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F&B 시장은 음식을 단순한 식사를 넘어 SNS 인증 등 하나의 경험과 콘텐츠로 소비하며 트렌드 변화가 매우 빠르고 경쟁 밀도가 높다. 이로 인해 한국 시장에서는 글로벌 브랜드가 자체적인 오리지널리티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오히려 로컬 브랜드들이 글로벌 콘셉트를 빠르게 재해석하고 변주하는 ‘스트롱 팔로워’로 활약하며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전 세계의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한 한국 시장에서 글로벌 F&B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확고한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Core)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시장에 맞춰 운영과 메뉴를 유연하게 조정(Flex)하는 ‘코어 앤드 플렉스’ 전략과 다각적인 공간 경험과 브랜드 스토리를 등을 제공하는 ‘경험 밀도’를 갖추는 것이 필수다.
최근 미서부식 멕시칸 음식을 선보이는 치폴레(Chipotle)의 한국 진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식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패스트캐주얼’ 트렌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은 치폴레는 2026년 상반기 서울 강남역 인근에 첫 매장을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치폴레의 한국 상륙에 대한 기대를 담은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시장은 새로운 글로벌 F&B(식음료) 브랜드가 등장할 때마다 큰 관심을 받는 시장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는 쉐이크쉑, 블루보틀, 파이브가이즈, 팀홀튼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잇따라 진출했다. 해외에서 성공한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만으로도 소비자와 업계의 기대감이 빠르게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대가 항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20년 미국 프리미엄 에그 샌드위치 브랜드 에그슬럿이 서울 코엑스몰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매장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푸드 트럭으로 시작한 이 브랜드는 부드러운 달걀 요리와 독특한 브랜드 스토리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서도 ‘오픈런’을 기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24년 11월을 끝으로 에그슬럿은 국내 모든 매장을 정리하며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 실패라기보다 F&B 시장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고 새로운 브랜드와 메뉴에 대한 반응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다. 인접한 일본 시장과 비교할 때 국내 시장과 더욱 명확한 차별점이 드러난다. 일본 외식 시장이 장인정신과 정통성을 중시하며 브랜드가 서서히 시장에 스며드는 ‘숙성의 시장’이라면 한국은 고밀도 네트워크와 역동적인 소비자층이 결합해 브랜드의 탄생부터 성숙 혹은 도태까지의 생애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초고속 시뮬레이터에 가깝다. 즉 한국은 글로벌 브랜드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진 화제성과 지속가능성을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검증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속도’에 있다. 한국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가 오랫동안 독점적인 경쟁력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왜 글로벌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가 한국에선 유독 지속되기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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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b-hind@yonsei.ac.kr
미디어문화연구자·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필자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방송 영상, 문화 기술, 문화 연구를 아우르는 다학제적 배경에서 미디어 문화를 연구한다. 2010년 미국 음식 전문 채널 푸드네트워크를 통해 음식 콘텐츠에 눈을 떴고 미디어연구의 관점에서 음식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K” 없는 K-푸드』(2025) 『한편-한국』(2025) 『한류백서 2024』(2025) 등이 있다.