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다 보면 도로변에서 대형 가전양판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LG전자·하이마트·전자랜드뿐 아니라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가전매장까지 합하면 전국에 약 2100개의 가전양판점이 있다. 눈에 띄는 큰 도로변에 복층으로 쾌적하게 매장을 꾸미고 편리한 주차시설을 갖춘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은 상권 안에 여러 업체가 몰려 있어 경쟁은 심한 편이다.
지난 1월 14일 기자가 찾아간 경기 시흥시 대야동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은 위치와 규모 면에서 경쟁업체들에 비해 뒤져 있었다. 반경 1km 안에 가전양판점 5개가 몰려 있는 이곳의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을 제외한 4개 업체들은 496∼1983㎡(약 150∼600평) 규모로 상권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주도로에 접해 있다. 반면에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은 주도로를 벗어난 경사진 길에 자리한 면적 331㎡(약 100평)의 단층 매장이다. 게다가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인근의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매장에서 따로 무료주차권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지역은 인구가 정체하거나 줄어들고 있어 일정한 매출을 5개 업체가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즉 한 점포의 매출이 오르면 다른 점포의 매출은 줄어드는 ‘시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업체들에 비해 열악한 상황의 레드오션 상권에 있는 시흥점은 예상외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월 평균 5억3000만 원, 한 해 6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디지털프라자 전국 평균 매출의 2배에 이른다. 이곳은 또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전국 500여 개 디지털프라자를 대상으로 미스터리 쇼퍼를 통해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100점 만점을 받아 1위에 올랐다.
냉철하게 약점을 파악하라
디지털프라자 시흥점 한복석(46) 대표는 경기 김포시에서 친형과 동업으로 3년 동안 가전양판점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이 점포를 2006년 6월에 인수했다. 이미 문을 연 지 5년이 지난 점포를 리뉴얼하려고 보니 손을 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가전양판점의 이상적인 형태는 점포가 도로와 수평을 이뤄 행인들이 쇼윈도를 통해 내부 진열대에 놓인 가전제품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정면이 경사진 길에 위치한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은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기에는 내부 진열대가 너무 높아 고객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또 건물의 경사진 면과 모서리 부분 2곳에 입구가 있어 드나들기에 복잡했다.
한 대표는 고민 끝에 과감히 정면의 쇼윈도를 없애기로 했다. “가전양판점에서 고객을 불러들이는 핵심 요인인 매장 정면의 쇼윈도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쇼윈도를 두기보다 한번 들어온 고객이 오소리 굴처럼 매장을 아늑하게 느끼고 쇼핑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대표는 매장에 방문한 고객의 시선이 밖으로 향하지 않도록 경사진 정면의 쇼윈도는 광고필름으로 막고 정문은 없앴다. 모서리에 있는 출입문 하나만 남겼다.
판촉의 포인트는 ‘매장의 위치 알리기’ 딱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경쟁업체들에 비해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위치했다는 약점을 극복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대개 홍보전단의 한가운데에는 대대적으로 할인행사를 하는e 품목과 가격이 쓰여 있지만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의 홍보전단 한가운데에는 매장 위치를 알리는 지도가 큼지막하게 있다.
가족 같은 직장 위해 대표 직함도 버려
한 대표는 점포를 인수하면서 기존의 직원들을 고용 승계했다. 그런데 이전에 점장을 맡던 직원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 대표가 점포를 판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숨기는 바람에 점포를 팔기 보름 전쯤에야 점장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헌신적으로 일해 왔는데 그 일이 무척 서운했나 봐요. 게다가 몸과 마음도 지쳐 있어 사표를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대표는 인수 후 점포가 무사히 안정화할 수 있도록 점장에게 초기 3개월만이라도 계속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다른 점장을 영입할 수도 있었지만 3개월 동안 지켜보니 우리 점장이 저보다 더 대표 같았습니다. 점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커서 마치 점포를 자신이 운영하는 것처럼 책임감 있게 몰입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인재는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삼고초려가 시작됐다. 한 대표는 3개월 동안 점장과 20번도 넘게 면담을 가지며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여러 차례 술을 마시며 달래기도 하고 새벽에 점포 문을 닫고 그 앞에 나란히 앉아 날이 밝도록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 대표의 간곡한 마음에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점장의 마음은 바뀌었다. 지금도 점장은 3년째 디지털프라자 시흥점의 실무관리를 도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