 익힌 문자 자판에 익숙해진 것이다. 아울러 음성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더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제품이 눈에 들어와도 스카이 휴대전화를 산다고 했다. 한 종류의 신용카드만을 사용하는 또 다른 지인은 카드 서비스에 불만이 많으면서도 그 카드만 사용한다. 다른 카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카드를 사용해야만 카드 포인트로 선(先) 할인 받은 자동차구매액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포인트를 채우고 나면 미련 없이 카드를 잘라 버릴 것이라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결국 만족한 고객뿐 아니라 만족하지 않는 고객도 충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기업은 불만족 상태지만 충성하는 고객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족하지 않았더라도 한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한 습관 때문에 충성하는 것인지, 다른 제품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금전적 손실 때문에 고객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조사해야 한다. 또는 선택할 만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고객도 있을 것이다. 불만족 고객의 충성 요인을 분석한 뒤에는 이들을 고객으로 더욱 단단하게 묶어두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고객의 작지만 강력한 습관을 만들 것인지, 쉽게 포기하기 힘든 혜택을 제공할 것인지, VIP로 대접해서 유인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이는 CS대상을 받는 것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